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 29

논어[85]

선생님 말씀하시다. "축타 같은 말재주나 송조 같은 미남이 아니고서는 요즘 세상에서는 살기 어려울 거야!" 子曰 不有祝타之녕 而有宋朝之美 難乎免於今之世矣 - 雍也 11 말을 곱게 하거나 얼굴이 예뻐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지나쳐서 겉치레에만 신경을 쓰게 되면 샛길로 드는 것이다. 문(文)과 질(質)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공자의 말씀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주의로도 들린다. 사람됨의 바탕을 보지 않고 멋지다거나 재미있다거나 하는 데 홀려 배우자를 선택했다가 후회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문이 질을 이길 수는 없다. 공자가 말한 '요즘 세상', 이천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비슷한가 보다.

삶의나침반 2014.05.31

올림픽공원 장미정원

방이동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잠시 올림픽공원 장미정원에 들렀다. 지금이 장미의 계절이라 정원에는 온갖 색깔의 장미가 화려했다. 매년 이맘때엔 장미 축제를 했는데, 올해는 '축제'라는 이름을 빼고 '장미 전시회'라 부르고 있다. 침울한 나라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흑장미가 있다. 완전히 검은색은 아니고 짙은 붉은색을 띠는 장미다. 정원에 혹 흑장미가 있나 찾아보았으나 짧은 시간 탓이었는지 만나질 못했다. 올해 같으면 따로 코너를 마련하여 흑장미라도 전시했으면 더 의미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강렬한 5월의 햇살에 알록달록 장미꽃밭이 너무나 눈이 부셨다.

꽃들의향기 2014.05.30

시절이 하수상하니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세상을 제일 난세로 믿는다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인간사가 원래 하루도 편할 날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수십 년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매 시기마다 힘들고 어려운 무엇이 있었고, "세상이 왜 이래?"라는 한탄이 안 나올 때가 없었다.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속세의 삶이 갖는 숙명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작금의 세상 돌아가는 상황은 '시절이 하수상하다'는 탄식을 절로 나오게 한다. 연초의 경주 리조트 화재가 세월호 참사로 이어지더니 최근에는 을지로 지하철 추돌, 고양터미널 화재, 도곡역 지하철 방화, 급기야는 요양원 화재로 스무 명 넘는 노인이 죽었다. 세상이 너무 어수선하고, 또 어디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불안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너무 자주 터지니 이러..

길위의단상 2014.05.29

경안천 꽃양귀비

경안천 산책로에 핀 꽃양귀비다. 개양귀비라고도 한다. 양귀비와 달리 마약 성분이 없는 원예용이다. 꽃양귀비는 줄기에 가는 털이 나 있다. 하늘거리는 꽃잎, 선명하고 요염한 색감은 가히 경국미인(傾國美人) 양귀비(楊貴妃)라는 이름에 어울린다. 당 현종이 양귀비를 만난 게 58살 때, 며느리였던 양귀비의 나이는 22살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처음에는 며느리를 도교 사원에 머물게 하여 비난이 잦아들고 나서 아내로 맞았다. 현종은 양귀비의 치마폭에 묻혀 정사를 잊으니 나라는 기울고 결국 안녹산의 난으로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양귀비 자신도 자결할 수밖에 없었으니 총명과 아름다움도 도가 지나치면 화를 불러오는 법이다. 그만한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아쉬울 것은 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꽃양귀비를..

꽃들의향기 2014.05.28

아버지의 일기장

만화가 박재동 선생의 부친이 쓴 일기를 선생이 펴냈다. 선생의 부친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건강 문제로 젊은 나이에 퇴직한 뒤 아내와 함께 만화방, 문방구, 떡볶이 장사를 하며 자식 셋을 길렀다. 전 생애가 매일매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궁핍의 연속이었다. 부친은 1971년부터 세상을 떠난 1989년까지 매일 일기를 썼는데, 질병의 고통, 아내에 대한 연민, 자식에 대한 부정(父情), 꿈을 이루지 못한 남자의 회한 등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선생의 부친은 특별한 것 같지만, 일반적인 우리들의 아버지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겉으로는 엄하고 냉정해 보였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았다. 뒷날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면 우리가 알았던 아버지가 아버지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선..

