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 43

똥꽃

이 책을 쓴 전희식 선생은 치매를 앓고 있는 노모를 모시고 산다. 시골 빈집을 구해서 어머니의 몸 상태에 맞게 직접 수리했다. 그리고 도시 아파트에서 형과 함께 살고 있던 노모를 모시고 왔다. 귀도 멀고 똥오줌도 못 가리는 어머니가 계실 곳은 결코 도시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사시사철 두 평 남짓한 방에서만 지내면서 밥도 받아먹고 똥오줌도 방에서 해결하는 것은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편할지 몰라도 여든여섯 노쇠한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가두는 것으로 생각했다. 선생이 생각하는 모심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우선하는 직접 돌봄이다. 치매 노인이라도 품위와 존엄을 지켜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족과도 떨어져 어머니와 둘이서 지낸다. 똥오줌을 직접 받아내고, 진지를 해 드리고, 같이 놀아주고, 그러면서 농..

읽고본느낌 2013.04.30

임류의 자족

따뜻한 봄날에 백살이 다 된 임류라는 노인이 겨울에 입던 갖옷을 그대로 걸치고, 지난 가을에 떨어진 이삭을 밭이랑에서 주우며 노래를 부르다 걸어가다 하였다. 이것을 위나라로 가다가 벌판을 바라보던 공자가 보고는 뒤따라 오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노인은 말을 걸어 볼 만한 사람인 것 같다. 누가 가서 말을 해 보겠느냐?" 말 잘 하는 자공이 자청하여 밭 언덕을 가로질러 노인에게 가서 측은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이렇게 이삭을 주우며 노래를 부르시는데, 선생께서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전혀 후회하신 적이 없으십니까?" 그러나 임류는 들은 척도 않고 발걸음을 옮기며 노래를 불렀다. 자공 또한 노인이 말을 할 때까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노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늘을 우러러 보며 말하였다 "내게 후회..

참살이의꿈 2013.04.29

논어[29]

임방이 예법의 근본정신을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옳지, 좋은 질문이다. 예식은 사치스런 것보다 검소한 것이 좋고, 장례식은 번지르르한 것보다 슬픔이 넘쳐야 한다." Lin Fang asked what was the first thing to be attended to in ceremonies. The Master said, "A great question indeed! In festive ceremonies, it is better to be sparing than extravagant. In the ceremonies of mourning, it is better that there be deep sorrow than a minute attention to observances." 林放問 禮之本..

삶의나침반 2013.04.29

비실대는 봄

시절이 수상해서 그런지 올해처럼 변덕스런 봄도 없다. 4월 중순까지 눈이 내리더니 바람도 여느 때보다 심하고 따스한 봄이라는 느낌이 별로 없다. 덩달아 나도 봄앓이를 심하게 하고 있다. 허리가 아픈지도 꼭 한 달이 되었다. 이제 95%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허리를 굽혀 양말을 신을 수 있게 된 것만도 감사하다. 그래도 하루에 1mm씩이나마 조금씩 허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지켜보는 건 기뻤다. 일부러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시간은 더 걸릴지라도 저절로 낫게 되는 걸 믿었기 때문이다. 하긴 백수가 급할 것도 없다. 그 와중에도 꽃 갈증을 못 이겨 서울대공원으로 호암미술관으로 나들이 다녔더니 몸살이 찾아왔다. 두 손님 다 이제야 슬슬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오늘은 텃밭 농장의 '팜 커밍 데이'(Farm ..

사진속일상 2013.04.28

함석헌 읽기(11) - 세계의 한길 위에서

11권은 함석헌 선생이 외국 여행을 하는 중에 쓴 글들이다. 선생은 세 번 외국 여행을 다녀왔는데 마지막이 1979년이었으니 연세가 여든이었을 때였다. 수개월 동안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며 교민을 만나고 강연을 했으니 체력과 정신력이 대단했던 것 같다. 혁명을 꿈꾸고, 지구의 미래를 사색하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감출 수 없었던 선생은 여든이라는 나이지만 정신은 청춘이었다. 외국에서 쓴 글에는 도리어 한국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 적다. 그것은 선생의 여행 목적이 주로 퀘이커 모임이나 회의에 참석하는 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에 서구와 비교하여 편협한 우리 국민성을 비판하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우리나라 사람의 가장 나쁜 버릇이 당파 싸움이요, 가장 결점이 생각이 좁은 것이라는 걸 외..

