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 28

논어[67]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옛 글을 강론하시는 것은 언제나 들을 수 있지만, 인성이니 천도니 하는 따위는 좀처럼 들을 수가 없다." 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 公冶長 9 임어당은 에서 각 나라의 국민성을 나타내기 위해 만든 재미있는 수식을 소개하고 있다. 현실주의(Reality)는 R, 이상주의(Dream)는 D, 감수성(Sensibility)은 S, 유머(Humor)는 H로 나타내고, 각각을 화학기호처럼 1부터 4까지의 숫자로 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국은 R3D2S2H1, 프랑스는 R2D3S3H3, 미국은 R3D3S2H2, 독일은 R3D4S1H2, 일본은 R2D3S1H1 로 평가했다. 독일인은 감수성이 부족한 이상주의자이고, 일본인은 감수성이나 유머 감각에서..

삶의나침반 2014.01.30

안산 일출

안산 자락에서 일출을 보았다. 하늘을 발갛게 물들이며 수줍은 듯이 해가 떠올랐다. 두 눈으로 해돋이를 보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이렇듯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에는 그동안 내가 너무 게을렀다. 또는 마음속에 그 무슨 간절함이 없었던 탓이기도 했다. 아니면 인생을 건성건성 살으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뒤섞인 도시 위로 우주의 등대인 양 태양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새해 첫날처럼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싶어졌다. 아내와 같이 자락길을 한 바퀴 돌았다. 8km를 걷는데 두 시간 정도 걸렸는데, 우리 수준에서는 딱 걷기 알맞은 길이었다. 어느 길이나 다 그러하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면 마음이 환하게 밝아진다. 긍정과 감사의 에너지를 길에서 받는다. 원망과 미움의 감정도 스르..

사진속일상 2014.01.28

위대한 설계

학문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종래의 과학은 우주 만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규칙성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법칙과 원리로 우주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사물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까지 묻는다. 지금 여기에 왜 내가 존재하는지 과학이 답하려고 한다. 전에는 형이상학으로 철학과 신학의 영역이었다.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과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가 쓴 는 물질과 생명의 궁극적인 질문에 답하려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과학과 철학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지은이가 말한 대로 지금 우리는 과학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전환점에 도달하고 있는지 모른다. 물리 이론의 목표와 조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는 현대 과학을 통해 우리의 세계관이..

읽고본느낌 2014.01.26

논어[66]

자공이 말했다. "나는 남에게서 당하기 싫은 일은 나도 남에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야, 너도 하기 어려운 일이야!" 子貢曰 我不欲 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 子曰 賜也 非爾所及也 - 公冶長 8 아마 자공이 어떤 사람에게서 부당한 일을 당한 모양이다. 자신은 남에게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거라고 스승에게 말한다. 이때 공자의 대답은 분명하다. "사야, 그건 너도 어려운 일이야!" 남에게서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 모든 윤리와 종교의 핵심이다. 인류의 스승들은 하나같이 이 황금률을 강조했다. 예수는 좀 더 능동적으로 말했다.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여러분을 위해 해 주기 바라는 것을 그대로 그들에게 해 주시오. 이것이 율법과 예언자들의 정신입니다."(마태..

삶의나침반 2014.01.25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6년간 기른 자식이 병원의 잘못으로 뒤바뀐 것을 알게 된다면? 이 영화는 그런 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시대 가족의 의미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영화에 나오는 료타네 가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범적이며 행복하다. 아버지는 엘리트 회사원이고, 6살 케이타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다. 그러나 친자를 데려오면서 갈등이 일어난다. 류세이는 전혀 다른 가정 분위기에서 자란 탓으로 자유분방하다. 순종하지 않는 아이 앞에서 료타는 아버지 노릇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아이에게는 돈이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영화 속 대사가 기억난다. 가난하고 무식해 보이지만 아버지가 아이들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가정의 아이가 훨씬 건강하고 행복하다. 아들이 바라는 ..

읽고본느낌 2014.01.24

통일은 대박

지난 연말부터 통일에 대한 발언이 무성하다. 국정원장이 2015년의 통일을 위해 헌신하자고 직원들에게 훈시한 내용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그 자리에서는 독립군가를 부르면서 나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통일을 언급하며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다. 그 뒤에도 통일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유망한 투자처며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라는 외국 학자들의 발언이 연신 소개되고 있다. 늦어도 2020년까지는 한반도가 통일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동시에 TV에서는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방송하고 있다. 갑자기 통일 풍년이 되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 민족의 비원인 통일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통일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 국민의 통일..

