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 34

웃음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쓰는 이순구 화백의 그림이다. 덕분에 컴퓨터를 켤 때마다 활짝 웃는 소년의 웃음에 미소 짓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웃음을 잃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어떤 조사로는 하루에 어른들이 웃는 횟수는 어린이의 30분의 1이라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거리의 무표정한 얼굴들이 바로 내 모습이다. 저렇게 환하게 웃어본 게 언제인가 싶다. 웃는 근육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순수한 마음에서 해맑은 웃음이 나온다. 마음이 굳었으니 표정도 딱딱하다. 늙으면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는데 그 말을 믿어볼까? 파안대소하며 호탕하게 웃어보고 싶다.그 많던 웃음은 다 어디로 갔는가? 요사이는 웃음 치료도 있는 모양이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가.

길위의단상 2012.05.31

장자[208]

이른바 네가지 근심이란 큰일을 경륜한다고 큰소리치고 쉽고 평상적인 것을 변경하여 공명을 드러내려 하는 것을 '외람됨'이라 한다. 지혜를 믿고 일을 전단하며 남을 무시하고 자기만 이롭게 하는 것을 '탐욕'이라 한다. 잘못을 보고도 고치지 않고 충고를 듣고도 억지를 부리는 것을 '똥고집'이라 한다. 남이 자기에 동조하면 옳다 하고 제 뜻과 다르면 옳은 것도 그르다 한다. 이것을 '교만'이라 한다. 이것이 네 가지 근심이다. 이러한 팔자를 버리고 사환을 행하지 않아야 비로소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所謂四患者 好經大事 變更易常以괘功名 謂之도 專知단事 侵人自用謂之貪 見過不更 聞諫愈心謂之흔 人同於己則可 不同於己雖善不善 謂之矜 此四患也 能去八疵無行四患 而始可敎已 - 漁父 1 이 편은 공자가 어부를 만나 도를 묻는 ..

삶의나침반 2012.05.30

산앵두꽃

산앵두나무는 앵두나무와 이름이 닮아서 형제간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다른 종이다. 산앵두는 진달래과이고 앵두는 장미과에 속한다. 응복산을 힘들게 오르는 길에서 꽃이 핀 산앵두나무를 자주 만났다.높은 산에서 자라는 산앵두는 쉽게 보기 어려운 꽃이다. 산앵두꽃은 종 모양으로 생겼다. 색깔은 흰색 바탕에 옅은 분홍색을 띠고 있다. 앵두꽃과도 전혀 닮지 않았다. 아마 가을에 열리는 열매가 앵두와 비슷하여 산앵두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러나 붉은색의 산앵두 열매는 앵두와 달리 맛이 없다고 한다. 다음에는 열매 맛도 직접 느껴보고 싶다.

꽃들의향기 2012.05.29

법수치계곡과 응복산

지난 26, 27일에 걸쳐 강원도 양양에 있는 법수치계곡과 응복산(應伏山, 1360m)을 찾았다. 트레커 팀 일곱 명과 함께였다. 법수치계곡은 남대천의 최상류 지역이다. 오대산 북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이곳을 지나 동해로 흘러간다. 계곡 맨 끝에 있는 민박집에 짐을 풀고 오후 시간은 계곡에서 보냈다. 계곡 바닥에는 다슬기가 많았다. 한 일본인이 홀로 플라이 낚시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국의 깊은 오지까지 찾아온 그의 마음이 궁금했다. 다음 날의 응복산 산행은 너무 힘들었다. 합수골에서부터 오르기 시작했는데 등산로가 없어 길을 내면서 가야 하는 개척산행이었다. 길은 가파른데 나뭇가지를 헤치며 나가자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난생 처음 경험한 산행길이었다. 산에 들면 산의 기운이 느껴지는 법이다..

