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 36

논어[33]

자하가 묻기를 "방긋 웃는 입매, 반짝이는 눈동자, 흰 바탕에 눈부신 칠이여!"란 무슨 뜻입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림은 흰 바탕 위에 그리는 것이다." "예도 나중 일인가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상이 나를 깨우쳐 주는구나! 인제 너하고 시를 이야기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子夏問曰 巧笑천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 八佾 6 스승과 제자 사이의 선문답 같다. 시에서 그림으로, 그리고 예에 대한 대화로 이어지더니 돌연 시를 논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나아간다. '방긋 웃는 입매, 반짝이는 눈동자, 흰 바탕에 눈부신 칠이여!'란 시경(詩經)에서 미인을 묘사하는 구절이다. 그 의미를 공자는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한 마디로 표현한다. 흰 ..

삶의나침반 2013.05.31

성황리 소나무(2)

의령을 지나던 길에 이 나무의 안내판을 도로에서 우연히 보았다. 5년 만의 재회였다. 나무는 그때와 다름 없이 마을 뒷산에서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달라진 건 소나무 앞으로 '역사문화 부자길'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 회장 생가부터 이곳까지 만들어진 길이다. 그래도 '부자길'이라는 이름은 좀 그렇다. 성황리 소나무는 남성적인 느낌이 강한 나무다. 드러난 뿌리나 가지의 생김새가 굉장히 힘차다. 그러나 걱정되는 점도 있다. 줄기에서 옆으로 펼쳐진 가지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버팀목이 왠지 불안해 보인다. 앞으로도 거센 태풍을 잘 이기고 명목으로서의 자리를 잘 지켜가길 빌 뿐이다.

천년의나무 2013.05.31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

독일인답지 않은 독일인인 히르슈하우젠이 쓴 행복론이다. 서점에는 행복을 주겠다는 책이 넘쳐난다. 이 책도 그런 범주의 하나지만 조금은 독특하고 색다르다. 는 인간 심리와 최근의 뇌연구 결과를 인간 행복과 연결시켜 유머러스하게 풀이한 재미있는 책이다. 맛있게 요리한 음식을 맛보는 것 같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유쾌하다. 지은이는 행복을 다섯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 공동의 행복이다. 사랑, 우정, 가족 등과 관계된 모든 것을 말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큰 행복이며, 행복과 불행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둘째, 우연의 행복이다. 영어로는 'luck'으로서 행운이나 좋은 기회, 뜻밖의 기분 좋은 만남, 재수 좋은 발견, 길거리에서 주운 동전 등이 주는 기쁨이다. 지속적인 행복은..

읽고본느낌 2013.05.28

신전리 이팝나무

이팝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진 데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여름이 시작될 시기인 입하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고 하다가 이팝나무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나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덮여서 이밥, 즉 쌀밥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둘 다 일리가 있는 설명이다. 경남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에 있는 이 이팝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수령이 350년이나 되고, 키 12m, 줄기 둘레 4.2m에 달한다. 그러나 많이 노쇠한 모습이다. 줄기는 썩어 가운데가 비어 있고. 한 편은 가지도 잘려 나갔다. 이런 상태에서나마 꽃을 피우고 있는 게 대단하다. 이팝나무 옆에는 비슷한 수령의 팽나무가 있다. 둘은 마치 부부처럼 나란히 서 있는데, 두 나무가 만드는 풍경이 아름답..

천년의나무 2013.05.27

늙을수록 사람들 속에서

오래전부터 내 꿈은 사람들과 세상에서 벗어나 적막강산에 들어가 사는 것이었다. 모든 욕심 내려놓고 산과 나무와 풀로만 친구하며 살고 싶었다. 사람 소리가 절절히 그리워지도록 철저히 홀로이고 싶었고 외로워지고 싶었다. 나름대로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인간에게 너무 부대낀 게 원인이었지만 그것 역시 내 천성이 그러한 탓이었다. 퇴직을 하고 광주로 내려와서는 인간과의 마찰은 거의 사라졌다. 여기가 산골 초막은 아니지만 눈을 감고 있으면 강원도 심심산골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아침이면 새 소리가 잠을 깨우고, 봄이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진동한다. 창문을 열면 맑은 공기에 풋풋한 시골 냄새가 풍긴다. 종일 있어도 사람 하나 만나지 않고 지나는 날이 많다. 그러다 보니 적막강산에 대한 꿈도 많이 시들해졌다. 굳이 파라다..

