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성지(5) - 신석복 묘, 박대식 묘

샌. 2018. 2. 28. 11:05

 

7. 신석복 마르코(1828~1866) 순교자 묘

 

신석복 마르코는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에서 살았다. 명례리는 피난 교우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농사를 지으며 누룩과 소금 행상을 하던 마르코는 병인박해가 일어나던 1866년에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붙잡혔다. 포졸들은 창원에서 장사를 하고 돌아오던 마르코를 며칠 동안 마을에서 숨어 기다리다가 체포했다. 마르코는 대구로 압송되어 배교를 강요당했지만, "저를 놓아주신다 해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입니다." 하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다.

 

마르코는 열흘간 감옥에 갇혀 있다가 1866년 음력 2월 15일 교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가족들이 시신을 거두어 고향에 안장하려 했으나 지방 유지들의 반대로 낙동강 건너 노루목(김해군 한림면 장방리)에 묻었다. 그 후 1975년에야 진영본당 공원묘지로 이장하였다.

 

 

 

진영성당 공원묘지는 아담하고 소박하다. 시기별로 묘석의 모양이 다른 게 흥미로웠다. 순교자 묘는 묘원 안쪽 가운데에 있다. 찾아간 날은 본당에서 신자들이 와서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환한 웃음소리가 묘지의 분위기와 오히려 잘 어울렸다. 아마 순교자도 흐뭇하게 이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8. 박대식 빅토리노(1811~1868) 순교자 묘

 

박대식 빅토리노 순교자는 1811년 김해시 진례면 시예리에서 태어났다.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던 중 1868년 무진박해를 만나 체포되었다. 대구로 이송된 후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배교의 유혹을 거절하고 신앙을 지켰다. 1868년 음력 8월 27일에 조카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시신은 고향 선영에 모시지 못하고 챗골(김해시 청천리)에 평장으로 장례를 지냈다. 그 후 1956년에 봉분을 만들고 순교자 부인의 묘도 이장하여 묘역으로 가꾸었다.

 

 

 

 

 

진례성당에 들러 약도까지 받았지만 순교자 묘 입구를 지나쳤다. 안내 표지판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김해터널 직전에서 왼쪽으로 난 작은 길로 들어서면 된다. 묘지는 산길을 5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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