사진속일상 2012.05.29

이모에게 가는 길 / 양애경

미금 농협 앞에서 버스를 내려 작은 육교를 건너면 직업병으로 시달리다가 공원도 공장주도 던져 버린 흉물 공장 창마다 검게 구멍이 뚫린 원진 레이온 건물이 나올 것이다 그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젊은 버스 기사와 야한 차림의 10대 아가씨의 푹 익은 대화를 들으며 종점까지 시골길 골목을 가야 한다 거기서 내려 세 집을 건너가면 옛날엔 대갓집이었다는 낡은 한옥이 나오고 문간에서 팔순이 된 이모가 반겨줄 것이다 전에는 청량리역까지 마중을 나왔고 몇 달 전에는 종점까지 마중을 나왔지만 이제 이모는 다리가 아파 문간까지밖에 못 나오실 것이다 아이고 내 새끼 라고 이모는 말하고 싶겠지만 이제 푹 삭은 나이가 된 조카가 싫어할까봐 아이고 교수님 바쁜데 왠일일까 라고 하실 것이다 사실 언제나 바쁠 것 하나 없는데다가 ..

시읽는기쁨 2012.05.28

송광사 전나무

완주 송광사(松廣寺) 대웅전 앞에 키다리 전나무가 있다. 경내에서는 첫눈에 들어오는 나무다. 가끔 절에서 전나무를 보게 되는데 불교와 전나무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 전나무도절의 중심 자리에 일부러 심고 가꾼 것이리라. 어느 학승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祖師西來意] 조주선사가 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子] '柏樹'를 측백나무로 보는 사람도 있다. 잣나무든 측백나무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조주선사의 이 유명한 선문답을 상기하는 것이라면 절에서 이런 나무를 만날들 이상할 게 없다.전나무도 외견상 잣이나 측백나무와 비슷하다. 전나무는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곧게 뻗어 자란다.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수행자의 모습이다. 이런 곧게 자라..

천년의나무 2012.05.25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

은 현경 선생(유니언 신학대학 교수)이 이슬람 국가 17개국을 일 년 동안 다니며 무슬림을 만나 대화를 나눈 순례기다. 2001년의 9. 11 사건에 충격을 받은 지은이는 이슬람의 이해와 종교간 평화를 위해서 이슬람 국가를 찾는다. 서구의 시각이 아닌 아랍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서였다. 9. 11 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퍼부었다. 종교간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던 현경은 이런 사태를 관망만 할 수는 없었다.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서방세계 사이에 평화를 다리를 높고 싶었던 선생은 두 가지의 질문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 "이슬람이 원하는 평화는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고 "이슬람 여성들이 삶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였다. 선생은 12..

읽고본느낌 2012.05.21

산길에서 만난 제비꽃 다섯 종류

산길을 걷다가 만난 제비꽃이다. 다섯 종류인데 이름을 모르는 게 더 많다. 집에 와서 도감을 찾아봐도 확인이 어렵다. 제비꽃은 우리나라에만 50종이 넘게 있다니 제대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일이다. 얘는 고깔제비꽃이라고 해야 겠다. 그러나 꽃이 작은 걸로 보아 콩제비꽃일지도 모르겠다. 남산제비꽃이다. 잎 모양 때문에 가장 구별하기 쉬운 제비꽃이다. 잎이 하트 모양으로 생겼다. 이름 미상. 역시 이름 미상. 얘는 길고 넓은 잎이 특징이다. 제비꽃 잎의 서너 배는 된다. 잎만 과잉 발달한 건가? 최근에 꽃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야생화 애호가 한 분이 이라는 책을 냈다. 20년 가까이 제비꽃을 찾아 전국의 산과 들을 누볐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제비꽃을 찾아 전국의 산과 들을 다닐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꽃들의향기 2012.05.21

장자[207]

왕이 말했다. "오늘 검사들로 하여금 그대 검의 날카로움을 시험하겠다." 장자가 말했다. "기다린 지 오랩니다." 왕이 물었다. "그대는 긴 칼과 짧은 칼 중 어느 것을 잡을 것인가?" 장자가 답했다. "신이 잡을 칼은 어느 것이든지 좋습니다. 그런데 신에게는 세 가지 검이 있는데 대왕께서 골라 쓰는 데로 따르겠습니다. 청컨대 먼저 세 가지 검에 대해 말하고 그다음에 시험하게 해주십시오." 왕이 말했다. "세 가지 검에 대해 듣고 싶구나!" 王曰 今日試使士敦劍 莊子曰 望之久矣 王曰 夫子所御杖長短何如 曰 臣之所奉皆可 然臣有三劍 唯王所用 請先言 而後試 王曰 願聞三劍 - 說劍 '설검' 편의 우화도 길고 산만하며 격이 낮다. 를 읽는 박력이 떨어진다. 칼을 찬 검사 복장의 장자가 왕 앞에서 유세하는 장면도 낯설..

