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 26

도담삼봉

고향에 가는 길에 도담삼봉에 들렀다. 도담삼봉은 중학교 다닐 때 소풍을 오기도 했고, 서울로 떠난 뒤에도 중앙선 열차를 타고 집을 오갈 때면 차창 밖으로 보인 정다운 풍경이기도 했다. M중학교에 근무할 때는 여름방학 때 반 아이들을 데리고 강변에 텐트를 치고 야영도 했다. 이런저런 추억이 서린 곳이다. 충주댐이 들어서면서 수량이 많아져 겨울인데도 이만한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예전에는 삼봉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강물이 흐를 뿐이었다. 삼봉과 강 건너 농촌 풍경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도담삼봉의 전설은 재미있다. 가운데 봉이 남편이고 왼쪽 봉이 본 마누라, 오른쪽은 첩이다. 부부 사이에 자식이 없어 남편이 첩을 얻었는데 임신한 첩이 자랑스레 배를 내밀고 있고, 남편은 첩을 바라보며 흐뭇해 한다. 화가 ..

사진속일상 2013.12.31

경안천 걷기

겨울이 되니 활동량이 확 줄어들었다. 대신에 늘어난 건 잠이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도 겨울잠을 잔다면 세상이 훨씬 조용해졌을 거라는 상상을 해 본다. 겨울이라 산에는 가지 않고 가끔 경안천에 나가 걷는다. 오늘은 집에서부터 목현천을 따라 경안천에 들어서 양벌대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16km 정도를 걷는데 4시간 가까이 걸렸다. 추위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공기는 싸늘했다. 새들 역시 천 가운데에 모여서 미동도 하지 않고 이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속에 가시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가시는 숨어있다가 불현듯 나타나 가슴을 콕콕 찔러댄다. 어떤 사람에게는 부모가, 어떤 사람에게는 자식이 가시로 박혀 있다. 건강이, 돈이 가시인 사람도 있다. 지금 당신의 '..

사진속일상 2013.12.29

불통 / 홍해리

이번 시집 제목이 무엇입니까? ''입니다. 시집 제목이 무엇이냐구요? '비밀'이라고요. 제목이 뭐냐구? '비밀'이라구. 젠장맞을, 제목이 뭐냐니까? 나 원 참 '비밀'이라니까. - 불통 / 홍해리 "민영화를 반대한다." "민영화가 아니다." "민영화하지 마라니까." "민영화 아니라니까." 철도노조와 정부가 불통을 작정한 대결을 펼치고 있다. 민영화는 핑계일 뿐 이참에 상대의 기를 꺾어버리려 한다. 도대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불통은 상대 입장을 이해하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데서 온다. 설득하고 타협해서 통합을 이끌어내는 게 정부가 하는 일이다. 내가 옳으니 너희들은 무조건 따라와라, 하는 건 민주 정부가 아니다. 철도에 왜 경쟁 체제를 도입해야 하는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전면적 민..

시읽는기쁨 2013.12.28

논어[62]

선생님 말씀하시다. "갈 길을 찾을 수 없는 세상이다. 배를 타고 바다로나 나갈까 보다. 나를 따라올 자는 아마 유일 거야!" 자로가 이 말을 듣고 벙실벙실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유는 나보다 용기가 있지. 머뭇머뭇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다." 子曰 道不行 乘부浮于海 從我者其由與 子路聞之喜 子曰 由也 好勇過我 無所取材 - 公冶長 4 이 대목에서는 세상에 대한 공자의 실망이 절실히 느껴진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배를 타고 멀리 벗어나고 싶어했을까? '도불행(道不行)'의 세상에 대한 한탄이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공자는 도피나 은둔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뛰어들어 그가 꿈꾼 이상을 펼쳐보려 애썼다. 도가 학파와 대비되는 점이다. 공자도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삶의나침반 2013.12.27

단주

올해 일어난 변화 중 제일 으뜸이 술을 끊은 것이다. 지난 6월에 단주를 결심하고 지금까지 잘 지켜왔으니 술잔을 입에 대지 않은지가 여섯 달이 되었다. 되돌아보아도 참 잘한 결정이었다. 앞으로도 다시 술을 가까이할 일은 없을 것이다. 술은 마실 때는 흥겹지만 뒷날은 고약했다. 후회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마셨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감당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필름이 끊기는 건 물론이고 집에 찾아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늙은이의 추태를 보였다. 또 술에 취하면 공격적이고 비판적이 되어 옆에 있는 사람을 괴롭게 했다. 확실한 해결책은 술을 끊는 것밖에 없었다. 적당히 절주하면 되지 않느냐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 되었다. 전에 있었던 일 중에 제일 아찔했던 건 골목에 주차해 놓은 트럭 밑에 들어가 잠이 들어버린 ..

