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교황의 메시지

샌. 2014. 8. 19. 07:39

평화, 화해, 용서, 위안의 메시지를 전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 끝났다. 종교 지도자로서의 겸손하고 인자한 모습은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가난하고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따스한 관심은 큰 위로가 되었고 동시에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4박5일 동안 머물며 한국 사회에 전한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몸으로 보여준 사랑은 더없이 값진 것이었다.

 

교황에 대한 열광은 사그라지더라도 그분이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는 계속 간직해야 한다. 특별히 천주교 수도자, 신자, 정치 지도자에게는 가슴에 새겨 둘 내용이 있었다. 교회 지도자가 세속적 가치관과 타협하여 안주하는 현상,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천주교 신자들이 얼마나 이바지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교황의 연설이나 강론을 보면 축복이나 기복적 언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수도자에게는 청빈, 청년에게는 희망, 정치 지도자에게는 정의를 말했다. 그리고 죽음의 시스템을 개혁하는 일에 앞장서고, 정의롭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헌신할 것을 요구했다.

 

교황은 청와대 만찬 연설에서,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의는 하나의 덕목으로서 자제와 관용의 수양을 요구한다.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해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세계화되는 세상에서 공동선과 진보와 발전을 단순히 경제적 개념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하며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을 각별히 배려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는 분명히 정책 입안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교황이 완곡하게 비판한 한국의 현실에 대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이 각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교황 방문이 우리 사회가 질적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그러자면 먼저 수도자와 신자들부터 변해야 한다. 전체 신자의 1/5인 백만 명만 사회 정의 실현에 관심을 두고 작은 것부터 실천한다면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교회 안에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 '내 탓이오'를 넘어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한 때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성당에서는 교황의 인기에 편승하려는지 갑자기 선교 현수막이 등장하고 미사 끝에는 주먹을 쥐고 선교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참에 신자 수를 늘려야겠다는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너무 한심한 발상이다. 주임신부의 사고 방식이 이래서야 교회가 어디 세상의 소금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교황의 메시지와 본당 신부의 강론 사이에는 깊은 괴리가 있다. 대체적인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전교에 앞서 우선 불의와 폭력에 무관심했던 자기반성을 하는 게 옳다. 그리고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교회는 가난한 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교황의 언명에 대해서 교회 공동체가 기도하고 실천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가톨릭의 인기가 물거품이 되게 하지 않으려면 먼저 교회의 혁신이 필요하다. 과거의 고리타분한 방식으로는 현대인의 영적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

 

교황은 타 종교 지도자들과의 모임에서 우리는 배타적으로 혼자 갈 수 없다면서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걸어가자고 호소했다.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은 양심에 따라 깨끗하게 살면 된다는 취지의 발언에서도 교황의 열린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나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오만은 종교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다.

 

곰팡이 낀 한국 천주교회에 소독약을 뿌린 것과 같다고 어느 분이 이번 교황 방한을 비유했다. 그리고 수술이 아닌 소독약 정도로는 교회를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소독약은 잘못하면 내성만 키울 뿐이다. 변화하고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신앙이다.

 

바깥 탓만 할 게 아니라 나부터 변해야겠다. 타성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좀 더 진지해져야겠다. 가족과 이웃에도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야겠다. 만나는 이웃에게 따뜻한 미소로 인사하는 것도 좋은 세상을 위한 징검다리가 되는 것이다. 신선한 바람이 들어오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자. 믿음은 낮아짐이고 자기 버림이라는 것을 다시 되새긴다. 이것이 나에게 남기고 간 교황의 선물이다.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의 교황 강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저의 한국 방문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저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나라에, 그리고 특별한 방식으로 한국 교회에 베풀어 주신 많은 은혜에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러한 은혜들 가운데에서, 특히 지난 며칠 동안 아시아 전역에서 그토록 많은 젊은 순례자들이 이곳으로 와서 우리와 함께 한 체험을 제 마음에 간직하고자 합니다. 

 

그들이 보여 준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 나라의 전파를 위한 열정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영감(靈感)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의 방문은 바로 이 미사 집전을 통해 마지막 정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 미사에서 하느님께 평화와 화해의 은총을 간구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한반도 안에서 하나의 특별한 공명(共鳴)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오늘의 미사는 첫째로, 또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한 가정을 이루는 이 한민족의 화해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우리 가운데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무엇인가를 청할 때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큰 힘을 지니게 되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마태 18,19-20 참조). 그렇다면 온 민족이 함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간청을 하늘로 올려 드릴 때, 그 기도는 얼마나 더 큰 힘을 지니겠습니까!