삶의나침반 2012.05.20

독립공원 미루나무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독립공원은 옛 서대문형무소 자리에 있다. 형무소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한쪽 구석에는 담으로 둘러싸인 사형장도 있다. 사형장 입구에는 사형장을 만들 때 심었다는 미루나무가 있어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불린다.일본 강점기 때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생의 마지막으로 이 나무 아래를 지나며 피눈물을 뿌렸을 것이다. 이곳은 1980년대까지 사형이 집행되었던 슬픔의 장소다. 안내문에는 미루나무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이곳의 미루나무는 1923년 사형장 건립 당시 식재되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순국선열들이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한(恨)을 눈물로써 토해낼 때 붙들고 통곡했던 것으로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이름 지어졌다. 또한 사형장 안에 있는 또 한 ..

천년의나무 2012.05.19

[펌] 광주의 정신

얼굴은 본적이 없지만 이따금 이메일을 교환하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얼마 전에 광주항쟁에 대해 잘 모르니 알 수 있는 책이나 사이트를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좀 의외였습니다. 그는 요즘치곤 꽤 반듯한 사회의식을 갖고 있는 대학생인데 어떻게 광주를 모를까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했습니다. 지금 대학생이면 1980년엔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어린아이였으니 말입니다. 당시 고3이었고 청년 시절 내내 광주를 품고 살았던 저희 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저와 비슷한 세대이면서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사태”라고 할 때는 “사태”인 줄 알고 “항쟁”이라고 하니 “항쟁”인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무..

길위의단상 2012.05.18

동그란 길로 가다 / 박노해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일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 동그란 길로 가다 / 박노해 진보 정당이 시끄럽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더니 요사이가 꼭 그 꼴이다. '통합'의 간판을 내건 지 몇 달도 안 되었다. 너무 잘 난 사람이 많아서인가, 자신의 길만이 옳다는 독단에서 벗..

시읽는기쁨 2012.05.18

탄천 산책

분당에 간 길에 두 시간 정도 탄천을 산책했다. 오리역에서 이매역까지 천을 따라 내려가며 걸었다. 탄천(炭川)은 이름값을 하려는 건지 물이 너무 탁했다. 상류 쪽에 있는 안내문에는 오염이 아니라 철 성분이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냄새도 심하고 부유물도 많았다. 특이한 점은 잉어가 무척 많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물을 맑게 하는 게 우선인 것 같다. 탄천 주변은 시민의 운동과 휴식처로 예쁘게 꾸며 놓았다. 천을 따라 조성된 녹지가 건물들과도 잘어울렸다. 도시를 걸으며 아름답다는 감정을 오랜만에 느껴 보았다. 이런 녹지축이 사방팔방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훨씬 더 살 만한 도시로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 마음도 여유롭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한 도시를 상상해 본다. 인구는 10만을 넘지 ..

사진속일상 2012.05.17

야곱 신부의 편지

짧고 간결하지만 울림이 큰 영화다. 상영시간이 70분 정도고, 등장인물도 고작 세 사람(야곱 신부, 레일라, 우체부)이다. 그러나 영화는 인간의 외로움, 연약함, 용서, 소통,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레일라는 어릴 때 엄마의 폭력에 시달렸다. 어린 그녀를 구해 준 것은 언니였다. 언니는 작은 몸으로 엄마를 막으며 동생을 보호했다. 그런데 결혼한 언니는 남편에 의한 가정 폭력의 희생자였다.어느 날언니의 집을 찾아갔을 때 형부가 언니를 폭행하는 장면을 보고 분을 이기지 못한 레일라는 형부를 죽였다. 그녀는 죄책감에 언니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 종신 복역 중 사면을 받고 출소한 레일라는 눈이 보이지 않는 야곱 신부에게 보내져 신부에게 오는 편지를 읽어주고 답장을 대필해 주..

