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함석헌 읽기(5) -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샌. 2013. 2. 5. 08:26

5권에는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비롯해 21개의 글이 실려 있다. 모두가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심(憂國心)으로 가득하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1958년 '사상계' 8월호에 실린 글로 '6.25 싸움이 주는 역사적 교훈'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선생 글의 주제가 깨어 있는 씨알이 되자는 데 있다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만큼 선생의 외침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제목도 없다.


이번 대선 투표 성향을 분석했더니 소득 최하위층에서 박근혜 지지율이 제일 높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무려 66%로 문재인 지지율 34%에 비해 거의 두 배나 되었다. 반면 중상층에서는 그 격차가 2%에 불과했다. '가난한 사람은 왜 부자를 위해서 투표하는가'라는 의문이 이번에도 들었다. 그들은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마저 앗긴 것이다. 정치의식의 결여와 가난은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제대로 살 수 있다.


우리의 근본 결점은 위대한 종교가 없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백 가지 폐가 간난에 있다 하지만 간난 중에도 심한 간난은 생각의 간난이다. 철학의 간난, 종교의 간난이다.


우리의 역사적 숙제는 이 한 점에 맺힌다. 깊은 종교를 낳자는 것, 생각하는 민족이 되자는 것, 철학하는 백성이 되자는 것. 그러면 6.25의 뜻도 어쩔 수 없이 여기 있을 것이다. 깊은 종교, 굳센 믿음을 가져라. 그리하여 네가 되어라. 그래야 우리가 하나가 되리라.


남쪽 동포도 북쪽 동포도 동포라고는 하면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칼을 겨누고 형이 동생에게 총을 내미는 싸움인 줄은 천이나 알고 만이나 알면서도 쳐들어온다니. 정말 대적으로 알고 같이 총칼을 들었지 어는 한 사람도 팔을 벌리고 "들어오너라, 너를 대항해 죽이기보다는 나는 차라리 네 칼에 죽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땅이 소원이면 가져라. 물자가 목적이면 마음대로 해라. 정권이 쥐고 싶어 그런다면 그대로 하려무나. 내가 그것을 너하고야 바꾸겠느냐? 참과 바꾸겠느냐?" 한 사람은 없었다. 대항하지 않으면 그저 살겠다고 도망을 쳤을 뿐이다. 그것이 자유로운 혼일까. 사랑하는 마음일까. 만일, 정말 그런 혼이 국민 전체는커녕 일부라도 있었다면 소련, 중공이 감히 강제를 할 수 있었을까. 우리 속에 참으로 인해 길러진 혼의 힘이 도무지 없음이 남김 없이 드러났다. 해방이 우리 힘으로 되지 않았으니 진짜 해방이 될 리 없다. 이제라도 우리 손으로 다시 해방을 해야 한다.


전쟁이 지나간 후 서로 이겼노라고 했다. 형제 싸움에서 서로 이겼노라니 정말은 진 것 아닌가. 어찌 승전 축하를 할까. 슬피 울어도 부족할 일인데. 어느 군인도 어느 장교도 주는 훈장을 자랑으로 알고 다녔지, "형제를 죽이고 훈장이 무슨 훈장이냐" 하고 떼어 던진 것을 보지 못했다.


전쟁 중에 가장 보기 싫은 것은 종교단체들이었다. 피난을 가면 제 교도만 가려 하고 구호물자 나오면 서로 싸우고 썩 잘 쓴다는 것이 그것을 미끼로 교세 늘리려고나 하고, 그러고는 정부 군대가 하는 일, 그저 잘한다 잘한다 하고 날씨라도 맑아 인민군 폭격이라도 좀더 잘 되기를 바라는 정도였다. 대적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 정치하는 자의 잘못을 책망하는 정말 의(義)의 빛을 보여주고, 그 때문에 핍박을 당한 일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간난 중에서도 교회당은 굉장하게 짓고 예배 장소는 꽃처럼 단장한 사람으로 차지, 어디 베옷 입고 재에 앉았다는 교회를 보지 못했다.


국민 전체가 회개를 해야 할 것이다. 예배당에서 울음으로 하는 회개말고(그것은 연극이다) 밭에서, 광산에서, 쓴 물결 속에서, 부엌에서, 교실에서, 사무실에서, 피로 땀으로 하는 회개여야 할 것이다.


누구를 나무라는 것 아니요 책망하는 것도 아니다. 나 자신을 보고 하는 말이지. 죽지 못하고 부산까지 피난을 갔던 나는 완전히 비겁한 자요, 미워하는 자요, 어리석은 자다. 거기에서 돌아와서도, 오늘까지 맛에 팔려 사는 나는, 평안을 탐하는 나는, 완전히 음란한 자요 악한 자요 속된 자요 거룩을 모르는 자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말을 하는 것은 말을 파는 자요, 진리를 파는 자요, 하나님을 팔아 더럽히는 자다. 만 번 죽어 마땅한 나, 오늘까지 살리신 것은 그 죄를 속하라 함이 아닐까? 무슨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야 그 죄를 속할까? 하나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소서!


