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북학의

샌. 2014. 10. 29. 08:24

교과서에서 이름만 배우고 읽어 보지 못한 책이 한두 권이 아니다. 박제가(朴齊家)가 쓴 <북학의(北學議)>도 그런 책 중 한 권이다. 실학을 대표하는 책이라고 고등학생일 때 시험용으로 열심히 암기했다. 그나마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니 학교 공부가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런 책을 볼 때마다 지금의 시각으로 판단하지 말자고 미리 다짐한다. <북학의>는 박제가가 1778년에 첫 번째 중국 여행에서 돌아와 저술한 책이다. 당시의 지식인들이 가졌던 세계관을 염두에 두고 읽지 않는다면 별 의미가 없다. 대부분의 식자들이 주자학의 틀 안에 갇혀 있을 때 박제가는 폐쇄적 사회와 시스템의 개혁을 외쳤다. 과격하며 어쩌면 불손하기까지 한 사상가였다. 그의 말에 동조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박제가의 주장은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을 떠오르게 한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오랑캐일지라도 앞서가는 제도는 따라 배워야 한다. 중국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여 산업을 진흥시켜 물자를 두루 교환시켜 나라를 잘 살게 만드는 게 급선무다. 박제가에게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는 논외다. 유럽의 중상주의를 보는 것 같다. 고리타분한 성리학에 빠져 주제 파악도 못 하고 있던 조선에서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다.

 

결국 나라 정신의 문제다. 정교하지 못하고, 미래 안목이 없고, 깊은 생각이 없고, 기술을 천시하고, 나태하고, 체면을 차리는 데는 급급한 조선의 정신을 비판한다. 그 결과 국가와 백성은 빈곤하고 후진적 상태에 머무르게 되었다. 입을 것과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고, 재화가 제대로 유통되지 않으며, 학문을 과거 제도에 짓눌려 사라지고, 풍기는 문벌을 중시하는 제도에 막혀 있다. 백성이 견문을 넓힐 방도가 없고, 재능을 계발하고 식견을 트이게 할 길이 없다. 이러하니 문화는 퇴보하고 제도는 망가지며, 백성들의 숫자는 증가하는데 나라의 재정은 날이 갈수록 비어간다. 박제가가 진단한 18세기 조선의 모습이다.

 

박제가의 주장이 오로지 중국 찬양 일변도인 점은 못마땅하다. 비판적 관점이 아쉽다. 중국을 배우라는 게 너무 지나쳐서 중국어를 사용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중국어는 문자의 근본이라면서 한글을 버리고 말과 뜻이 같은 중국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것이다. 이는 중국 문물을 쉽게 받아들이고 중국을 따라잡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백성과 나라의 융성을 바랐던 박제가의 조급함이 낳은 결과였다.

 

지금 시대의 '북학의'는 뭘까를 생각해 봤다. 비판 없는 북학 추종이 도리어 문제가 된 건 아닐까? 민생이 해결된 풍요의 시대가 되니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만이 중요하지 않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고민해야 하는 게 신 '북학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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