읽고본느낌 2012.05.16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경향신문사와 '고래가 그랬어' 교육연구소에서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를 내놓았다. 교육 문제의 해법은 먼저 어른들의 반성에서 시작해야 한다. 어제는 서울시 교육청과 서울시에서 공동으로 '서울교육 희망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런 구호와 선언이 많다는 건 교육이 병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삶의 즐거움과 배움의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그 반대다. 경쟁과 출세가 아니라 인간 행복의 관점에서 교육 시스템을 다시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참살이의꿈 2012.05.15

마로니에꽃

지금 마로니에꽃이 한창이다. 마로니에는 우리말로 칠엽수(七葉樹)다. 이 나무의 특징은 큰 잎 일곱 장이 부챗살처럼 달려 있다. 꽃도 특이하다. 탑 모양의 꽃대에 작은 꽃 수백 송이가 매달려 있다. 노랑과 분홍의 꽃 색깔이 화려하다. 나무 키가 크고 꽃도 높이 달려 있어 가까이서 보기는 어렵다. 이즈음에 주의해 살펴야 꽃을 볼 수 있다. 아마 나이가 든 세대라면 마로니에꽃을 보고 이 노래가 흥얼거려질지 모른다. '루루 루루 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얼굴....'

꽃들의향기 2012.05.14

노림리 느티나무

원주시 부론면 노림리에 있는 느티나무다. 노림(魯林)은 이름으로 볼 때 숲과 관계된 지명으로 보인다.그래선지 오래된 나무들이 자주 눈에 띈다. 현재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하나는 도로 옆에, 다른 하나는 도로 가운데에 있다. 나무를 가운데 두고 양 방향의 도로가 지나간다. 둘 다 수령은 200년 가량 되었다. 옛날에는 꽤 큰 마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곳은 남한강과 그 지류인 섬강을 옆에 끼고 있다.강둑을 따라 자전거 길이 휑하니 뚫려 있다. 최근 4대강 사업을 하면서 만들었다.넓은 공원에도 사람을 보기 어렵다. 나무라도 많이 심는다면 썰렁한 풍경이 좀 가려지기나 할까?

천년의나무 2012.05.12

장자[206]

고르게 나누면 복이 되고 남아돌면 해가 되는 것은 만물이 그렇지 않은 것이 없지만 재물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지금 부자가 귀는 좋은 음악을 듣고 입은 주지육림에 진력이 나고 사념에 감동하고 학업을 잊어버린다면 어지럽다 할 것이다. 날뛰는 기운대로 목구멍에 차도록 탐닉한다면 무거운 짐을 지고 산에 오르는 것과 같으리니 가히 고통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재물을 탐하여 우울증을 얻고 권력을 탐하여 갈증을 얻으며 거처가 편안하니 색을 탐닉하고 몸이 윤택할수록 속은 텅 빈 집이 된다면 가히 괴로운 일이라 할 것이다. 부자가 되려고 이(利)를 좇기만 한다면 가득 차서 담장에 갇힐 것이며 피할 줄 모르고 또 달리기를 그칠 줄 모른다면 가히 욕된 일이라 할 것이다. 재물이 쌓여 쓸데없는 것을 가슴에 품고 버리지 못..

삶의나침반 2012.05.11

지금 여기 / 심보선

나는 우연히 삶을 방문했다 죽으면 나는 개의 형제로 돌아갈 것이다 영혼도 양심도 없이 짖기를 멈추고 딱딱하게 굳은 네발짐승의 곁으로 그러나 나는 지금 여기 인간 형제들과 함께 있다 기분 좋은 일은 수천수만 개의 따뜻한 맨발들로 이루어진 삶이라는 두꺼운 책을 읽을 때에 나의 눈동자에 쿵쿵쿵 혈색 선명한 발자국들이 찍힌다는 사실 나는 왔다 태어나기 전부터 들려온 기침 소리와 기타 소리를 따라 환한 오후에 심장을 별처럼 달고 다닌다는 인간에게로,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질문을 던져보자 두 개의 심장을 최단거리로 잇는 것은? 직선? 아니다! 인간과 인간은 도리 없이 도리 없이 끌어안는다 사랑의 수학은 아르키메데스의 점을 우주에서 배꼽으로 옮겨온다 한 가슴에 두 개의 심장을 잉태한다 두 개의 별로 광활한 별자리를 짓..

