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 박두진

샌. 2015. 4. 20. 18:14

우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그 붉은 선혈로 나부끼는

우리들의 깃발을 내릴 수가 없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절규를 멈춘 것이 아니다.

그렇다. 그 피불로 외쳐 뿜는

우리들의 피외침을 멈출 수가 없다.

 

불길이여! 우리들의 대열이여!

그 피에 젖은 주검을 밟고 넘는

불의 노도, 불의 태풍, 혁명에의 전진이여!

우리들 아직도

스스로도 못막는

우리들의 피대열을 흩을 수가 없다.

혁명에의 전진을 멈출 수가 없다.

 

민족, 내가 사는 조국이여

우리들의 젊음들

불이여! 피여!

그 오오래 우리에게 썩어내린

악으로 불순으로 죄악으로 숨어내린

그 면면한

우리들의 핏줄 속의 썩은 것을 씻쳐 내는

그 면면한

우리들의 핏줄 속에 맑은 것을 솟쳐 내는

아, 피를 피로 씻고

불을 불로 사뤄

젊음이여! 정한 피여! 새 세대여!

 

너희들 일어선 게 아니냐?

분노한 게 아니냐?

내달린 게 아니냐?

절규한 게 아니냐?

피흘린 게 아니냐?

죽어간 게 아니냐?

아, 그 뿌리워진

림리한 붉은 피는 곱디고운 피 꽃잎

피꽃은 강을 이뤄

강물이 갈앉으면 하늘 푸르름,

혼령들은 강산 위에 햇볕살로 따수어,

 

아름다운 강산에 아름다운 나라를,

아름다운 나라에 아름다운 겨레를,

아름다운 겨레에 아름다운 삶을,

위해

우리들이 이루려는 민주공화국,

절대공화국

 

철저한 민주정체

철저한 사상의 자유

철저한 경제균등

철저한 인권평등의

 

우리들의 목표는 조국의 승리

우리들의 목표는 지상에서의 승리

우리들의 목표는

정의, 인도, 자유, 평등, 인간애의 승리인,

인민들의 승리인,

우리들의 혁명을 전취할 때까지

 

우리는 아직

우리들의 깃발을 내릴 수가 없다.

우리들의 피외침을 멈출 수가 없다.

우리들의 피불길,

우리들의 전진을 멈출 수가 없다.

혁명이여!

 

-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 박두진

 

 

청록파로 알고 있는 박두진 시인이 이런 시를 썼다는 게 놀랍다. '피'와 '혁명'이라는 단어가 연이어 나온다. 살아 숨쉬는 야성의 외침이다. 4.19 혁명 직후의 사회적 분위기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 것 같다. 그리고 55년이 지났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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