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 40

수산리 느티나무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주로 국도를타고 고향에 다녔다. 그중에서 충주와 단양을 연결하는 36번 도로는 풍광이 좋아 자주 이용했다. 충주호를 끼고 꼬불꼬불 이어지는 이 길은 운전의 피곤함을 잊게 해 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 느티나무는 그 길 위에 있었다. 그러니까 오가며 본 것이 20년도 더 되었다. 막상 차를 세우고 가까이 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냥 지나치면 수많은 나무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관계를 맺게 되면 나에게는 특별한 나무가 된다. 이제 이 나무도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나무가 되었다. 앞으로 이 길을 지날 때면 잠시 멈춰 서서 인사라도 나누게 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나무는 길에 나와 자식을 기다리는 시골 아낙을 닮았다.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기다려줄 것 같다. 수령이..

천년의나무 2011.11.30

위대한 패배자

롬멜, 체 게바라, 고르바초프, 라이너 바르첼, 앨 고어, 메리 스튜어트, 루이 16세, 빌헬름 2세, 요한 슈트라우스, 하인리히 만, 렌츠, 라살, 트로츠키, 오스카 와일드, 크누트 함순, 리제 마이트너, 앨런 튜링, 게오르크 뷔히너, 이사크 바벨, 빈센트 반 고흐,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볼프 슈나이더가 쓴 에 소개된 사람들이다. 세상에 이름을 남겼으니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마지막에는 승리를 사기당하거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몰리고, 왕좌에서 쫓겨나고, 명성을 도둑질당한 사람들이다. 또, 고흐처럼 살아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역사는 승리자만 기억한다. 세상은 승리자의 논리로 돌아가고 승리자들이 역사를 쓴다. 한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번진 적도 있었다. ..

읽고본느낌 2011.11.29

애절양 / 정약용

갈밭 젊은 아낙 오랫동안 울더니 관문 앞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는다 출정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있다 해도 사내가 제 자지 잘랐단 소리 들어본 적 없구나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다 이 집 삼대 이름 군적에 모두 실렸다며 억울한 하소연 하려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이정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간다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가더니 피가 방에 흥건하다 스스로 부르짖길 '아이 낳은 죄로구나!' 누에치던 방에서 불알 까는 형벌도 억울한데 민땅의 자식 거세도 진실로 슬픈 것이거늘 자식을 낳고 사는 이치는 하늘이 준 것이요 하늘의 도는 남자 되고 땅의 도는 여자 되는 것이라 거세한 말과 거세한 돼지도 오히려 슬프거늘 하물며 백성이 후손 이을 것을 생각함에 ..

시읽는기쁨 2011.11.28

이 시대의 광기

이 며칠 자꾸 생각나서 심란해지는 사건이 있다. 고3 학생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8개월이나 방에 방치해둔 채 함께 지냈다. 그러면서 멀쩡하게 학교에 다니고 수능 시험도 봤다. 이해되기도 용서하기도 어려운 패륜 범죄다. 그러나 뒷사연을 들어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어머니를 살해하기 전날에는 성적이 떨어졌다고 골프채로 12시간 동안 맞았다고 한다. 어머니도 아들도 정상이 아닌 가정이었다. 종기가 곪아 터지듯 결국은 비극적 파국으로 끝났다. 별거 중이었던 이 학생의 아버지 말에 따르면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애가 7살 때 씻겨주려고 종아리를 걷었는데 매 자국이 보여 놀라 옷을 벗기니 엉덩이가 시퍼렜다."라며 "애 엄마가 매로 다스려야 한다며 홍두깨로도 때리고, 물건을 던져 애 ..