시읽는기쁨 2012.05.11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가 쓴 책 제목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것도 같은데 내용은기억나지 않는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책 제목이 모든 걸 말해주기 때문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는 시니컬한 웃음 하나면 충분하다. 세상은 바보들 천지다. 주변을 돌아보라. 자신이 바보인 줄도 모르는 진짜 바보들이 아주 많다. 그런 바보들 속에서 나 역시 같은 바보짓을 하며 살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미쳐 돌지 않을 도리가 없을 텐데,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걸 보니 나도 바보임이 분명하다. 바보들 세상에서는 거꾸로 된 바보처럼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바보 XXX' 하며 '바보'라는 이름을 자랑스레 붙이는 사람들도 있다. 바보에도 급이 있다. 재미있는 세상이다. 오..

길위의단상 2012.05.10

법천사지 느티나무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에 법천사지가 있다. 법천사(法泉寺)는 고려 중기 법상종(法相宗)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다. 무신정권 이전까지는 지방 문벌 귀족의 후원을 받으며 번창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후 지금까지 폐사로 남아 있다. 폐사지를 느티나무 한 그루가 묵묵히 지키고 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괴목이다. 특히 줄기가 특이한데 사람이 드나들 정도로 큰 구멍이 뚫려 있다. 그런데도 잎을 보면 수세가 왕성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던 촌로께서 잎이 이렇게 무성하니 풍년이 들 모양이라고 혼잣말을 하신다. 수령이 얼마쯤 되었느냐니까 잘 모르겠단다. 500년은 넘어 보인다고 하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 정도의 나무라면 보호수로 지정되었을 만한데 나무에 대한 설명이 없어 ..

천년의나무 2012.05.09

몸에 밴 어린 시절

우리는 모두가 한때 어린이였다. 어린 시절은 지나갔으나 그때의 흔적은 지금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살아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내재과거아(內在過去兒, Inner child of the past)'란 개념이다. 내재과거아란 어른이 된 지금도 우리의 삶 안에 그대로 남아서 지속되고 있는, 우리가 과거에 겪어온 어린이의 모습이다. 이 책을 쓴 미실다인(W. H. Missildine)은 정신과 의사로 어린이 정신 건강 센터의 책임자로 일하다가 성인의 정신적인 문제에 어린 시절의 경험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어릴 때 가정에서 부모와의 온전하지 못한 관계 때문에 어른이 되어 외로움, 불안, 성적 장애, 우울증, 부부 사이의 불화,..

읽고본느낌 2012.05.09

휴천동 느티나무

영주에 있는 옛 중학교 모교를 찾아갔다. 졸업한 지 40년도 더 지났는데 다시 찾은 지도 30년은 되는 것 같다. 학교나 주변이나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그때는 낮은 집들이 듬성듬성 있어 멀리서도 학교 건물이 보였는데 지금은 온통 아파트와 주택으로 둘러싸여 코앞까지 갔어도 학교 위치를 알아내지 못했다. 학교도 완전히 변해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흔적은 어디에고 없었다. 세월의 무상함을 곱씹으며 멀거니 바라보다 돌아섰다. 그때 반가운 이 나무를 보았다. 어렴풋이 옛 생각이 떠올랐다. 이 느티나무는 학교 밖에 있었는데, 학교에서 이 산으로 넘어가는 고개 입구에있었다. 등하교할 때몇몇 친구는이 느티나무 옆을 지나 집과 학교를 오갔다. 그중에 가까웠던 친구 N도 있었다. 종례를 마치면 티격태격 장난치면서 운..

천년의나무 2012.05.08

고추 심기

고향에 내려가 고추 심는 어머니 일을 거들었다. 어머니가 미리 골을 내어 비닐을 씌어놓았기에 고추를 심고 지주를 세우는 일만 하면 되었다. 올해는 고추모 800포기를 심었는데 해마다 양이 조금씩 줄어든다. 어머니가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 점점 약해지는 탓이다. 한창 많았을 때는 2,000포기 가까이 키웠다. 어머니가 농작물을 가꾸는 정성은 자식을 기르는 이상이다. 마을의 이웃들도 감탄할 정도다. 홀로 되셔서 삶의 낙을 농사일에 붙이셨다. 작물 가꾸는 게 자식 키우는 것과 똑같다고 말씀하신다. 힘이 들어도 얘들이 자라는 걸 보면 보람이 있고 재미있다신다. 또 정성이 그만큼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놀아도 밭에 나와 놀아야 한다며 하루도 밭 출입을 거르는 일이 없다. 어머니가 고추모를 만지는 모습을 ..