읽고본느낌 2013.04.28

잃어버린 것들 / 박노해

노래방이 생기고 나서 사람들은 방문을 벗어나면 노래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내비게이션이 나오고 나서 택시 기사들마저 모니터를 벗어나면 길눈이 어두워져 버렸다 컴퓨터가 나오고 나서 아이들은 귀 기울여 듣고 기억하고 가만히 얼굴을 마주 보는 법을 잃어버렸다 자동차 바퀴에 내 두 발로 걷는 능력을 내주고 대학 자격증에 스스로 배우는 능력을 내주고 의료 시스템에 내 몸 안의 치유 능력을 내주고 국가 권력에 내 삶의 자율 권력을 내주고 하나뿐인 삶으로 내몰리면서 나는 삶을 잃어버렸다 - 잃어버린 것들 / 박노해 천지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자공이 남쪽으로 초나라에서 유세를 마치고 진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한음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한 장부가 밭두렁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물길을 내고 우물에 들어가..

시읽는기쁨 2013.04.27

알록제비꽃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제비꽃 종류가 대략 50종 정도다. 아마추어 야생화 애호가인 박승천 씨가 펴낸 책에는 52종의 제비꽃이 소개되고 있다. 그중에서 내가 본 것은 고작 10종이다. 야생화에 관심을 가진 지 20년이 되어 가는데 이 정도밖에 만나지 못한 것이다. 아마 더 만났겠지만 이름을 몰라서 그냥 지나친 것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제비꽃을 전부 볼 욕심도 가졌지만, 지금은 하향 조정했다. 20종 정도만 만나도 만족하겠다. 이 알록제비꽃을 나의 제비꽃 목록에 열한 번째로 등록한다. 알록제비꽃의 특징은 심장형 잎에 난 흰 줄무늬다. 잎 자체만으로도 관상용으로 가치가 있다. 잎 뒷면은 갈색을 띈다. 용인자연휴양림에서 이제 막 피어난 알록제비꽃을 만났다.

꽃들의향기 2013.04.26

국립현충원 수양벚나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경내만큼 수양벚나무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은 보지 못했다. 대개 벚나무들 사이에 한둘씩 끼어 있지만 여기서는 대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 나무가 제일 크다. 얼마나 큰지 카메라를 최대 광각으로 해도 잘 잡히지 않는다. 다른 수양벚나무는 어느 정도 높이로 자란 뒤에는 가지가 아래로 늘어지는데 이 나무는 위로 힘차게 뻗어 올랐다. 수양벚나무에도 여러 품종이 있는 것 같다. 수양벚나무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이 나무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나무 옆에 있다 보면 지나는 사람들이 감탄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야, 희한하게 생겼다. 꼭 수양버들 같애." 수양벚나무라는 이름도 그 모양에 어울리게 잘 지은 것 같다. 수양벚꽃이 달린 늘어진 가지가 봄바람에 하느작거리는 ..

천년의나무 2013.04.26

호암미술관 반송

오래된 소나무는 아니지만 수형이 아주 예뻐 이곳에 올린다. 첫눈에 단아한 고려청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간결한 조형미가 빼어나다. 동서남북 어디에서 봐도 똑같다. 귀족적 고상함이라고 할까, 호암미술관 분위기가 나는 반송이다. 미술관 마당에는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공작새가 한 마리 있다. 사람 모인 곳을 일부러 찾아다닌다. 가끔 울기도 하는데 공작새 소리는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마침 옆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반송이야말로 소나무의 공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년의나무 2013.04.25

자꾸 늘어나는 모임

퇴직하면서는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지내고 싶었다. 인생의 한 매듭에서 정리할 건 정리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마침 서울을 벗어나 광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잘 됐다 싶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과 만나는 모임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핑계인지 모르지만 인간관계를 칼로 무 자르듯 할 수는 없었다.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겉과 달리 내심은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사람들마저 만나지 않는다면 자신만의 좁은 세계에 갇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의 부부 모임이 생겼다. 성당에 다니는 여인네들끼리 반모임을 하다 보니 서로 친해지게 되었고 남자들도 포함시키자고 해서 부부 모임으로 확대되었다. 나로서는 꺼려지는 조건만 갖추고 있어 나가지 ..