길위의단상 2014.01.23

내가 가장 착해질 때 / 서정홍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 내가 가장 착해질 때 / 서정홍 내가 이 꼴로 살아도 되는 걸까? 인간이 살아가는 가치와 본질은 무엇인가? 내가 닮아야 할 마음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 시를 접하니 농부의 마음이야말로 하느님의 마음이 아닌가 싶어진다. 자본주의 시대지만 그래도 아직은 착하고 순수한 농심(農心)이 어딘가에는 살아있을 것만 같다. 이 시는 같은 이름의 시집 에 실려 있다. 시집에는 이런 시도 있다. 혼인하고 이십 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 집에 도둑님 다녀가셨다. 가난한 살림살이 가져갈 것이 없었던지 장롱 옷장 서랍장 가리지 않고 온통 뒤적거려, 방 안 가득 옷가지들이 수북이 쌓였다. 큰아들 녀석 학비 보내고 몇 천 원 남은 경남은행 통장과 생활비 몇 만 원 남은..

시읽는기쁨 2014.01.22

겨울 제라늄

제라늄이 대단하다. 한겨울인데도 연신 꽃봉오리가 올라온다. 올겨울은 화분에 별로 관심을 주지 못하고 그냥 베란다에 방치해 놓았는데 제라늄만은 쉼 없이 꽃을 피우고 있다. 난방을 위해 유리창에 뽁뽁이를 해 놓아 꽃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제라늄은 주인이 보건 말건 상관없이 자신의 색깔을 지켜낸다. 제라늄은 아프리카 아열대 지방이 원산지로 알고 있다. 품종 개량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겨울에 오히려 더 적응을 잘하는 것 같다. 찬 바람이 불면 움츠러들고 의기소침해지는 나는 제라늄을 보며 반성한다. 어떤 여건에서도 당당하게 살아야 하리라. 내 색깔을 지켜나가야 하리라. 고맙다, 제라늄아!

꽃들의향기 2014.01.21

논어[65]

재여가 낮잠을 잔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썩은 나무는 새길 수가 없고, 썩은 흙담장은 흙손질할 수 없다. 재여 같은 애는 꾸짖기도 싫다." 다시 이어서, 선생님 말씀하시다. "전에 나는 남의 말을 들으면 그대로 믿었는데, 이제 나는 남을 말을 듣고도 그 행동을 보아야 하겠다. 재여 때문에 이렇게 달라진 거야!" 宰予 晝寢 子曰 朽木不可彫也 糞土之墻不可오也 於予與何誅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 公冶長 7 이렇게 심한 꾸지람이라면 단순한 낮잠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동안 지켜보고 쌓인 게 있으니까 낮잠 자는 모습으로 인해 화가 폭발한 게 틀림없다. 꾸짖기도 싫다는 건 완전히 포기했다는 말이다. 더구나 남의 말을 그대로 믿지 못하게 된 건 오로지 재여 때문이라고 한..

삶의나침반 2014.01.20

이상한 세상

서울에 갔다가 고층에 살고 있는 지인의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던 참이었다. 6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멎고 문이 열렸는데도 한 여자 어린이가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이었다. 얼굴은 잔뜩 찡그러져 있었다. 처음에는 왜 타지 않는지 영문을 몰랐다.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현관문을 열고 얼굴만 내민 채 "괜찮아, 타도 돼." 라고 말했다.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남자가 있으니 무서워서 못 탄 것이었다. 나도 웃으며 "할아버지니까 괜찮아, 타."라고 말했다. 아이는 마지못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몇 학년이냐고 물으니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아이는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세상이지만 막상 이런 상황을 만나니 ..

참살이의꿈 2014.01.19

경안천 20km를 걷다

집에 있으려니 너무 답답해서 밖으로 나섰다. 경안천을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려 했는데 쌀쌀한 날씨 탓에 열심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겨울 소백산 능선의 칼바람을 맞는 게 옳았다. 요사이는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이젠 격한 감정의 요동이 잦아지고 좀 차분해질 때가 되었다. 나부터 사태를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도 필요하다. 속을 들여다보면 누구 하나 불쌍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맹자는 말했다. "사람은 모두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人皆有不忍人之心]."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에 사람 구별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오늘은 4시간 넘게 약 20km를 걸었다. 걷기의 위안이 없다면 나는 얼마나 슬플 것인가. 걷다 보면 쪼그라진 ..

