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 21

동해바다 / 신경림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작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 동해바다 / 신경림 타인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내 모습이 부끄럽다. 나이를 헛먹고 있다. 늙어가면서 제일 괴로운 게 옹졸해지는 나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를 만나니 안도현의 '바다가 푸른 이유'라는 글이 생각난다. 스스로 채찍을 들 줄 모른다면 하느님의 매라도 기다려야 마땅하다. ..

시읽는기쁨 2014.02.27

논어[71]

선생님 말씀하시다. "누가 미생더러 정직하다 하는고. 어느 사람이 식초를 얻으러 온즉 이웃에서 빌려다가 주었는데...." 子曰 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隣而與之 - 公冶長 13 미생(微生, 尾生)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고등학교 윤리 시간이었다. 미생이 애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되어도 애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비는 세차게 내리고, 강물은 점점 불어났다. 미생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교각을 붙잡고 끝까지 버텼다. 그러나 머리까지 차오른 강물에 결국은 익사하고 말았다. 약속은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한다는 교훈으로 윤리 선생님은 미생 이야기를 하신 것 같다. 당시의 어린 마음에 미생 일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도 아마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삶의나침반 2014.02.26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종합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19년 동안 근무했던 지은이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좋은 죽음'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책이다. 병원 중환자실은 생사의 경계에 선 환자가 격리 치료를 받는 곳이다. 보호자는 정해진 시간에만 면회가 되고, 의식이 혼미한 환자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의료적 처치를 받는다. 기본적으로 보호자의 동의하에 이루어지지만, 환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지은이는 환자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너무 괴로워 결국은 병원을 떠났다. 책에는 지은이가 직접 경험한 여러 사례가 실려 있다. 중환자실이라는 의료 현장에서 인간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고뇌하는 내용이다. 중환자실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공호흡기와 기관절개술을 사용한다. 호흡을 쉽게 해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기..

읽고본느낌 2014.02.25

짬뽕과 순대국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점심때가 지나면 시장기가 든다. 배는 고프고 집까지 가는 길도 멀면 어쩔 수 없이 외식을 해야 한다. 그때 내가 선택하는 건 짬뽕 아니면 순대국이다. 뭘 먹느냐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속을 시원하게 하고 싶을 때는 짬뽕, 고기 생각이 날 때는 순대국을 먹는다. 짬뽕과 순대국은 꼭 가는 집이 있다. '홍콩반점'은 짬뽕을 전문으로 하는 중국 음식점이다.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이지만 그보다도 실내가 깔끔해서 좋다. 종업원도 여느 중국집과 달리 젊은이들이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으면 카페에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집은 음식값을 선불로 받는다. 왜 그러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신선해서 재미있다. 어떤 날은 매운 짬뽕을 먹고 싶을..

길위의단상 2014.02.24

수종사 은행나무(2)

기운차고 늠름하다.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대장군의 모습이다. 운길산 중턱 해발 400m쯤 되는 곳, 수종사 입구에 서 있다. 아래로 두물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수종사 중창의 주역은 세조였다. 이 은행나무도 세조가 직접 심었다고 전해진다. 1459년의 일이니 지금으로부터 555년 전이다. 이만한 세월에도 세조의 기세는 여전히 나무에 살아있다. 이 나무를 바라보면 왠지 불끈 힘이 솟는 느낌이다.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거인이 된 한 생명체가 있다. 낙담하고 의기소침해졌을 때 이 나무 옆에 서 보라. 가슴을 열고 나무가 주는 기운을 받으라. 당당히 고개 들고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을 당신은 얻을 것이다.

천년의나무 2014.02.23

들길에 서서 / 신석정

푸른 산이 흰구름을 지니고 살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山森)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不絶)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믄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 들길에 서서 / 신석정 한 구절 때문에 오래 기억되는 시가 있다. 이 시의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도 그렇다. 무언가의 슬픔으로 인하여 이 구절을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었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많은 게 인생사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슬픔..