길위의단상 2013.04.25

호암미술관 벚꽃

가시는 벚꽃이 아쉽고 미련이 남아 오늘은 호암미술관으로 향했다. 벚꽃을 감상한다기보다 어떻게 찍어야 사진이 잘 나올까, 라는 고민이 더 컸다. 자꾸 찍다 보면 나름대로 터득되는 게 있지 않겠는가. 호암미술관을 가자면 에버랜드 옆을 지나가야 한다. 예전에 이름이 자연농원이었을 때 아이들 데리고 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호암미술관 주변은 벚꽃 명소로 유명하고, 올해는 지난 주말에 벚꽃 축제도 열렸다. 호암미술관 앞길을 가실벚꽃길이라 부른다. 그 옆에는 호수가 있고 맞은편 산은 벚꽃으로 하얗다. 지금은 벚꽃 때가 살짝 절정을 지났다. 그래도 지나가는 사람들은 새처럼 지저귄다. "와, 어쩜 어쩜, 너무 예쁘다." 호암미술관 정원은 늦은 매화 향기로 가득했다. 미술관과 그 주위는 잘 꾸며진 인공 정원이다. ..

꽃들의향기 2013.04.24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얼마 전에 어느 인기 강사가 구설수에 휘말린 일이 있었다. 자기계발서 같은 거 안 보고 인문학 서적을 본다는 젊은이에게 그는 이렇게 일갈했다. "어디 갖다 쓸려고? 인문학 서적을 보고 느낀 정수를 자기계발서로 쓴 거야. 건방 떨지 말고 자기계발서도 봐." 결국 그는 논문 표절까지 논란이 되더니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 잘 나가다가 한순간에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그에게 동정이 되는 바도 있지만, 인문학 서적의 정수를 모은 게 자기계발서라는 그의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인문학 서적과 자기계발서는 애초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는 사람들에게 이 책 를 권하고 싶다. 세상과 나를 지금과는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책 제목 그대로 노력과 열정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

읽고본느낌 2013.04.24

여인의 노래 / 이옥

一結靑絲髮 相期到蔥根 無羞猶自羞 三月不共言 검은 머리 한데 맞대고 하나로 맺어 파뿌리 되도록 함께 살자고 했지요 부끄럽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부끄러워져 낭군에게 석 달 동안 말도 못했지요 四更起梳頭 五更候公모 誓將歸家後 不食眠日午 4경에 일어나 머리 빗고 5경에 어른들께 문안드렸다 맹세하노니, 친정에 돌아간 뒤 먹지도 않고 대낮까지 늦잠 자리라 桃花猶是賤 梨花太如霜 停勻脂與粉 농作杏花粧 복사꽃은 너무 천박하고 배꽃은 너무 쌀쌀맞네 연지분 화장을 잠시 멈추고 살구씨 화장을 하네 歡言自酒家 농言自倡家 如何汗衫上 연脂染作花 당신은 술집에서 왔다고 말하지만 기생집에서 온 줄 전 알아요 어째서 속적삼 위에 연지가 꽃처럼 물들었나요 亂提羹與飯 照我面門擲 自是郎變味 妾手豈異昔 국그릇 밥그릇 마구 집어 내 얼굴을 겨냥..

시읽는기쁨 2013.04.23

논어[28]

선생님이 계씨를 평하여 말씀하시다. "여덟 줄의 춤을 제 집에서 추게 하니 그런 짓을 하는 솜씨면 무슨 짓은 못할까?" 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세 대부의 집안에서 천자의 노래로 제사를 지내니, 선생님 말씀하시다. "'줄줄이 늘어선 제후들, 천자의 묵묵한 모습'이 세 대부 집안의 어느 구석에 있는가 말이야." 三家者以雍徹 子曰 相維벽公 天子穆穆 奚取於三家之堂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람이 사람답지 않으면 예법은 무엇하며, 사람이 사람답지 않으면 음악은 무엇하노!" 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 八佾 1 당시 노나라에는 계손(季孫), 맹손(孟孫), 숙손(叔孫)의 세 대부 집안이 권력을 잡고 있었다. 계씨(季氏)가 천자만이 행할 수 있는 팔일무(八佾舞)를 자기 집에서 추게 했다는 것..

