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마왕 신해철

샌. 2016. 5. 31. 11:04

이태 전에 가수 신해철 씨가 수술을 받던 중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솔직히 그 전까지는 신해철 씨가 누구인지 잘 몰랐다. 어쩌다 가요무대만 보는 수준의 음악 소양이라 록 쪽은 완전한 문외한이다. 사고 이후 나오는 보도를 보고서 신해철 씨가 대단한 분이란 걸 알게 되었다. '마왕'이라는 별칭이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마왕 신해철>은 그의 유고집이다. 생전에는 그의 음악 한 곡 들어보지 못했지만 글을 통해서나마 신해철을 만나게 되었다. 책의 유익한 점이 이런 것이다. 만날 수 없는 사람과도 서로 마음의 대화를 할 수 있다. 물론 일방적이긴 하지만.

 

신해철 씨는 음악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재질이 뛰어난 분 같다. 글에서는 천재의 자질이 읽힌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매력적인 인물이다. 나보다는 몇 단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 같다. 지적이고 의식 있는 프로 뮤지션이다. 그리고 카리스마도 강하다. 과거 '100분 토론'에서 인기 있는 토론자였다는 건 이제 알았다.

 

솔직하고 유머러스하며 시니컬한 글을 읽으면 속이 시원해진다. 뜨끔하기도 하다. 한 예로, 아무 의미 없이 수학 공식과 국사 연대를 암기한 학창 생활을 분한 심정으로 회고하며 선생을 질타한다.

 

"어째서 어른이라는 씹새끼들은 우리가 배우는 과목들의 존재 이유와 아름다움에 대해서 설명해 주지 않았을까. 성공하기 위해, 아니 적어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대학에 가야 한다는 반복적인 중얼거림으로 시간을 낭비하게 할 뿐, 왜 그들은 시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역사의 장엄함에 대해서, 화학의 마술과도 같은 신비함에 대해서 단 한마디라도 설명해주려 들지 않았을가. 다시 생각해도 좆같다. 그들은 우리를 가축으로 여기고 몰이꾼 노릇을 했을 뿐, 한 번도 우리를 대지를 박차고 달려나갈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여겨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도 저 어른들을 좆같이 여기고 알로 본다(꼬우냐?)"

 

책 한 권으로 그를 판단하는 건 무리일 수도 있지만, 신해철 씨는 어떤 고정관념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인으로 살았던 사람 같다. 그러면서 중심을 놓치지 않고 정직했다. 불의에 맞서 싸울 줄도 알았다. 어느 분은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우리 대중음악사에 등장한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인문주의 예술가, 르네상스인이었다." 살았을 때 그를 알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의 노래를 찾아서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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