참살이의꿈 2013.05.26

좌수영지 푸조나무

부산 좌수영지(左水營址)에는 곰솔 외에 또 다른 천연기념물 나무가 있다. 푸조나무다. 푸조나무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름부터 특이하다. 어원을 살펴보면 푸조나무를 한자로 조엽수라고 하는데 '거칠 조'자를 쓴다. 우리말 '푸'와 한자의 '조'가 합쳐져서 '푸조'라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푸'는 '풀'을 의미하거나 '가꾸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푸조라는 이름에는 거칠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잎이나 나무의 모양새가 전체적으로 거칠다. 푸조나무는 주로 남쪽 지방 해안가에서 자란다. 곰솔과 팽나무처럼 소금기를 잘 견디는 나무다. 우리나라에는 세 그루의 천연기념물 푸조나무가 있는데 이 좌수영지 푸조나무가 그중 하나다. 이 나무에는 서낭당 할머니의 넋이 깃들어 있어 마을의 안녕을 지켜준다고 ..

천년의나무 2013.05.25

좌수영지 곰솔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좌수영성지(左水營城址)는 조선시대 때 좌수영이 주둔한 곳이다. 무관 정3품인 수군절도사가 근무했던 좌수영은 낙동강 동쪽에서 경주까지의 경상도 동쪽 해안 방어를 맡고 있었다. 성 둘레는 약 2.8km, 성벽 높이는 4m였다. 지금은 관리 소홀로 대부분 유실되었다. 이곳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곰솔이 있다. 좌수영이 있을 당시 이 나무에 신이 들어있다고 믿어 군선을 보호하고 무사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며 신성시했던 나무였다. 나이는 400살이 넘었고, 키 22m, 줄기 둘레 4.1m나 되는 큰 나무다. 군사 시설에 있는 나무답게 우람하고 용맹하게 생겼다. 주변에 나무들이 많아 한 눈에 들어오게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옆에는 200년이 넘은 소나무도 나란히 자라고 있다. 좌수영 옛 시설..

천년의나무 2013.05.25

사는 기쁨 / 황동규

1 오디오 둘러메고 한강 남북으로 이사 다니며 개나 고양이 곁에 두지 않고 칠십대 중반까지 과히 외롭지 않게 살았으니 그간 소홀했던 옛 음악이나 몰아 들으며 결리는 허리엔 파스 붙이고 수박씨처럼 붉은 외로움 속에 박혀 살자, 라고 마음먹고 남은 삶을 달랠 수는 없을까? 2 사는 건물을 바꾸지 않고는 바꿀 수 없는 바램이 있다. 40년 가까이 아파트만 몇 차례 옮겨 다니며 '나의 집'으로 가는 징검다리거니 생각했다. 마지막 디딤돌에서 발을 떼면 마련한 집의 담을 헐고 마당 절반엔 꽃을 심자. 야생화 밟지 마라 표지 세워논 현충원 산책길엔 도통 없는 노루뒤 돌단풍 은방울꽃 그래, 몰운대(沒雲臺)에서 눈 크게 뜨고 만난 은방울꽃 카잔차키스 묘소에 열심히 살고 있던 부겐벨리아 루비보다 더 예쁜 루비들을 키우는 ..

시읽는기쁨 2013.05.24

구량리 은행나무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구량리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조선 초기에 이지대(李之帶) 선생이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선생은 1394년(태조 3년)에 경상도 수군만호로 있으면서 왜구가 탄 배를 붙잡은 공으로 임금으로부터 상을 받았고, 그 후 벼슬이 높아져 한성판윤(漢城判尹)이 되었다. 1452년에는 수양대군이 김종서, 황보인 등을 죽이고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키는 등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내려와 살았다. 이때 한양에서 가지고 와 연못가에 심었던 것이 이 은행나무라고 전한다. 이 전설이 맞는다면 나무의 나이는 560년이 넘는다. 현재 나무 높이는 22m, 줄기 둘레는 12m에 이른다. 천연기념물 64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를 찾아가는 길이 옹색하여 차를 몇 번이나 되돌려야 했다. 동네 할아..

