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 31

다석 전기

'류영모와 그의 시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제자인 박영호가 쓴 다석 선생의 전기다.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 1890~1981)) 선생은 진리의 구도자이자 수도승으로 불릴 만한 분이다. 선생의 사상이나 삶은 보통 사람이 따라가기 어려운 비범한 데가 있다. 기독교 사상가라 불리지만 정통 신앙인은 아니었다. 선생이 가장 존경한 사람이 톨스토이와 간디였는데 이를 통해 선생의 지향한 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선생은 나라가 기울어가던 1890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수하동소학교를 거쳐 경신학교에 입학했는데 YMCA에 출입하면서 기독교를 접하고 연동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선생의 나이 20살 때, 남강 이승훈의 초대를 받아 평북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에서 2년간 교사로 재직했다. 이때..

읽고본느낌 2013.01.31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 김승희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 마디 못 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

시읽는기쁨 2013.01.29

논어[15]

맹의자가 효도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번지가 마차로 선생님을 모시고 갈 때 선생님은 그에게 "맹손이 내게 효도에 대해 묻기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라' 했다." 한즉, 번지가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살아 계실 적에도 예의로 섬기고, 장례도 예법대로 치르고, 제사도 예법대로 모셔야 한다." 맹무백이 효도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부모는 그대의 병만을 걱정하신다." 자유가 효도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요즈음 효도란 봉양만 잘하면 되는 줄 안다. 그것쯤이야 개나 망아지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존경하지 않는다면 다를 데가 없지 않나!" 자하가 효도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얼굴빛이 문제다. 일이 있을 ..

삶의나침반 2013.01.28

교육과 경쟁

- 학교 다니면서 경쟁(competition)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나요? "네. 체육시간, 특히 100m 달리기 할 때요. 그 외에는 들은 적이 없어요. 예를 들어, 영어를 두고 학생들이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죠? 궁금하네요." - 시험(test)을 쳐서 성적(grade)을 매겨 등수(ranking)를 내어 경쟁의 우위를 선별하지요. 핀란드에서는 시험을 치지 않습니까? "시험은 치는데 성적은 매기지 않습니다. 등수라고 하셨나요? 등수가 뭔가요?" - 네? 등수 모르세요? 시험 성적에 따라 1등, 2등, 3등, 꼴찌를 가리는 것 말입니다. "학교가 시험을 치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등수는 왜 가리나요? 시험을 치는 이유는 학생이 해당 과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예를 들어,..

참살이의꿈 2013.01.27

추위를 이긴 제라늄

올겨울에는 화분을 방에 옮기지 않고 베란다에 그냥 두었다. 다육이를 비롯하여 꽃이 활짝 피어 있던 제라늄도 마찬가지였다. 추위에 떠는 모습이 안스러웠지만 강인하고 튼튼해지라고 일부러 그렇게 했다. 작년에는 따스한 방에서 곱게 길렀더니 웃자라기만 하고 때가 되어도 꽃을 피울 줄 모르는 놈도 있었다. 산세베리아만이 동해를 입었을 뿐 대부분이 추위를 잘 견디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라늄은 꽃잎도 시들지 않은 채 혹한을 이겨냈다. 한겨울에도 이렇게 예쁜 꽃을 보여주니 고마우면서 신기하다. 이름에서 받는 느낌과 달리 꽤 추위에 강한 식물인 것 같다. 꽃도 한 번 피면 굉장히 오래간다. 다가오는 봄에는 제라늄을 더 많이 사서 키워봐야겠다.

꽃들의향기 2013.01.26

논어[14]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는 열 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때 목표가 섰고, 마흔에 어리둥절하지 않았고, 쉰에 하늘의 뜻을 알았고, 예순에는 듣는 대로 훤했고, 일흔이 되어서는 하고픈 대로 해도 엇나가는 일이 없었다."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 爲政 4 공자의 자기평가서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끝에서 이만한 자부심을 가질 인물이 다른 누가 있을까 싶다. 오래전부터 공자의 이 고백을 접할 때마다 같은 인간으로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자의 발 끄트머리도 따라가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차라리 '~ 되고 싶다'는 희망 사항이었다면 열등감이 덜 했을지 모른다. 나를 돌아보면, 40은 불혹(不惑)이 아니라 혹(惑)의 시..

