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 31

2011년을 보내며

2011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연말이 되면 흔히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쓰는데 바로 올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큰일들이 한 해에 집중된 인생 대변화의 때였다. 묘하게도 나이 끝이 아홉이 되는 해에는 쓰나미가 몰려온다. 10년의 주기 중에서도 올해의 진폭이 가장 컸다. 올초에 35년 직장 생활에서 떠났다. 정년까지는 4년 더 남았지만 명퇴를 택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잘한 선택이었다. 고백하건대 늘 사람과 접촉해야 하는 직업은 나에게 항상 무거운 짐이었다. 그 짐을 벗으니 날아갈 듯 가볍다. 퇴직 후 만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내 표정이 밝아졌다고 말한다. 퇴직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지만 기본 생활은 달라진 게 없다. 일에 충실하지 않은 게 도리어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제일 중요한..

길위의단상 2011.12.31

구월동 회화나무

이 나무가 있는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낮은 지역은 옛날에는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약 500년 전 이곳을 왕래하던 배에서 흘러들어온 씨앗이 자라 지금의 회화나무로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바다에서 왔다고 '해(海)나무'로 부른다. 회화나무는 작은 언덕에 있다. 전설대로라면 옛날에는 바다를 굽어보며 있었을 것이다.지금은 밭이지만 그때는 나무 주위에 동네가 있지 않았을까. 500년이라는 세월이 이곳을 어촌에서 농촌으로, 그리고 도시 지역으로 변모시켰다. 수령이 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이 회화나무는 높이가 30m, 줄기 둘레가 6m 정도 되는 크기다.

천년의나무 2011.12.26

장자[190]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수단이다. 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잊힌다. 덫은 토끼를 잡는 수단이다. 토끼를 잡으면 덫은 잊힌다. 말은 뜻을 전하기 위한 수단이다. 뜻을 전하면 말은 잊어버린다. 나는 어찌하면 이처럼 말을 잊어버린 사람을 만나 그와 더불어 말을 나눌 수 있을까?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 而與之言哉 - 外物 8 살아가자면 통발이 필요하고, 덫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물고기와 토끼를 잡는 일이지 통발이나 덫은 아니다. 맹목적으로 살다 보면 물고기나 토끼는 잊어버리고 통발과 덫에 집착하는어리석음에 빠진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며 헤매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바쁘기만 하다. 성탄절 아침이다. 내 고집과 미혹됨이 크다.

삶의나침반 2011.12.25

눈 내린 산길을 걷다

밤새 살짝 눈이 내렸다.셋이서 아차산과 용마산, 망우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걸었다. 적당히 싸늘한 날씨가 걷기에 좋았다. 스물세 번째 물우회 산행이었다. 망우리 공동묘지를 지나며 방정환 선생 묘소에 들렀다.묘비석 뒷면에 단 네 글자가 적힌 글귀가 간결했다. '동무들이' 세웠다는 뜻이다. 아침 9시 30분부터 산길을 4시간 가까이 걸었다.아차, 용마, 망우, 3개의 산을 지났다. 오랜만에 선배와 만나서 2차까지 하고 나오니길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외버스 유리창에 비친 불빛이 아늑했다.

사진속일상 2011.12.24

황홀한 국수 / 고영민

반죽을 누르면 국수틀에서 국수가 빠져나와 받쳐놓은 끓는 솥으로 가만히 들어가 국수가 익듯, 익은 국수를 커다란 소쿠리째 건져 철썩철썩,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내듯, 손 큰 내 어머니가 한 손씩 국수를 동그렇게 말아 그릇에 얌전하게 앉히고 뜨거운 국물을 붓듯, 고명을 얹듯, 쫄깃쫄깃, 말랑말랑 그 매끄러운 국숫발을 허기진 누군가가 후루룩 빨아들이듯, 이마에 젖은 땀을 문지르고 허, 감탄사를 연발하며 국물을 다 들이키고 나서는 빈 그릇을 가만히 내려놓은 검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듯, 살다 갔으면 좋겠다. - 황홀한 국수 / 고영민 시장 한구석, 허름한 국숫집을 찾아 한 끼를 때우는 고단한 사람의 굽은 등이 보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검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빈 그릇을 내려놓는다. 어떤 산해진미보다 ..

