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마흔 / 최승자

샌. 2015. 2. 23. 10:12

서른이 될 때는 높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지

이다음 발걸음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끝도 없이 추락하듯 내려가는 거라고.

 

그러나 사십대는 너무도 드넓은 궁륭 같은 평야로구나

한없이 넓어, 가도 가도

벽도 내리받이도 보이지 않아

그러나 곳곳에 투명한 유리벽이 있어,

재수 없으면 쿵쿵 머리방아를 찧는 곳.

 

그래도 나는 단 한 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 마흔 / 최승자

 

 

내 서른은 어땠고, 마흔은 어땠을까? 너무 멀리 왔다. 시인의 절망까지는 아니었어도 돌아보니 그저 신기루였을 뿐. 악착같이 매달린 걸 수록 그랬다. 내 앞에 보이는 게 허깨비인 줄 알지만, 그래도 향하여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게 인생. 갈증을 달래주는 한 줌의 물에 취하여,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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