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망악(望嶽) / 두보

샌. 2015. 3. 30. 09:02

태산의 모습 어떠한가

제나라에서 노나라까지 푸르름 끝이 없어라

하늘은 이곳에 온갖 신비함을 모았고

산빛과 그림자는 밤과 새벽처럼 갈린다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 크게 뜨고 돌아가는 새를 바라본다

언젠가 반드시 저 꼭대기에 올라

소소한 뭇 산을 한번 굽어보리라

 

垈宗夫如何

齊魯靑未了

造化鐘紳秀

陰陽割昏曉

탕胸生曾雲

決자入歸鳥

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

 

- 望嶽 / 杜甫

 

 

3년 전에 중국 태산(泰山)에 올랐다. 7천 개가 넘는 계단을 걸어 남천문에 닿았고, 일출을 보기 위해 정상에 있는 호텔에 묵었다. 그런데 한밤중이 되자 시끄러워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문을 여니 호텔 복도는 새우잠을 자는 중국인들로 걸어가기조차 힘들었다. 호텔 밖에는 더 놀랄 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여기저기 누워 있는 사람들 사이로 끊임없이 올라오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태산 일출을 보기 위해 그렇게 밤을 새우며 기다리고 올라오는 거라고 했다. 깜깜한 밤인데 산길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어느 나라가 이런 어마어마한 숫자와 열정을 따를 수 있을까. 우리 일행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중국의 힘(?)에 압도당했다. 그날은 안개가 너무 짙어 일출은커녕 10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두꺼운 옷을 걸치고 바위에 가부좌하듯 걸터앉아 있던 중국인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이 시는 두보가 젊은 시절 과거에 낙방한 뒤 태산을 바라보며 상심한 마음을 달래는 내용이다. 특히 끝의 '언젠가 반드시 저 꼭대기에 올라, 소소한 뭇 산을 한번 굽어보리라'는 자주 회자되는 구절이다. 젊은 두보의 야망과 기개가 강국이 되려는 중국의 의지로 인용된다. 해가 다르게 힘을 키우는 중국을 지켜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21세기 중반이 되면 중화문명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또 다시 제국주의의 흉내를 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우리는 울며 겨자먹기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있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당위성도 점점 커질 것이다. 그러나 위기는 동시에 기회이다. 혜안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지금처럼 절실한 때도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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