삶의나침반 2013.04.23

서울대공원 벚꽃

가까이 있는 서울대공원에 벚꽃을 보러 갔다. 평일인데도 상춘객들이 상당히 많았다. 화사한 벚꽃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는데 마음먹은 대로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 흰 꽃은 적정 노출 맞추기가 상당히 어렵다. 대략 셔터를 눌러도 예쁘게 나오는 꽃이 있는 반면, 어떤 꽃은 아무리 고심을 하고 찍어도 결과가 신통찮다. 나에게는 벚꽃이 들어간 풍경이 그렇다. 이때껏 제대로 찍어보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숙제는 다시 내년으로 미루어야 할까 보다.

꽃들의향기 2013.04.22

사람은 왜 일을 하는가?

"다 먹고 살기 위해서지." "돈만 있으면 일 안 하고 놀 텐데." 농담하듯 흔히 내뱉는 이런 말들이 빈말이라는 건 퇴직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유유상종이라고 아무래도 현역에서 떠난 사람들과 자주 만나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의 고민이 마땅한 일거리에 관한 것이다. 먹고 사는 것과는 별로 연관이 없는 사람들인데도 여전히 일을 찾는다. 여기서 일이란 어딘가에 소속되고 규칙적으로 출퇴근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로또에 당첨되면 사람들은 일을 안 할까? 그래도 대부분은 규칙적인 일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역시 여유가 생긴다면 일없는 공허를 견디지 못 할 것이다. 평소에 열심히 일 한 사람들이 일의 관성에서 벗어나기는 더 어렵다. 노는..

참살이의꿈 2013.04.22

달팽이의 귀환

작년 가을에 고향에서 올라올 때 어머니가 여러 종류의 채소를 싸주셨다. 그 더미 속에 묻혀 달팽이 한 마리가 따라온 걸 집에 와서야 발견했다. 줄을 잘못 섰다가 졸지에 정든 땅과 생이별한 신세가 된 것이다. 다시 돌려보낼 길은 없고 집에서 한 번 길러보자 하고 화분에 배춧잎을 깔아 새 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웬걸,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달팽이가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온 베란다를 뒤졌지만 도저히 찾지 못했다. 새 환경이 낯설었는지 어디로 숨어버린 것 같았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수색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달팽이는 잊혀졌다. 사라졌던 달팽이가 오늘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화분에 붙어 있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여섯 달 만이었다. 살아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는데, 돌아온 탕..

사진속일상 2013.04.21

효종왕릉 느티나무

효종왕릉 재실 뜰에는 회양목 외에 느티나무도 한 그루 있다. 수령이 5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나무다.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 재실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관리하시는 분이 말하길 잎이 돋아나면 더 멋있다고 하신다. 특히 첫눈이 내리면 최고로 환상적이라고 덧붙이신다.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효종왕릉 재실(齋室)은 여느 가정집과 비슷하다. 아담한 건물들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포근하다. 뜰에 있는 이 느티나무가 그런 분위기를 더욱 살린다. 옆에 있는 세종왕릉인 영릉과 달리 이곳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늘 조용하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느티나무의 변신을 지켜보고 싶다.

천년의나무 2013.04.21

효종왕릉 회양목

세종왕릉인 영릉(英陵) 옆에는 효종왕릉인 영릉(寧陵)도 있다. 두 능이 한글 이름은 같다. 효종왕릉 재실(齋室) 뜰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양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회양목이라고 한다. 여기에 재실이 조성된 게 1763년이라니 수령은 약 300년 정도로 짐작한다. 키는 4.7m고, 줄기 둘레는 21cm다. 워낙 더디게 자라는 나무라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전에 최고령이었던 용주사 회양목이 고사하고 난 뒤에 효종왕릉 회양목이 천연기념물 자리를 물려받았다. 2005년의 일이었다. 이 회양목은 수형이 예쁘다. 무척 곱게 자랐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침 회양목에는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었다. 먹이도 먹지 않았는지 삐쩍 마른 모습이 애처로웠다. 동물이 자식을 키워내는 정성은 갸륵..