천년의나무 2013.05.23

논어[32]

선생님 말씀하시다. "군자는 다투지 않는다. 다툼이 있다면 활쏘기 정도지. 서로 절하면서 당상에 오르고, 지면 술을 마시니, 군자의 싸움이지!" 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 君子 - 八佾 5 공자가 말한 '군자무소쟁'(君子無所爭)을 실제 삶과 어떻게 연결할지 를 삶의 지침서로 삼는 사람에게는 고민으로 다가올 것이다. 경쟁 없이 현대 사회를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다투지 않고 모든 걸 양보하면서 살 수 있을까? 적당히 처신하는 어떤 비결이라고 있는 걸까? 군자에게 다툼이 있다면 활쏘기 정도라고 공자는 말한다. 그것도 서로 예를 갖춰 절하면서 당상에 오르고, 승패가 가려지면 내려와서는 진 사람이 벌주를 마신다. 이기고 진 데 따른 감정의 찌꺼기란 없다. 군자의 싸움이란 그 정도라야 한..

삶의나침반 2013.05.23

김수영 산문집

김수영 시인의 정의에 따르면 '지식인'이란 '인류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생각하고, 인류의 고민을 자기의 고민처럼 고민하는 사람'이다. 지식을 자신의 이(利)를 탐하는 데 쓰는 사람은 사이비 지식인이요 지식 장사꾼일 따름이다. 우리 시대에 지식인이라는 이름값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시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인이 쓴 시보다 산문을 읽는 게 훨씬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김수영의 산문을 통해 김수영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냉철한 현실감각과 날카로운 비판 의식, 자기 성찰, 속물에 대한 경계, 반짝이는 천재성, 유머, 맑은 양심 등, 이번에 시인의 산문을 읽으며 이런 느낌이 들었다. 민음사에서 나온 중 두 번째 권이 산문집이다. 수필과 시론, 평론 등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 1부에 수록된 수..

읽고본느낌 2013.05.22

범어사 등나무 군락

부산 범어사(梵魚寺) 옆 계곡에는 등나무가 무리 지어 자라는 군락지가 있다. 6.5ha 면적에 6,500여 그루가 자라는 엄청난 규모다. 그래서 이 계곡의 다른 이름이 등운곡(藤雲谷)이다. 전에는 베어 쓰기를 반복한 탓에 제일 오래된 등나무라도 나이가 100년 남짓 된다고 한다. 큰 것은 줄기 둘레가 140cm, 길이가 15m에 이르는 것도 있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176호로 지정되어 있다. 등나무는 혼자 곧바로 서지 못하고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간다. 굽히지 않고 꿋꿋한 지조를 지켜온 옛 선비들은 등나무의 이런 특성을 싫어하여 집안에는 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여름에 등나무 그늘이 만드는 시원함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다. 평상에 누워 기묘하게 비틀어진 등나무 줄기를 감상하는 맛도 좋다. 지금이 등나..

천년의나무 2013.05.22

황매산 철쭉

경남 합천과 산청 경계에 있는 황매산(黃梅山, 1108m)은 지금 철쭉제 기간이다. 지리산 바래봉, 소백산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철쭉의 명승지다. 의령에서 하룻밤을 자고 황매산으로 향했다. 철쭉 군락지인 해발 800m까지 차가 올라간다. 길이 끝나는 곳에 오토캠핑장이 있기 때문이다. 평일인데도 아침 10시가 되니 넓은 주차장은 만원이 되고, 길가에까지 차들이 가득 찬다. 산 높은 곳인데도 평지와 다름 없는 분위기다. 산의 능선과 사면을 따라 철쭉 군락이 엄청나게 넓다. 24일까지 철쭉제 기간이지만 철쭉은 한창을 지났다. 일부는 반 이상 꽃이 떨어졌다. 그런데도 장관을 연출한다. 날씨만 좋았다면 더 화사한 색깔의 철쭉을 즐겼을 텐데 그것이 아쉬웠다. 능선에서는 너무 바람이 세고 먹구름이 덮혀 정상까지..