길위의단상 2013.12.26

성탄절의 기도

더 낮아지고 더 비워지기를 바라는 기원이 촛불로 타오르는 아침에....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 고린토2서 8, 9 "주님은 거대한 분이시지만 스스로 작아지셨습니다. 주님은 부유하지만 스스로 가난해지셨습니다. 주님은 권력자이시지만 스스로 연약해지셨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맨 처음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은 맨 처음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건만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말씀이 참된 빛이셨으니 그 빛이 세상에 오시어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그분이 세상에 계..

사진속일상 2013.12.25

달과 토성의 파종법 / 손택수

매달 스무여드렛날이었다 할머니는 밭에 씨를 뿌리러 갔다 오늘은 땅심이 제일 좋은 날 달과 토성이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흙들이 마구 부풀어오르는 날 설씨 문중 대대로 내려온 농법대로 할머니는 별들의 신호를 알아듣고 씨를 뿌렸다 별과 별 사이의 신호를 씨앗들도 알아듣고 최대의 發芽를 이루었다 할머니의 몸속에, 씨앗 속에, 할머니 주름을 닮은 밭고랑 속에 별과의 교신을 하는 무슨 우주국이 들어있었던가 매달 스무여드레 별들이 지상에 금빛 씨앗을 뿌리던 날 할머니는 온몸에 별빛을 받으며 돌아왔다 - 달과 토성의 파종법 / 손택수 이탈리아의 악기 제작 명장이 바이올린을 만드는 데 쓸 나무를 고를 때, 나무의 나이나 재질만이 아니라 달의 위치까지도 고려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달이 수평선에 낮게 떠 있고..

시읽는기쁨 2013.12.24

논어[61]

선생님이 칠조개를 벼슬 살게 하였더니, 대답하기를 "저는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기뻐하였다. 子使 漆雕開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 - 公冶長 3 칠조개에게 벼슬자리를 주었더니 칠조개는 자신이 없다며 사양한다. 이를 보고 공자가 기뻐했다는 기록이다. 앞 절과 합쳐서 보면 공자가 칭찬하는 사람 윤곽이 나온다. 과묵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비단 공자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이런 사람은 신뢰를 받는다. 큰 인물이라면 마땅히 이런 인품을 갖춰야 한다. 스승으로부터 좋은 직장을 소개받았는데, 감당할 능력이 안된다며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인품이라면 공자도 기뻐했을 게 틀림없다. 공자는 사람됨을 보기 때문이다.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잘 꾸며 상품성을 높여야 하는 현대에서 칠조개 같은 사람은 버텨내기 힘들 ..

삶의나침반 2013.12.23

아내가 활짝 웃을 때

아내가 활짝 웃을 때는 손주와 함께 있을 때다. 숨어 있던 생의 에너지가 마구 폭발하는 것 같다. 둘이 같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운 구경거리다. 핏줄의 힘은 무섭다. 다들 손주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왜 그런지 나는 별로다. 그래서 별종이라는 말도 듣는다. 이놈은 외할머니와는 잘 놀면서 나만 마주치면 얼음이 된다. 말은 못해도 눈치는 9단이다. 웃는 얼굴을 찍자면 시간이 더 흘러야 가능하겠다. 돌이 갓 지난 손주는 아직 걷지는 못하고 다른 데를 의지하고 일어설 정도다. 그러다가 넘어지면서 얼굴을 부딪쳐 상처가 났다.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 이놈이 아장아장 걷게 될 따스한 봄이 기다려진다.

사진속일상 2013.12.22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한국 어머니들의 과도한 자식 집착에 대해 사회학자가 분석한 걸 보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다. 제일 큰 원인은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고 부부관계가 껄끄러우니까 남는 에너지를 자식에게 쏟는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남편은 바깥 일이고, 아내는 자식이다. 핑계는 가족을 위한다지만 실은 배우자에게서 생긴 공허함을 잊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일 뿐이다. 아이를 잘 기르고 싶다면 먼저 부모가 행복해야 한다. 집에는 냉기류가 흐르는데 자식은 행복해지라고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뿌리가 병든 나무와 같다. 아무리 가지를 치료하고 정성을 쏟아도 뿌리가 병들어 있으면 허사가 된다. 건강한 가정의 바탕에는 성숙한 개인이 있다. 성숙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끼리 결혼하면 건강한 가정을 바라기 어렵다. 독립적이지 못한..

