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채식주의자

샌. 2016. 7. 21. 17:06

유명 문학상을 받은 작품과 독자가 받는 감동이 비례하지는 않는다. 기대가 커서인지 실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럴 때는 전문가는 역시 보는 눈이 다르구나, 하고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올봄에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 영미권에서는 꽤 권위 있는 상인 것 같다. 한국 작가가 세계적인 상을 받은 소식은 모두를 기쁘게 했다. 경제나 스포츠 분야에서의 성취에 비해 문학이나 사상 같은 정신적인 면에서는 많이 뒤처져 있었다. 수상을 반기는 건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채식주의자>는 수상 소식을 들은 뒤에 책을 사서 읽어 보았다. 그런데 느낌을 글로 옮기려니 굉장히 막막했다.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소설이 품고 있는 함의를 읽어내기가 내 수준으로는 어려웠다. 큰 상을 받은 작품을 내 멋대로 재단하는 것도 어려웠다.

 

지금도 그렇다. 소설이 가진 의미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감을 쓰기가 난감하다.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라는 세 편의 연작으로 되어 있다. 2년 정도에 걸쳐 문학지에 따로따로 발표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시차 때문인지 세 작품에는 미묘한 차이가 보인다.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단점도 있다.

 

<채식주의자>는 우리가 얼마나 폭력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나는 읽는다. 어느 날 갑자기 채식주의자로 변한 영혜를 통해 세상의 폭력성을 잔인하게 드러낸다. 나무가 되고 싶은 순수한 영혼의 주인공이 버텨낼 공간은 없다. 이미 무뎌진 우리는 끄떡없이 살아가지만 영혜의 눈과 감성은 다르다. 다수가 받아들인다고 정상은 아니다.

 

소설은 세상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인간 존재에 대해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내가 보는 것은 그렇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몽고반점'이다. 어찌 보면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같지만 그렇게 긴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설마 기괴한 내용으로 독자의 시선을 끌려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작가는 관습적인 삶을 비판하기 위해서 특별하고 비일상적인 소재를 택했는지 모른다. 소설은 약간 불편할 정도로 엇박자가 느껴진다. 이것은 작가가 노린 바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소설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삶의 근본 문제에 관한 것이다. 책을 덮어도 여운이 진하게 남는다. 명료하게 이해는 안 되어도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게 한다. 내 식견이 짧아서 내 수준만큼만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게 아쉽다. 한강은 앞으로가 기대되는 작가다. 더 깊이 존재의 문제를 다루는 작가가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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