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허난설헌 묘

샌. 2014. 4. 20. 08:28

 

허난설헌 묘가 경기도 광주에 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난설헌을 떠올리면 늘 애잔하다. 시대와 맞지 못했던 인간의 슬픈 삶을 그는 보여준다.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라고 할까, 그때나 지금이나 수많은 난설헌이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다.

 

행복하고 자유로웠던 초희의 어린 시절은 열다섯에 시집을 가면서 180도로 변했다. 똑똑하고 자부심 강한 여성에게 가부장적 인습의 굴레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을 것이다. 시집 입장에서는 반대로 까칠한 며느리와 아내가 탐탁치 않았을지 모른다. 20세기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난설헌이 16세기 조선의 답답한 분위기를 견디기 힘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묘 앞 안내문에는 그녀의 일생이 이렇게 적혀 있다.

 

"조선 시대 선조 때의 여류시인 난설헌 허초희(蘭雪軒 許楚姬, 1563~1589)의 묘이다. 허초희는 양천(陽川) 허씨로 명종 18년(1563) 강릉에서 태어났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나이다. 문장가 가문의 분위기에서 성장한 그는 어릴 때 오빠와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우고, 시인 이달(李達)에게서 시를 배웠다. 품성이 뛰어나고 용모가 아름다웠으며 8세 때 '광한전백옥루상량문(曠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짓는 등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15세에 결혼 후 원만하지 못한 가정생활로 자식들마저 모두 잃고 동생 허균이 귀양을 가는 등 불행이 계속되었다. 이에 삶의 의욕을 잃고 책과 글로 고뇌를 달래며 섬세한 필치로 비극적 삶을 여인 특유의 감상을 노래하며 애상적인 시풍의 독특한 시세계를 이룩했다. 그러한 이유로 그가 지은 한시 213수 중 128수가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의 일부가 중국에 전해져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발간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 일본에서도 시집이 간행되어 애송되었다. 선조 22년(1589) 3월 19일 27세로 요절하였으며 유고집에 <난설헌집>이 있다."

 

 

 

무덤에 서니 난설헌의 아픔이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옆에 나란히 누워 있는 어린 자식 때문인 것 같다. 1978년에 세운 난설헌의 묘비명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숭녕 선생이 비문을 지었다.

 

"굴종(屈從)만이 강요되던 질곡(桎梏)의 생활에 숨막혀 자취도 없이 왔다가 간 이 땅의 여성들 틈에서도 부인은 정녕 우뚝하게 섰다. 난(蘭)처럼 청아한 용자(容姿)에 재예비범(才藝非凡)했던 부인은 가슴 가득한 한(恨)과 곱게 가꾼 꿈을 작품으로 승화시켰으니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시(詩)와 문(文)으로 해서 부인의 참모습은 오늘에 살아 있다...."

 

 

 

작은 봉분으로 된 자식의 무덤에는 유난히 제비꽃이 많이 피어 있다. 시어머니 남편과 불화하면서 자식이 유일한 위안이었는데, 불운하게도 어린 딸과 아들을 연이어 잃은 난설헌의 슬픔이 오죽했을까. 그가 요절한 건 자식을 먼저 보낸 비통함이 마음의 병으로 깊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피눈물로 쓴 시가 전한다.

 

去年喪愛女

今年喪愛子

哀哀廣陵土

雙墳相對起

蕭蕭白楊風

鬼火明松楸

紙錢招汝魂

玄酒存汝丘

應知第兄魂

夜夜相追遊

縱有服中孩

安可糞長成

浪吟黃坮詞

血泣悲呑聲

 

지난해 귀여운 딸애 여의고

올해는 사랑스런 아들 잃다니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도깨비불 무덤에 어리비치네

소지 올려 너희들 넋을 부르며

무덤에 냉수를 부어 놓으니

알고말고 너희 넋이야

밤마다 서로서로 얼려 놀테지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 한들

이 또한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

부질없이 황대사 읊조리면서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메인다

 

 

난설헌 무덤은 안동 김씨 묘역에 있다. 3단으로 되어 있는데 남편과는 죽어서도 따로 떨어져 있다. 김성립은 후처로 들어온 남양 홍씨와 합장되어 있다. 그나마 이렇게 넓은 터를 배정받은 건 시인으로서 난설헌의 명성 때문일 것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난설헌을 만나기 위해 온다. 평범했던 남자 김성립은 총명한 아내를 둔 덕분에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기고 있다. 그가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묘역 앞으로 중부고속도로가 지나가서 자동차 소음이 너무 시끄러운 게 흠이다.

 

여류시인의 묘답게 둘레에는 봄꽃이 만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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