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시골 똥 서울 똥

샌. 2015. 10. 6. 07:28

두 달 전 일본 야쿠시마에 갔을 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그곳 산에서는 똥을 누면 비닐에 담아서 내려와야 했다. 화장실은 소변만 볼 수 있었다. 오염이 된다는 게 이유였지만 너무 깔끔을 떠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었는데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의 잿간 같은 방식을 활용하면 굳이 똥주머니를 배낭에 담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일하고 계시는 안철환 선생이 쓴 순환 농업에 관한 책이다. 선생은 쓰레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순환 농업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찾는다. 똥과 음식물 찌꺼기, 잡초와 농사 부산물 등으로 퇴비를 만들어 농사를 짓고, 사람은 거기서 소출된 것을 먹고 살며, 나머지는 다시 경작지로 돌아간다. 근대적 농법 이전에 수천, 수만 년 동안 우리 선조들이 해왔던 방식이다. 그 중심에 똥이 있다.

 

1909년 미국의 농무부 공무원 한 사람이 중국과 일본, 한국의 농촌을 답사하고 땅이 황폐화되지 않는 비법 중 하나로 똥을 들었다. 서양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똥을 혐오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육식을 주로 해서 더럽기 때문인데 인분을 거름으로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수세식 변기를 만들었고 인분의 해양투기 방식을 개발했다. 반면에 동양 사람들은 똥을 풀이나 흙에 섞어 퇴비로 만드는 지혜를 갖고 있었다. 먹은 만큼 다시 땅으로 돌려주는 것의 핵심이 똥이다.

 

우리 조상들은 똥을 재활용하는 순환하는 삶을 살았다. 사람 똥을 거름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똥개도 먹는다. 똥개의 똥은 닭이 먹고 닭의 똥은 돼지가 먹고 돼지의 똥은 오리가 먹고 오리의 똥은 지렁이가 먹고 지렁이의 똥은 작물이 먹는다. 그 작물을 다시 인간이 먹으니 똥 순환 공동체는 끝없이 이어진다. 옛말에 "내 똥을 삼 년 이상 먹지 않으면 큰 탈이 난다"고 한 것도 똥 순환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지금은 뜻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농촌에서도 인분을 거름으로 쓰지 않는다. 똥은 수세식 변기를 통해 하수처리장에서 분리된 뒤 해양에 투기된다. 대신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간 화학비료를 쓰면서 기름으로 돌아가는 기계가 농사를 짓는다. 순환의 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생명을 다루는 농업이 반생명적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는 게 현대 문명이다. 현재의 석유와 철기 문명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것만은 확실하다. 자연과 공생하며 순환하는 방식으로 삶의 근본을 바꾸는 것도 난망하다. 그러나 지은이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가능하지 않으면 인류의 살길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석유와 철기 중심 문명을 태양에너지와 토기 문명으로 다시 돌려야 한다. 토기라고 하면 원시인을 연상하겠지만 세라믹은 우주 왕복선에도 쓰이고 있다.

 

지은이가 말하는 다른 방식의 문명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대략은 그려진다. 슈마허의 '작은 기술' 개념과 닮았다. 전통에서 지혜를 찾고 자연과 조화하는 문명이 철기 문명보다 미개하다는 선입견은 잘못된 것이다. 자연 문명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문명으로 철기 문명이 지닌 파괴 속성에 의한 인류 멸종의 위험도 막을 수 있다.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는 때다.

 

자연문명의 핵심은 바로 순환이고, 획일화가 아닌 다양성이다. 모든 순환의 바탕에는 똥이 있다. 우리 전통적인 뒷간은 여섯 종류가 있다. 가장 흔한 것이 퍼세식이고 잿간식, 통시, 해우소 등이다. 그중에 제일 만들기 쉽고 관리하기 쉬운 것이 잿간이다. 흙바닥에 발을 디딜 부춧돌 두 개에 재나 왕겨, 톱밥만 준비하면 된다. 오줌통은 따로 마련한다. 개인적으로도 단임골에서 잿간식 뒷간을 경험해 보고 그 간편함과 청결함에 놀란 적이 있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잿간식 뒷간이 가능하다고 한다. 잘 관리한다면 텃밭의 거름으로도 사용할 수 있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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