시읽는기쁨 2014.02.22

임진각

북쪽으로 드라이브 간 길에 임진각에 들렀다. 70년대에 부모님을 모시고 온 적이 있었으니 거의 40년 만에 다시 찾은 셈이었다. 그때는 버스를 타고 통일로를 따라 여기까지 왔었다. 내가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한 즈음이었을 것이다. 월급을 모아 산 카메라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부모님 사진을 여러 장 찍어드렸다. 그런데 나중에 현상하려고 뒷 뚜껑을 열어보니 아뿔싸, 필름이 하나도 돌아가지 않았다. 초보가 필름을 잘못 장전해서 그냥 헛바퀴를 돈 것이었다. 그 뒤에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임진각 나들이가 아버지와의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그때의 사진이라도 남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자유의 다리도 직접 걸어볼 수 있고, 기차를 타고 임진강을 건너 도라산역까지도..

사진속일상 2014.02.22

논어[70]

선생님이 진나라에서 말씀하시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우리네 젊은이들은 미칠 듯 날뛰며, 멋대로 고집도 부리고, 아롱이 다롱이 문채는 빛나지만, 아직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지 않느냐." 子在陳曰 歸與歸與 吾黨之小子 狂簡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 公冶長 12 공자가 각국을 유랑하는 동안 진나라를 여러 차례 들렀는데 마지막으로 있었던 때가 기원전 490년 부근이었다. 주유천하의 막바지로 공자 나이는 60세가 넘었다. 정치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미련을 접고, 고국 노나라로 돌아가 젊은이들을 가르치려고 결심을 했던 시기였다. 그때 공자의 마음이 이 말에 잘 나타나 있다. 공자의 말에는 일말의 회한도 들어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다짐이 강하게 읽힌다. 어찌 보면 종교적 소명 의식과 비슷하다. 마치 목자..

삶의나침반 2014.02.20

노인이 행복한 나라

얼마 전에 KBS TV에서 세계에서 노인 복지 제도가 가장 잘 되어 있는 스웨덴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좋은 면만 보여준 건지는 모르지만, 스웨덴은 무척 부러운 시스템을 갖춘 나라였다. 교육이나 복지 제도에서 본받을 나라가 스웨덴인 것 같다. 스웨덴은 GDP의 34%를 복지에 쓰고, 그중에서 1/2이 노인복지 예산이다. 모든 노인이 월 140만 원 정도의 기초연금을 받으니 생활에 쪼들리는 사람은 없다. 여기에 직장 연금이나 개인연금이 보태지면 더 넉넉해진다. 더구나 스웨덴은 노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잘 준비되어 있어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배우며 삶을 즐길 수 있다. 또, 의료비 상한제가 있어 병원 치료를 걱정하지 않는다. 노년의 불안이 있을 수 없다. 선진국이란 단순히 잘 사는 나라가..

참살이의꿈 2014.02.19

송촌리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가 있는 곳은 한음 이덕형(李德馨, 1561~1613) 선생의 별서터다. 선생은 45세 되던 1605년에 부친을 모시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집과 정자 두 개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정자 하나만 복원되어 있다. 그리고 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400년 세월을 지나 말없이 서 있다. 하마석으로 쓰인 노둣돌도 남아 있다. 옆에는 친절하게 말 조각상을 세워 놓았으나 어딘지 생뚱맞아 보인다. 나무는 상당히 노쇠하다. 겨울이라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가 보다. 선생은 두 나무를 심으면서 한 그루는 오성, 다른 그루는 한음이라고 여기면서 다시 만나길 간절히 기원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오성과 한음의 이야기는 역사 야사로 재미있게 읽었다. 별서는 찾아볼 길 없는데 은행나무와 노둣돌이 그때의..

천년의나무 2014.02.18

수종사에서

감기 미열이 남아있지만 가까운 수종사(水鐘寺)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일주문 바로 앞에까지 차를 갖다 대고 걸음은 최대한 아꼈다. 오늘 한낮은 봄기운마저 느껴질 정도여서 몸도 덩달아 나근나근해졌다. 산기슭 어딘가에 복수초라도 피어있을 것만 같았다. 어슬렁거리며 절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법당에서는 누구의 삼우제를 지내는지 스님의 염불 소리가 계속 들렸다. 외래 방문객들이 몇몇 눈에 띄었을 뿐 평일의 절은 고즈넉했다. 다실인 삼정헌(三鼎軒) 앞 댓돌에는 등산화 몇 켤레가 놓여 있었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실내 풍경이 너무 고와서 들어가기가 주저되었다. 수종사와 한음 이덕형 선생과의 인연에 대한 안내문이 새로 만들어져 있었다. 바쁜 중앙정치의 와중에도 한음은 절 아래 사제촌에 머물 때 자주 수종사를 왕래..