삶의나침반 2013.01.25

한 수 위 / 복효근

어이, 할매 살라먼 사고 안 살라먼 자꼬 만지지 마씨요 - 때깔은 존디 기지가 영 허술해 보잉만 먼 소리다요 요 웃도리가 작년에 유행하던 기진디 우리 여편네도 요거 입고 서울 딸네도 가고 마을 회관에도 가고 벵원에도 가고 올여름 한려수도 관광도 댕겨왔소 물도 안 빠지고 늘어나도 않고 요거 보씨요 백화점에 납품하던 상푠디 요즘 겡기가 안 좋아 이월상품이라고 여그 나왔다요 헹편이 안 되먼 깎아달란 말이나 허제 안즉 해장 마수걸이도 못했는디 넘 장사판에 기지가 좋네 안 좋네 어쩌네 구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허들 말고 어서 가씨요 - 뭐 내가 돈이 없어 그러간디 나도 돈 있어라 요까이껏이 허면 얼마나 헌다고 괄시는 괄시요 팔처넌인디 산다먼 내 육처넌에 주지라 할매 차비는 빼드리께 뿌시럭거리며 괴춤에서 돈을 꺼내 ..

시읽는기쁨 2013.01.24

함석헌 읽기(4) - 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

4권에는 1960년대 초중반에 쓰인 글이 주로 실려 있다. 그때는 민정이양과 한일회담 등 정치적으로 상당히 혼란한 시기였다. 선생은 줄기차게 군사정권에 대항하며 권력자와 각을 세운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회담 역시 반대한다. 돈과 경제를 위해 민족 자존심을 팔아먹는 걸 좌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계엄령을 발동하고 조약을 비준한다. 선생은 이렇게 외친다. "달러가 아니고는 못 사나요?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한번 보여주면 어떻습니까. 나라 운명을 한일회담에다가 매고, 비겁하게 벌벌 떨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살려면 우리 손으로 우리끼리, 살다 못 살면 같이 죽지 하는 각오를 해서만 이 난관을 열 수 있습니다. 나더러 무식하답니까. 어저께 우리 집에 강도로 들어와서, 우..

읽고본느낌 2013.01.23

화성의 강

며칠 전에 ESA[The European Space Agency, 유럽우주기구]에서 화성 탐사선인 '마스 익스프레스'[Mars Express]가 촬영한 화성 표면 사진을 공개했다. 화성 남반구에 있는 '레울 계곡'[Reull Vallis] 부근인데 거대한 강물이 흐른 흔적이 보인다. 화성은 지구보다 작지만 자연 현상 규모는 훨씬 더 크다. 화성에는 태양계에서 가장 높은 화산인 올림푸스산이 있다. 높이가 27,000m로 에베레스트의 세 배다. 이 강의 길이는 1500km, 폭은 7km, 깊이는 300m에 달한다. 과학자들은 오래전에 화성이 물이 흘러 이런 협곡이 만들어졌다가 35억 ~ 18억년 전 사이에 수분이 증발하고 흔적만 남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 사진은 ESA 홈페이지에 들어가 받아왔다. 사진에는 ..

길위의단상 2013.01.22

논어[13]

선생님 말씀하시다. "법령만을 내세우면서 형벌로 억누르면 백성들은 슬슬 빠질 궁리만 찾는다. 곧은 마음으로 지도하면서 예법을 가르치면 백성들은 진심으로 따르게 된다."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 爲政 3 새 대통령 당선자가 내세우는 게 '법과 원칙'이다. 그러나 법과 원칙이 누구의 편이었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강자에게는 관대하고 약자에게는 엄격한 게 법이고 원칙이었다. 지배자, 통치자, 권력자들은 '법대로'를 외친다. 그 그늘에서 생기는 민중의 눈물을 부디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약육강식의 혼란기였다. 힘 있는 자만이 살아남았다. 실제로 진시황은 법가(法家)의 논리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해 천하를 통일했다. 그런데 공자는 덕치(德治)와 예치(..