시읽는기쁨 2011.12.23

퇴직하고 나서 사람들을 만날 때면 십중팔구 이런 질문을 받는다. "무슨 일 하며 지내?" 어떤 사람은 맨 첫 마디에 묻기도 하는데, 대개는 이런 질문이 나오는데 늦어도 30초가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특별한 사람이 있기도 하다. 얼마 전에 만난 친구는 이렇게 물어 나를 놀라게 했다. "요사이는 무슨 책을 읽고 있어?" 사람들은 일을 거의 자신과 동일시한다. 일이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하는 일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한다. 문제는 일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것이라는 데 있다. 그저 일 속에 파묻혀 산다. 그런 사람에게 일은 진정한 삶으로부터의 도피밖에 되지 않는다. 퇴직 후의 취미생활도 마치 일하듯 전투적으로 한다. 그들은 고독한 시간이 두려운 것이다. 내면의 불안이 더욱 일로 내모..

참살이의꿈 2011.12.22

간석동 향나무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에 있는 이 향나무는 500년 전 어떤 장사가 우물에서 물을 떠먹고 말채찍을 꽂아 놓은 것이 자란 것이라고 전해진다. 드문 말채찍 전설이다. 장사가 심어서 그런지 나무는 크고 당당하다. 전체적인 맵시도 균형이 잡혀 있다. 키는 17.5m, 줄기 둘레는 3,5m이다. 이 향나무는 조선 중기의 학자였던 최립(崔笠, 1539-1612)의 집 마당에 있었다고 한다. 그가 남긴 '비 온 뒤'라는 시가 있다. 朝來風急雨몽몽 錦繡千林一半空 已作漫山秋色了 殘紅與泛碧溪中 - 雨後 / 崔笠 거센 바람 부는 아침 부슬비 내리더니 수놓은 비단 같던 수풀 절반을 비웠네 이미 온 산은 가을빛을 거두고서 남은 붉은 잎을 푸른 물에 띄우네

천년의나무 2011.12.21

2011년을 웃긴 말

어느 네티즌이 2011년의 망언 베스트 5를 선정했다. 역시 MB의 발언이 1위에 올랐다. 이에 사람들은 '도덕적이 아니라,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 '이명박 장로님, 방언 터지셨네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분들, 늘 우리를 즐겁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한편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엄이도종(俺耳盜鐘)'을 뽑았다. '엄이도종'은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비난이나 비판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소통 부족과 독단적인 정책 강행에 대한 비판의 사자성어다.

길위의단상 2011.12.21

행복한 평일 산행

평일에 홀로 여유롭게 산행을 하면서 퇴직의 행복감에 젖는다. 갇힌 방에서 탈출을 꿈꾸며 먼 산을 그리워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자유의 몸이 된 게 아직 믿기지 않는다. 늦게 일어나도 눈치 볼 일 없고, 가고 싶은 데 아무 때나 갈 수 있다. 도시의 러시아워도 나와는 무관하고,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된다. 주말이면 북적이는 산이지만 나와는 무관한 일, 평일의 조용한 길을 호젓하게 걸을 수 있다. 직장에서 애쓰는 동료들을 떠올리면 더욱 즐거운 일이 아닌가. 마치 정체로 꽉 막혀 있는 상행선 옆으로 뻥 뚫린 하행선을 달리는 기분이다. 어제는 검단산에 올랐다. 영하의 기온이었지만 바람 없고 맑았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서 유길준 묘를 지나는 왼쪽 능선길로 정상에 오른 뒤 현충탑을 지나는 길로 내려왔다..