사진속일상 2014.01.18

변호인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즈음에 이 영화를 보았다. 가슴 찡한 감동이었다. 신인 감독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빈틈없이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배우들 중에서는 특히 송강호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1981년에 일어났던 대표적 용공조작인 부림 사건을 모델로 했다. 노무현 역인 송우석 변호사를 송강호가 맡았다. 그러나 특정인을 넘어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영화였다. 돈만 좇던 송우석 변호사는 국가 폭력의 실상을 접하고 억울한 피고인들을 위한 변론에 온몸을 던진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군사 정권이 저지른 만행이 그를 통해 드러난다. 이 영화는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곰곰 생각하게 한다.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서슴지 않고 용공죄를 만들고 고문을 하는 경찰이 있다. 그는 살인 정권..

읽고본느낌 2014.01.18

고목 / 김남주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성처 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년 쉽게 살고 싶지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 주고 싶다 - 고목 / 김남주 지구에서 수백 년을, 심지어는 천 년을 넘게 살아내는 생명체는 나무밖에 없다. 일본 야쿠시마에는 오천 년이 넘은 삼나무도 있다고 한다. '세인트' 급 반열에 올려도 무방할 것 같다. 동네 어귀에 있는 정자나무 곁에만 가도 나무가 뿜어내는 아우라에 압도된다. 세상의 신고를 다 견뎌내며 버텨온 수백 년의 세월이 무겁다. 경건하고 겸허해진다. 시의 한 구절을 자꾸 되뇌게 된다.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년 / 쉽게 살고 싶지 않다 저 나무처럼'

시읽는기쁨 2014.01.16

[펌] 아이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이유

친일과 반공의 역사를 미화한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채택했던 학교들이 격렬한 반대 여론에 결국 채택을 철회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걸까. 왜 우리는 ‘친일’과 ‘반공’의 역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일본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안 된다’ ‘공산주의를 반대해선 안 된다’고 가르치려는 걸까. 우리가 친일과 반공의 역사를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그게 실은 민족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그리고 남한에서 소수의 지배세력이 대다수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역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 어떤 방식으로도 소수의 지배세력이 대다수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은 잘못이며, 그런 역사에 굴종해선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우리가 ..

길위의단상 2014.01.15

논어[64]

선생님이 자공에게 말씀하시다. "너와 회와 누가 더 나을까?" 자공이 대답했다. "제가 어찌 회를 당하리까? 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압니다.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구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만 못하지. 나나 너나 그만 못하지!" 子謂子貢曰 女與回也 孰愈 對曰 賜也 何敢望回 回也 聞一以知十 賜也 聞一以知二 子曰 弗如也 吾與女弗如也 - 公冶長 6 스승의 짓궂은 질문이다. 안회가 가장 뛰어난 제자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자공에게 다시금 확인시킨다. 자공은 공손하게 대답한다.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자신은 둘만 안다고 말한다. 겸손한 것 같지만 뭔가 가시가 들어 있는 듯하다. 하나를 들으면 하나를 알 뿐이라고 자신을 낮추는 게 보통이지 않은가. 그런데 자공은 스스로 ..

삶의나침반 2014.01.14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이문재 시인의 산문집이다. 제목이 특이해서 서가에서 뽑게 되었다. 바쁜 것이 게으르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바쁘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살펴볼 겨를이 없다. 바쁜 세상에 맞추어 대부분 그렇게 산다. 바빠서 나를 돌아보고, 둘러보고, 내다볼 수가 없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 비슷한 무엇이 정신없이 사는 것이다.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하지 못한다. 그런 뜻에서 나는 게으른 것이고, 이런 게으름은 부도덕하고 반인간적이다. 에 나오는 글은 산업 자본주의 문명의 반인간성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시인의 생태론과 자연주의에 대한 신념은 거의 신앙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자신이 바라는 대로 행하지 못하는 반성도 곳곳에 보인다. 글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 시인의 담백한 마..

읽고본느낌 2014.01.13

흥국사 상수리나무

상수리나무는 참나무속의 6형제 중 하나다. 고양 흥국사에서 노고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이 상수리 고목이 있다. 수령이 250년, 높이는 12m, 줄기 둘레는 3.3m다. 사찰의 보살핌이 있었기에 이렇게 오래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숲에서 보는 보통의 상수리나무와 달리 수형도 아름답다. 길게 뻗어 늘어진 가지가 상수리나무로 보이지 않는다. 나무 뒤에 서서 흥국사와 멀리 북한산을 바라보는 경치가 좋다. 당당하고 멋진 상수리나무다.