 

오늘의 제1독서는 재난과 분열로 흩어졌던 백성을 일치와 번영 속에 다시 모아들이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제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것은 희망으로 가득 찬 하나의 약속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바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고 계시는 미래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하나의 명령과 분리할 수 없도록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느님께 돌아와 온 마음을 다하여 그분의 법에 순종해야 한다는 명령입니다(신명 30,2-3 참조). 화해, 일치, 평화라는 하느님의 은혜들은 이러한 회심의 은총과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회심이란,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우리의 삶과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마음의 새로운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 미사에서, 우리는 당연히 하느님의 이러한 약속을 한민족이 체험한 역사적 맥락에서 알아듣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지난 6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분열과 갈등의 체험입니다. 하지만 회심을 촉구하는 하느님의 긴박한 부르심은 한국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도 하나의 도전을 제시합니다. 그 도전은, 참으로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에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얼마나 질적으로 기여했는가를 점검해보라는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여러분 각자가, 개인으로서 또한 공동체 차원에서, 불운한 이들, 소외된 이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이들, 많은 이가 누리는 번영에서 배제된 이들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복음적 관심을 증언하는가에 대하여 반성하도록 도전해 옵니다. 또한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한국인으로서, 이제 의심과 대립과 경쟁의 사고방식을 확고히 거부하고, 그 대신에 복음의 가르침과 한민족의 고귀한 전통 가치에 입각한 문화를 형성해 나가도록 요청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베드로가 주님께 묻습니다.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1-22).

 

이 말씀은 화해와 평화에 관한 예수님 메시지의 깊은 핵심을 드러냅니다. 그분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해 주시라고 날마다 기도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정직한 기도를 바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용서야말로 화해로 이르게 하는 문임을 믿으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우리의 형제들을 아무런 남김없이 용서하라는 명령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전적으로 근원적인 무언가를 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또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은총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에는 불가능하고 비실용적이며 심지어 때로는 거부감을 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분께서는 당신 십자가의 무한한 능력을 통해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고 또한 그것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분열의 간격을 메우고, 모든 상처를 치유하며, 형제적 사랑을 이루는 본래적 유대를 재건하는,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한국 방문을 마치며 여러분에게 남기는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힘을 믿으십시오!

그 화해시키는 은총을 여러분의 마음에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은총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십시오!  

 

여러분의 집에서, 여러분의 공동체들 안에서, 그리고 국민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화해 메시지를 힘차게 증언하기를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또한 다른 종교의 신자들과 함께, 그리고 한국 사회의 미래를 염려하는 선의의 모든 형제자매와 함께 이루는 우정과 협력의 정신 안에서, 여러분은 이 땅에 하느님 나라의 누룩이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하여 평화와 화해를 이루기 위한 우리의 기도가 이제 더욱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올려져,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로 마침내 우리 모두가 열망하는 고귀한 선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대화하고, 만나고, 차이점들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기회들이 샘솟듯 생겨나도록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또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공함에 있어 관대함이 지속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한국인이 같은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더욱더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저는 이제 한국을 떠나기에 앞서, 대통령님과 정부 당국자들과 교회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방문이 이루어지도록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움을 주신 모든 분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저는 특별히 복음에 봉사하기 위하여, 또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건설하기 위하여 날마다 일하고 있는 한국의 사제들에게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또 그분의 화해시키는 사랑의 직분을 맡은 사람으로서(2코린 5,18-20 참조), 존경하고 신뢰하며 조화롭게 협력하는 유대를 여러분의 본당 안에서, 여러분 사제들 사이에서, 그리고 여러분의 주교들과 함께 계속 이루어 나가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향한 여러분의 남김 없는 사랑의 모범, 여러분 직무에 대한 충실성과 헌신,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애덕 가득한 관심으로, 이 나라에서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돌아오라고, 당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조상들이 알았던 것보다 훨씬 큰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땅 위에 우리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부디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화합과 평화를 이루는 가장 풍요로운 하느님의 강복 속에서 참으로 기뻐하는 그 날이 오기까지, 한국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그 새로운 날의 새벽을 준비해 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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