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차창 밖 풍경

샌. 2016. 11. 20. 09:41

나는 차창을 스쳐가는 풍경이 좋다. 서울을 오갈 때 버스를 이용하는데 늘 창가에 앉아 바깥 경치에 넋을 놓는다. 항상 보는 것이지만 다닐 때마다 새롭다. 그러나 사람들은 밖에 별 관심이 없다. 자리에 앉으면 아예 커튼을 닫아 버리기도 한다. 젊은이는 스마트폰에 빠져든다.

 

패키지여행을 가면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다. 차 안에서는 대개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잔다. 그런데 나는 바깥 경치에 탐닉한다. 버스에 타면 눈이 더 말똥말똥해진다.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참 특별하구나, 생각한다. 캄캄한 밤에도 마찬가지다. 드문드문 있는 불빛만이라도 괜찮다. 풍경이 단순해지면 이런저런 상념에 더 잘 빠진다.

 

스쳐지나가는 풍경에는 뭔가 신비한 요소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던 시간의 흐름이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정지한 장면에서는 시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내 몸이 한 방향으로 진행할 때 나는 시간의 화살에 타고 있는 것 같다. 옛것이 물러나고 새것이 다가온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생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다.

 

차창 밖 풍경에 빠질 때 왠지 샌티해지고 숙연해지는 건 이런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또한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는 기분도 좋다. 그럴 때는 이 세계로부터 약간은 초월해 있는 느낌이다. 세계 속에 있으면서 세계에서 떨어져 있는 색다른 경험은 달리는 차가 주는 선물이다.

 

그런 연유인지 직접 운전하는 것도 무척 즐겁다. 지금 이 나이에도 온종일 운전해도 아무렇지 않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운전석에 앉으면 가슴이 설렌다. 새로운 세계가 눈앞으로 다가오는데 지루할 틈이 없다.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인생의 여정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혼자 드라이브를 할 때 이런 기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만약 다시 살 수 있다면 항공기 조종사를 직업으로 선택해 보고 싶다. 하늘을 나는 기분은 자동차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넓은 대륙을 종횡무진 누비는 트럭 운전도 멋있어 보인다.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태워주는 버스 기사도 로맨틱하다. 반면에 자동차 경주 같은 속도 레이스는 질색이다.

 

지구별에 사는 우리는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기 때문에 가만히 집에 있더라도 누구나 우주의 여행자인 셈이다. 별의 일주운동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배경이 너무 멀리 있어 실감하지 못할 뿐이다. 또, 우리 은하 자체도 회전하고 있다. 초속 250km의 빠른 속도지만 한 바퀴 도는 데는 2억 년이 넘게 걸린다. 그저 아득하기만 하다.

 

움직이고 스쳐지나가는 것이 우리의 운명인지 모른다. 우주의 잣대로 보면 하루살이에도 못 미치는 게 인간이다. 그래도 살아 있는 동안은 나름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지나고 보면 다 보잘것없는 것들이다. 흘러가는 차창 밖 풍경을 보며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나는 왜 여기에 와 있는가? 세상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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