사진속일상 2012.05.08

귀룽나무꽃

귀룽나무에 꽃이 피면 나무 전체가하얀 꽃다발로 변한다. 면사포를 쓴5월의 신부처럼 이때가 가장 아름다운 한 시절이다. 요사이 밖에 나가면 금방 눈에 띈다. 귀룽나무의 특징이 드러날 때는 이른 봄에도 있다. 다른 나무들은 아직 새잎을 내지 않은 때, 귀룽나무가 제일 먼저 초록의 잎을 피운다. 말 그대로 독야청청이다. 귀룽나무는 한자로는 구룡목(九龍木)이다. 물가를 좋아하는데 자라면 덩치가 상당히 큰 편이다. 나에게는 북한산 등산로에 있는 귀룽나무가 제일 기억에 남아 있다. 뭇 나무들에 비해 자태가 압도적이었다. 꽃 필 때 찾아가 본다 했는데 올봄도 어느덧 지나가 버리고 있다.

꽃들의향기 2012.05.04

화엄 세계 읽다 / 김정원

초가집 그을음 새까만 설거지통 옆에는 항시 큰항아리 하나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설거지 끝낸 물 죄다 항아리에 쏟아 부었다 하룻밤 잠재운 뒤 맑게 우러난 물은 하수구에 흘려보내고 텁텁하게 가라앉은 음식물 찌꺼기는 돼지에게 주었다 가끔은 닭과 쥐와 도둑고양이가 몰래 훔쳐 먹기도 하였다 하찮은 모음이 거룩한 살림이었다 어머니는 뜨거운 물도 곧장 항아리에 쏟아 부었다 그냥 하수구에 쏟아 붓는 일은 없었다 반드시 하룻밤 열 내린 뒤 다시 만나자는 듯 곱게 온 곳으로 돌려 보냈다 하수구와 도랑에 육안 벗어난 존재들 자기 생명처럼 여긴 배려였으니, 집시랑물 받아 빨래하던 우리 어머니들 마음 經도 典도 들여다본 적 없는 - 화엄 세계 읽다 / 김정원 터의 문제가 아니라 먼저 마음의 문제란 걸 단임골 다녀온 후 새롭게 ..

시읽는기쁨 2012.05.04

영장산을 지나 태재고개까지 걷다

영장산과 태재고개는 성남과 광주를 가르는 검단지맥 위에 있다. 더 내려가면 불곡산까지 이어진다. 영장산에는 두 차례 올랐지만 오늘은 지맥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보기로 한다. 더없이 상쾌한 날씨다. 지하철 이매역에서부터 산행은 시작된다. 영장산은 400m급의 산이지만 오르는데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산길이 꽤 길기 때문이다. 산에는 평일이어서 사람들과는 드문드문 만난다. 얼마 전에 J 선배와 만났을 때 요사이 등산을 하시느냐고 물었더니 단호히 안 한다고 대답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평일에 혼자 산을 찾으니 자신이 너무 비참해지더란다. 일이 없는 백수 신세를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창피하다고 말했다. 지금 나는 홀로 산길을 걸으며 무척 행복하다. 땀 흘리며 일하고 있을 옛 동료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사..

사진속일상 2012.05.03

장자[205]

무위하면 소인도 도리어 자연을 따르고 무위하면 군자도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 곧은 것이든 굽은 것이든 자연의 지극함을 살펴 사방을 눈앞에서 둘러보고 때와 더불어 소식영허하고 옳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원만함의 중심을 잡아 홀로 너의 뜻을 이루고 도와 더불어 배회하라! 너의 행동을 전단하지 말고 너의 뜻을 고집하지 말라! 장차 너의 할 바를 잃을 것이다. 부를 좇지 말고 너의 성공을 따르지 말라! 장차 너의 천성을 잃을 것이다. 無爲小人反殉於天 無爲君子從天之理 若枉若直相而天極 面觀四方與時消息 若是若非執而圓機 獨成而意與道徘徊 無轉而行無成而義 將失而所爲 無赴而富無殉而成 將棄而天 - 盜跖 2 '도척'편은 도척과 공자, 자장과 만구득, 무족과 지화의 대화로 되어 있다. 이 부분은 자장과 만구득의 대화 중 일부분이다..

삶의나침반 2012.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