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할아버지 불알 / 김창완

샌. 2014. 10. 10. 08:54

할아버지 참 바보 같다

불알이 다 보이는데

쭈그리고 앉아서 발톱만 깎는다

시커먼 불알

 

- 할아버지 불알 / 김창완

 

 

가수 김창완 씨가 동시 작가가 되었다. 전부터 예쁜 노래 가사를 쓴 재주 많은 분이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나, 발표한 동시를 보니 그분의 얼굴 표정처럼 동심이 해맑다. 나이는 벌써 환갑이 되신 분이다. 아이들의 눈높이가 아니면 이런 할어버지 불알은 보이지 않는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곱다. 시가 무척 재미있어서 깔깔깔 웃었다.

 

김창완 씨가 어느 신문과 인터뷰를 했는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네 살 무렵에 뛰어놀다가 넘어졌는데 바늘이 손바닥에 들어갔어요. 바늘이 부러진 채 박혀버렸지요. 막 울고불고 난리치니까 할아버지가 망치로 손바닥을 막 때렸어요. 그리곤 다 나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눈물을 닦았지요. 그리고 40년이 지났어요. 손을 다쳐서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 찍었는데 바늘이 손바닥에 박혀 있는 거예요. 어렸을 때, 그거. 할아버지가 다 나았다고 했는데, 바늘이, 그 고통이 평생 내게 박혀 있었던 거지요. 불행한 환경도 내 환경이예요. 좋은 것만 먹고 싶고, 좋은 환경에서만 살고 싶지만 인생은 그런 게 아니예요. 엄청난 시련도 인생의 옥토로 만드는 거름이 돼요. 그리고 인생은 뭐가 성공인지 모르는 거예요. 나는 사실 사회 부적응자예요. 삶은 언제나 척박하지요. 하지만 나 같은 영감탱이를 금으로 만들고 옥으로 만들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어요.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사람들, 그 사람들을 위해 노래하고 글 쓰면서 진짜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있어요."

 

'사람은 눈치가 빨라야 된다'라는 시도 있다.

 

엄마가 드라마 보는데

아빠가 축구경기로 바꿨다

엄마가 다시 리모컨을 뺏어서

드라마로 돌렸다

아빠가 벌떡 일어나더니

축구로 바꾸고 리모컨을

장롱 위에다 얹어버렸다

엄마가 부엌에 가서

수돗물을 확 틀면서

왈그락 달그락 설거지를 했다

나는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왔다

아빠랑 같이 축구 보던 동생은

공부 안 한다고

엄마한테 디지게 혼났다

사람은 눈치가 빨라야 된다

 

- 사람은 눈치가 빨라야 된다 / 김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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