사진속일상 2014.02.17

에밀

루소의 을 이제야 읽었다. 전에는 처음 몇 장을 보다가 포기한 게 몇 번이었다. 아이를 기르는 교육이 나에게는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탓이었다. 이제는 꼭 한 번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출판사 '돋을새김'에서 펴낸 책으로 편역으로 되어 있어 읽기에 부담이 덜했다. 250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의 교육서라고 해도 될 정도로 현대적이라는데 우선 놀랐다. 당시 분위기에서 이런 내용은 분명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 지도층은 격렬히 반발했고, 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루소는 다른 나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용기 있는 지성이 겪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아마 신앙에 관한 부분이 제일 논란이 되었을 것이다. 신의 존재를 의심하면서 성서의 권위를 부..

읽고본느낌 2014.02.16

누군가 슬퍼할 때 / 김현옥

친구의 눈에 눈물이 흐를 때 함께 울게 하소서 친구의 가슴이 고통으로 멍들 때 연민을 느끼며 그를 껴안을 수 있게 하소서 가난한 이웃의 어려움을 들을 때 모르는 척하지 않고 그의 궁핍함을 함께 걱정하고 그의 불안한 삶의 고뇌를 나누며 주머니를 털어 그와 나눌 수 있는 진실함을 주소서 무언가 사회가 잘못되어 가고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탓을 돌리거나 남들이 해결하리라 미루지 않고 저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함께 올바른 길로 나가기 위해 기꺼이 끼어들게 하소서 주님의 자녀인 제가 말만 앞선다는 소리를 들어 당신께 누가 되지 않도록 살아 있는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 누군가 슬퍼할 때 / 김현옥 수녀님, 어떻게 지내시나요? 마지막 통화하고 나서 벌써 4년이나 흘렀네요. 지금도 수녀님이라 불러야 ..

시읽는기쁨 2014.02.15

논어[69]

계문자는 세 번 곱씹어 생각한 뒤라야 실행에 옮긴다. 선생님이 이를 듣고 말씀하시다. "두 번도 좋지!" 季文子 三思而後行 子聞之曰 再斯可矣 - 公冶長 11 계문자는 지나치게 신중한 제자였던 것 같다. 너무 생각이 많으면 결단성이 부족하고 우유부단해지기 쉽다. 아마 자로였다면 세 번의 세 번이라도 곱씹어 생각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공자는 각 제자의 기질이나 근기에 맞게 가르침을 준다. 불교에서는 방편(方便)이라고 한다. 이를 무시하고 말에만 매달리면 그때부터 미혹이 시작된다. 대표적인 게 문자주의 입장에서 성경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현인들이 남긴 말이나 글 자체가 진리는 아니다. 주인은 달을 가리키는데 개는 엉뚱한 데를 쳐다보고 짖어댄다.

삶의나침반 2014.02.14

감기와 스트레스

감기몸살이 진하게 찾아왔다. 닷새 동안 끙끙 앓고 나니 조금 사그라진다. 백수였기 망정이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훨씬 더 오래 끌었을 것이다. 감기에 걸려도 약을 안 먹고 견디는 편인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병원 신세를 졌다. 그만큼 증상이 복합적인데다 특히 기침이 심했다. 블로그에 들어오기도 귀찮아서 며칠간 공백이 생겼다. 밖에 쏘다녔거나 무리한 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감기에 걸린 것은 올 초부터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 같다. 바이러스에 노출될 때 증상으로 연결되느냐 않느냐는 것은 면역력과 관계가 있다. 과로와 함께 정신적 스트레스도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이다. 지속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신체의 방어벽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더구나 아내가 부재중이어서 더 힘들었다. 아픈 ..

길위의단상 2014.02.13

겨울왕국

애니메이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다. 지난 16일 개봉한 '겨울왕국'은 현재 누적 관객수 700만을 바라보고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는 경이적인 기록이다. 사람을 불러모으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서 이 영화를 보았다. '겨울왕국'의 매력은 음악에 있는 것 같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장면은 대부분 음악과 연관이 있다. 특히 깊은 산속으로 숨으며 엘사가 부르는 'Let it go'가 백미다. 세상을 버리고 자기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소녀의 결기와 자신감이 좋았다. 누구의 인생에서나 과거와 결별해야 하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Let it go, Let it go / 다 내려놓자, 다 내려놔 That perfect girl is gone / 그 완벽했던 소녀는 이제 없어 Here I stand in t..

