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나는 왜 쓰는가

샌. 2013. 2. 13. 08:10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오웰은 인습과 관성을 거부한 작가였다. 사립 명문인 이튼 출신으로서 대학을 포기하고 당시 식민지였던 버마 경찰이 되었고, 뒤에는 안정된 간부직을 마다하고 자발적으로 부랑자가 되어 밑바닥 생활을 체험했다. 스페인 내전 때는 공화국 편의 민병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런던에 있을 때도 문단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시골 마을에서 텃밭을 일구는 살아가는 쪽을 택했고, 2차대전 후 명사가 되었을 때도 한적한 섬에서 은거하며 지냈다.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나는 왜 쓰는가>는 조지 오웰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29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세상을 보는 그만의 예리한 통찰을 읽을 수 있다.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따스한 인간의 정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의 글에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그의 사상은 사람이 지켜야 할 이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단단한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계를 형성해 나가는 힘은 민족적 자존심, 지도자에 대한 숭배, 종교적 신앙심, 전쟁에 대한 사랑과 같은 감정임을 인정한다. 그런데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런 사실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무시해 버려서 실제 행동할 힘을 잃어버린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살아남으려면 종종 싸워야만 하고, 싸우자면 자신을 더럽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의 제목이 된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는 오웰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가장 잘 드러나 있다. 그의 작가론이라고 부를 만하다. 일반적으로 작가에게는 글을 쓰는 동기가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순전한 이기심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다. 진지한 작가들이 대체로 돈에는 관심이 적어도 허영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다.


둘째, 미학적 열정이다.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이 체감한 바를 아름답게 표현하여 나누고자 한다.


셋째, 역사적 충동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다.


넷째, 정치적 목적이다.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몰고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다.


오웰은 자신이 앞의 세 동기가 네 번째 동기를 능가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화려하거나 묘사에 치중하는 책을 썼을지 모르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그러나 버마에서 제국경찰 노릇을 하고, 빈곤과 좌절을 겪으며 권위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 스페인 내전과 히틀러의 등장을 통해 그는 전체주의에 맞서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의 과제는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글쓰기는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 출발했다.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었다. 그의 대표작인 <동물농장> <1984>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왜 쓰는가'의 끝머리에서 오웰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 보건대 내가 맥없는 글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수록된 작품 중에서 제일 눈길을 끄는 건 자신의 소년 시절을 그린 '정말, 정말 좋았지'라는 글이다. 오웰은 여덟 살이던 1911년부터 1916년까지 사립기숙학교인 세인트 시프리언스에 다녔다. 부자들과 귀족들만 다니는 이 학교에 오웰은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빈부와 신분에 따른 차별, 종교에 의한 억압,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주입식 교육, 훈육을 위한 폭행, 비위생적 환경 등 그때 받은 비인간적인 교육에 의한 상처를 예리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아이들을 모아 기르는 교육제도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글을 읽다 보면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이 자꾸 떠오른다. 지금의 교육 역시 본질에서는 그때와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는 걸 느낀다.


세상과 문명에 대한 비판과 고발을 멈추지 않았던 오웰에게서 글을 쓰는 목적이 어디에 있어야 함을 배운다. 비판 정신이 없다면 우리는 전쟁이 나도 평화인 줄 알고, 노예가 되어도 자유로운지 알고 살게 될지 모른다. 더욱이 오웰이 살았던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짓 선전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오웰은 이렇게까지 말한다.


"자유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면, 남들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그들에게 할 권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