꽃들의향기 2013.05.21

1,000km를 달린 여행

지난 토요일에 울산에서 친척 결혼식이 있었다. 먼 거리를 가면서 고작 결혼식만 달랑 참석하고 돌아오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부산에 있는 친구도 만나보고, 황매산 철쭉도 구경하고, 주변의 나무도 찾아보기로 했다. 2박3일 일정의 동선이 마련되었다. 아침 7시 30분에 집을 나섰는데 5시간이 걸려 울산에 도착했다. 사월 초파일이 들어간 사흘 황금연휴의 딱 중간 날이었다. 어렸을 때는 이웃에서 함께 자란 고종사촌들인데 이젠 각자 일가를 이루고 먼 곳에 흩어져 산다. 오랜만에 만나서 듣는 사연에는 세월의 신산함이 묻어 있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범어사에 들러 연등을 구경했다. 마침 저녁때라 연등에 환한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범어사 앞 모텔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오전에 부산에 있는 한 교회에서 사목을 ..

사진속일상 2013.05.21

직업병

얼마 전부터 손목과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원인을 추리해보니 책 보는 습관 때문이 아닌가 판단된다. 게으르다 보니 책을 볼 때는 주로 누워서 두 손으로 떠받치고 본다. 팔과 손가락에 큰 힘이 들어가야 하는 자세다. 편한 것만 찾다 보니 팔이 고생을 한다. 그래서 요사이는 배 위에 베개 두 개를 올려놓고 그 위에 책을 놓고 본다. 그래선지 통증이 많이 완화되었다. 게으른 백수의 직업병이다. 또 손가락 중에서는 오른손 둘째 손가락이 제일 아프다. 이 원인도 추리해 보니 너무 자주 마우스를 클릭한 탓인 것 같다. 하루에 서너 시간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보고, 필요한 정보를 찾는데 그 정도 시간이 든다. 그러다 보니 손가락 한 개가 혹사를 당한 모양이다. 업무..

길위의단상 2013.05.17

장난감 / 타고르

아이야, 너는 땅바닥에 앉아서 정말 행복스럽구나, 아침나절을 줄곧 나무때기를 가지고 놀면서! 나는 네가 그런 조그만 나무때기를 갖고 놀고 있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나는 나의 계산에 바쁘다, 시간으로 계산을 메꾸어버리기 때문에. 아마도 너는 나를 보고 생각할 것이다. '아침 나절을 저렇게 보잘것없이 보내다니 참말로 바보 같은 장난을 하시네!' 하고. 아이야, 나는 나무때기와 진흙에 열중하는 법을 잊어버렸단다. 나는 값비싼 장난감을 찾고 있다, 그리고 금덩이와 은덩이를 모으고 있다. 너는 눈에 띄는 어떤 물건으로도 즐거운 장난감을 만들어낸다. 나는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에 나의 시간과 힘을 다 써버린다. 나는 나의 가냘픈 쪽배로 욕망의 대해(大海)를 건너려고 애를 쓴다. 나 역시 유희를 하고..

시읽는기쁨 2013.05.16

논어[31]

계손씨가 태산에서 여제(旅祭)를 지내니, 선생님이 염유에게 물으시다. "너는 말리지 못했느냐?" 대답하기를 "말리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기막힐 일이다. 글쎄 태산이 임방만 못할까?" The chief of the Chi family was about to sacrifice to the T'ai mountain. The Master said to Zan Yu, "Can you save him from this?" He answerd, " I cannot." Confucius said, "Alas! will you say that the T'ai mountain is not so discerning as Lin Fang." 季氏 旅於泰山 子謂염由曰 女不能救與 對曰 不能 子曰 嗚呼 曾謂泰山 不..

삶의나침반 2013.05.14

올림픽공원 9경

며칠 전 서울에서 모임이 있어 나간 길에 올림픽공원에 들렀다. 10여 년 전 이 부근에 직장이 있었을 때는 자주 산책을 했던 곳이었다. 그때는 자투리 시간이 나면 이곳으로 나와 어슬렁거렸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서울 도심에 이렇게 넓은 녹지 공원을 만들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80년대 개발의 시대에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게 대단하다. 그때와 비교하면 나무가 울창해진 게 가장 큰 변화다. 대신 새 건물이 자꾸 들어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왠지 공원이 자꾸 비좁아지는 느낌이다. 뭘 자꾸 만들고 꾸미기보다 자연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는 게 나아 보인다. 올림픽공원에 9경이 있다고 해서 이번 기회에 하나씩 찾아보았다. 지하철 몽촌토성역에서 시작하여 반대편으로 나가며 순서대로 만났다. 금방 ..