삶의나침반 2013.01.21

감탄과 감동

감탄; 마음속 깊이 느끼어 탄복함, 감동; 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임. 감탄과 감동은 사전적으로 비슷하지만, 마음이 움직인다는데 차이가 있다. 깊이 느끼는 게 감탄이라면 더 나아가 마음마저 움직이는 게 감동이다. 감탄은 감탄사가 나오지만, 감동은 아무 소리가 없다. 예를 들면,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며 감탄한다. 또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에도 감탄할 수 있다. 그러나 감동을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대규모 블록버스터보다는 사소한 일상을 다룬 저예산 영화에서 오히려 감동을 할 때가 더 많다. 멋지고 웅장한 풍경 앞에서는 감탄을 한다. 반면에 산길을 걷다가 발견한 작은 꽃 하나에는 감동을 받는다. 물론 이 둘이 꼭 구분되는 건 아니다. 감탄과 감동은 뒤섞여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

참살이의꿈 2013.01.20

경안천을 산책하다

오랜만에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갔다. 봄기운마저 느껴지는 날씨였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경안천에 산책하러 나갔다. 이 겨울 두 달 동안 무등산에 한 번 다녀온 것 외에는 거의 두문불출이었다. 뒷산조차도 찾지 않고 겨울잠 흉내를 내보려고 했다. 둔해진 몸이 금방 느껴졌다. 평지길 걷기도 버거웠다. 저울에 올라 보지는 않았지만 몸무게도 최고 기록을 돌파했을지 모른다. 빈둥거려도 먹는 건 빠지지 않았으니 결과야 뻔하다. 그래도 기지개를 켜고 몸을 움직이면 이내 옛 상태를 회복할 것이다. 그걸 믿으므로 걱정하지는 않는다. 겨울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걸었다. 성남과 장호원을 연결하는 신설 도로가 광주를 지나간다.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상판 연결이 최근에 끝났다. 이 도로가 완공되면 경충대로의 교통 체증이 ..

사진속일상 2013.01.19

함석헌 읽기(3) - 새 나라 꿈틀거림

함석헌 선생 사상은 비폭력 평화주의다. 선생의 글을 읽어보면 간디와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은 걸 알 수 있다. 비폭력 평화가 뜻은 좋지만 과연 현실에서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과 같은 냉혹한 국제관계에서 군대와 무기를 포기하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다. 잘못되면 국가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선생은 비폭력 이상을 버리지 않는다. 국가가 망하더라도 뜻은 남는다고 한다. 선생은 '우리나라의 살 길'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이북에서 침입하는 경우에도 아무 무력의 대항 없이 태연히 있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심하면 죽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런 평화적인 태도로 맞으면 이북군이 아무리 흉악하더라도 절대로 그 흉악을 부리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첫째는 그들도 사람이요 한국 민족이기 때..

읽고본느낌 2013.01.18

겨울 냉이 / 고명수

폭풍한설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 냉이는 자란다 낙엽과 지푸라기 아래 숨어 봄을 기다리는 냉이, 행여 들킬세라 등 돌리고 있는 냉이를 더듬더듬 찾아내어 검불을 뜯어낸다 봄 내음이 나는 냉이국을 먹으며 낙엽과 지푸라기 속에서도 목숨을 지켜 마침내 싹을 틔워낸 냉이를 생각한다 가파른 삶의 벼랑 위를 조심조심 걸으며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봄을 기다리는 냉이를 보라 서슬 푸른 정신으로 살아야 하리라 서슬 푸른 눈으로 살아야 하리라 겨울 냉이가 자신을 이기듯이 몰래 숨어 자란 냉이가 온몸을 우려내어 시원한 된장 국물이 되듯이 우리도 누구엔가 시원한 국물이 되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소수서원 돌담길에도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에도 숨어있을 냉이, 환한 한 마디의 말씀이 오랜 궁리와 연찬에서 솟아나듯이 청빙(淸氷)을 뚫..