사진속일상 2011.12.20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 제목에 끌려 이 책을 읽었다.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라는 독일인이 썼는데 잘 나가는 언론인이었다가 한순간에 실업자로 전락한 자신의 경험에서 깨우친 내용이 토대가 되어 있다. 경제적 고통 앞에서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의연하게 사는 방법을 모색한 결과다. 단순 소박한 삶의 가치를 강조하는 여느 책들과 비슷하지만, 관념적이 아닌 실제 생활 예가 많이 나온다. 가난을 궁핍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윤리적 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공감을 얻는 것은 저자 자신이 그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아함'과 '가난'은 서로 상충하는 개념인 것 같지만, 저자는 도리어 가난해야 우아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돈 없이도 부유한 인생을 사는 것은 가능한 일이고, 오히려 돈이 많을 때보다 더 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읽고본느낌 2011.12.19

장수동 은행나무

수령이 800년이나 되는 은행나무다. 인천시에 있는 나무 중에서는 최고령일 것이다. 생김새도 범상치 않다. 다섯 개의 줄기에서 수많은 가지가 뻗어져 나온 모습이 털북숭이 큰 짐승이 웅크려 있는 것 같다. 겨울이라서 나무의 진면목이 다 드러난다. 그러나 잎이 달린 계절이라면 또 다른 느낌일 것 같다. 나무 높이는 30m, 줄기 둘레는 8.6m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을 이곳은 지금은 옆으로 서울외곽순환도로의 고가차도가 지나가고 음식점도 많이 생겼다. 등산객들도 많이 지나다녀 북적인다. 나무 보호를 위해 이중으로 울타리를 세웠다. 그러나 나무줄기를 둘러싼 금속 울타리는 아쉽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이 음력 7월과 10월에 제물을 차리고 풍년과 무사태평을 기원하였고, 집안에 액운이 생기거나 돌림병이 돌면 이 나..

천년의나무 2011.12.17

장수동 느티나무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長壽洞)은 옛날에는 장자골, 무네미, 만의골의 세 마을이 있던 곳이다.그중에서 장자골은 마을을 지켰다는 여덟 명의 장사 전설로 생긴 이름이다. 임진왜란 이후 도둑이 날뛰었는데, 여덟 장사가 마을을 지켜 장자골은 안전했다고 전해진다. 이 느티나무에 잡은 도둑을 묶어두고 징벌을 가했다고 한다. 나무의 수령은 400년으로 추정되는데 높이는 9m, 줄기 둘레는 3.4m이다. 몇 군데 가지가 잘려나가 나무는 온전한 모양이 아니다. 나무 주위는 작은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천년의나무 2011.12.17

혜화경찰서에서 / 송경동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려 가니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왔다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청계천 탐엔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씨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한다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 했고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리곤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트럼펫이나 아코디온도 좋겠지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나를 평가해보겠다고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저 바닷..

시읽는기쁨 2011.12.16

물방울의 마술

수면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되튀어 나오는 모습을 순간 포착한 사진이다. 우산, 버섯, 사람, 토성, 왕관등 온갖 신기한 모양이 다 생긴다. 작은 물방울이 만드는 마술이라고 할 만하다. 카메라 렌즈는 사람의 눈이 잡지 못하는 짧은 순간을 보여준다. 기초적인 과학 원리와 기술을 이용하면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날아가는 총알을 정지시켜 찍기도 한다. 이 사진은 캐나다에 사는 코리 화이트(Corrie White, 63) 할머니가 찍었다. 우유에 원색의 물감을 섞어 색깔을 만들었고, 카메라와 마이크로 렌즈, 플래시의 기본 장비만 사용했다고 한다. 아마추어 작가지만 할머니는 프로보다 더 창의적인 방법으로 아름다운 사진을 만들었다.디지털 시대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예다. 만약 필름 카메라였다면많은 시행착오를..

