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 18

낯선 곳 / 고은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 낯선 곳 / 고은 그랜드 캐니언을 보고 싶어 아메리카로 간다. 고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의 국어 시간, 교과서에 실린 천관우의 그랜드 캐니언 기행문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다짐했었다. 언젠가 나도 그랜드 캐니언에 설 것이라고. 그 꿈이 이제 실현되려 한다. 이번 패키지여행에는 캐나디안 로키도 ..

시읽는기쁨 2013.02.21

논어[19]

자공이 쓸모 있는 인간에 대해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행동이 앞서야 하며, 말이 그 뒤를 따라야 하느니라." 子貢問 君子 子曰 先行其言 而後從之 - 爲政 9 공자의 3대 제자라면 안회, 자로, 자공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 자공(子貢, BC 520~456)은 언변과 외교 수완이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 또한, 이재에 밝아 사업으로 거부가 된 사람이었다. 자공은 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과 화식열전(貨殖列傳)에 동시에 나온다. 사마천은 자공을 "입담이 세고 언사가 교묘하다."[利言巧辭]라고 표현했다. 공자가 공자학당을 유지하거나 주유천하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마 자공의 도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질적 지원만이 아니라 자공을 통해서 각국의 권력자들을 소개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자공은 인맥도 넓..

삶의나침반 2013.02.20

서촌 산책

서촌(西村)은 조선시대 경복궁 서쪽에 있던 지역으로 주로 중인들이 살았다. 지금의 청운동, 효자동, 통의동, 체부동 일대에 해당한다. 골목 곳곳에는 오래 된 집이나 가게가 그대로 있어 변하지 않는 것의 편안함을 준다. 그중의 하나가 '대오서점'이다. 마침 주인 할머니가 외출하시다가 우리를 보고 구경하고 가라며 문을 다시 열어 주셨다. 한옥은 100년 가까이 되었고, 헌책방을 하신지도 60년이나 된다고 하셨다. 안으로 들어가니 집 내부도 헌책으로 빼곡했다. 집도 굉장히 낡았다. 책이 얼마나 판매되는지는 모르지만 이만큼 지켜오신 것만도 대단하다. 집을 팔려고 내놓으셨다는데 새 주인이 들어오면 이곳에도 아마 현대식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이상(李箱)이 살았던 집이 '제비다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문이 ..

사진속일상 2013.02.19

용서할 수 없는 습관에서 떠나라

1년 가까이 목욕탕엘 안 가고 있다. 귀 안에 있는 염증 때문이다. 그동안 수없이 이비인후과를 들락거렸지만 완치되지 않았다. 낫는 것 같다가도 이내 재발한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아주 상극이다. 그래서 병원 치료보다는 내가 고쳐보자, 하고 목욕탕 출입을 끊었다. 병원에서 쓰는 적외선 온열기도 샀다. 집에서 샤워도 드물게 하지만, 하고 나면 적외선으로 귀를 말린다. 덕분에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목욕탕에 가질 않으니 때를 밀 일이 없다. 처음에는 몸에 뭐가 기어다니는듯 스물거렸으나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도리어 때를 미는 게 이상해 보인다. 이태리 타올을 사용하는 게 기분은 개운하지만 피부에는 좋을 것 같지 않다. 도살장의 털 뽑힌 돼지처럼 때밀이 앞에 누워 있지 않아도 되니 좋은 점이 더 많다. 반대로 ..

참살이의꿈 2013.02.18

적멸을 위하여 / 조오현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 적멸을 위하여 / 조오현 나와 너, 생과 멸의 경계가 사라지는 경지다. 지극한 무위(無爲)며 공(空)이다. 머리가 멍해진다. 부처님 말씀하셨다. "나고 없어짐 벗어나면 고요한 그곳이 즐거움이 된다[生滅滅已 寂滅爲樂]." 흰 눈 덮이는 고요한 밤에 달빛만 교교하다. 적멸(寂滅)을 위하여....

시읽는기쁨 2013.02.15

논어[18]

선생님 말씀하시다. "쓸모있는 인간은 외통수는 아니다." 子曰 君子不器 - 爲政 8 '그릇[器]'은 나무를 깎거나 흙을 빚어 만든 것이다. 밥을 담는 그릇, 국을 담는 그릇, 반찬을 담는 그릇 등이 있다. 이렇듯 그릇은 음식을 담는 용도로 사용된다. 사람으로 치면 한 가지의 유용성밖에 없는 전문가나 기능인이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필요로 한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재(人材)라고 한다. 기업이 요구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대학생은 스펙을 쌓거나 자격증 따기에 열중한다.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은 효용성과 실용성이다. 인문적 소양은 아예 무시된다. 이런 교육은 군자가 아닌 소인을 기른다. 큰 그릇이 되라고 하지만, 그릇은 그릇일 뿐이다. 노자 에 '박산즉위기(樸散則爲器)'라는 ..

