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성질머리하고는

샌. 2014. 9. 11. 07:05

참 묘하다. 나이가 들면 성격이 원만하고 부드러워질 것 같은데 안 그렇다. 도리어 까탈이 심하고 화를 잘 낸다. 나와 생각이 다른 걸 용납하지 못한다. 냇가의 돌도 세월이 흐르면 동글동글해지는 데 나는 반대다. 돌만도 못하니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내 단점은 참을성이 없고 욱하는 성질이다. 느긋하게 기다리지를 못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속에서 조바심이 나고 화가 치솟는다. 이것 때문에 음식점에서 종업원에게 싫은 소리도 자주 한다. 몇 분을 참지 못하고 금방 후회할 짓을 한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주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문제는 정도가 심해진다는 데 있다. 마음 수양을 아무리 해도 안 된다. 소갈머리가 좁쌀만 하다. 아내는 말한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도 닦는 흉내를 내면서 성질머리는 왜 그 모양이냐고. 난들 어쩌겠는가, '원판 불변의 법칙'을 믿지 않을 수 없다. 가꾸는 것보다 타고나는 게 먼저인가 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잘못했다고 빌면서 반성하고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한가지 변명거리는 있다. 올해는 특수한 상황이었고, 안으로 삭이기에는 밖에서 오는 긴장이 너무 컸다. 신경이 날카롭다 보니 작은 일도 크게 확대되었다. 이만큼이라도 견뎌 나가는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그러니 희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일보 후퇴는 이보 전진을 위한 움츠림으로 생각하자.

 

오늘 <논어>를 읽다가 공자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웠다. '술이(述而)'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선생이 집에 계실 때는 고분고분하시고, 부드러우셨다[子之燕居申申如也夭夭如也]." 밖에서는 비실대다가 집에 들어와서 큰소리치는 건 졸장부의 짓이다. 내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새로운 결심을 위해서 '忍'자가 들어간 그림으로 컴퓨터 바탕화면을 만들었다. 억울한 걸 견디자는 게 아니라 내 못난 성질의 발현을 막자는 것이다. 다른 누구보다 여유있고 느긋한 사람이 제일 부럽다. "그놈의 성질머리하고는", 이런 소리는 더는 듣지 말자. 이걸 고치지 않고는 모든 게 다 허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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