읽고본느낌 2011.12.15

장자[189]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그대 말은 쓸모가 없다." 장자가 말했다. "그대가 무용을 안다니 비로소 유용을 더불어 말할 수 있겠네. 대저 지구는 넓고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사람이 사용하는 것은 발자국을 용납할 정도뿐이네. 그렇다고 쓰지 않는 발자국 주변의 땅을 황천까지 굴착해 버리면 사람들이 오히려 유용하다 하겠는가?" 혜자가 말했다. "무용하다고 하겠지." 장자가 말했다. "그런즉 무용한 것도 유용한 것이 분명하다네." 惠子謂莊子曰 子言無用 莊子曰 知無用 而始可與言用矣 夫地非不廣且大也 人之所用容足耳 厠足而塾之 致黃泉 人尙有用乎 惠子曰 無用 莊子曰 然則 無用之爲用也亦明矣 - 外物 7 무용지용(無用之用)을 말함에 이만큼 적절한 비유가 있을까. 걸어가는데 필요 없다고 발자국이 닫는 부분만 남기고 파낸..

삶의나침반 2011.12.14

한강 가톨릭회에서 천진암에 가다

한강 가톨릭회에서 천진암에 갔다. 그동안 등산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 천진암을 찾았지만 성지 순례로 함께 하기는 오랜만이었다. 천진암(天眞菴)은 일반적인 순교 성지와는 달리 한국 천주교가 태동한 의미 있는 장소다. 1700년대 후반에 광암 이벽(李檗)을 비롯한 학도들이 이곳에 모여 학문을 연마했다. 그중에는 서학(西學)이 포함되어 있었고, 중국에 들어왔던 천주교 교리도 자연스레 접할 수 있었다. 그것이 자생적인 신앙 단체로 발전했고 한국 천주교의 모태가 되었다. 당시 10대였던 정약용(丁若鏞) 선생도 이곳에서 공부했고, 이때 천주교를 처음 접했다. 함께 했던 사람들이 권철신, 이승훈, 정약전, 정약종, 권상학 등이다. 이들은 천진암 공동체에서 실학 연구와 강의 외에 천주학 연구, 공동 신앙생활 실천,..

사진속일상 2011.12.13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쉬는 나라

얼마 전에 OECD 가입국의 연평균 노동시간 통계를 보았다. OECD 평균은 1,768시간인데 우리나라는 2,316시간으로 1등을 차지했다. 주요국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다음과 같다. 네덜란드 1,392 시간 노르웨이 1,417 시간 독 일 1,433 시간 프 랑 스 1,533 시간 일 본 1,785 시간 미 국 1,794 시간 헝 가 리 1,966 시간 한 국 2,316 시간 한국은 OECD 평균보다 1년에 무려 528시간을 더 일하고 있다. 하루 8시간 노동을 한다고 가정하면 68.5일을 더 일하는 셈이다. 가장 적게 일하는 네덜란드와 비교하면 거의 1,000시간 가까이 더 일한다. 매일 3시간 정도씩 더 일한다는 얘기다. 이는 하루 평균 수면시간으로도 나타난다. 이 역시 한국의 수면시간이 가장 짧다...

참살이의꿈 2011.12.12

능금 / 김환식

골목시장 앞 날마다 횡단보도를 지키는 할머니의 좌판에서 능금 한 봉지를 샀다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하나를 꺼내 한 입을 베어 문 것뿐인데 갈라진 씨방 속에는 벌레 한 쌍이 신방을 차려놓았다 엄동설한에 어렵게 얻은 셋방일 터인데 먹고 사는 일에 눈이 멀어버린 나는 남의 속사정도 모르는 불청객처럼 단란한 신방 하나를 훼손해 버렸다 - 능금 / 김환식 시인의 마음씨가 따스하다. 사과 대신 능금이라고 한 것도 정겹다. 지금은 능금이라는 말을 거의 안 쓰지만 어릴 때는 사과가 아니라 능금이라고 불렀다. 시인은 굳이 시장 앞 할머니의 좌판에서 능금을 산다. 흠집이 있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일 게다. 한 입을 베어 무는데 속에서 벌레가 나온다. 뭐, 이런 사과를 팔았나,원망하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

