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육탁 / 배한봉

샌. 2016. 9. 25. 12:08

새벽 어시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

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덤 속 같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

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게 스며들었다

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

늘 열려 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

고이지 못한 그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록 짜게 만들었으리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의 집 창문도 저렇게 늘 열려서 불빛을 흘릴 것이다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칠 바닥도 없이 하얗게 소금에 절이는 악몽을 꾸다 잠깬

그의 작고 둥근 창문도 소금보다 눈부신 그 불빛 그리워할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캄캄한 방문을 열고

나보다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부터 마중할 새끼들 같은, 새끼들 눈빛 같은

 

- 육탁(肉鐸) / 배한봉

 

 

'육탁(肉鐸)'이라는 단어가 사전에는 없다. '목탁(木鐸)'과 비교하면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다. 어쩌면 육탁은 삶의 마지막 단말마인지도 모른다.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지만 그 힘마저 죽음을 재촉할 뿐이다. 보이지는 않아도 오히려 더 단단한 사람 세상의 그물이다. 그래도 살아내리라, 몸부림치는 육탁의 거룩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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