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엔딩 노트

샌. 2014. 9. 16. 08:16

 

회사원으로 열심히 살았던 주인공은 정년퇴임을 하자마자 위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되어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주인공은 갑자기 닥친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세상과의 이별 의식을 준비한다. '엔딩 노트'는 막내딸이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직접 찍어서 만든 '아빠의 해피엔드 스토리' 영화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누구나 죽지만 죽음을 맞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영화의 주인공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안달하지 않는다. 장례식 준비도 직접 챙기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에서 가족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특히 손녀들과는 최대한 많이 놀아주려 한다. 눈물보다 웃음이 더 많다. 죽음은 '엔딩'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가는 '오프닝' 같다.

 

우리는 죽음을 너무 두려워한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영화의 주인공처럼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죽는 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죽음에 피동적으로 지배당하고 싶지는 않다. 죽음을 긍정적으로 대한다면 암 같은 병도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치매나 돌연사보다 나을 수도 있다. 고통은 약물의 도움을 받아 적절히 조절될 수 있는 상태일 때 한한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의술은 인간의 편안한 죽음을 도와주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

 

주인공은 가족에게 전하는 엔딩 노트를 작성했다. 그리고 본인이 해야 할 일의 목록도 적었다. 이 정도면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차분하고 담담한지 알 수 있다. 평소에 마음의 수양이 되어 있지 않으면 이렇게 처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며 주인공의 표정이 맑고 깨끗하게 변해 가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좋은 죽음은 좋은 삶과 연계되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죽느냐는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1. 평생 믿지 않았던 신을 한 번 믿어보기

2. 손녀들 머슴 노릇 실컷해주기

3. 평생 찍어주지 않았던 야당에 투표하기

4. 꼼꼼하게 장례식 초청자 명단 작성하기

5. 소홀했던 가족과 행복한 여행 떠나기

6. 빈틈이 없는지 장례식장 사전 답사하기

7. 손녀들과 한 번 더 힘껏 놀기

8. 나를 닮아 꼼꼼한 아들에게 인수인계하기

9. 이왕 믿은 신에게 세례 받기

10. 쑥스럽지만 아내에게 사랑한다 말하기

 

'엔딩 노트'는 나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주는 좋은 영화다.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얼마나 잘 죽느냐에 달려 있다. 개인적으로 지켜본 가까운 분들의 죽음은 모두 자연스럽지 못했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사고사, 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치매로 돌아가셨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죽음이다. 하늘이 복을 내려주어야 한다. 나 역시 아무 것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떨리는 손으로 나의 엔딩 노트를 쓸 때가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그때도 감사하고 편안할 수 있기를, 감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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