천년의나무 2014.01.12

흥국사 느티나무

경기도 고양 노고산 자락에 흥국사(興國寺)가 있다. 전에는 흥성암이었는데 영조가 나라를 흥하게 하는 사찰이라며 흥국사로 이름을 고치고 직접 대웅전 현판을 내렸다 한다. 사찰 경내에 수령이 45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줄기가 45도로 기울어져 있는데 버팀대 없이 지탱되고 있는 게 대단하다. 속도 거의 썩어 보형재로 채워져 있다. 더 신경을 쓰고 관리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저렇게 삽과 빗자루를 기대 놓듯 무심하게 대하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과잉 보호가 도리어 나무의 자연성을 해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천년의나무 2014.01.12

안산 자락길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鞍山) 자락길의 특징은 경사도가 완만한 목재 데크를 설치하여 휠체어나 유모차도 다닐 수 있게 한 점이다. 7km 전 구간이 보행 약자를 위해 편안하게 만들어져 있다. 실제로 유모차에 의지하여 걸으시는 할머니도 계셨고, 유유히 책을 읽으며 산책하는 사람도 있었다. 쉬엄쉬엄 한 바퀴 도는데 두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안산 자락을 따라 목재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전체 길의 90% 이상이 이런 인공의 나무길이다. 안산은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서울 시민이 많이 찾는다. 등산로로 인한 자연 훼손이 심각하다. 이런 길은 토양 유실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찾아오도록 유도해 전체적인 효과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자연에 손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대야 하는지, 케이블카 설치..

사진속일상 2014.01.11

포장마차 국수집 주인의 셈법 / 배한봉

바람 몹시 찬 밤에 포장마차 국수집에 허름한 차림의 남자가 예닐곱쯤 되는 딸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늙수그레한 주인이 한 그릇 국수를 내왔는데 넘칠 듯 수북하다 아이가 배불리 먹고 젓가락을 놓자 남자는 허겁지겁 남은 면발과 주인이 덤으로 얹어준 국수까지 국물도 남김없이 시원하게 먹는다 기왕 선심 쓸 일이면 두 그릇을 내놓지 왜 한 그릇이냐 묻자 주인은, 그게 그거라 할 수 있지만 그러면 그 사람이 한 그릇 값 내고 한 그릇은 얻어먹는 것이 되니 그럴 수야 없지 않느냐 한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 포장마차 주인의 셈법이 좋아 나는 한참이나 푸른 달을 보며 웃는다 바람은 몹시 차지만 하나도 춥지 않다 - 포장마차 국수집 주인의 셈법 / 배한봉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누군가를 도울 때에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

시읽는기쁨 2014.01.10

논어[63]

맹무백이 물었다. "자로는 사람답게 되었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모르겠는데요." 다시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제후국의 국방장관쯤 됨직하지만, 사람답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염구는 어떻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구는 도지사나 국장쯤 됨직하지만, 사람답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적은 어떻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예복을 갖추고 외국 사신쯤 접대함직하지만, 사람답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孟武伯問 子路仁乎 子曰 不知也 又問 子曰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 求也何如 子曰 求也 千室之邑 百乘之家 可使爲之宰也 不知其仁也 赤也何如 子曰 赤也 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也 不知其仁也 - 公冶長 5 '사람됨[仁]'에 대한 공자의 잣대는 무척 엄격하다. 노나라 대부인 맹무백..

삶의나침반 2014.01.08

노고산에 오르다

북한산을 보기 위해 노고산(老姑山, 496m)에 올랐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잔뜩 흐린 날씨에 연무가 자욱해 산의 윤곽만 겨우 드러날 뿐이었다. 마치 베일로 가린 듯 북한산은 맨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언제 시야 좋은 날 다시 한 번 찾아와야겠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노고산은 아담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걸어 보니 편안한 뒷산이다. 노고산은 한자로 '늙은 시어머니'라는 뜻이다. 시어머니도 늙게 되면 이처럼 순해진다는 말일까? 재미있는 이름이다. 산에 들면 산이 주시는 말씀을 들을 때가 있다. 물론 사람 목소리처럼 분명히 들리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산길을 걷다 보면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기도 하고, 무언가 망설일 때 확신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이걸 산이 주는 선물이라고 믿는다. 내 이..

