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나이듦과 죽음에 대하여

샌. 2017. 1. 4. 10:33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노년과 죽음 부분을 발췌한 선집이다. 몽테뉴 수상록은 대학생 때 문고판으로 읽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지금 기억에 남는 내용은 거의 없다. 그런데 수상록은 젊을 때보다는 흰머리 희끗희끗해질 때 읽어야 제맛이 나는 건 사실이다.

 

몽테뉴(1533~1592)는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선택된 교육을 받고 고등법관이 되었다. 그러나 공직에 대한 부담과 환멸로 37세의 나이에 사임하고 몽테뉴 성에 은둔하며 생의 후반은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했다. 조용히 살면서 정신을 성숙하게 하고,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해서였다. 몽테뉴가 살았던 시기는 종교 전쟁이 한창인 때였고, 개인적으로도 주변에서 죽음을 많이 접했다. 그런 점이 몽테뉴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게 한 것 같다. 그 사색의 결과가 <수상록>이다. <수상록>은 차분히 음미하며 읽어야 할 책이다. 삶에 대한 지혜가 가득하다. 언젠가는 선집이 아닌 전체를 읽어 보고 싶다.

 

몽테뉴가 평생 몰두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죽음이다.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문제로 인간 실존의 핵심이다. <수상록>은 장기간에 걸쳐 쓰였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몽테뉴의 여러 견해가 나온다. 죽음에 잘 대비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죽음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고백하기도 한다.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죽음을 외면하고 보고도 못 본 체하는 것이다. 아마 우리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몽테뉴는 이를 무지와 맹목의 상태로 본다. 둘째, 자나 깨나 죽음을 생각하며 대비하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에 담긴 지혜이기도 하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훈련을 하며 죽음에 익숙해지고, 실제 죽음이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게 된다. 노화는 이렇게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셋째, 죽음은 대비할 수 없으니 홀로 찾아오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자신도 말에서 떨어져 갑자기 찾아온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무심함'이야말로 죽음 앞에서 우리가 가질 태도라는 것이다. 그는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체험했다.

 

"삶의 기쁨을 만끽하자. 자연에 순응해 살자.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사색을 통해 몽테뉴가 얻은 결론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인생이란 고달프고 경멸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하고 유쾌한 것이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책에 나온 인상적인 구절을 옮겨본다.

 

 

신은 생명을 조금씩 빼앗아감으로써 인간에게 은총을 베푼다. 이것이 노화의 유일한 미덕이다.

 

노년이 되면 얼굴보다 정신에 더 많은 주름살이 생긴다. 늙으면서 시큼해지고 곰팡내 나지 않는 영혼이란 없으며, 있다 해도 매우 드물다.

 

고독의 목적은 동일하다. 그것은 보다 평온하게 보다 안락하게 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고독의 길을 제대로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들은 때때로 온갖 일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일거리를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우리에게는 아내, 자녀, 재산,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행복이 좌우될 정도로 거기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완전히 자유로운 자기만의 뒷방을 마련해 두고, 그 안에서 참된 자유와 은둔과 고독을 확보해야 한다.

 

책은 내가 살아온 한평생에서 찾아낼 수 있었던 최상의 양식이다. 그러므로 나는 뛰어난 식견을 가졌지만 책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몹시 딱하게 여긴다. 책이 주는 즐거움이 나에게서 없어지는 일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으므로, 오히려 나는 그 밖의 다른 즐거움들이 하찮은 것일지라도 기꺼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는 그날그날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오직 나만을 위해 산다. 나는 젊어서는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공부했다. 그다음에는 현명해지기 위해 공부했고, 지금은 재미로 한다. 결코 무언가를 얻기 위해 공부하지는 않는다.

 

행복과 불행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공물(供物)과 서원(誓願)을 운명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바치자. 운명은 우리의 기질을 전혀 건드리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의 기질이 운명을 끌고가 그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눈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본다. 나는 내 안으로 눈길을 돌려 고정하고, 그 안을 부지런히 들여다본다. 사람들은 저마다 앞만 바라본다. 나는 내 안을 들여다본다. 나는 나만을 들여다본다. 끊임없이 나를 검토하고, 나를 분석하고, 나를 맛본다.

 

자기 존재를 있는 그대로 누리는 것이야말로 절대적인 완성이며, 신적(神的)인 완성이다. 우리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남의 처지를 탐하며, 자신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밖으로 나가려 한다.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생명의 상실이 나쁜 것만은 아님을 깨달은 사람에게 인생에서 나쁜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죽는 법을 알면 모든 예속과 속박에서 벗어난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살지 못하고, 삶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죽지 못한다.

 

사생활까지 정돈된 삶은 흔치 않은 훌륭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공연에 참가해 무대 위에서 칭찬받을 만한 인물을 연기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허용되고 모든 것이 숨겨지는 자신의 마음속, 가슴속에서 규율을 지키는 것이다.

 

영혼의 가치는 높이 올라가는 데 있지 않고, 정연하게 살아가는 데 있다. 영혼의 훌륭함은 위대함 속에서가 아니라 평범함 속에서 발휘된다.

 

나는 춤출 때는 춤추고 잠잘 때는 잠잔다. 아름다운 과수원을 혼자 거닐 때, 때로는 내 생각이 산책과는 상관없는 일들로 방해를 받지만, 나는 곧 그 생각들을 산책으로, 과수원으로, 고독의 감미로움으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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