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한동안 그럴 것이다 / 윤제림

샌. 2018. 5. 18. 11:04

1

한 젊은 부부가,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아이를 공원에 데리고 와서 사진을 찍는다. 그네 위에 걸터앉혀 놓고 이리 찍고 저리 찍고, 필름 한 통을 다 찍는다. 한동안 저럴 것이다.

 

2

저러다가 어느 날, 언제부터인가

사진 찍는 것을 잊어버린 자신들을 발견하곤

흠칫 놀라지만,

이내 잊어버린다.

아이가 자신들의 가슴 속에

푸욱 들어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는 한동안 부모의 가슴에 갇혀 자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이는 부모의 가슴에 난 작은 틈을 찾아낸다.

문을 낸다,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간다.

그 문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온다.

 

3

또 어느 날엔,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 하날 양손에 붙들고 와서 저렇게 사진을 찍는다. 필름 한 통을 다 찍는다. 한동안 그럴 것이다.

 

- 한동안 그럴 것이다 / 윤제림

 

 

노란 버스는 아침 8시 15분에 온다. 둘째가 손주 손을 잡고 내려오는 게 보인다. 등에는 제 몸뚱이만 한 가방을 메고 있다. 유치원에 안 간다고 오늘 아침에도 소란을 피웠을 것이다. 엄마들의 요란한 환송을 받으며 버스는 출발한다. 한동안 그럴 것이다.

 

삶이란 무한 루틴의 반복이다. 아이가 부모 되고, 조금 지나면 애틋하게 손주를 바라보게 된다. 내리사랑의 그 지극 정성을 생각한다. 누구나가 그랬을 것이다. 우리가 잡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던가. 인생은 낮술 마시고 잠든 한낮의 짧은 꿈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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