시읽는기쁨 2011.12.11

홀가분하다

석 달 간격으로 두 딸을 시집보냈다. 연초의 상견례를 시작으로 올 한 해는 자식 결혼시키느라 바빴다. 힘들었어도 경사를 두 건이나 연이어 치렀으니 복 받았다 할 수 있다. 나이가 찬 자식을 아직 데리고 있는 사람들은 일찍 혼사를 끝낸 우리를 부러워한다. 큰일을 치르고 나니 기분이 홀가분하다. 둘 다 연애로 자기 좋아하는 짝을 찾아갔으니 서운한 게 덜 한 편이다. 잠시라도 떨어질세라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니 도리어 질투가 날 정도다. 그래도 엄마 마음은 다른 것 같다. 아내는 상당 기간 잠 못 들고 슬퍼하고 있다. 딸의 빈방에서 나올 때 눈가가 빨개진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 되겠지, 앞으로 아이들이 잘사는 모습을 보면 아내의 우울도 잦아들 것이다. 둘째가 신혼여행 뒤 집에 찾아와 인사하..

길위의단상 2011.12.10

장자[188]

작은 지혜를 버리면 큰 지혜가 밝아지고 선을 버리면 저절로 선해진다. 영아가 나면서부터 훌륭한 선생이 없어도 능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말을 잘 하는 자와 같이 살기 때문이다. 去小知而大知明 去善而自善矣 영兒生無石師 而能言 與能言者處也 - 外物 6 앞부분에는 이런 예화가 나온다. 어느 날 송나라 원군의 꿈에 신령스런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어부에게 잡혔다고 하소연했다. 원군이 어부를 불러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원군은 그 거북을 바치게 하고 거북을 죽여 거북점을 치게 했다. 거북은 창자가 도려내지고 몸은 일흔두 군데나 구멍이 뚫렸다. 거북은 능히 원군에게 현몽할 재주가 있었지만 창자가 도려내지는 환난은 피할 수 없었음을 장자는 한탄한다. '작은 지혜를 버리면 큰 지혜가 밝아지고, 선을 버리면 저절로 ..

삶의나침반 2011.12.09

순흥면사무소 느티나무

영주시에 있는 순흥면사무소는 옛 순흥도호부가 있던 자리다. 사무소 주변의 왕버들, 느티나무 고목들이 옛날의 자취를 말해준다. 봉도각(逢島閣)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정원은 도호부 청사의 뒤뜰이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갈 때 순흥을 지나면서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이 느티나무는 도호부 옛터에 있는 여러 고목 중 하나다. 수령이 400년인데 줄기에 공동이 생겨 밑바닥까지 깊이 패 있다. 아이들이 들어가 놀 수 있을 만한 넓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모양새는 무척 단아하다. 마치 옛 선비의 정갈한 마음 자세를 보는 듯하다.

천년의나무 2011.12.08

70억

지난달부터 세계 인구가 70억 시대에 접어들었다. 내가 태어날 때만 해도 30억이 안 되었는데 그동안에 세 배 가까이나 늘어났다. 폭발적인 증가다. 자료를 찾아보니 10억 단위로 인구가늘어난 해는 이렇다. 10억 1805년 20억 1927년 30억 1959년 40억 1974년 50억 1987년 60억 1999년 70억 2011년 세계 인구가 10억 명에서 20억 명으로 되는 데 122년이나 걸렸지만, 그 뒤부터는 주기가 점점 짧아져 지금은 12년마다 10억 명씩 늘어나는 엄청난 속도다. 학자들은 지구 인구가 금세기 중반이 지나면100억 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한다.이 정도면 식량이나 에너지에 문제가 생길 때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환경과 자원의 관점에서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 인구는..

