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사람의 맨발

샌. 2014. 7. 21. 07:09

한승원 작가의 장편소설로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그렸다. 세상 부조리에 대한 싯다르타의 고뇌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출가에 초점을 두었다. 소설은 싯다르타가 열반한 뒤 스승의 부음을 듣고 달려온 카사파에서 시작된다. 카사파가 슬퍼하고 있을 때 관이 터지며 싯다르타의 발이 밖으로 뻗어 나온다. 싯다르타의 두 발은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난 출가자의 표상이다. 싯다르타가 두 발을 카사파에게 보인 것은 만천하의 인민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치기 위하여 험한 길을 걸어다닌 맨발의 의미를 잊지 말라는 당부인 것이다.

 

싯다르타는 사카 왕국의 임금으로 인민을 위한 선정을 베풀려고 노력했다. 카스트 신분 제도를 신의 뜻이라며 강요하고 인간을 속박하는 계급사회를 싯다르타는 인정할 수 없었다. 모두가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 그는 버려진 불가촉천민 마을을 회생시키고 기득권 세력과 대결에 들어간다. 소설에는 정치인 싯다르타의 얘기가 길게 나온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정치적 투쟁의 한계를 절감한 싯다르타는 출가라는 근원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영적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싯다르타의 꿈은 탐욕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신의 뜻이라고 핑계 대면서 슬프게 어지럽혀 놓은 계급주의와 착취와 탐학의 세상, 집착과 권력과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세상을 정신의 힘으로 착하고 어질고 화평한 세상으로 바꾸어놓는 것이었다. 싯다르타의 두 발은 현실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었다.

 

이때의 심정이 마부 찬타카와 이별하는 대사에서 잘 드러난다.

 

"나의 오랜 벗 찬타카여, 이제 우리는 어찌할 수 없이 헤어져야 할 운명입니다. 나는 나의, 더 이상 드높을 수 없는 최상의 깨달음,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위하여, 더 나아가서는 가엾은 가난한 천민과 탐욕으로 인해 스스로 처참하게 타락하여 몸과 마음이 병들어 지옥에 떨어지려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혹독한 계급 제도로 인하여 슬퍼하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밟아간 그 길을 갈 것이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궁궐과 왕의 자리를 버리고 가시덤불 길을 맨발로 가야 합니다."

 

싯다르타에게는 사람은 그냥 사람일 뿐, 어느 부족 어느 계급 출신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현재 자기가 처한 삶을 성실하고 자비롭고 깨끗하게 사는 것이 중요했다. 자기보다 못 먹고 못 입고 병들어 사는 사람, 강한 자에게서 박해를 받고 억울하고 슬프게 사는 사람을 구제하고 그들에게 위안을 주는 삶을 치열하게 사는 것이 중요했다. 장차 하늘나라에서 태어나 호화롭게 삶을 즐기는 미래를 위해 고행의 수도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인간은 신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참다운 무소유의 가난과 해탈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모든 사람들이 싸우지 않고 탐욕스럽지 않고 계급을 만들어 박해하거나 착취하거나 탐학하지 않고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싯다르타는 출가했다.

 

이 소설에서 방점을 둔 부분이 싯다르타의 이런 출가 동기다. 세상의 불의에 대한 현실적인 개혁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특별히 인도의 잔인한 계급 제도는 그의 첫째 타파 대상이었다. 싯다르타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맨발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싯다르타가 출가한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면 계급 사회로 인해 핍박받는 인간과 탐욕으로 인해 지옥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여전히 계급 사회다. 인간은 악을 저질러놓고도 신에게 핑계를 댄다. 모든 게 신의 뜻이라고 하면 면죄부를 받는다. 싯다르타가 신을 거부하고 출가한 것은 신에 대한 저항이자 극복 행위이다.

 

작가는 성불이 아니라 출가에 초점을 맞춰 이 소설을 썼다. 이 시대에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싯다르타의 맨발이 표상하는 출가 정신이라는 것이다. 출가 정신, 반인간적이고 반생명적인 기성의 권위나 관념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야말로 숭엄한 붓다의 가르침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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