참살이의꿈

후회하면 안 돼!

샌. 2004. 8. 22. 15:55

서울을 떠나 시골로 거처를 옮긴 후배와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배는 탈서울한지 벌써 5년이 되니 이젠 안정 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집에 가 보아도 모든 것이 틀이 잡혀 있어 부러울 때가 많다. 나무들도 언제 그렇게 컸는지 처음 심었을 때는 보잘 것이 없었는데 이젠 집을 가릴 정도의 탐스런 나무로 자라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고 멋진 전원 주택이지만 그만큼 가꾸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들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후배가 자리잡은 곳은 마석에 있는 전원 주택 단지이다. 20필지 정도의 규모로 업자가 개발해 놓은 것인데 땅을 구입해서 집을 지어 입주했다. 대부분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단지에 들어가는 것이 원주민들의 텃세나 생소한 환경을 피할 수 있어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다.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집단으로 어울려 사는 것이 훨씬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후배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많이 겪었다. 지금도 소송까지 올라간 사건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그간 세상살이에 대해서 참 많이 배웠노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전원 생활의 장점도 그에 못지 않을 것이다.

5년 전의 결단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피식 웃는다. 그러면서 어려운 경우에 처할 때마다 "후회하면 안 돼! 후회하면 안 돼!"라고 자기 암시를 하면서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한다.

살던 아파트를 팔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를 데리고 내려갔으니 거기에 사실 올인한 셈이다. 첫째가 지금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가 되었으니 교육 문제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후회하면 안 돼!"라며 최면을 걸 듯 첫 마음을 지켜내려 애쓰는 후배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또 지금의 내 처지에서도 충분히 공감이 가서 나를 돌아보며 가슴이 짠해진다.

두 사람 모두 새로이 일을 저지르지 않고 그냥 편하게 살 수도 있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어떤 내적인 충동이 새로운 길을 찾게 하고 그 길은 덜커덩거리는 자갈밭 길이었음을 새 길에 들어서면서 새삼 확인하게 된 것이다.

겉으로 멋지게 보이는 초록의 잔디밭과 언덕 위의 그림 같은 집, 그것은 단순한 희망이나 부러움만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그림 뒤에 숨어있는 주인의 땀과 노력이 이젠 내 눈에도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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