선생 글의 주제는 한결같이 민중 각성이다. '세 번째 국민에게 부르짖는 말'에서는 이렇게 외친다.


국민 여러분, 어떻게 할 것입니까?

될수록 크게, 될수록 멀리 내다볼 것입니다. 관청의 출근부나 정당사무실의 간판만 보지 말고 인류 역사의 나아가는 방향을 보는 것입니다. 지금의 모양으로는 앞이 다 막히고 살길이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는 어느 면으로는 기적이 없습니다. 또박또박 한 대로 됩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하면 역사는 기적의 연속입니다. 하나도 예측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늘 사람의 계획과 요량으로 벌어집니다. 나폴레옹도 망했고 히틀러도 망했습니다. 하물며 그 지혜나 그 기백에서는 나폴레옹이나 히틀러에 못 미치는 벼룩 빈대 같은 것들 따위겠습니까. 개인의 생명이 결코 다가 아닙니다. 역사가 있습니다.

또 반면은 자세해야 합니다. 하나도 허술하게 보아 넘어가지 말고 자세히 보고 곰곰 생각하여 판단을 해야 합니다. 역사 기록은 어떤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다 마음속에 해야 합니다. 지금 있는 법관은 혹 세력에 팔려 잘못 판결을 할지 모르고, 지금 쓰는 역사가는 혹 잘못 판단을 하여 정사(正邪)을 바꾸어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은 그래서는 아니 됩니다. 크고 작은 일에서 그 시비를 늘 잊지 말고 판단해서 심장 속에 기록을 해야 합니다. 어느 혁명의 공로자는 누구, 어느 외교의 죄인은 누구, 어느 정당, 어느 교파에서 옳은 인물은 누구요 악한 인물은 누구였던 것을 다 판단하여 기록해두어야 합니다.

옛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지만 하나님의 심판 없습니다. 역사의 심판이 있을 따름입니다. 역사의 심판이 곧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 역사의 심판은 민중 가슴속의 기록 없이는 아니 됩니다. 그 대신 의인이 한 사람이라도 정말 바른 판단을 하여 공소하기만 하면 어떤 대제국의 일이라도 무너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새 사람 같지 않은 것들이 감히 나서서 정치한다, 나라 대표하여 외교한다 하는 것은 이러한 민중의 판단 기록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차라리 죽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 민중은 절대 죽을 수 없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모습이 민중이요 민중 속에 살아 있는 산 힘이 하나님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심입니다. 살기로 결심, 싸우기로 결심, 이기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그 개인을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운 것은 악을 행하는 그 개인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개인은 불쌍한 물건입니다. 너는 무슨 운명으로 나왔기에 이 세상에 와서 그 독재자 폭군의 역할을 하다 가느냐 하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미운 것은 그 악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악을 했어도 죽으면 불쌍한 역사의 제물이지만 그 악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과는 쉬지 않는 싸움을 할 결심을 해야 합니다. 사람이 죽어도 또 나는 것은 이 다하지 못한 책임 때문입니다.

물질계에 앞의 물결이 있어서 뒤의 물결이 일어난다면 사람의 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나는 우연히 난 것 아닙니다. 전에 났다가 다하지 못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또 나온 것입니다. 그것을 전체로 볼 때 국민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한 일, 한 생이 끝날 때는 싸울 것을 반드시 새로 결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비참해도 우리의 4천 년 역사가 있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죽으면서도 이 역사를 기어이 빛내기 위해 결심하며 죽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삶은 조상의 은혜입니다. 그것이 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시시각각으로 건건사사로 결심해야 합니다. 이 정의의 싸움, 자유의 싸움, 선의 싸움을 싸울 것을.

결심은 뜻의 되살림입니다. 현실 속에 풀어져 없어지려는 뜻을 또 모아서 매듭을 맺고는 새 출발을 새 힘으로 하는 것이 결심입니다. 거기가 역사의 탯집입니다.

국민 여러분!

오늘까지는 싸움에 졌어도 내일부터는 꼭 썩어빠진 정치에 끝을 내도록 결심을 합시다.

일본 세력도, 미국 세력도, 중공 세력도 그밖에 어떤 세력도 다 물리치고 완전한 독립 국민으로 살 것을 결심합시다.

내일의 세계를 지도해갈 새 사상, 새 종교를 꼭 우리 속에서 낳도록 결심을 합시다. 성령의 수정을 하도록, 민족적인 혼의 태반을 정화하도록 합시다.

세계 혁명의 앞장을 서도록, 세계 역사의 역사적 메시아로서의 십자가를 온전히 지고 살아나도록 결심을 해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제 시시각각으로 결심해야 합니다.

결심의 송곳 끝이 날카로우면 날카로울수록 현재 악조건의 주머니를 뚫고 나오기가 빠를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다듬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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