읽고본느낌 2014.05.28

남산길을 걷다

여름 선글라스를 사기 위해 남대문에 간 길에 남산에 오르고 주변 길을 걷다. 초입의 백범광장에는 새로 복원한 한양 성곽이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예전의 음침했던 공원의 분위기가 일신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앞에서 선생이 남긴 글귀를 읽는다. '見利思義'라, '이익을 만나면 의(義)를 생각한다'는 부분에 눈길이 멎는다. 맹자가 양 혜왕의 초청을 받아 찾아갔다. 혜왕은 맹자에게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는 계책을 물었다. 이때 맹자는 대답했다. "임금님께서는 어찌 이익만 말씀하십니까?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서로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고 말했다. 첫머리에 나오는 얘기다. 최근에 우리에게 일어난 비극도 모두가 이(利)만 탐하다가 벌어진 사태가 아니던가. ..

사진속일상 2014.05.27

딱 / 최재경

아버지는, 밥상머리에서 밥을 복 나가게 먹는다고 수저로 대갈빡을 때렸다 말로 해도 될 것을 쳐다보았더니, 대든다고 또 때렸다 "딱" 어지간히 익은 소리가 났다 엄마도 모르게 은수저를 내다버렸다 다음날도, 지금까지도 아무도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열대여섯쯤 되던 해였다 지금도, 그 자리를 만져보면 대갈빡에서 "딱" 소리가 난다 복이 나갔는지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다 - 딱 / 최재경 맛있게 밥을 먹는 자식 쳐다보는 것만큼 큰 기쁨도 없다. 부모의 마음이다. 나 역시 자식 키울 때 그랬다. 자주 야단친 게 아이들의 식사 태도였다.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며 밥을 먹는다든지, 꼭 한 숟가락을 남기는 버릇 등, 속이 상한 게 많았다. 어느 날은 이 시에 나오는 아버지가 되었다. 가끔 아내가 그때의 사건을 상기시켜 준..

시읽는기쁨 2014.05.25

논어[84]

선생님 말씀하시다. "맹지반은 뽐내지 않는다. 도망칠 때 뒷처리를 맡고, 성문으로 들어와서는 말에 채찍질을 하면서 말하기를 '뒷처지자고 해서 처진 것이 아니라, 요놈의 망아지가 달려 주어야지!'라고 하였다." 子曰 孟之反不伐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 曰 非敢後也 馬不進也 - 雍也 10 겸손의 모범을 보여주는 맹지반(孟之反)의 행동이다. 맹지반은 후퇴하는 군대의 뒤를 맡아 아군을 안전하게 성 안으로 들여보낸 후 제일 늦게 돌아왔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일부러 뒤처진 것이 아니라 말이 달려주지 않아서 그랬단다. 자신의 용맹과 희생정신을 자랑할 만도 하건만, 말에게 핑계를 대며 먼저 도망간 사람들을 미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배려와 겸양의 마음씨가 가상하다. 반면에 세월호 선장 같은 행동도 있다. 그는 혼자 살기 ..

삶의나침반 2014.05.24

애마

고개를 넘다가 기념으로 찍어준 애마(愛馬) 투싼, 8년째 나의 발이 되어주고 있는 고마운 친구다. 기특하게도 말썽 한 번 부리지 않고 어디든 가자는 대로 동행한다. 운전면허를 따고 가지게 된 첫 마이카는 기아 프라이드 중고였다. 에어컨도 장착되지 않았던 경차였지만 운전하는 재미에 빠져 가족을 태우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운전에 숙달되고 나서 산 게 현대 엘란트라였는데 내내 골치를 썩였다. 하자가 많이 생겨서 서비스 센터도 어지간히 들락거렸다. 달리다가 길 한복판에서 서버렸고, 자동 변속기 안에 엉뚱한 볼트가 들어가 있어 큰 사고가 날 뻔도 했다. 현대차를 안 사려고 했는데 어쩌다 아반떼가 다음 차가 되었다. 아반떼는 내 경제 수준에 맞는 무난한 차였다. 그러다가 여주 생활을 정리하며 생긴 돈으로 산 ..