길위의단상 2011.11.27

친구와 남한산성 성곽길을 걷다

친구와 남한산성 성곽길을 한 바퀴 돌았다. 두 주 만에 걷는 걸음이었다. 산에 오르니 바람이 찼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뿌릴 듯 잔뜩 흐렸다. 원래 대학 동기들 22차 산행일이었으나 날씨가 추워선지 둘밖에 모이지 않았다. 이러다간 홀로 산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남문을 중심으로 해서 성을 일주하는데 세 시간이 걸렸다. 성곽길은 언제라도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좋은 길이다. 약간은 부족한 듯한 이 정도가 내 체력에도 맞다. 걸으면서 퇴직 후의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아직 현직에 있는 친구의 버킷 리스트가 재미있었다.친구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데도 많다. 퇴직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친구의 모습이 멋있었다. 오전에 산길을 걸은 뒤 따뜻한 두부전골로 몸을 녹이고 헤어졌다. 전날 과음..

사진속일상 2011.11.26

마음이 편한 게 제일이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한 게 제일이다. 고대광실에 살아도 마음이 편치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단칸셋방에 살아도 내 마음이 편하면 거기가 천국이다. 인생은 한순간의 꿈, 한 조각 뜬 그림이다. 나타났다가는 잠시 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짧은 인생살이 대부분을 아웅다웅하고, 고민하고, 다투고, 자학하니, 오호통재라. 모두가 부질없는 노릇일 뿐이다.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면 물결 치는 대로, 천리(天理)를 거역하지 않으면 자유로워질까. 괴로움을 덜 수 있을까. 제 뜻을 바라고 고집하지 않아 평안을 찾는 사람이야말로 현인이다. 더 바랄 게 없는 사람, 욕망의 바람이 멈춘 사람, 잔잔한 호수의 마음을 가진사람은 행복하다.

참살이의꿈 2011.11.25

장자[186]

임공자가 커다란 낚싯바늘과 굵은 낚싯줄에 소 오십 마리를 미끼로 매달아 회계산에 앉아 동해에 낚싯대를 던져놓고 낚시를 했다. 날마다 낚시를 했으나 일 년이 되어도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 이윽고 대어가 미끼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갑자기 솟구쳐 올라 지느러미를 치니 흰 파도가 산더미 같고 온 바다를 진동시키고 그 소리가 귀신 같아 천리가 두려움에 떨었다. 임공자는 이 물고기를 잡아 포를 떴는데 절강의 동쪽에서 창오의 북쪽까지 온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남았다. 任公子爲大鉤巨緇 五十개以爲餌 준乎會稽 投竿東海 旦旦而釣 期年不得魚 已而大魚食之 牽巨鉤 함沒以下 驚楊而奮기 白波若山 海水震蕩 聲모鬼神 憚赫千里 任公子得若魚 離而석之 自제河以東 蒼梧以北 莫不厭若魚者 - 外物 4 가 문학작품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부분이..

삶의나침반 2011.11.24

청원

천재 마술사로 인기를 누리던 이튼은 14년 전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방에서 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감옥 같은 생활을 한다. 그러나 라디오 DJ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유머를 잃지 않는다. 하지만 치료될 가망도 없이 계속되는 고통에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영원한 행복을 찾기 위해 법원에 안락사를 청원한다. 영화는 어디까지 안락사를 허용할 것인가, 라는 진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어떻게 죽느냐는 것이 어떻게 사느냐와 결부되어 있음을 영화는 일깨워준다. 영화 전편을 통해 흐르는 음악이 무척 감미로웠다. 특히 'What A Wonderful World'는 지금껏 내가 들었던 중 가장 아름다우면서 슬펐다. 어머니를 땅에 묻으며 이튼이 부르는 이 노래는 정말 가슴 뭉클했다. 가장 슬픈 순간에 부르는 ..

읽고본느낌 2011.11.23

용계리 은행나무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여러 면에서 특이한 나무다. 원래 이 나무는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으나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1990년 당시에 나무를 살리기 위해 23억 원이라는 거금을 쓰며 3년 간의 공사 끝에 15m 위로 나무를 들어 올리고 인공산을 쌓았다. 생명토 공법, H Beam 공법, 요철 공법 등의 신기술을 써서 나무를 살리는 대공사를 한 건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 한다. 이렇게 의미 있는 일에 우리의 건축 기술이 사용되었다는 게 나무 앞에 서면 더욱 뿌듯하게 느껴진다. 나무는 키가 37m, 줄기 둘레가 14.5m나 되는 거목이다. 국내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굵은 나무다. 나이는 700살 가량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선조 때 훈련대장을 지낸 탁순창(..