참살이의꿈 2013.12.21

안녕들 하십니까?

어느 대학생이 붙인 대자보가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과 부드러운 내용이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다. 보통 대자보라고 하면 운동권 용어를 쓰는 격문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젠 시대가 변했다. 원리주의적 이념이나 투쟁적 언어는 통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피부에 닿는 소통과 공감의 언어가 아니면 관심을 끌 수 없다. 학생의 대자보는 사회 현실이나 정치에 무관심한 학우를 비판하기에 앞서 안녕들 하시냐고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감성적으로 접근하니 마음이 열린다. 안녕하지 못하다고 응답하는 많은 대자보가 이를 증명한다. 전에 진보 쪽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분이 방송 연설 때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란 멘트를 해서 신선한 느낌을 주었던 것과 비슷하다. 이젠 혁명도 감성..

길위의단상 2013.12.20

12월 / 박재삼

욕심을 털어버리고 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 그래도 1할은 된다고 생각할 때 옷 벗고 눈에 젖은 나무여 네 뜻을 알겠다 포근한 12월을 친구여! 어디서나 당하는 그 추위보다 더한 손해를 너는 저 설목(雪木)처럼 견디고 그리고 이불을 덮는 심사로 네 자리를 덥히며 살거라 - 12월 / 박재삼 올 한 해도 그런대로 잘 살았구나. 친구여, 너를 대견하다고 토닥거려주고 싶구나. 전에는 널 참 많이 나무랐지. 잘못한 것만 꼬집어서 심하게 힐난했지. 그러나 이젠 나도 너그러워졌는가 보다. 그래, 그만하면 됐다. 네 마음 잘 다스리면서 살아왔다. 모자라고 부끄러웠던 일 왜 없었겠니. 그래, 그만 하니 됐다. 12월의 이 자리가 참 포근하구나.

시읽는기쁨 2013.12.19

수산리 곰솔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수산저수지 옆에 서 있는 천연기념물 곰솔이다. 제주도에는 나무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어서 찾는데 애를 먹었다. 내비에 주소를 찍어도 엉뚱한 곳으로 안내했다. 천연기념물이라면 도로에서 들어가는 입구에 안내판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무를 처음 본 순간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힘들게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천연기념물 정도 되면 그 나무만의 독특한 위엄과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다. 수산리 곰솔을 옆에서 보면 마치 부채춤을 추는 모양이다. 균형이 맞지 않는 게 도리어 멋진 자태를 만들었다. 겨울에 눈을 이고 있으면 백곰이 저수지 물을 먹으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형상이 된다고 한다. 곰과 곰솔은 언어적으로도 잘 어울린다. 이 나무는 400여 년 전 수산리가 생길 때 어느 집 ..

천년의나무 2013.12.18

논어[60]

어느 사람이 말했다. "옹은 사람답기는 하지만 무뚝뚝합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재잘거려서야 됩니까! 입술에 붙은 말로 지껄이면 미움받기 꼭 알맞지요. 사람답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찌 재잘거려서야 됩니까!" 或曰 雍也 仁而不녕 子曰 焉用녕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不知其仁 焉用녕 - 公冶長 2 공자는 말 많은 걸 무척 싫어했다. 옹(雍)이라는 제자가 너무 무뚝뚝해서 탈이라는 어느 사람의 말에 공자는 반대로 답한다. 오히려 무뚝뚝하니 좋은 일이다. 제일 하급이 인(仁)하지 않으면서 말만 재잘거리는 사람이다. 인(仁)하지 않더라도 재잘거리지만 않는다면 사람다운 길로 갈 자격은 있다. 공자는 어눌한 걸 오히려 장점으로 본다. 사실 말에 대한 경계는 어느 경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도 '미련한 자는 말을..

삶의나침반 2013.12.18

교래리 팽나무

제주도가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건 나무 종류가 육지와 다른 때문일 것이다. 야자수 가로수라도 만나면 더할 나위도 없다. 길을 걷다가 보면 나무 이름이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다. 현지 주민에게 물어봐도 시원한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이 나무도 육지 같았으면 십중팔구 느티나무였을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느티나무가 육지만큼 흔하지 않다. 중부 지방에서 느티나무의 위치를 이곳에서는 팽나무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118번 도로변에 있는 이 팽나무는 수령이 300년 정도 되었다. 높이는 16m, 줄기 둘레는 4.5m다. 팽나무를 제주도 사람들은 '퐁낭'이라고 부른다.