사진속일상 2013.05.13

삼천동 곰솔

곰솔은 바닷가에서 자라기 때문에 해송(海松), 껍질 색깔이 검다 하여 흑송(黑松)이라고도 불린다.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에 있는 이 곰솔은 특이하게 내륙 지방에 있다. 원래 이곳은 인동 장씨의 선산이었는데, 곰솔은 선산을 지키는 나무였다. '장씨산송대(張氏山松臺)'라는 표지석이 아직 남아 있다. 전에는 열여섯 개의 가지가 펼쳐진 모양이 아름다워 학송(鶴松)이라고도 불렸다 한다. 그런데 나무가 지금처럼 처참하게 변한 건 2001년이었다. 당시 이 지역이 개발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땅값이 뛰었다. 그러자 나무가 죽으면 보호구역에서 해제될 것을 노린 누군가에 의해 독극물이 주입되었다. 나무 밑동에 공구로 구멍을 여러 개 뚫고 약을 넣은 것이다. 그렇게 나무는 죽어 갔다. 곰솔을 살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 결..

천년의나무 2013.05.12

대모산과 구룡산 둘레길을 걷다

서울에도 'Seoul Trail'이라 불리는 둘레길이 있다. 서울 외곽에 있는 산들을 연결하는 182km의 길이다. 동쪽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덕산, 일자산, 대모산, 구룡산, 우면산, 관악산, 삼성산, 봉산, 복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구릉산, 망우산, 용마산, 아차산을 지난다. 일부 구간은 안양천과 한강변도 지나간다. 이번에 용두회에서 서울 둘레길 중 대모산과 구룡산 코스를 걸었다. 기존 등산로와 겹치기도 하지만 능선과 정상을 거치는 대신 산 옆구리를 지나서 간다. 길은 아주 걷기가 좋지만 대신 꼬불꼬불하다. 두 산을 지나는 길이가 7.4km다. 두 산 모두 300m 안팎이라 가볍게 봤는데 전혀 만만하지 않았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도 있을 것이고, 오랜만에 걸은 탓도 있을 것이다. 무려..

사진속일상 2013.05.12

함석헌 읽기(12) - 평화운동을 일으키자

이 책은 평화를 주제로 한 글과 강연집이다. 함석헌 선생이 평생 꿈 꾼 것이 평화의 세계였다. 한반도의 평화에서 세계의 평화, 그리고 내적으로는 마음의 평화까지 선생이 일관되게 싸운 것은 평화를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선생은 평화를 방해하는 제일 원인이 국가주의라고 본다. 국가의 지배자들은 민중을 통제하기 위해 분열시키고 싸움을 붙인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원수다, 의(義)다, 악(惡)이다 하고 서로 시비한다. 그들의 철학으로 하면 전쟁이 없어서는 아니 되고 상벌도 없어서는 아니 되고 차별도 없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한 세상에 평화는 있을 수 없다. 한 번 평화가 없어지면 그것이 본성인 양 잘못 생각하여 점점 더 악해진다. 이것이 오늘날까지의 인류 역사의 줄거리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

읽고본느낌 2013.05.10

혼자 산길을 걸을 때지요

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략 난감하지만 별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혼자 산길을 걸을 때지요." 내 삶의 에너지는 걸을 때 나온다. 길은 호젓한 산길이 좋다. 그리고 동행 없이 홀로여야 한다. 이 세 가지 박자가 맞으면 내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아드레날린이 샘솟듯 분출한다. 혼자면 외롭지 않느냐고? 천만에, 전혀 그렇지 않다. 산길에는 사람 대신 풀과 나무 친구가 있다. 또한 꽃 친구도 나를 반겨준다. 이들과는 말 없어도 말 이상의 교감을 나눈다. 조용한 산책을 위해서는 산은 낮으며 부드럽고, 길은 익숙해야 좋다. 그래서 집 뒷산이야말로 제격이다. 정상까지 갔다 오는데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적당한 길이다. 그동안에 한두 사람을..

