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한 달 만에 외출하다

샌. 2015. 5. 18. 17:44

 

꼭 한 달 만에 바깥에 나섰다. 느린 걸음으로 뒷산 언저리를 한 시간 정도 돌았다. 산길은 이미 녹음 터널이 되었고, 아까시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살랑거렸다.

 

몸 상태는 여전히 온전치 못하다. 바람을 쐬면 기침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온다. 폐렴은 진정되었다고 하는데, 아직 남아 있는 편도염 때문인지 모른다. 간 수치도 나쁘다고 하니까 내일 병원에 가서 최종 확인을 받아봐야 한다.

 

몸이 부실하니 마음도 불안정하다. 책 읽기가 제대로 안 되는 걸 보면 안다. 요사이는 팟캐스트를 통해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연속으로 듣고 있다. 이런저런 인생사에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찡해진다. 스님의 설법에는 카르마와 과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유익한 효과가 있음을 발견한다.

 

둘째가 선물해 준 태블릿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화면이 크니 영상 보기가 좋다. 저녁에는 한화 야구를 본다. 연속 꼴찌를 한 팀의 분전에 응원을 보낸다. 만약 침대 생활을 길게 해야 한다면 책이나 태블릿을 고정하기 위한 거치대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일이 생기는 건 바라지 않는다.

 

한 달간 누워 있다고 몸이 근질거리거나 움직이고 싶어 안달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생활도 괜찮다. 숲길을 직접 걷는 것도 좋지만 창 너머로 바라보는 것도 괜찮다. 사물의 다른 측면을 접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건강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과도 만난다. 이런 때가 아니라면 접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 인생에서 쓸모없거나 하찮은 것은 없다. 오히려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진짜 가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통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상식이라는 이름의 견해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런 사실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체득되는 때가 이즈음이다.

 

오랜만에 찾은 산길에 환호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덤덤하고 밋밋했다. 발걸음이 느리다고 재촉하며 앞에서 아내와 첫째가 걸어간다. 기침 나오는 게 두려워 일부러 호흡을 빠르게 하지 않는다. 푸른 5월의 가운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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