천년의나무 2013.04.21

영릉 소나무

여주에 있는 영릉(英陵)에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잠들어 있다. 왕릉은 어디나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영릉의 소나무는 특별히 더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느낌이다. 쭉쭉 뻗은 소나무가 팔등신의 미끈한 미인들을 보는 것 같다. 그중에서 제일 눈길을 끄는 게 수복방(守僕房) 앞에 있는 반송이다. 다섯 개로 갈라진 가지가 균형있게 잘 자랐다. 반송치고는 키도 상당히 크다. 수복방은 제기를 보관하거나 능을 지키는 관리인 수릉관(守陵官)이나 청소 등의 허드렛 일을 맡아보던 일종의 관노비인 수복(守僕)이 거처하던 곳이다. 영릉을 둘러싼 소나무 사이를 거닐면서 솔바람을 맞아보면 눈과 마음이 절로 시원해진다.

천년의나무 2013.04.20

영릉 진달래

4월 봄날씨가 여간 험하지 않다. 꽃 개화 시기가 들쑥날쑥이다. 이제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방에도 진달래가 한창이다. 세종대왕릉인 여주 영릉(英陵)을 둘러싸고 있는 산도 마찬가지다. 영릉의 진달래 구경도 괜찮다. 찾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호젓해서 좋다. 이곳은 지금도 계획적으로 진달래를 계속 심고 있다. 얕은 야산 한쪽 면이 온통 진달래 밭인데 오는 30일까지만 특별 개방한다. 진달래 군락을 감상하며 가볍게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꽃들의향기 2013.04.19

철 지나 찾아가본 양평 산수유마을

양평군 개군면 산수유마을 꽃축제가 지난 6, 7일에 열렸다. 이미 열흘 넘게 지났지만 양평을 지나는 길에 한 번 들러보았다. 혹시나 했지만 산수유꽃은 끝물이라 색깔이 칙칙했다. 본래의 화사한 색감은 날아갔다. 이번에는 마을을 지나 추읍산 밑까지 올라가 보았다. 꽃에는 흥미를 잃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중에 산 아래에 있는 전원주택 단지가 눈길을 끌었다. 산으로 둘러싸여 새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곳이었다. 이런 데서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잠시 꿈나라에서 헤맸다.

꽃들의향기 2013.04.18

함석헌 읽기(10) - 오늘 다시 그리워지는 사람들

제10권에는 함석헌 선생이 존경하는 인물들에 대해 쓴 글이 실려 있다. 선생이 제일 존경한 사람은 간디였는데, 그에 대해 쓴 글이 7편으로 제일 많다. 그다음이 남강 이승훈으로 5편이다. 나머지는 유영모, 우치무라 간조, 김교신, 장준하, 셸리가 등장한다. 함 선생은 남강의 전기도 썼다. 남강 선생은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으나 1907년 평양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에 큰 감명을 받고 구국 운동에 뛰어든다. 도산의 연설이 끝나자 남강은 인파를 헤집고 연단으로 나아가 하단하는 도산의 손을 잡으며 당장 머리를 깎고 옳은 일을 위해 나서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그때 남강은 43세, 도산은 30세였다. 도산의 평양 연설은 워낙 유명해 과연 어떤 내용인가 궁금했는데 함 선생이 쓴 '남강 전기' 안에 그 내용이 ..

읽고본느낌 2013.04.18

논어[27]

선생님 말씀하시다. "제 조상도 아닌데 제사를 모신다면 아첨하는 거다. 정의를 보고도 주춤거리는 것은 용기가 없는 탓이야." 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 - 爲政 17 에서 '의(義)'자를 만나면 반갑다. 인(仁)과 의(義)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의가 빠진 인이란 절름발이다. 세상을 바로잡는 힘은 수오지심(羞惡之心)에서 나온다. 의를 강조한 사람은 맹자였다. 맹자는 말했다. "생명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의 역시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양자가 함께 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면 나는 목숨을 버리고 의를 선택할 것이다[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맹자에게 의는 목숨보다 앞서는 가치였다. '정의를 보고도 주춤거리는 것은 용기가 없는 탓이다'는 나..