천년의나무 2011.11.22

고향에서 김장을 하다

고향에 내려가서 김장을 했다. 제사를 지내듯 매년 벌어지는 연례행사다. 함께 김장을 하며 한가족이라는 동질감을 확인하지만 힘들고 번거롭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는 이제 각자 알아서 하자는 쪽으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올해는 동생들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와 이모가 김장할 준비는 모두 갖춰 놓았다. 여든 내외의 두 분이 배추 100포기를 일주일에 걸쳐 준비하셨다. 이게 사람 사는 재미라지만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김장 행사는 올해로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힘들면서 돈도 더 든다. 요사이는 주문만 하면 절인 배추가 배달되는 편리한 세상이라고 아내는 강조한다. 이것 역시 변화하는 세상의 추세다. 약을 가져가지 못한 아내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 펑크가 날 정도로 한 차 가득 가을 짐이 실렸다...

사진속일상 2011.11.22

작명의 즐거움 / 이정록

콘돔을 대신할 우리말 공모에 애필(愛必)이 뽑혔지만 애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중 한글의 우수성을 맘껏 뽐낸 것들을 모아놓고 보니 삼가 존경심마저 든다 똘이옷, 고추주머니, 거시기장화, 밤꽃봉투, 남성용고무장갑, 정관수술사촌, 올챙이그물, 정충검문소, 방망이투명망토, 물안새, 그거, 고래옷, 육봉두루마기, 성인용풍선, 똘똘이하이바, 동굴탐사복, 꼬치카바, 꿀방망이장갑, 정자지우개, 버섯덮개, 거시기골무, 여따찍싸, 버섯랩, 올챙이수용소, 쭈쭈바껍데기, 솟아난열정내가막는다, 가운뎃다리작업복, 즐싸, 고무자꾸, 무골장군수영복, 액가두리, 정자감옥, 응응응장화, 찍하고나온놈이대갈박고기절해 아, 시 쓰는 사람도 작명의 즐거움으로 견디는 바 나는 한없이 거시기가 위축되는 것이었다 ..

시읽는기쁨 2011.11.19

부용대 소나무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은 옥연정사(玉淵精舍)를 짓고 주변에 소나무를 심었다. 그 기록이 선생이 쓴 '소나무를 심고[種松]'이라는 시로 남아 있다. 스무아흐렛날 자제들과 재승(齋僧) 몇 사람을 시켜서 능파대 서쪽에 소나무 삼사십 그루를 심었다. 내 일찍이 백낙천의 '소나무를 심고'란 시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나이 사십이 되어 몇 그루 어린나무를 심는가 인생 칠십은 옛부터 드물다는데 언제 나무가 자라 그늘을 볼 것인가' 하였다. 올해 내 나이 예순셋인데 새삼 나무를 심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떠오르는 감상을 재미삼아 몇 구절 시로서 옮겨본다. 북쪽 산 아래 흙을 파서 서쪽 바위 모퉁이에 소나무 심었네 흙은 삼태기에 차지 않고 나무 크기 한 자가 되지..

천년의나무 2011.11.18

옥연정사 소나무

옥연정사(玉淵精舍)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 선생께서 후년에 거처하신 가옥이다. 안동 풍천면 하회마을 낙동강 건너편 부용대 자락에 있다. 살림을 사는 집이 아닌 서애 선생만의 학문과 만남의 독립 공간이었다. 옥연정사는 1576년에 집짓기를 시작해서 10년 만에 완공되었는데, 집 지을 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을 때 탄홍(誕弘)이라는 스님이 도와주어서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1605년 낙동강 대홍수로 하회의 살림집을 잃고 이곳에 은거하며 징비록을 저술했다. 선생이 쓴 '옥연서당기(玉淵書堂記)'에 보면 집을 지은 당시의 선생의 소회가 드러나 있다. '사슴, 고라니 같은 내 천성은 산야에 삶이 알맞지 시정간에 살 사람이 아니었다. 중년에 망령되게도 벼슬길에 나아가 명예와 이욕을 다투는 ..