사진속일상 2014.05.23

천장에 쥐가 산다

어린 시절 시골 초가집에 살 때 부모님은 천장에 사는 쥐와 자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쥐들 뛰어다니는 소리에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운동회를 하는지 천둥소리가 나기도 했다. 정 참다 안 되면 아버지는 "이누무 쥐새끼들!" 하며 빗자루 끝으로 애꿎은 천장만 때렸다. 그런다고 쥐가 사람 마음을 헤아려줄 리는 없으니 결국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쥐약을 놓기도 하고 고양이를 기르기도 했지만 완전한 해결책은 안 되었다. 쥐약을 먹고 쥐가 죽으면 천장에서 썩는 게 아닌가, 그것이 어린 마음에 걸렸다.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보다 사실 그게 더 두려웠다. 어머니한테 물으니 쥐가 쥐약을 먹으면 목이 말라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대답을 듣고서야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초가집에서 살았던 시절에..

길위의단상 2014.05.22

아흔 즈음에

백 세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아흔 살, 백 살을 사는 기분은 어떨까? 이 책은 인문학자인 김열규 선생이 아흔 가까이 된 인생의 끝자락에서 쓰신 귀한 글 모음이다. 나이 든다는 것과 죽음에 대하여, 옛 시절의 회상, 이웃과 자연에 대한 단상이 담백하게 그려져 있다. 노년에 찾아오는 지루한 시간과 외로움을 선생은 솔직하게 고백한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이백사십 시간 같다고, 아예 가지고 오지고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한결같은 시간, 옴짝달싹 않는 시간의 웅덩이에 빠져들고 만 것 같다고 한다. 외로움도 마찬가지다. 늙을수록 자주자주 외로움에 젖는다. 마음이 풀기 가신 갈잎 꼴로 버석대는 걸 바라본다. 나이가 드는 것과 고독을 타는 것은 정비례한다. 늙을수록 도시에서 친구들이 많은 데서 살아야 한다고 사람들..

읽고본느낌 2014.05.21

의심하라

"가만히 있으라!" 배는 계속 기울어가는데 선실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있으라는 말만 방송되었다. 어린 학생들은 그 말을 믿었고, 결국 삼백 명이 넘는 생때같은 생명이 수장되었다. 안타깝고 통분한 일이다. 갑판으로 대피하라는 말 한마디만 했다면 이런 억울한 희생은 없었을 것이다. 1시간이 넘는 시간이었으니 모두가 탈출하기에 충분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에 의심을 품은 사람이 어째서 한 사람도 없었을까? 이렇게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앞장선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까? 그렇지만 내가 인솔교사로 거기에 있었더라도 반대되는 선택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선장의 지시를 거역하고 아이들을 밖으로 나가게 할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더 큰 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모험보다..

참살이의꿈 2014.05.20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 박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꾹 쑥꾹 쑥꾹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 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꾹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

시읽는기쁨 2014.05.19

논어[83]

자유가 무성 지방 원이 되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너는 쓸 만한 사람을 만났느냐?" "담대멸명이란 사람이 있는데, 샛길은 걷지도 않고, 공사가 아니면 방에 들어오는 일이 없습니다." 子游爲武城宰 子曰 女得人焉爾乎 曰 有澹臺滅明者 行不由徑 非公事 未嘗至偃之室也 - 雍也 9 요사이 공직자가 욕을 많이 먹고 있지만,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사리사욕만 챙기는 건 아니다. 출세지향적이고 높은 자리를 좋아하는 인간들이 욕심을 부리다가 지탄을 받는다. 담대멸명 같은 정직한 사람을 중용하는 것이 지도자가 갖춰야 할 득인(得人)의 조건이다. 요령과 편법 대신에 정직과 성실이 우선 가치가 되어야 한다. 공사가 아니면 상사와 만나지 않을 정도로 공과 사에 엄격한 담대멸명..