삶의나침반 2013.04.17

긴 질문에 대한 짧은 대답 / 이화은

밤새워 비 내리고 아침 둥굴레순 그 오래 묵은 새촉이 불쑥 뛰쳐 나왔습니다 올봄도 온 우주의 대답이 이렇듯 간단명료 합니다 - 긴 질문에 대한 짧은 대답 / 이화은 밤새 친구들과 통음하며 세상의 불의에 대해 울분을 토하고 절망한 뒤 밖에 나선 새벽, 깜깜한 밤하늘에 별 하나가 반짝이며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시읽는기쁨 2013.04.16

통찰력

김규항 씨는 사물과 현상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그분의 글은 주제에 맞는 낱말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제자리에 배치되어 있다. 군더더기가 없다. 글을 참 잘 쓰는구나, 라는 감탄이 절로 난다. 글 쓰는 사람의 준범으로 삼을 만하다.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역시 눈에 띄는 글이 여럿 발견된다. 요사이는 경구 비슷한 단문이 많다. 좋은 글은 세상에 대한 통찰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최근에 올린 글 중에서 몇 개를 골라 보았다. 돛과 닻 자전거를 탈 때 바람이 뒤에서 불면 몸은 돛이 되고 앞에서 불면 몸은 닻이 된다. 자전거를 탈 때만은 아니다. 몸은 언제나 우리의 돛이자 닻이다. 최악의 그늘 진보적 시민들이 최선보다 차악을 선택하는 현상은 진보의 현실적 모색이라 설명되곤 하지만 실은 ..

길위의단상 2013.04.15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장준하 선생의 유해가 경기도 파주시 장준하 공원에 안장되었다. 옛 산소의 축대가 무너지고 이장하는 과정에서 선생의 유골이 38년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선생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무성했는데 결국 외부 가격에 의한 두개골 함몰로 사망하였음이 거의 밝혀졌다. 박정희 독재 정권이 저지른 또 하나의 살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준하 선생의 사망 원인을 직접 조사한 고상만 씨가 당시의 조사 상황과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장준하 의문사 사건 조사관의 대국민 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짧은 조사 기간과 대통령 탄핵에 따른 정치적 상황으로 그때는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 의문사위원회에서는 사건에 대해 '인정'이나 '기각', '진..

읽고본느낌 2013.04.14

서울대공원 산림욕로 걷기

용두회 29차 모임으로 서울대공원 산림욕로를 걸었다. 일주일 가까이 이어진 꽃샘추위가 누그러진 날이었다. 이맘때쯤이면 서울대공원 벚꽃이 활짝 폈을 텐데 맺힌 꽃봉오리가 펴지지를 않고 있다. 벚꽃 축제가 시작된 여의도도 마찬가지다. 산천의 초목들이 전부 움츠러들었다. 그래도 이미 봄의 방아쇠는 당겨졌다. 산길에는 귀룽나무의 초록색이 환했다. 대공원 안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 나온 가족들의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내 아이들 데리고 저렇게 대공원에 놀러다닌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원래는 한 바퀴를 돌 예정이었지만 오후에 결혼식에 가야 하는 일행이 있어서 반으로 단축했다. 그래도 세 시간이나 걸렸다. 이만한 길이가 오히려 지금의 내 몸에도 알맞다. ..

사진속일상 2013.04.13

금촌동 은행나무

파주에 간 길에 잠시 만나고 온 은행나무다. 파주시 보호수로 수령이 500년 정도 되었다. 높이는 20m, 줄기 둘레는 5m다.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한 나무로 믿어서 경사스러운 일이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두 개의 줄기가 V자 모양으로 생겼는데 지금은 많이 노쇠해 보인다. 마을 공동체의 쇠락과 함께 나무도 생기를 잃어가는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3.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