천년의나무 2011.11.18

멀리 있는 도서관에 가다

아내와 다투고 나면 집이 좁다. 이럴 때는 혼자 걷는 게 약이다. 그런데 오늘은 콧물에 재채기,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간다. 새로 생긴 풍물장도 구경하고 각설이 엿도 사 먹고 마침 산 아래에 도서관이 있다. 여자들은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푼다지만 나는 책 속에서 모든 걸 잊는다. 조용하고 진지한 공간에 들면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내 마음도 잔잔해진다. 오늘 같은 날은 가볍게 신문을 보고 바둑 잡지를 보고 사진책도 본다. 일회용 커피도 빼먹는다. 혼자 노는 게 재미있다. 휴게실 유리창 너머로 책 읽느라 정신없는 아이들이 보인다. 남자 하나에 여자 셋이 나란히 앉아 있다. 무슨 책일까? 뒤태가 귀엽다. 열람실에 들어갔다가 나와도 그 모습 그대로다. 그놈들 대견하다. 몰래 가까이 가 보니 헉, 만화책이다. 저 무..

사진속일상 2011.11.18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의 주천강 절벽 위에 있는 석불이다. 부처님은 둥글게 생긴 바위에 조각되어 있는데 바위 전체가 부처님의 몸통 같다.귀엽고 유머러스하다. 일부러 들어 올려놓았다 싶을 정도로 바위가 절벽 위에 묘하게 얹혀져 있다. 통통한 얼굴이 바위와 잘 어울리는 부처님이시다. 옆에는 작은 법당이라도 있을 법한데, 대신 무릉리의 요선계 계원들이 '요선정(邀僊亭)'을 세워 놓았다.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이 불상은 전체 높이가 3.5m에 이르는 고려시대의 마애불좌상인데, 암벽 위의 높은 부조로 불상을 새겼다. 살이 찌고 둥근 얼굴에 눈, 코, 입과 귀가 큼직큼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佛衣]은 두꺼워 신체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다. 상체에 비해 앉아 있는 하체의 무릎 폭..

사진속일상 2011.11.17

옥동리 소나무

이 멋진 소나무 두 그루는 영월군 김삿갓면 옥동리에 있다. 마을 앞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고, 들판을 지나 산 아래로는 옥동천이 흐른다. 소나무는 천과 들판을 가르는 제방에 서 있다. 아마 전에는 여러 그루의 소나무들이 천을 따라 함께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곳의 두 그루와 좀 떨어진 곳에 몇 그루의 소나무만 남아있다. 수령은140년 정도 되었고, 높이는 19m, 줄기 둘레는 1.8m다. 넓은 데에서 독야청청하니수치보다는 작아 보인다. 그래도 다행히 두 그루가 있으니 서로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마치 다정한 형제처럼 보인다. 소나무는 잘 생기기도 했지만확 트인주변 풍경이 소나무를 살려준다. 산, 강, 들판, 마을이 좋은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찾아간 날은 소나무 주변의 풀을 태우느라 ..

천년의나무 2011.11.16

트리 오브 라이프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영화다. 그래도 영화가 얘기하려는 것이 뭔지 뚜렷이 잡히지 않는다. 가족 간의 갈등과 치유를 다루는 것 같은데 우주적 차원으로 의미가 확대되어 난해해져 버렸다. 영화에 너무 많은 것을 담고 해석하려는 테렌스 맬릭 감독의 욕심이 지나친 것 같다. 단순한 걸 어렵게 그려내는 재주가 감독에게 있음이 틀림없다. 그래도 이런 영화가 좋다. 머리는 복잡하지만 긴 여운이 남는다. 오감으로 느껴지는 현실 너머의 깊은 신비의 세상이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특히 아름다운 영상 표현이 압권이다. 영화의 포스터는 영화에 나온 장면 70개가 모자이크 되어 있다. 영화는 초반부에 우주와 지구가 탄생하는 과정이 길게 나온다. 이 장면은 마치 장대한 과학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감독은 우주의 탄생과 ..

