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30,000,000

샌. 2017. 1. 5. 11:21

전국을 휩쓴 조류인플루엔자(AI)로 한 달 사이에 닭과 오리가 3천만 마리 넘게 살처분 되었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천만이라는 숫자에 현기증이 난다. TV 화면으로 보는 살처분 현장은 세기말적 풍경이다. 아우슈비츠가 연상되는 건 과민 반응인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인간도 무더기로 살처분될 수도 있다는 예감이 두렵다.

 

거의 매년 AI 소동을 겪으며 이런 난리를 치고 있다. 공장식 축산 산업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양계장을 보면 도저히 닭을 먹을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야만적이다. 저도 생명일진대 어떻게 저런 대우를 할 수 있을까 싶다. 수익을 내자면 어쩔 수 없는 받아들여야 하는 시스템에서 축산업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비극이다.

 

대규모 공장식 축산이 이런 어마어마한 살육을 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는 닭과 오리는 면역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AI 바이러스에 취약하다. 한 번 전염되면 산불 붙듯 옮겨간다. 이런 비극을 막자면 현재와 같은 사육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는 공장식 축산 비율이 98%인데, 독일은 10%다. 넓은 터에서 방사하며 키운다. 그러니 AI로 인한 피해가 소규모에 그친다. 유럽 선진국은 공장식 축산을 금지하는 법령을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은 고기를 먹으면 인간에게도 좋지 않다. 심성이 이렇게 피폐해진 것은 나쁜 육식을 한 탓인지 모른다. 보편적 생명 존중 의식 이전에 인간을 위해서도 가축의 생육 환경은 개선되어야 한다.

 

2,500년 전 피타고라스는 모든 생명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으므로 육식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영혼은 불멸의 존재로 윤회하며 옮겨 다닌다. 사람의 영혼도 동물 속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소, 돼지, 닭을 먹는 것은 자신의 부모와 가족, 친구를 먹는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생명에 대한 그의 통찰은 이 시대에 되새겨야 한다. 물질문명은 너무 생명을 경시한다.

 

개와 닭이 다르지 않다. 애완견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생명이 처한 현실에는 눈을 감는다. 사정이 어렵다지만 찾고자 하면 대안이 있을 것이다. 우선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 의식도 중요하다. 실상을 잘 알린다면 더 나은 먹을거리를 위한 희생은 감내할 것이다.

 

단지 전염 지역 가까이에 있다는 이유로 3천만의 생명이 생매장 당했다. 이건 아닌 것 같다. 경제적 피해는 논외로 하더라도 살처분 작업에 직접 관여한 사람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계속 이런 식으로 대응하기만 할 것인가. 사람살이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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