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자발적 복종

샌. 2015. 4. 13. 08:05

16세기에 쓰인 글이지만 지금 읽어도 신선하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독재자가 출현하고 민중이 이를 방관하거나 지지까지 한다는 건 수수께끼다. 현대라고 예외가 아니다. 대중은 자본의 독재에 너무 쉽게 길들여지고 있다. '자발적 복종'이라는 이 거대한 뿌리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자발적 복종>이라는 소책자를 쓴 라 보에시는 1530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는데 학생 시절에 이 글을 썼다. 재판관이자 철학자였으며 시인이기도 했던 라 보에시는 33세의 이른 나이에 전염성 복통으로 요절했다. 친구였던 몽테뉴에게 원고를 넘겼고 뒤에 이 책도 빛을 보았다.

 

라 보에시는 자발적 복종의 이유로 습관을 들었다.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성장한 사람은 자유를 모른다. 비겁하고 나약해진 것이 체질화되어 있다. 누려보지 못한 것을 갈망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복종을 강요된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복종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자유에 대한 망각이야말로 복종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굴종을 깨부수는 맑은 오성의 빛이 필요하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무리들 중에서 몇몇 각성한 인물이 등장한다. 민중을 짓누르는 멍에의 무게를 떨쳐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재자들이 지식인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대 리디아 왕국은 사창가와 술집, 공중도박장을 허가함으로써 우민화 정책을 폈다. 라 보에시가 예를 든 것들은 지금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민중들은 여전히 우매하고 어리석다. 알면서도 독재를 방관하는 것은 체제에 동화됨으로써 얻는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독일인들이 나치에 협력한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수탈당하는 계층이 보수적이라는 사실도 민중의 어리석음을 입증한다. 민중들은 자유가 주어져도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들에게는 힘 가진 자를 지지함으로써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인류의 비극이 있다.

 

라 보에시는 자발적 복종의 이유로 자유에 대한 망각과 악습을 들었다. 어떻게 이 복종과 굴종의 노예근성에서 벗어나느냐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절실한 문제다. 자본의 예속이 우리를 질식 상태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 자본주의 시대의 충실한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잠자는 의식이 깨어나야 한다. 성찰과 각성이 필요한 건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라 보에시는 책의 끝에 이렇게 썼다. 500년 전의 외침이지만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당부다.

 

"그러니 배우자. 옳게 처신하기 위해 우리는 배워야 한다.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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