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은현리 천문학교 / 정일근

샌. 2017. 7. 15. 10:33

내 사는 은현리 산골에 별을 보러 가는 천문학교가 있다. 은현리 천문학교에서 나는 별반 담임선생님. 가난한 우리 반 교실에는 천체망원경이나 천리경은 없다. 그러나 어두워지기 전부터 칠판을 깨끗이 닦아놓는 착한 하늘이 있고, 일찍 등교해서 교실 유리창을 닦는 예쁜 초저녁별이 있다. 덜커덩 덜커덩 은하열차를 타고 제 별자리를 찾아오는 북두칠성 같은 덩치 큰 별들이 있고, 먼 광년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느라 숨을 헐떡이는 별도 있다.

 

오래 전 나도 별과 같은 학생이었다. 그 때의 우리들처럼 별들도 여간 말썽꾸러기가 아니다. 내가 출석을 부르는 사이 슬쩍 자리를 바꾸어 앉는 개구쟁이별이 있고, 시간시간 붉은 옷 노란 옷으로 갈아입는 멋쟁이별도 있다. 그러나 나는 별들을 야단치지 않는다. 혹시 별이 울어 버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은현리 천문학교에서는 누구도 별을 울려서는 안 된다. 별이 울어버리면 하늘 제자리에 손톱자국 같은 생채기를 내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오래, 아주 오래 별을 바라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가령 첨성대에 올라 별을 바라보았던 서라벌의 점성가들은 벌써 알고 있었을 비밀이다. 그 비밀을 말하자면, 모든 별들은 악기라는 것이다. 하늘의 눈물로 만들어진 하늘의 악기. 그래서 모든 별들은 쨍그랑 쨍그랑 수정유리 소리가 나고, 바람 부는 날 은현리 천문학교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혹 당신이 듣지 못했다 해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믿지 않으면 별들의 연주를 영원히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휘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던가. 하얀 연미복을 입고 하얀 구두를 신고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을 열광적으로 연주하고 싶었다. 이제 그 꿈이 이뤄졌다. 베를린 필하모니를 지휘했던 카라얀 선생도 나보다 가슴 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작은 산골에서 지휘봉을 들고 밤하늘에 뿌려져 있는 별들의 소리를 조율한다. 나의 지휘로 은현리 별들이 서서히 합주를 시작하면 미리내는 장중하게 흘러가고 밤하늘은 음악에 젖는다.

 

별은 자신을 때리며 소리를 낸다. 별은 소리를 낼 때 가장 빛난다. 작은 별은 맑은 소리로 웃고 큰 별은 우렁찬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물고기자리의 별들은 물고기가 되어 튀어 오르고 전갈자리의 별들은 전갈이 되어 달아난다. 개구쟁이 녀석들이라 1악장이 끝나기도 전에 내 지휘 따위는 안중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편안하다. 연미복을 벗어 던지고 구두를 벗어 던지고 풀밭에 눕는다.

 

하늘의 별들이 내게로 뛰어 내린다. 선생님하며 내 품으로 달려온다. 내가 바다가 보이는 교실의 선생님이었던 그 때처럼 내게로 달려와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천문학교 교실에서 한 몸이 되어 노래를 부른다. 별들이 모두 제 집으로 돌아간 새벽 나는 악보를 그린다. 아주 옛날 은현리에 살았던 우시산국 사람들이 바위에 그 별자리를 새겼듯이 천상열차분야지도 같은 황홀한 하늘의 합창을 잊어버릴까 내 마음의 천문도에 또박또박 그려 넣는다.

 

- 은현리 천문학교 / 정일근

 

 

직접 밤하늘의 별을 본 지가 여러 달이 되었다. 별 보러 일부러 밖에 나갈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 대신에 인터넷으로 다른 사람이 찍은 별 사진을 보면서 가슴 뛰는 경험을 한다. 화려하기로 치면 사진이 실제 밤하늘보다 훨씬 더 낫다. 사람 눈에 안 보이는 별까지 담아내기 때문이다. 요사이는 장비나 보정 기술이 워낙 발달하여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별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다. 별 추적 장치도 손바닥만 한 것까지 나와 있다. 장비를 지르고 다시 별 사진에 도전해 볼까, 욕심을 내다가도 고개를 젓는다. 나이 탓일까?

 

사진으로 남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다. 꽃도 별도 마찬가지다. 가슴으로 만나는 일이 소중하다. 어떤 때는 카메라가 방해가 된다. 돗자리 하나 들고 맨몸으로 별을 만나러 가고 싶다. 아예 그런 별들의 마을에서 살고 싶다. 은현리 천문학교의 선생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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