읽고본느낌 2011.11.15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을 걷다

십이령(十二嶺)길은 옛날에 울진과 내륙 지방을 연결하는 길이었다. 보부상들이 울진장이나 죽변장에서 해산물을 사서 봉화, 영주 등에서 파는 행상을 할 때 넘나들던 열두 고개를 말한다. 이 길은 보부상만이 아니라 지역주민이나 선비들도 이용했다. 지금은 금강소나무숲길이라고 부르고 그 일부가 현재 1구간(13.5km)으로 개통되어 있다. 나머지 2구간은 내년에 열릴 예정이다. 이 길 외에도 소광리를 출발점으로하는 금강소나무숲길 3구간이 만들어져 있고, 앞으로 5구간까지 준비되고 있다. 지난 12일에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을 걸었다. 전날저녁에 트레커 팀원들과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 있는 민박집에 도착해서 일박했다. 아침 9시, 집합장소에 걷기 예약을 한 4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간단한 안내와 주의사항을 듣고 두..

사진속일상 2011.11.14

시작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 바츨라프 하벨

일단 내가 시작해야 하리, 해보아야 하리. 여기서 지금, 바로 내가 있는 곳에서, 다른 어디서라면 일이 더 쉬웠을 거라고 자신에게 핑계 대지 않으면서, 장황한 연설이나 과장된 몸짓 없이, 다만 보다 더 지속적으로 나 자신의 내면에서 알고 있는 존재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어 살고자 한다면. 시작하자마자 나는 홀연히 알게 되리. 놀랍게도 내가 유일한 사람도 첫 사람도 혹은 가장 중요한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그 길을 떠난 사람 가운데에서 모두가 정말로 길을 잃을지 아닐지는 전적으로 내가 길을 잃을지 아닐지에 달렸다는 것을. - 시작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 바츨라프 하벨 홍세화 씨가 이 시를 인용하며 진보신당 당 대표에 출마하는 변을 밝혔다. 그분이 당 대표에까지 나서게 된 것이 의외이긴 하지만 작금의..

시읽는기쁨 2011.11.14

관리 왕버들

청송군 파천면 관리에 있는 이 왕버들에는 애틋한 전설이 전한다. 옛날, 마을에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처녀가 있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자 늙은 아버지에게 출병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처녀를 사모하던 옆 마을 총각이 늙은 아버지 대신 대리종군하겠다고 나섰다. 처녀는 고마운 마음에 돌아오면 혼례를 치르기로 하고 노인도 이를 허락했다. 총각은 떠나던 날 나무 한 그루를 심고 자신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바로 이 왕버들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전쟁이 끝나도 총각은 돌아나지 않았고 나무는 훌쩍 자라 있었다. 노인은 다른 남자와 혼인을 시키려 했으나 처녀는 자신을 위해 대신 죽은 총각을 잊지 못해 왕버들 가지에 목을 매고 목숨을 끊었다. 처녀가 죽은 뒤 왕버들 옆에 소나무 한 그루가 돋아났다. 동네 사람들..

천년의나무 2011.11.11

신기리 느티나무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300여 년 전에 안동장씨의 입향시조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마을의 당산목으로 정월 보름이면 동제를 지낸다. 또, 봄에 나뭇잎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한 해의 풍흉을 점친다고 한다. 나무는 키가 10m, 줄기 둘레가 8.4m인데 줄기는 많이 상해 있다.나무는 마을 입구 넓은 공터에서 잘 보호를 받고 있지만, 나무 주위로 전깃줄이 어지럽게 지나가고 있는 게 흠이다. 천연기념물 192호다.

