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제비

샌. 2014. 7. 26. 11:49

 

제비는 참 특이한 새다. 대부분이 사람을 두려워하고 도망가는데 제비는 사람 집을 찾아와서 둥지를 짓는다. 사람과 한가족이나 다름 없다. 사람이 지은 농작물은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해충을 잡아먹으니 여러 모로 이로운 새라 할 수 있다. 날렵한 생김새며 지지배배 소리도 호감이 간다. 아마 지저귀는 소리에서 제비라는 말도 생겨났을 것이다. 제비만큼 사람과 가까운 새도 없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봄에서 여름까지는 항상 제비와 함께 살았다. 추녀에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그 밑에다 널빤지를 달아주었다. 제비 똥이나 불순물이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문 바로 위에 제비 둥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널빤지는 제비 새끼가 아래로 떨어지는 걸 막아주는 역할도 했다. 서로 말은 못해도 제비는 사람과 한 식구였다. 출입할 때마다 서로 눈인사를 했고, 제비가 새끼를 낳고 기르는 과정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어미의 지극정성은 사람에게 말 없는 본보기가 되었을 것이다.

 

초가을이 되면 제비는 강남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마을 전봇줄에는 제비들이 새까맣게 모여들었다. 마치 대장정을 위한 사열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 홀연히 한꺼번에 사라졌다. 떠날 때가 언제인지 제비들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집에는 빈 둥지만 썰렁하게 남았다. 사람들은 다음 해에 같은 제비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언제부턴가 그 많던 제비들이 다시는 이 땅을 찾아오지 않았다. 논밭에 농약 냄새가 진동하면서부터였다. 제비가 오지 않는 땅이 사람이 살 땅도 못 될 텐데 사람들은 제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젠 제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렇게 귀하신 몸이 되었다. 강남의 땅마저 오염된다면 제비는 어디로 가서 새끼를 칠까, 걱정이 되었다. 

 

몇 년에 한 번씩 어쩌다 제비를 보게 되면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소식 끊어진 옛 동무를 만난 것처럼 기뻤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어느 집에서나 제비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불행히도 고향 집이나 마을에는 여전히 발 끊은지 오래다. 그 많던 제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제비가 찾아오는 마을이 되어야 온전한 고향이 될 것 같다.

 

양평에 갔다가 어느 한옥 추녀에 둥지를 튼 제비 가족을 우연히 만났다. 둥지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의 모습이 귀엽고 유머러스해서 웃음이 나왔다. 어미가 오면 서로 자기에게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쳤다. 둥지 밑에서 그들의 재미난 모습을 한참 동안 구경했다. 지나는 사람들이 제비의 존재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게 이상했다.

 

나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 한가운데 제비가 자리 잡고 있다. 제비 울음소리, 그들의 날갯짓과 함께 자랐다. 너무 흔해서 공기나 물과 같이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제비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알게 되었다. 제비는 자연스레 나를 고향과 유년 시절로 연결해 준다.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는 아득한 과거, 그 추억의 한 조각을 제비는 지금 내 눈 앞에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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