천년의나무 2013.12.17

소로와 함께 한 나날들

제주도에 있는 동안 틈틈이 읽었던 책이다. 어린 시절을 소로와 함께 지낸 에드워드 월도 에머슨이 자신이 직접 지켜본 소로에 대해 썼다. 헨리 데이빗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태어나 이성보다는 감성을, 인간보다는 자연을 중시하는 간소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여러 직업을 가졌지만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산책하고 독서하며 글을 쓰는데 보냈다. 1845년에는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여의 실험적인 생활을 했다. 소로의 자유와 자연주의 정신은 그때의 경험을 쓴 에 잘 나타나 있다. 사실 지금의 내가 된 데는 소로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40대 중반에 읽었던 은 여주 밤골로 내려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 후로도 은 서너 차례나 더 읽었..

읽고본느낌 2013.12.17

정방동 후박나무

후박나무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중부 지방에서는 보기 어렵다. 반면에 남쪽 지방에서는 오래된 후박나무가 많다. 후박나무 껍질은 말려서 한약재로 쓴다. 울릉도 호박엿이라는 건 원래 후박나무 껍질을 넣어 만든 후박엿이었다고 설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호박을 넣어서 만드니 호박엿이 맞지만, 원조는 후박이라는 것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포기상대 구내에 있는 이 후박나무는 수령이 450년이 되었다. 나무줄기에서 그 연륜이 느껴진다. 키는 10.5m, 줄기 둘레는 4.6m다. 원래는 두 그루가 있었는데 한 나무는 태풍 피해를 입어 베어졌다고 한다.

천년의나무 2013.12.16

제주도(3) - 한라산 영실

겨울 산행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라산 영실코스를 걸어보기로 했다. 길이 미끄러우면 적당한 데서 내려오면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조심해야 할 구간은 그늘진 곳 일부였고, 나머지는 보통의 운동화로도 충분했다. 영실에서 한라산을 오르는 들머리는 해발 1,280m에서 시작한다. 영실에서는 한라산 백록담까지 오를 수는 없고, 대부분은 윗새오름(1,711m)을 거쳐 어리목으로 하산한다. 우리는 영실에 차를 주차해 놓았으므로 윗새오름까지 오른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약 4시간이 걸렸다. 영실기암. 이곳 영실 계곡의 웅장한 모습이 부처님이 불제자들에게 설법하던 영산과 비슷하다 해서 영실(靈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작은 바위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제자들 모습이다. 영실 계곡의 중심인 병풍바위로 수직 암..

사진속일상 2013.12.16

제주도(2) - 올레 7, 8, 9코스

올레 7코스는 외돌개에서 월평마을까지 13.8km다. 서귀포 해안을 대표하는 풍광인 외돌개에서 7코스가 시작된다. 12월이지만 가을 분위기가 나는 길. 야자수가 있는 풍경. 바닷가에서 맛보는 회 한 접시. 범섬. 아픔의 현장, 강정 해안. 8코스는 월평마을에서 대평포구까지 19.2km다. 8코스를 대표하는 갯깍주상절리대. 웅대한 규모에 놀랐다. 암벽에 핀 꽃. 하얏트리젠시호텔 앞으로 올레길이 지나간다. 6코스에 있는 칼호텔은 길을 폐쇄했는데 하얏트는 길을 개방해 주어서 고마웠다. 중문해수욕장. 8코스의 바다 풍경. 9코스는 대평포구에서 화순해변까지 7.1km다. 대평포구에서 바라본 박수기정. 박수기정은 '샘물이 솟는 절벽'이라는 뜻이다. 올레 9코스는 박수기정 위를 지나게 된다. 옛날에는 박수기정 위 평..

사진속일상 2013.12.15

서귀동 팽나무

화가 이중섭은 1951년 한국전쟁 때 제주도 서귀포에서 1년가량 머물렀다. 네 가족이 좁은 방 하나에서 살았지만 그에게는 제일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화가가 살았던 집에는 당시 집주인이었던 할머니가 지금도 살고 계신다. 주변은 이중섭 미술관을 비롯해 문화의 거리로 변모했다. 집 앞에 있는 이 두 그루의 팽나무는 화가가 제주도 생활을 할 때 쉼터 역할을 했던 나무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의 소재가 된 나무다. 수령은 200년 정도 되었다. 근처에 있는 아래 향나무도 마찬가지다. 화가는 작품 구상을 위해 이 향나무 아래서 자주 사색에 잠겼다고 한다. 이중섭의 체취가 묻어 있는 나무들이다.