길위의단상 2011.12.07

그냥 살면 됩니다

법륜 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100회 연속 강연이 오늘 저녁 강동구민회관을 끝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10월 17일부터 전국을 돌며 거의 매일 두 개씩의 강연이 이어진 강행군이었다. 스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싶었는데 결국은 함께 하질 못했다.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은 것에 만족한다. 스님은 사람들의 고민 해결사면서 뛰어난 카운슬러다. 강연 뒤에 사람들의 고민에 대해 답을 해주는 '즉문즉설(卽問卽說)'이 재미있다. 명쾌하면서 핵심을 찌르는 대답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심금에 파고든다. 마음의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불교적 관점에서 설명해 주신다. 어느 강연에서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 질문:오빠는 제가 14살 되던 때에 자살을 했습니다. 그 후 부모님이 그래..

참살이의꿈 2011.12.06

아침 햇살

거실에 아침 햇살이 환하다. 햇살이 들어온 깊이를 보니 지난 시간의 흐름이 실감 난다. 올해는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제를 끝으로 큰 일들이 마무리되었다. 인생의 한 고비가 지나간 셈이다. 북적이던 집안도 조용해졌다. 이젠 휴식이 필요한 때, 마침 겨울이 잘 찾아왔다. 당장은, 좀더 자주 걷고 불어난 몸무게도 원래대로 되돌려야겠다. 아침 햇살이 오늘따라 더욱 밝고 따스하다.

사진속일상 2011.12.05

다육이(1)

집에서 기르는 다육이 중 하나에 꽃이 피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잎에 털이 보송보송, 애기의 솜털처럼 귀여운 다육이다. 다육이 중에서 제일 건강하게 자라더니 드디어 꽃을 환하게 피웠다. 꽃봉오리가 맺힐 때부터 언제 꽃이 피려나, 학수고대했다. 꽃의 색깔 또한 발그레한 애기 피부처럼 곱다. 얘야, 너는 꽃보다 더 예쁘다. 아름답고 고운 색깔과 향기로 네 주변을 미소 짓게 하렴.....

꽃들의향기 2011.12.03

사랑 / 고은

사랑이 뭐냐고 문기초등학교 아이가 물었다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궁한 나머지 지나가는 새 바라보며 얼버무렸다 네가 커서 할일이란다 돌아서서 후회막급 사랑할 때밖에는 삶이 아니란다라고 왜 대답하지 못했던가 그 아이의 어른은 내일이 이미 오늘인 것을 왜 몰랐던가 저녁 한천가 한 사내의 낚시줄에 걸려버린 참붕어의 절망이 내 절망인 것을 왜 몰랐던가 사랑이 뭐냐고 물었을 때 - 사랑 / 고은 '사랑할 때밖에는 삶이 아니란다'라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두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게 사랑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보살피는 것도 사랑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사랑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사랑이란 '공감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타자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고, 슬픔..

시읽는기쁨 2011.12.02

보라동 느티나무

지난달 가을이 짙어갈 때 이 느티나무를 만났다.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다. 기묘사화 때 조광보(趙光輔)가 심었다고 하니 수령은 500년이 되었다. 안내문에는 400년으로 나와 있는데, 조광보가 심었던 후손 느티나무쯤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옛날에 이 자리는 양반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논하던 정자가 있지 않았을까, 추정을 해 본다. 나무 주변에는 공원을 아담하게 꾸며 놓았다.의자와운동기구도 있어 나무와 함께 하는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 나무의 생육 상태도 좋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또 다른 느티나무가 있다. 이 나무에는 더 오랜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이 건국할 때 마을에 돌림병이 돌았는데 이태조의 부마 양경공의 꿈에 한 고승이 나타나 마을을 지킬 수호목을 찾아 심으라고 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

천년의나무 2011.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