읽고본느낌 2014.02.08

겨울 사랑 /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 겨울 사랑 / 박노해 며칠 전에 입춘이 지났고, 계절적으로는 겨울의 끝에 이르렀다. 사계절이 순환하듯 인생에도 주기적인 사이클이 있다. 전에 명리학책을 보다가 10년 주기로 대운(大運)이 찾아온다는 내용을 보고 내 지나온 삶에도 적..

시읽는기쁨 2014.02.07

논어[68]

자로는 전에 들었던 일을 실행하지 못했을 때는, 더 듣게 될까봐 두려워하였다. 子路 有聞未之能行 唯恐有聞 - 公冶長 10 행동파인 자로답다. 들었지만 실행하지 않아도 아무 거리낌이 없는 사람에 비하면 자로는 몇 단계 위의 사람이다. 이 글을 보면 자로는 들은 건 꼭 실천하려고 했던 것 같다. 자로는 행(行)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심사숙고하느라 머뭇거리는 사람이 있고, 자로처럼 좌고우면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도 있다. 옳은 일에 앞장서는 건 용기 있는 행위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지나친 확신은 맹목적이 되기 쉽다. 성찰이 따르지 않는 행동은 돈키호테식 '돌격 앞으로'가 될 위험이 있다. 군자는 지(知)와 행(行)이 균형을 이루는 사람이다.

삶의나침반 2014.02.05

웃으면서 화내자

, 제목 때문에 가끔 생각나는 책이다. 읽지는 못했어도 특이한 제목 때문에 기억에 새겨진 책들이 있다. 이 책이 대표적이다. 웃으면서 화내는 기발한 방법이라도 있을까, 책을 펼쳐보기는 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엉뚱한(?) 내용이어서 완독하지는 않았다. 살다 보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고' 싶을 때가 있다. 바보들에게 정색하고 화내는 건 똑같은 바보짓이다. 바보들에게는 웃으면서 화를 내줘야 한다. 얼굴로만 웃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을 날려주어야 한다. 그게 바보를 바보에 걸맞게 대하는 방법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자!" 어제저녁부터 이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바보들에게 줄 선물은 이것밖에 없다. 인간이라는 게 슬퍼질 때가 있다. 비바람을 뚫고 나가며, 결국은 평..

길위의단상 2014.02.04

세상에 예쁜 것

박완서 선생이 2011년에 돌아가시고 난 뒤에 출간된 산문집이다. 선생이 말년에 쓰셨던 글을 모았다. 선생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책에서도 따스한 사람의 향기가 난다. 마음씨 고운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포근하다. 글을 쓰기 전에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먼저라는 걸 선생에게서 배운다. 책 제목으로 된 '세상에 예쁜 것'이라는 글에서는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를 추억하고 있다. 실명이 나오지는 않지만, 김점선 화가에 대한 내용으로 보인다. 죽기 엿새 전 병실을 방문했을 때 아들 내외가 간병하고 있었는데 5, 6개월쯤 되는 손자도 있었다고 한다. 아기가 병실에 있는 게 안돼 보였는데 고통스럽던 병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면서 시선이 멈춘 곳은 잠든 아기의 발바닥이었다. 포대기 끝으로 나온 아기 발..

읽고본느낌 2014.02.03

휴대폰을 끄다

휴대폰을 끈 지 20일이 되었다. 휴대폰이 먹통이 되니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하고 있다. 가족 말고는 집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과 단절되는 게 너무 쉽다. 현대의 은둔은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휴대폰 버튼 하나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원래부터 휴대폰은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아닌 구식 폴더폰을 쓰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처럼 자주 들여다볼 일이 없었다. 더구나 사람들과의 교류 폭도 좁으니 하루에 고작 전화 한두 통화나 가끔 문자를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 휴대폰이 없어졌다고 해서 아쉬울 건 없다. 오히려 조용해서 좋다. 울리는 벨 소리의 과반은 쓸데없는 데서 오는 거라 짜증만 일으켰다. 문자도 마찬가지였다. 필요한 건 열에 한둘이었다. 모임이나 지인들에게서 오는 연..

참살이의꿈 2014.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