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아름다운 가난

샌. 2015. 2. 26. 09:12

"올해 초 우리 가족은 비행기를 타보고 싶다는 아들과 딸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보아야 한다는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여행지 가운데 하나로 포함된, 물 위에 산다는 수상촌을 방문했을 때였다. 수상촌에 가기 위한 배를 타기 전, 여행가이드는 그곳 마을 아이들에게 나줘 주기 위해서 일행들에게 과자를 몇 박스 사도록 했다. 우리는 당연히 마을의 학교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그 과자를 기부하는 것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배가 수상촌 초입에 들어갈 즈음 그 가이드는 일행에게 과자 박스를 뜯어서 한 봉지씩 던지도록 했다. 아이들은 줄지어 '강남스타일' 춤을 추고 있었고 일행들이 던지는 과자 봉지를 받기 위해 뛰어다녔으며, 대부분의 아이들은 미처 자신에게 닿지 못한 과자를 줍느라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환호와 함께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일행을 보면서 우리 가족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충격은 그 후로 오래 계속되었다."

 

"이 사진 올리는 게 마음에 많이 걸립니다. 아침에 맛없는 라오식 라면을 먹고 남은 국물에 식은 밥을 말아 먹다가 버리려고 하는데 포터 께오가 그걸 받아 일행이 밥먹는 것을 보고 있던 어린 자매한테 주었는데 자매는 그걸 정답게 먹었지요. 가슴 밑바닥에서 무엇인가 올라오더군요. 그런 그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두려했으니 나는 나쁜 놈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이 우리가 머무는 집을 기웃거린 것은 까닭이 있었습니다. 돈이 미웠습니다."

 

돈이 무엇이고, 가난이 무엇인지, 이 두 편의 여행기를 읽다가 착잡해졌다. 앞의 글은 어느 분이 캄보디아를 여행할 때의 경험담이고, 뒤의 글은 지인이 라오스를 배낭 여행할 때의 장면을 사진과 함께 카스에 올린 글이다.

 

나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 네팔 카트만두에 갔을 때 거리에 가득한 가난과 궁핍의 광경에 마음이 아팠다. 일행이 슈퍼에서 물건을 사 가지고 나오면 아이들이 우르르 따라붙었다. 사탕 하나라도 얻으려는 것이었다. 슈퍼 관리인은 몽둥이를 들고 아이들을 쫓아냈다. 불쌍한 아이들의 모습에 이국의 풍경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대신에 히말라야에서 만난 네팔 아이들은 가난했지만 동정심을 유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수줍어하는 순박한 모습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의 순수성을 보게 되어 반가웠다. 가난은 가난 자체가 아니라 가난하다고 의식하는 순간 가난해지는 게 아닐까. 외부 세계와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산속의 사람들에게는 비교될 가난이 없다. 그러나 부와 문명을 접하는 순간 모든 게 달라져 버린다.

 

돈은 인간을 오만하게 만들고, 가난은 인간을 비굴하게 만든다. 인간의 품위를 망가뜨리는 건 돈이나 가난이나 비슷하지만, 그 폐해에 있어서는 돈이 훨씬 더 독하다. 가난은 적어도 타자를 오염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돈의 독소는 무차별적으로 퍼져 나간다. 자본주의가 얼마나 공동체의 전통적 가치를 붕괴시키는지 우리가 홍역을 치른 바 있고, 제삼 세계에서 재현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가난을 생산한다.

 

돈이 얼마나 인간을 타락시키는지 앞의 사례를 보면 안다. 부자의 오만이 아니라면 수상촌 아이들에게 과자를 던져주면서 어떻게 환호하고 박수를 칠 수 있는가. 인간이 아니라 동물원에 갇힌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마찬가지다. 그동안 우리는 돈 중독이 되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었다. 그러니까 "부자 되세요!"라는 천박한 인사말도 유행을 탄 적이 있었다.

 

기본 생활을 지탱하지 못할 정도의 궁핍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부족한 물자를 아껴쓰며 살아가는 정도의 가난이라면 나쁜 게 아니다.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자연 순환형 삶은 오히려 지구와 인류를 위해 필요하다. 미세먼지, 오염, 쓰레기, 핵폐기물, 에너지 위기, 지구 온난화 등은 풍요의 시대가 준 반대급부다. 이런 식의 소비적 삶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다.

 

옛사람이 말한 청빈(淸貧)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이를 '아름다운 가난'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아름다운 가난에는 경제적 착취가 없다. 소득이나 부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개인이든 국가든 전통적 생활 방식이나 정신은 존중받아야 한다. 아름다운 가난은 힘과 제국주의를 반대한다. 성장과 경쟁의 그늘을 거부한다. 물질이 아니라 행복을 최우선의 가치로 둔다. 가난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없다면 인류의 미래도 없다. 우리는 너무 멀리 나갔는지 모른다. 뒤돌아 가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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