사진속일상 2014.01.07

행복한 가정을 위한 교황의 권고

지난 연말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연설하며 특별히 가정의 행복을 강조했다. 교황은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가족 구성원들은 다음 세 말을 자주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첫째, "부탁합니다." 이는 서로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감사합니다." 이 말은 이기적인 사람으로 떨어지는 걸 막아준다. 셋째, "죄송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다.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는 고백이다. 이 세 마디 말은 건강한 가정을 측정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자주 하고 들을 수 있다면 분명 행복한 가정일 것이다. 반면에 군림하고, 배려할 줄 모르고, 상대 탓만 한다면 병든 가정이다. 나 자신도 반성 되는 바가 많다. 가족에게 '부탁, 감사, 죄송'..

참살이의꿈 2014.01.06

삶이란 무엇인가

심란한 차에 읽게 된 책이다. 제목은 로 '안도현 아포리즘'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내용을 보니 안도현 씨가 쓴 여러 책에서 뽑은 글 모음집이다. 아포리즘(aphorism)이란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을 말한다. 새로운 내용이 없어서 실망스러웠는데 초판 7쇄까지 간 걸 보니 지은이의 이름 덕을 톡톡히 보는 것 같다. 글 중에서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데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때가 때여선지 모르겠다. 삶이란 무엇인가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를 때 저기 저 고갯마루까지만 오르면 내리막길도 있다고 생각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 보자, 자기 자신을 달래면서 스스로를 때리며 페달을 밟는 발목에 한 번 더 힘을 주는 것. 읽어도 읽어도 읽어야 할 책이 쌓..

읽고본느낌 2014.01.06

식탁의 눈물

내일로 잡혀 있던 제주도행을 취소했다. 예약했던 숙소와 렌터카, 비행기표도 전부 해약했다. 이번에 내려가서 1년 동안 살 집을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걱정하던 일이 앞당겨 일어났고, 이곳을 비울 수 없게 되었다. 사는 게 정말 뜻대로 되지 않는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듯,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인생인가 보다. 하긴 인생이 내 뜻대로만 굴러가길 바란다면 도둑놈 심보일 것이다. 세상에는 참 여러 종류의 인간이 있다. 그중에서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성격장애는 상당히 문제가 있다. 그들은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적이며 충동적이다. 모든 것이 남 탓이고 상대 입장을 헤아릴 줄 모른다. 성장 과정에서 정상적인 인격 발달에 문제가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교실에는 이런 아이가 ..

길위의단상 2014.01.05

트레커 신년 산행

트레커에서 신년 산행으로 안성 칠장산(七長山, 492m)에 올랐다. 겸하여 같은 지맥에 속하는 칠현산(七賢山, 516m)과 덕성산(519m)도 함께 연결하여 걸었다. 회원 일부는 미얀마 여행 중이라 다섯 명이 함께 했다. 2014년을 맞이한 사흘째 날, 날씨는 포근했다. 그러나 뿌연 안개가 낀 듯 시야는 좋지 않았다. 올겨울부터 미세먼지 예보가 나오면서 한반도의 공기를 더욱 걱정하게 되었다. 이 세 산은 오백 미터급이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높고 시원했다. 멀리 파도치듯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볼 만했다. 산길도 부드러워 등산이라기보다는 가벼운 트레킹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힘들게 헉헉거리기보다는 걸으며 쉬며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즐거운 수다였다. 그중에서 화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얘기..

사진속일상 2014.01.04

성내리 은행나무

우리나라에 '성내리'라는 지명은 많다. 성이 있는 큰 고을이었다면, 성을 경계로 성 안 마을과 성 밖 마을이 구분되었을 것이다. 풍기도 조선 시대에는 풍기군이었으니 성내리라는 지명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하겠다. 성터의 흔적도 있다는데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풍기군 옛 관아터에 수령이 7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나무는 무척 노쇠한 모습이다. 전체 조선 시대와 함께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옛 건물은 전혀 찾을 길 없고, 오직 이 은행나무만이 세월의 무상을 증언하고 있다. 나무 옆에는 풍기초등학교가 있다. 국민학교 3학년쯤에 여기로 전학 와서 1년 정도 다닌 적이 있는 학교다. 아마 1961년 경이었을 것이다. 촌놈에게는 전기가 들어왔던 풍기는 휘황한 도회지였다. 아버지가 정미소 사업을 하면서 풍기 생활..

천년의나무 2014.01.02

별사 / 김사인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면 나는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착하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 하겠지요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인적 드문 소로길 스적스적 걸어 날이 저무는 일 비 오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으로 골똘히 서 있기도 하는 일 다 공부라고 하면 좀 낫지요마는 - 별사(別辭) / 김사인 신년시라고 꼭 희망과 꿈을 노래해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요. 보신각 앞에 모여 환호하고, 해돋이를 보기 위해 부..

시읽는기쁨 2014.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