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고대 로마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

샌. 2018. 1. 11. 20:58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인 BC 2세기 초의 어느 날, 로마에 있는 조폐국에서 세스테르티우스 동전이 만들어진다. 이 동전은 군 수송부대에 의해 브리타니아의 최전방 요새로 전달되고, 거기서부터 주인을 바꾸며 로마제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알베르토 안젤라의 <고대 로마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는 수년간에 걸쳐 동전의 여정을 따라가며 로마인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은이의 전작인 <로마인의 24시간>은 시공간이 제한되어 있었던 반면 이 책은 로마제국 전체를 관통하면서 동전의 주인이 되는 군인, 상인, 매춘부, 노예 등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게르마니아와의 전투, 전차 경주, 지중해 항해, 알렉산드리아 거리, 병원, 식당, 광산 등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 실감이 난다.

 

상상만으로 쓴 것이 아니라 고고학적 자료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책 내용은 더욱 믿을 만하다. 유물이나 비문에 나오는 이름이 실명 그대로 등장한다. 그만큼 사료가 풍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의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너무나 차이가 난다.

 

로마제국은 2천 년 전에 존재했지만 현대와 비교해도 별로 뒤처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했다. 책의 배경인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는 로마의 최전성기였다. 로마인은 다인종이 통합된 세계화를 2천 년 전에 이미 이루었다. 원로원의 1/3이 아프리카 출신으로 구성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로마는 정복한 땅의 고유문화와 종교를 인정했다. 현재 우리의 의식 수준보다 앞선 부분도 많았다.

 

전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카이사르를 비롯한 인물들의 스토리에 빠졌다. 사료라는 원재료를 가지고 얼마나 맛나게 가공하느냐는 작가의 역량이다. 알베르토 안젤라는 시오노 나나미 이상의 책 읽는 즐거움을 준다.

 

특히 이 책은 동전의 유통 과정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점이 흥미롭다. 현대식 지명으로 하면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로마, 지중해, 아프리카, 인도, 터키, 그리스를 거치며 제국을 일주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에게도 이런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3월에 이태리 여행을 가기로 했다. 알고 가면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유적 중에서는 콜로세움이 제일 기대 된다. 그 현장에서 2천 년 전 로마인의 함성을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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