참살이의꿈 2013.05.10

배꽃

배꽃은 수수하다. 다섯 장의 하얀 꽃잎에 까만 수술이 달린 모습을 보면 주근깨가 난 하얀 얼굴의 소녀가 연상된다. 그리 잘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그래선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도 못한다. 배꽃에 대한 관심은 다른 꽃에 비해 덜한 것 같다. 배꽃을 한자로 이화(梨花)라 한다. 배꽃을 학교명으로 삼은 곳으로 이화여자대학교가 있다. 여학교에 꽃 이름이 많이 쓰일 것 같은데 막상 찾기 어렵다. 배화나 선화 같은 이름은 '꽃 화[花]'만 들어갔지 꽃 이름은 아니다. 이화여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1887년에 스크랜튼 부인이 운영하던 여학교에 고종이 내려준 이름이 '이화학당'이었다고 한다. 당시 정동에 있던 학당 근처에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기 때문이었거나, '이화정'이라는 정자 이름에서 땄을 것이라는 두 가..

꽃들의향기 2013.05.09

어버이날 나들이

어버이날에 장모님을 모시고 임실에 있는 옥정호엘 다녀왔다. 문밖 출입을 잘 못하시는 장모님에게 바깥바람을 쐬어드리기 위해서였다. 작년만 해도 걷기에는 큰 지장이 없었는데 수술을 한 후에는 더욱 연로해지셨다. 신록의 계절은 더욱 푸르렀고, 갑자기 오른 기온은 이미 성큼 여름이 다가온 듯했다. 자식 아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장모님의 자식 사랑은 정말 유별하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후 배우자 연금으로 생활하시는데 본인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못한다. 난방비를 아끼느라 겨울에도 집안에는 냉기가 싸늘하다. 그래서 모은 돈은 전부 자식들에게 준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다. 몸이 아파도 자식들 힘들게 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다. 아직도 다 큰 자식으로 노심초사하시는 걸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천성..

사진속일상 2013.05.09

돌고도는 인생

인생은 반환점을 찍고 오는 마라토너처럼 결국은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간다. 성공을 꿈꾸고 많은 것을 차지하려 하지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가는 게 인생이다. 독일의 히르슈하우젠이 이런 재미있는 말을 했다. ㅎㅎ... "인생은 돌고 돕니다. 한 살짜리 아기의 성공은 대소변을 가리는 것이고, 25세에는 성행위, 50세에는 돈이 성공이며, 75세에는 여전히 성행위를 하는 것이, 그리고 90세에는 다시 대소변을 가리는 것이 성공입니다."

길위의단상 2013.05.07

봄 논 / 이시영

마른논에 우쭐우쭐 아직 찬 봇물 들어가는 소리 앗 뜨거라! 시린 논이 진저리치며 제 은빛 등 타닥타닥 뒤집는 소리 - 봄 논 / 이시영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 듣기 좋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 보기 좋다고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논에 들어간 물이 벼를 키우고, 그 곡식이 생명을 기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땅의 차가운 물과 하늘의 뜨거운 불이 만나 나락을 만드는 것이다. 알갱이 하나하나는 곧 물과 불의 결합이다. 어렸을 때는 논두렁을 따라 잘 다녔다. 개울로 놀러 나갈 때는 논두렁을 지나야 했고, 학교에 오갈 때도 지름길이 논두렁이었다. 논두렁을 따라 걸을 때면 그 폭신폭신한 감촉이 좋았다. 좁아서 조심해야 했지만 장난꾸러기들은 일부러 뛰어가는 스릴을 즐겼다. 논두렁에는 한두 개 쯤 물이 ..

시읽는기쁨 2013.05.07

이사리 느티나무

줄기 속은 텅 비었고 둘레만 남아 있다. 그래도 큰 몸집을 지탱하면서 초록잎을 무성히 피웠다. 나무 아래 서니 수관이 부채살처럼 넓고 환하다. 고목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이 느티나무의 키는 13m, 줄기 둘레는 5.6m다. 안내문에는 나이가 220살로 나와 있다. 그런데 특별한 모양 때문인지 훨씬 더 쳐주고 싶은 마음이다. 경북 예천군 개포면 이사리에 있다.

천년의나무 2013.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