삶의나침반 2013.02.14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오웰은 인습과 관성을 거부한 작가였다. 사립 명문인 이튼 출신으로서 대학을 포기하고 당시 식민지였던 버마 경찰이 되었고, 뒤에는 안정된 간부직을 마다하고 자발적으로 부랑자가 되어 밑바닥 생활을 체험했다. 스페인 내전 때는 공화국 편의 민병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런던에 있을 때도 문단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시골 마을에서 텃밭을 일구는 살아가는 쪽을 택했고, 2차대전 후 명사가 되었을 때도 한적한 섬에서 은거하며 지냈다.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는 조지 오웰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29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세상을 보는 그만의 예리한 통찰을 읽을 수 있다.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따스한 인간의 정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읽고본느낌 2013.02.13

한 갑자가 지나다

한 갑자가 돌았다. 60년 전 계사년(癸巳年)에 태어났는데 다시 계사년이 찾아왔다. 12와 60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간과 관계된 숫자다. 해를 나타내는 12개의 지(支)가 있고, 일 년은 12달로 나눈다. 밤낮도 12시간으로 되어 있다. 또, 시간이나 분은 60등분을 한다. 이런 것이 순환 구조를 이루면서 60년이라는 큰 수레바퀴를 만든다. 60년 인생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건 사실이다. 축하 인사도 없고 회갑 잔치도 사라졌다. 수명이 늘다 보니 예전 60이 지금은 80 언저리쯤 될 것 같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도 옛말이 되었다. 이젠 대부분이 고희(古稀)를 넘기고, 100세 넘은 분을 만나는 것도 드물지 않다. 회갑을 언급하는 자체가 쑥스럽다. 그래도 60은 인생의 한 매듭으로 충분히 의미..

길위의단상 2013.02.12

논어[17]

선생님 말씀하시다. "옛 것을 더듬고 새 것을 알아야 하니, 스승이란 한 번 되어봄직도 하지."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 爲政 7 이번에 를 읽으며 온고지신(溫故知新)에 대해 새로운 점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온고지신을 "옛 것을 더듬'어' 새 것을 안다"로 이해했다. 그러나 지금 읽는 번역은 "옛 것을 더듬'고'"로 되어 있다. 조사 '어'와 '고'의 차이는 크다. '옛 것'과 '새 것'이 종속관계가 아니라 병렬관계인 것이다. 전에는 온고지신을 떠올리면서 공자를 보수주의자로 단정했다. '옛 것'에 방점이 찍힌 것이다. 결코 그렇게 봐서는 안 된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또 하나는 온고지신이 스승됨과 관련해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다. 온고지신할 수 있으니 스승도 되어봄직 하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가..

삶의나침반 2013.02.07

내 귀는 어찌하여 이런 이야기를 듣는가 / 이진명

한 선방(禪房) 승(僧)의 아무 고저장단 없는 먼, 마른 목소리의 첫째 이야기를 듣는다 말도 없이 출가해 수년 후 정식 비구계를 받고 고향집 양친을 찾아 갔노라고 50줄 아버지가 오늘 나랑 함께 자자며 이부자리를 펴시는데 중은 다른 사람이랑 같이 안 잡니다 쌀쌀맞게 내뱉고는 다른 방에서 잤노라고 한 선방 승의 찬 하늘 구만리를 가는 기러기라도 배웅하는 듯, 젖힌 고개의 둘째 이야기를 듣는다 누나가 미국으로 이민간다고, 공항에서라도 얼굴 한 번 보고 싶다고 전갈온 적 있었노라고 절방 마루 끝에 서서 비행기 출발했겠구나 산문 밖이나 건너다 보았노라고 누나 아이가 둘이라는데 그 조카들 얼굴도 모르고 한 선방 승의 고저장단 없는 먼, 마른 목소리의, 이번에는 아주 작은 웃음기가 입가에 짧게 머문 셋째 이야기를 ..

시읽는기쁨 2013.02.07

경쟁에서 벗어나기

이 세상을 '싸움터'가 아니라 '놀이터'로 볼 수는 없을까? 우리가 경쟁이라는 늪으로부터 한 발을 뺀다면 탐욕으로 작동되는 이 세상의 시스템은 저절로 무너지지 않을까? 경쟁에 관한 강수돌 님의 글을 요약하다. ----------------------------------------------------- 경쟁은 필요하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믿고 있다. 여러가지 폐해가 있지만 발전을 위해 경쟁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경쟁 상황에 빠지면 결코 행복하게 느끼지 못한다.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스트레스를 높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하면, 경쟁의 필연성은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체계적으로 교육되고 만들어진 결과다. 경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분명..

