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김유정 생가와 금병산

샌. 2013. 2. 3. 12:19

 

춘천시 신동면 증리는 소설가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이 태어난 마을이다. 금병산에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옴폭한 떡시루 같다 하여 실레마을이라고 불린다. 이곳에 김유정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김유정 생가는 'ㅁ'자 모양으로 방이 4칸인 꽤 큰 집이다. 그의 조부가 지었는데, 조부 김익찬은 춘천 의병 봉기 때 재정 지원을 하였으며 당시 이 마을 대부분의 땅이 그의 소유였다고 한다. 당시에 6천석 추수를 하는 춘천의 명가였다. 중부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ㅁ'자 형태를 하고 기와집 골격이지만 초가를 얹은 이유는 헐벗고 못 먹는 사람들이 많던 시절이라 집의 내부를 보이지 않게 하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의 집에 들면 포근한 느낌을 받는다. 안뜰에서는 하늘이 손수건만하게 보이고, 생활 동선이 가운데로 집중된다. 한 가족이라는 의식이 저절로 자라날 수밖에 없다. 왠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 같다.

 

이 집에서는 안뜰에 굴뚝이 있는 게 특이하다. 사랑방 아궁이에 불을 때면 고래를 따라 열이 이동하는데 개자리(방구들 위목에 깊이 파놓은 고랑)에 머물던 더운 기운은 그을음과 티끌을 다 떨어버리고 맑은 연기만 배출된다. 안뜰에 번지는 연무는 우리 옛 가옥의 정취이면서 방충 기능도 한다. 모기뿐만 아니라 목재를 파먹는 벌레를 막아주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균하는 기능이 있다. 선조들의 멋과 생활의 지혜를 배운다.

 

그러나 김유정 개인의 생애는 불행했던 것 같다. 유아기에 서울로 이사한 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읜 뒤 모성 결핍으로 말을 더듬기도 했다. 연희전문에 다닐 때는 당대의 명창 박녹주를 열렬히 구애하느라 학교 결석이 잦아 두 달 만에 제적당했다. 상처를 안고 귀향한 김유정은 고향 마을에 금병의숙을 열어 야학 등 농촌계몽활동을 벌였다. 그뒤 작가로 등단하지만 폐결핵으로 29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쳤다. 죽기 열흘 전에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가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있다. 그리고 맹열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되겠다. 달리 도리를 차리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는 일으키기 어렵겠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백원을 만들어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 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해 보고 싶다. 그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있는 걸로 두어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역하여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 주마. 하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필승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 보겠다. 그래야 내가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쏘구리 돈을 잡아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 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금병산(金屛山, 652m)이 실레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금병산 때문에 이 마을이 더욱 아늑하게 보인다. 산에는 여러 가지 산책 코스가 만들어져 있다. 가볍게 걷거나 등산할 수 있는 아담한 산이다.

 

트레커 일곱 명이 금병산에 올랐다. 어제 비가 온 뒤 얼어붙어 산길은 빙판길로 변해 엄청 미끄러웠다. 정상에서는 산새들과 함께 간식을 먹었다. 딱새는 손바닥 위에 앉으며 빵조각을 물어갔다. 

 

 

 

정상에서는 춘천 시내와 삼악산, 대룡산 등이 가까이 보였다. 우리는 김유정역에서 시작하여 김유정 문학기념관을 지나 정상에 오른 뒤 산골나그네길을 따라 원점으로 하산했다. 네 시간 가량 걸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강촌 산속에 있는 음식점[옹장골관광농원, 033-263-2633]에 들렀는데 장작으로 돌판을 달궈 요리한 닭갈비가 무척 부드럽고 담백했다. 음식에는 입맛만 아니라 눈맛도 있다.

 

서울에서 춘천까지는 1시간 정도면 된다. 지금은 전철이 개통되어 교통도 편리하다. 춘천에는 산이랑 음식이랑 여러가지 즐길거리가 많다. 앞으로 나들이하는 주방향은 동쪽으로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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