시읽는기쁨 2013.01.17

논어[12]

선생님 말씀하시다. "시 삼백 편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거야."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 爲政 2 '사무사(思無邪)'가 나오는 시를 에서 찾아보았다. '경'(살쪘다는 뜻)이라는 제목의 시다. 살찌고 커다란 숫말이 들판에서 뛰노는 모양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 구절이 이렇다. 思無邪 思馬斯조 사념 없이 달리는 정말 아름다운 말이로다 시의 앞 부분에서는 思無疆(끝없이 달리는), 思無期(한정없이 달리는), 思無두(싫증 안 내고 달리는) 같은 말의 특징이 나와 있다. 공자는 말을 노래한 시에서 의 핵심 의미를 찾아냈다. 길들여지지 않은 말이 넓은 들판에서 달리는 모습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다. 말은 제 본성에 맞게 뛰논다. 어떤 인위도 들어있지 않다.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이고..

삶의나침반 2013.01.16

위기십결

바둑은 선택이다. 바둑 한 판 두자면 백 개가 넘는 돌을 놓아야 하는데 그만큼의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는 말과 같다. 오직 이 한 수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여러 개의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그 선택이 상대의 수와 어울려 한 판의 바둑을 만든다. 그런 점에서 바둑은 선택과 조화다. 바둑을 둬보면 우리네 인생살이와 닮았다는 걸 느낀다. 인생길에서도 수많은 갈림길에 선다. 이 길을 갈까, 저 길을 갈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한 길을 선택한다. 한참 지나서 보면 다른 길이 훨씬 나았음을 알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거기서 우리는 또 다른 선택하고 후회와 자책을 거듭하며 종착지에 이른다. 좋은 바둑을 두기 위해 지침으로 삼는 게 위기십결(圍棋十訣)이다. 바둑의 십계명이라 할 수 있다...

길위의단상 2013.01.15

식영정 소나무

담양에 있는 식영정(息影亭)은 조선 명종 15년(1560)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이 장인인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석천은 이곳에서 '식영정 20영'을 지었고, 송강 정철이 자주 찾아온 곳이다. 송강이 이곳을 무대로 성산별곡(星山別曲)을 지었다. 경내에는 서하당과 석천을 주향으로 모신 성산사(星山祠)가 있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식영정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적송 한 그루가 있다. 식영정에서 성산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서 있는데, 우람한 자태며 쭉 뻗은 기상이 대단한 소나무다. 마치 옛 선비들의 고고한 정신을 보는 것 같다. '선비'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구체적으로 선비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걸까? 사전을 찾아보니, 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재물을 탐내지..

천년의나무 2013.01.13

창평리 느티나무

담양군 창평면 창평리는 슬로시티로 지정된 마을이다. 삼지내마을이라고도 하는데 1900년대 초에 세워진 한옥들이 모여 있는 동네다. 주변에는 명옥헌 등 문화유산도 많다. 역사가 깊은 마을인 만큼 고목이 없을 리 없다. 면사무소가 위치한 길을 따라 오래된 느티나무 일곱 그루가 늘어서 있다. 예전에도 이곳이 관청로가 아니었나 싶다. 수령은 200년쯤 되었는데 이미 수명을 다한 듯 노쇠한 모습이다. 주변에는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어 슬로시티로서 마을이나 고목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더 세심한 관리 및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천년의나무 2013.01.12

담양 정자와 창평 슬로시티

무등산에 오르러 광주에 가는 길에 담양에 들러 면앙정, 송강정, 식영정의 세 정자와 창평 슬로시티를 찾다. 면앙정.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에 있다. 중종 28년(1533), 관직에서 물러난 송순(宋純, 1493~1582)이 고향인 이곳에 면앙정을 짓고 학문을 토론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던 곳이다. 송강정(松江亭).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에 있다. 선조 17년(1584), 대사헌으로 있던 정철(鄭澈, 1536~1593)은 당쟁의 와중에 이곳에 물러와 4년동안 지냈다. 원 이름은 죽록정(竹綠亭)이다.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을 여기서 지었다. 고등학생일 때 '사미인곡'을 배우며 여성적이며 섬세한 가사를 쓰는 정철의 이미지가 후에 그의 행적을 알고난 뒤에는 많이 혼돈스러워졌다. 기축옥사에서 반대..