삶의나침반 2014.05.18

동화사 느티나무

동화사(桐華寺)라는 이름대로 절 주변에는 오동나무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심지대사 오동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큰 나무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찾지 못하고, 대신 절 입구에서 이 느티나무를 만난다. 이 나무에는 '인악대사(仁嶽大師) 느티나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인악대사에 대한 안내문 설명은 이렇다. '법명이 의소(義沼)인 대사는 용연사에서 공부를 하다가 스님이 되었다. 스승인 벽봉(碧峰) 스님으로부터 불교 경전을 배우고 비슬산 등에서 불경을 설파하다가 동화사에 머물렀다.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지은 용주사를 주관하는데 뽑혔으며, 여러 글을 지어 바치니 정조가 크게 감탄하여 홍제(弘濟)라는 호를 내렸다. 1796년 용연사 명적암에서 세수 51세로 입적하였다.' 대구에서는 고목..

천년의나무 2014.05.17

불국사와 감은사지

대구에 간 길에 잠시 경주에 들렀다. 굳이 불국사에 찾아간 것은 조용한 불국사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너 차례 불국사에 갔지만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늘 시장통만큼 복잡했다. 잠시 수학여행이 금지된 틈을 이용해서 불국사의 다른 맛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도 관람객이 많았지만 전과 같은 방해를 받지는 않았다. 법당의 스님 독경 소리에서는 고요한 산사 분위기가 났다. 다만 너무 다듬어진 절이어서 성형 미인을 보는 것 같이 자연스러움이 부족했다. 이런 불국사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게 다보탑일 것이다. 언제 보아도 다보탑의 조형미는 빼어나다. 시대의 정형을 뛰어넘은 독창성에 감탄한다. 옆에 있는 석가탑은 현재 수리중이다. 석재는 완전히 해체되어 밑바닥이 드러나 있다. 중학생일 때 수학여행으로 불국사에 처음..

사진속일상 2014.05.17

계림수필

도올 김용옥 선생이 쓴 일기 형식의 수필집이다. 2009년 4월 14일부터 11월 9일까지 일상의 단상이 실려 있다. 짧은 경구가 많이 나오니 아포리즘 수필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특이한 점은 내용의 반 이상이 닭에 관한 얘기다. 이라는 제목처럼 집에서 기르는 닭을 보고 배운 삶의 지혜를 적고 있다. 세밀한 관찰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선생은 닭이 개처럼 인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명 본연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준다고 말한다. 자연의 리듬을 존중하며 천리(天理)에 따라 사는 닭의 모습에는 천지지심(天地之心)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닭을 키우면서 천지의 이법(理法)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주변의 모든 것이 스승이 된다는 말이 맞다. 선생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싫어하는 사람 역시 ..

읽고본느낌 2014.05.13

연속극 유감

다른 나라도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TV는 연속극을 너무 많이 방송하는 것 같다. 그것도 황금시간대에 주로 편성이 되어 있다. 수요가 있으니까 방송을 하겠지만 나같이 연속극을 보지 않는 사람은 채널 선택권을 박탈당한 기분이다. 한류 열풍의 일등공신이 드라마니 무조건 나무랄 일도 아니나, 아무래도 입맛이 쓴 건 사실이다. TV를 바보상자라 부르는 건 넋을 놓고 연속극에 빠지는 현상을 나무란 것이다. 연속극 보는 걸 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연 책을 읽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 한심해진다. 한국인의 지적 수준을 하향 평준화시키는데 연속극의 공헌을 빼놓을 수 없다.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나이 들면 비슷해진다는 농담도 있다. 사람들의 TV 연속극에 대한 몰두가 불가사의하다. 막장이라고 욕..