참살이의꿈 2013.02.06

조르바

이런 말을 남긴 조르바는 누구인가? "새끼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꾸 걸기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리쳐 잘라 버렸어요." "하느님요? 자비로우시고말고요. 하지만 여자가 잠자리로 꾀는데도 이거 거절하는 자는 용서하시지 않을걸요. 거절당한 여자는 풍차라도 돌릴 듯이 한숨을 쉴 테고, 그 한숨 소리가 하느님 귀에 들어가면, 그 자가 아무리 선행을 많이 쌓았대도 절대 용서하시지 않을 거라고요." "도 닦는 데 방해가 된다고 그걸 잘랐어? 이 병신아, 그건 장애물이 아니라 열쇠야, 열쇠." "결혼 말인가요? 공식적으로는 한번 했지요. 비공식적으로는 천 번, 아니 3천 번쯤 될 거요. 정확하게 몇 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길위의단상 2013.02.05

함석헌 읽기(5) -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5권에는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비롯해 21개의 글이 실려 있다. 모두가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심(憂國心)으로 가득하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1958년 '사상계' 8월호에 실린 글로 '6.25 싸움이 주는 역사적 교훈'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선생 글의 주제가 깨어 있는 씨알이 되자는 데 있다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만큼 선생의 외침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제목도 없다. 이번 대선 투표 성향을 분석했더니 소득 최하위층에서 박근혜 지지율이 제일 높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무려 66%로 문재인 지지율 34%에 비해 거의 두 배나 되었다. 반면 중상층에서는 그 격차가 2%에 불과했다. '가난한 사람은 왜 부자를 위해서 투표하는가'라는 의문이 이번에도 들었다. 그들은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

읽고본느낌 2013.02.05

논어[16]

선생님 말씀하시다. "내가 회를 데리고 이야기하면 진종일 아무 대꾸도 없는 것이 마치 놈팡이도 같아 보이나, 나중에 지내는 것을 보면 뚜렷이 행하고 있다. 회는 놈팡이가 아니야!" 子曰 吾與回言 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 爲政 6 안회(顔回, BC 514~483)가 처음 등장한다. 안회는 공자가 가장 사랑한 제자였다. 만약 32세에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또 한 사람의 성인(聖人)이 탄생했을지 모른다. 조용하면서 은둔적 성향의 안회는 내적 성숙도에서는 결코 스승에 뒤지지 않았다. 안빈낙도(安貧樂道)가 무엇인지를 직접 몸으로 실천한 제자였다. 또한 안회만큼 호학(好學)하는 사람을 못 보았다고 공자 자신도 말하고 있다. 스승이 제자를 아끼는 만큼, 안회도 공자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랐다. 광(..

삶의나침반 2013.02.04

김유정 생가와 금병산

춘천시 신동면 증리는 소설가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이 태어난 마을이다. 금병산에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옴폭한 떡시루 같다 하여 실레마을이라고 불린다. 이곳에 김유정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김유정 생가는 'ㅁ'자 모양으로 방이 4칸인 꽤 큰 집이다. 그의 조부가 지었는데, 조부 김익찬은 춘천 의병 봉기 때 재정 지원을 하였으며 당시 이 마을 대부분의 땅이 그의 소유였다고 한다. 당시에 6천석 추수를 하는 춘천의 명가였다. 중부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ㅁ'자 형태를 하고 기와집 골격이지만 초가를 얹은 이유는 헐벗고 못 먹는 사람들이 많던 시절이라 집의 내부를 보이지 않게 하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의 집에 들면 포근한 느낌을 받는다. 안뜰에서는 하늘이..

사진속일상 2013.02.03

맘과 허공 / 류영모

마음이 속에 있다고 좇아 들어 못 봤거늘 허공이 밖에 있대서 찾아 나가 만날 손가 제 안팎 모르는 임자 아릿다운 주인인가 온갖 일에 별별 짓을 다 봐주는 맘이요 모든 것의 가진 꼴을 받아주는 허공인데 아마도 이 두 가지가 하나인 법 싶구먼 제 맘이건 쉽게 알고 못되게 안 쓸 것이 없이 보고 빈탕이라 망발을랑 마를 것이 님께서 나드시는 길 가까움직 하구먼 - 맘과 허공 / 류영모 다석 류영모 선생은 56세 때인 1946년부터 30년 가까이 일기를 썼다. 일기에는 3천 수 가까운 한시와 시조가 들어있다. 이 시조도 그중 한 편이다. 선생은 공(空)을 만물의 근본이며 존재의 바탕으로 보았다. 이 우주의 참된 실재는 물질이 아니라 공, 즉 빔이다. 마음이 공과 하나되어 공색일여(空色一如)의 자유에 이르는 게 깨..

시읽는기쁨 2013.02.01

안전한 사회와 지속가능한 에너지정책을 위한 8대 과제

우리 시대 인류가 당면한 최대 위험이 핵이다. 잘못하면 인류 멸절의 대재앙이 올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꼬리 없는 원숭이는 너무 쉽고 어설프게 원자력의 비밀을 손에 넣었다. 강대국들은 지구를 몇십 번이나 날려버릴 만한 핵무기를 감쳐두고 있다. 그 버튼이 눌러지면 모든 게 끝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굳이 핵무기만이 아니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는 대참사의 전주곡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 핵은 인류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핵발전소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를 우리 옆에 묻어두는 것과 같다. 지금의 경제성과 편리함 때문에 후손에게 너무 큰 짐을 맡기고 있다. 핵은 한 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다. 인류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북한은 핵실험을 앞두고 있고, 남..

길위의단상 2013.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