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애첩 한고랑 / 김진완

샌. 2018. 3. 5. 15:45

- 느 아부지 요즘 첩이 생겼다

 

첩에 홀린 아버지

새벽이슬 밟는다

전철 두 번 갈아타고

30분을 걸어 만난 첩

연초록 치마 들춘다

 

- 히따야 요게 하는 재미!

주책이지! 침까지 흘린다

 

가족 소풍날, 아버지

상추 첩- 첩- 겹쳐 건넨다

아비 애첩은 손이 크고 인심도 푸져서

열 네 식구 배불리 먹이고도

성에 안 차

상추 한 보따리씩 안겨준다

 

- 요즘 느 아부지 팔자에 없는 첩 덕택으로 어깨에 힘 쫌 주니라

- 하모, 내 이래 뵈도 동네 삼아웃 쌈싸무기를 책임지고 있는 싸나이라!

그라니 어깨에 힘 안 주고 배기겠나! 봐라 상추가 얼매나 싱싱한지 펄펄 날라가라칸다

 

희안하지?

늙은 아비 혼을 빼먹어도

본처는 시샘이 안 나

 

첩 이름은 한고랑

변두리 주말농장

밭 한 고랑

 

- 애첩 한고랑 / 김진완

 

 

내일이 경칩이다. 경칩이 되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데, 밖에 나가면 햇살에서 봄기운이 느껴진다. 농촌에서는 슬슬 농사 준비를 시작할 것이다. 도시인들도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 많다. 우리 유전자에는 만 년 동안 이어져온 농경의 삶이 경작 본능으로 각인되어 있다. 텃밭은 소출도 소출이지만 가꾸고 기르는 재미가 더 크다. 나도 올해는 애첩이라도 하나 들일까 보다. 인간 애첩보다도 훨씬 더 위안을 주는 한고랑 애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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