사진속일상 2013.01.12

무등산 느티나무

무등산을 오르다 보면 증심사(證心寺)를 지나 중머리재로 가는 길에서 큰 느티나무를 만난다. 등산로 한복판에 있어서 경사로를 오르다가 고개를 들면 시야 가득 느티나무가 반긴다. 이런 높이에서 이만한 느티나무를 만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느티나무 주변은 등산객이 쉬어갈 수 있도록 의자랑 넓은 쉼터가 만들어져 있다. 한쪽에는 송풍정(松風亭)이라는 정자도 있다. 얼마나 오래된 정자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느티나무로 보아 옛날에 이곳은 분명 사람의 활동과 관련된 장소였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450년이고, 높이는 28m, 줄기 둘레는 4.8m다. 마치 무등산을 호위하는 지킴이처럼 우뚝하니 서 있다.

천년의나무 2013.01.11

겨울 무등산

무등산은 오래전부터 찾고 싶었던 산이었다. 그곳은 민주와 저항을 상징하는 산으로 각인되어 있다. 무등(無等)이라는 이름이 주는 아련한 동경도 있다. 지난 대선에서 진보 진영 후보가 패배한 뒤에는 더욱 무등의 품에 들고 싶었다. 새해 첫 산행으로 경떠회에서 무등산에 오르기로 했다. 사정이 생긴 여러 명이 빠지고 결국 셋이서 단출하게 출발했다. 셋은 전날 담양의 몇몇 정자를 둘러보고 국립 5.18 묘지를 참배한 후 산 아래 허름한 모텔에서 하룻밤을 잤다. 아직도 이런 숙소가 있나 싶게 70년대 여관 분위기가 나는 숙소였다. 남쪽 지방인데도 영하 7도까지 떨어진 추운 날씨였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남광주시장으로 나가 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김밥을 준비한 후 증심사(證心寺) 입구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사진속일상 2013.01.11

무등 / 황지우

山 절망의산, 대가리를밀어버 린, 민둥산, 벌거숭이산, 분노의산, 사랑의산, 침묵의 산, 함성의산, 증인의산, 죽음의산, 부활의산, 영생하는산, 생의산, 회생의 산, 숨가쁜산, 치밀어오르는산, 갈망하는 산, 꿈꾸는산, 꿈의산, 그러나 현실의산, 피의산, 피투성이산, 종교적인산, 아아너무나너무나 폭발적인 산, 힘든산, 힘센산, 일어나는산, 눈뜬산, 눈뜨는산, 새벽 의산, 희망의산, 모두모두절정을이루는평등의산, 평등한산, 대 지의산, 우리를감싸주는, 격하게, 넉넉하게, 우리를감싸주는어머니 - 무등(無等) / 황지우 무등산에 오르기 위해 내일 남쪽으로 간다. 대선 끝나고 술을 마시다가 문득 무등산이 생각났다. 찾아가고 싶었다. 그 이름만으로 만나고 싶었다. 무등(無等)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이기에 슬픈 이름이..

시읽는기쁨 2013.01.08

함석헌 읽기(2) - 인간혁명

'혁명'이라는 말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2권은 함석헌 선생의 혁명에 관한 글을 묶었다. 그러나 선생은 힘에 의한 혁명을 주장하지 않는다. 제목 그대로 '인간 혁명'이다. 폭력에 의한 혁명은 또 다른 혁명을 낳을 뿐이다. 인간이 변하는 혁명이라야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나갈 길은 비폭력혁명의 길이다. 이것이 일반 혁명가들과는 다른 선생의 독특한 점이다. 선생은 혁명의 근거를 생명의 본성에서 찾는다. 생명은 변화하고 자라는 것이다. 나무는 연륜을 지어야 하고, 뱀은 허물을 벗어야 한다. 끊임없이 탈바꿈함으로써 생명은 진화한다. 또,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의 지배자는 보수주의와 반동주의로 자기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역사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악에 대한 투쟁이 곧 혁명이다. 현대문명을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읽고본느낌 2013.01.07

논어[11]

선생님 말씀하시다. "정치는 곧은 마음으로 해야 함은 마치 북극성이 제 자리에서 뭇 별들을 이끌고 함께 돌아가는 것 같은 거야."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共之 - 爲政 1 '위정이덕(爲政以德)'은 공자의 덕치(德治)를 드러내는 말이다. 덕치가 이루어진 모습이 밤하늘로 설명되고 있다. 모든 별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일주운동을 한다. 북극성이 곧 군주다. 군주를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는 나라를 공자는 꿈꾸었던 것 같다. 그 나라는 공자가 말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운[君君臣臣父父子子]', 즉, 자신의 이름에 맞는 역할을 하는 국가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군주 중심의 봉건적 질서 체계로 느껴진다. 그러나 덕치란 힘과 권력으로가 아니라 백성의 마음이 저절..

