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잡초 비빔밥 / 고진하

샌. 2017. 7. 21. 11:06

흔한 것이 귀하다.

그대들이 잡초라고 깔보는 풀들을 뜯어

오늘도 풋풋한 자연의 성찬을 즐겼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은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숱한 맛집을 순례하듯 찾아다니지만,

나는 논 밭두렁이나 길가에 핀

흔하디흔한 풀들을 뜯어

거룩한 한 끼 식사를 해결했느니.

신이 값없는 선물로 준

풀들을 뜯어 밥에 비벼 꼭꼭 씹어 먹었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이

개망초 민들레 질경이 돌미나리 쇠비름

토끼풀 돌콩 왕고들빼기 우슬초 비름나물 등

그 흔한 맛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너무 흔해서 사람들 발에 마구 짓밟힌

초록의 혼들, 하지만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나니,

그렇게 흔들리는 풋풋한 것들을 내 몸에 모시며

나 또한 싱싱한 초록으로 지구 위에 나부끼나니.

 

- 잡초 비빔밥 / 고진하

 

 

여름이면 잊히지 않는 맛이 있다. 외할머니가 쇠비름을 무척 좋아하셔서 어릴 때 덩달아 쇠비름 맛을 익혔다. 처음에는 미끈미끈한 식감이 거북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보리밥에 삶은 쇠비름을 얹고 고추장으로 비벼 먹었던 맛을 떠올리면 지금도 저절로 침이 고인다. 쇠비름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그것도 먹느냐며 의아해한다. 밭에 지천으로 덮이는 잡초가 쇠비름이다. 너무 흔해서 거들떠보지 않는다. 여름이 되니 쇠비름과 함께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 고마워할 줄도 몰랐다. 흔한 게 귀한 건 줄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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