천년의나무 2013.12.15

제주도(1) - 올레 5, 6코스

딸이 비행기표를 건네주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던 제주도를 가게 되었다. 갑자기 이루어진 여행이라 부랴부랴 숙소를 정하고, 주로 올레길을 걷기 위해 떠났다. 아내와 함께 한 8박9일의 제주도 여행이었다. 올레 5코스는 남원포구에서 쇠소깍까지 14.7km다. 남원포구 앞 바다.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비가 지나간 길. 나무의 윤곽이 한반도 지형을 만들었다. 5코스의 하이라이트인 큰엉 해안. 파도에 깎인 해식절벽이 길게 이어지고, 올레길은 절벽을 따라 나 있다. 위미리에 있는 동백나무 군락. 17세 되던 해 이 마을로 시집 온 현병춘(1858~1933) 할머니가 해초캐기와 품팔이 등 근면한 생활로 어렵게 모은 돈 35냥으로 이곳 황무지를 사들인 후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하여 한라산의 동백 씨앗을 따다가 뿌린..

사진속일상 2013.12.14

올레길 감국

제주도 올레길을 걸으며 제일 많이 만난 꽃이 감국이었다. 5코스에서 9코스까지 걸었는데 어디서나 감국이 반겨주었다. 파란 바닷물과 잘 대비가 될 뿐 아니라 향기 또한 진해서 시각과 후각이 즐거웠다. 12월인데도 감국이 한창이라는 게 육지 사람으로서는 무척 신기했다. 감국(甘菊)은 달콤한 향기가 좋아 꽃잎을 말렸다가 차로 우려내 마시지만, 현기증이나 두통을 치료하는 한약재로도 사용된다. 산국과 비슷하지만 감국이 대체로 키가 작다. 12월에도 감국을 볼 수 있는 제주도의 따스한 날씨가 무척 탐났다.

꽃들의향기 2013.12.13

어떤 나쁜 습관 / 복효근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거시기 슈퍼 아저씨와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는 자기 집 층수보다 한층 위에서 내려 계단을 내려간다 이유를 물으니 자기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함께 탔던 모기들도 우르르 같이 내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기가 들리지 않을 만한 소리로 복선생도 그렇게 해보라는 충고를 해준다 그 뒤로 나는 모기가 많은 여름날이면 부러 그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두 층이나 걸어 올라간다 참 나쁜 습관이다 - 어떤 나쁜 습관 / 복효근 집으로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니 어떤 분이 문을 연 채 기다리고 있다. 감사한 눈인사를 하니, "뒤에 따라오시는 것 같아서..." 라며 수줍게 웃는다. 젊은 여성분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 뒤에 사람이 따라오는 것 같으면 얼른 문을 닫아 버린다. 같..

시읽는기쁨 2013.12.04

코헬렛의 행복

성경 구약의 '코헬렛'은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라는 탄식으로 시작된다. 개신교 성경은 '전도서'라고 하는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로 번역되어 있다. 뒤에 가면 하느님에 대한 신앙으로 귀결되지만, 도입 부분에 나오는 인생무상에 대한 내용은 성경이 아니라 철학서를 연상시킨다. 기독교에 입문해서 처음 성경을 통독했을 때, 구약에서는 이 '코헬렛'을 제일 좋아했다. '코헬렛'의 저자가 솔로몬이라 배웠지만 성서학자에 따르면 BC 20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거의 700년이나 차이가 난다. 읽다 보면 내용이 매끄럽게 연속되지 않는데 아마 여러 책이 편집된 때문일 것이다. '코헬렛'에는 세상을 보는 유대인의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코헬렛'은 신앙을 강조하기보다 인생을 얼마나..

참살이의꿈 2013.12.02

논어[59]

자공이 물었다. "저는 어떻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너는 그릇이다." "어떤 그릇일까요?" "호련 같은 보물이지." 子貢問曰 賜也何如 子曰 女器也 曰 何器也 曰 瑚璉也 - 公冶長 1 '공야장' 편은 인물에 대한 품평이 많이 나온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공자의 말을 듣고 자공도 스승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는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스승의 대답은 간단했다. "너는 그릇이다[女器也]." 이 말로는 부족했던지 자공은 어떤 그릇이냐고 재차 물었다. 스승은 '호련(瑚璉)'이라고 답해준다. 호련(瑚璉)은 제사 때 쓰는 옥으로 장식한 그릇이다. 옛사람들이 제사를 중시한 걸 볼 때 호련은 일반 그릇과는 달리 귀한 물건이었음이 분명하다. 자공을 대하는 공자의 마음이 읽힌다. 공자..

삶의나침반 2013.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