삶의나침반 2013.01.06

빛을 향하여

사납던 동장군의 기세가 오늘 낮부터 수그러지는 것 같다. 한 달 가까이 맹추위가 이어졌다. 영상으로 올라가는 날이 거의 없었고 눈도 잦았다. 거의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도서관에 간 길에 잠시 주위를 산책했다. 아직도 영하의 쌀쌀한 날씨지만 어제보다는 훨씬 포근해졌다. 체감기온은 상대적이어서 벌써 봄기운마저 느껴진 하루였다. 추위가 드세면 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올려다 본 하늘에는 비행기운이 태양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왠지 아득하고 간절해지는 것이었다....

사진속일상 2013.01.05

개구리 세 마리

필리핀 민중교육의 역사와 내용을 다룬 이라는 책을 보다가 이 이야기를 만났다. 개구리 세 마리가 나오는 이 우화는 '쌍방향의 상호작용 이야기'로 민중교육자들 사이에 인기 있는 이야기라고 한다. 자신의 신념 및 타인과의 관계, 깨달음에 대해서 숙고하게 하는 내용이다. '개구리 세 마리'는 진리를 찾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우물 속에 살고 있는 개구리와 같다. 각자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게 전부라 믿는다. 누가 옳을까? 세 마리 개구리는 결국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과 용기로 우물 밖으로 나온다. 그들은 좁은 고정관념을 벗어났다. 민중교육의 역할은 사람들이 자신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서 볼 수 있도록 하고, 개인 또는 집단의 패러다임 전환을 돕는 일이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사람..

참살이의꿈 2013.01.05

로얄 어페어

18세기 후반 덴마크, 영국의 캐롤라인 마틸다는 정략결혼으로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왕에게 시집간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크리스티안은 첫날밤부터 왕비를 실망시킨다. 왕의 주치의로 들어온 독일인 요한은 계몽사상에 영향을 입은 점에서 왕비와 잘 통하게 된다. 왕의 신임 아래 실권을 장악한 요한은 개혁 정책을 밀고 나가지만 기득권층의 저항을 받는다. 그는 왕비와의 불륜 스캔들로 체포되어 처형된다. 왕비는 유배되고 곧 병사한다. 개혁은 좌절되고 덴마크는 다시 중세의 어둠에 빠진다. 영화 '로얄 어페어[A Royal Affair]'는 왕비와 요한의 사랑, 그리고 개혁과 실패라는 두 개의 줄기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내용이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도 비슷한 예는 찾아볼 수..

읽고본느낌 2013.01.04

팔원(八院) / 백석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리 묘향산 백오십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쌔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駐在所長)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 팔원(八院) / 백석 동장군 기승이 대단하다. 지난 12월은 45년 만의 강추위였다. 새해가..

시읽는기쁨 2013.01.03

논어[10]

선생님 말씀하시다. "남이 나를 몰라주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남을 모르는 것이 걱정이야."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 學而 10 '학이'편 처음에 '남들이 몰라주더라도 부루퉁하지 않으면 참된 인간이 아닐까.'[人不知而不온 不亦君子乎]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마지막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만큼 제자들에게 자주 한 말씀이라는 뜻이겠다. 작년에 중국 태산에 갔을 때 잘 생긴 바위마다 글씨와 이름을 어지럽게 새겨놓을 걸 보았다. 세상에 제 이름 드러내길 좋아하고, 남이 나를 알아주기 바라는 인간 욕망의 단면으로 보였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남의 평가에 좌지우지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칭찬받으면 우쭐해지고, 비난받으면 새침해지는 건 유아적 단계다. 주체적 인간은 스스로 선..

삶의나침반 2013.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