천년의나무 2011.11.11

서울 등축제

바야흐로 축제의 나라가 되었다. 전국 방방곡곡에 축제 없는 곳이 없고, 열리지 않는 때도 없다. 그러다 보니 별의별 축제가 다 생겨났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아줌마축제'도 열린다. 그만큼 세상이 좋아졌고, 먹고살 만해졌다는 방증이 되는 걸까. 서울에도 얼마 전에 억새축제, 불꽃축제가 열리더니 이번에는 등축제가 시작되었다. 서울에 간 길에 저녁 시간에 맞추어 청계천에 찾아갔다. 사람들 너무 많았다. 밀려들어 가서는 조금 걷다가 밖으로 탈출했다. 지난번에는 김제를 지나다가 우연히 지평선 축제장을 지나게 되었다. 한참을 차에 갇혀 있다가 내려보지도 못하고 되돌아 나온 적이 있었다. 하긴 사람으로 북적대지 않으면 축제라고 할 수 없겠지. 그런데 온갖 축제가 다 생기는 세상이니 '조용한 축제'를 한 번 기획해 ..

사진속일상 2011.11.10

장자[185]

장자는 집이 가난했다. 어느 날 장자가 감하후에게 양식을 빌리려고 갔다. 감하후가 말했다. "좋소! 내 연말에 세금을 걷으면 삼백 금을 빌려주겠소. 이제 됐습니까?" 장자는 얼굴이 벌게지며 말했다. "내가 어제 여기로 오는 길에 나를 부르는 자가 있었소. 내가 뒤돌아보니 수레바퀴 웅덩이에 붕어가 있었소. 나는 물었소. '붕어야,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붕어가 말했소. '나는 동해의 파도를 담당하는 신하라오. 그대는 물 한 바가지를 끼얹어 나를 살려주지 않겠소?' 그래서 내가 답했소. '좋소. 내가 곧 오나라와 월나라 왕에게 유세하러 가려는데 그때 양쯔강의 물을 서쪽으로 흐르게 하여 그대를 맞이하겠소. 이제 됐습니까?' 그러자 붕어는 얼굴이 벌개지며 나에게 말했소. '나는 나의 상도를 잃고 의지할 ..

삶의나침반 2011.11.09

녹색세계사

클라이브 폰팅(Clive Ponting)이 지은 (A New Green History)는 인간 중심이 아니라 지구 환경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 책이다. 부제가 'The Environment and the Collapse of Great Civilisations'이듯이 인간이 만든 문명이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고 약탈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역사는 진보하고 발전한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관점을 지구로 돌리면 심각한 생태적 위기와 만난다. 인류 역사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점점 더 복잡하고 환경에 타격을 주는 방법을 써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과학 보고서라 할 정도로 정량적인 통계 자료를 제시하며 인간이 자연에 미친 영향을 꼼꼼하게 짚어간다. 약 1만 년 전 농경정착사회가 되면..

읽고본느낌 2011.11.08

오이도

"오이도행 열차가 도착합니다." '오이도'로 가는 전철을 4년 동안 타고 출퇴근했지만 정작 오이도에는 가보지 못했다. 어떤 장소는 차라리찾지 않아마음속에만 담아두는 게 나을 때가 있다. 오이도가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때는 임영조 시인의 '오이도'라는 시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마음속 성지는 변방에 있다 오늘같이 싸락눈 내리는 날은 싸락싸락 걸어서 유배 가고 싶은 곳 외투 깃 세우고 주머니에 손 넣고 건달처럼 어슬렁 잠입하고 싶은 곳 이미 낡아 색 바랜 시집 같은 섬 - 오이도행 열차가 도착합니다 나는 아직도 그 섬에 가본 적 없다 이마에 '오이도'라고 쓴 전철을 날마다 도중에 타고 내릴 뿐이다 끝내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묻어둔 여자 같은 오이도 문득 가보고 싶다, 그 섬에 가면..

사진속일상 2011.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