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내 탓이오

샌. 2017. 4. 15. 11:27

접촉 사고가 나더라도 절대로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말라. 무조건 네 탓이라고 우겨라. 30년 전에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샀을 때 선배 운전자한테서 들은 충고였다.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긴다는 통설이 널리 퍼졌던 시기였다. 지금은 보험회사에 전화만 하면 과실 비율을 판정해 준다. 네 탓, 내 탓으로 낯 붉힐 일이 별로 없다.

 

겨울 스포츠로는 배구를 좋아한다. 특히 여자배구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즐겨 본다. 배구는 실수가 자주 나오는 경기다. 그럴 때는 손을 들거나 가슴에 손을 대면서 미안함을 표시한다. 대신에 동료들은 괜찮다고 격려해 준다. 배구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반대로 상대 팀에 대해서는 자기 잘못을 드러내지 않는다. 블로킹을 하다가 손가락에 맞았더라도 모른 척한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행히 비디오 판독 절차가 있어 정확히 판정해 준다.

 

한때 천주교에서 '내 탓이오' 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 탓이오'라고 적힌 스티커가 자주 눈에 띄었다. 차량 뒷 유리창에도 많이 붙어 있었는데, 그걸 보며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난다. '내 탓이오'라면 자신이 볼 수 있게 운전석 유리창에 붙여 놓아야 하는 게 맞는 일이었다.

 

어쨌든 이 운동은 지속되지 못했고 슬그머니 사라졌다. 미사 중에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내 탓이오'라고 고백할 수는 있지만, 일상생활로 확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탓이오'보다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불의한 사회에서 '내 탓이오'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선 인간 본성이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다.

 

인종이 뛰어나거나 개인 능력이 탁월해서 안정된 서구 선진국을 만든 게 아니다. 정의가 제대로 작동되는 사회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Sorry!" "Thanks!"라는 말이 일상화되어 있다. '내 탓이오' 캠페인을 벌이지 않아도 저절로 "미안합니다"라고 한다.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국가 시스템의 개혁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때다. 어제 TV 뉴스에서 아이슬란드 대통령 소식을 보았다. 지난 9일에 두 아이가 수영을 마치고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지나가다가 아이들을 집에까지 데려다주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다. 왜 우리에게는 되지 않는 걸까? 정말로 '내 탓이오'라며 가슴을 쳐야 하는 우리들이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타고라스의 가르침  (0) 2017.05.31
애착 줄이기  (0) 2017.05.14
세계행복지수  (0) 2017.03.24
폭풍의 날  (0) 2017.03.21
그런 일이 있은 뒤  (0) 2017.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