길위의단상 2014.05.12

논어[82]

선생님이 자하더러 말씀하시다. "너는 참된 학자가 되어야지, 하찮은 학자는 되지 말라." 子謂子夏曰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 雍也 8 유자(儒者)에도 두 종류가 있다. 참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이 군자유(君子儒)요, 자신의 영달과 재물을 좇는 공부를 하는 것은 소인유(小人儒)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옛날에도 인간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이 적으니까 이런 공자의 말씀이 전하는 것이겠다. 공자에게 '학(學)'이란 사람이 되는 길에 다름 아니었다. 이 기준에서 보면 현재의 학교란 소인양성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훈이나 교육 목표를 보면 그럴 듯하지만 겉으로 내세우는 것일 뿐 실제 행해지는 내용은 딴판이다. 명분과 속알이 일치하는 않는 교육은 가짜다.

삶의나침반 2014.05.11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 / 이기철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 그러면 풀들의 숨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발이 간지러운 풀들이 반짝반짝 발바닥 들어올리는 소리도 들릴 거예요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 아픔처럼 꽃나무들 봉지 튀우는 소리 들릴 것입니다 햇살이 금가루로 쏟아질 때 열 마지기 논들에 흙이 물 빠는 소리도 들릴 거예요 어디선가 또옥똑 물방울 듣는 소리 새들이 언 부리 나뭇가지에 비비는 소리도 들릴 것입니다 사는 게 무어냐고 묻는 사람 있거든 슬픔과 기쁨으로 하루를 짜는 일이라고 그러나 오지 않는 내일을 위해 지레 슬퍼하지 말라고 산들이 저고리 동정 같은 꽃문 열 듯 동그란 웃음 하늘에 띄우며 봄 아침엔 화알짝 창문을 여세요 -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 / 이기철 잔인하고 우울한 계절이 계속되고 있다. 온 나라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도 어둡..

시읽는기쁨 2014.05.10

남한산성 영산홍

남한산성 서문 부근에 영산홍 군락지가 있다. 인공적으로 꾸며 놓은 꽃밭일 것이다. 영산홍(映山紅)은 진달랫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진달래, 철쭉과는 사촌쯤 된다. 서로 구별하기가 애매하지만 진달래나 철쭉이 아닌 것 같으면 영산홍으로 보면 된다. 원예용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색깔이 다양하고 화려하다. 산에는 철쭉, 뜰에는 영산홍이 보통인데 산속 소나무 아래에 핀 영산홍 군락도 색다르다.

꽃들의향기 2014.05.09

남한산성 수어장대

비 그치고 바람 센 날이었다. 거센 바람을 맞고 싶어 남한산성 수어장대에 갔다. 세포 사이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면 마음에 낀 찌꺼기를 훌훌 날려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수어장대(守禦將臺), 우두머리가 군대를 지휘하는 곳이다. 이 건물을 볼 때마다 군사용 건물을 왜 저렇게 지었는지 의문이 든다. 불화살 몇 발이면 쉽게 불타버릴 것 같다. 실제 전투 용도보다는 멋내기나 위엄 부리기에 알맞아 보인다. 아니면 평상시에 연회를 즐기기에 좋게 생겼다. 임진왜란 때 의주로 도망친 선조, 병자호란 때 이곳으로 피난 온 인조가 사지에 남아 있어야 할 백성 걱정을 얼마나 했을까. 이승만은 6.25 전쟁이 터지자 서울은 안전하다고 거짓말을 해 놓고는 남쪽으로 도주한 뒤 한강 다리를 끊었다. 위기가 닥쳤을 때 백성과..

사진속일상 2014.05.09

호박 목걸이

딜쿠샤(Dilkusha)를 처음 본 건 문화 답사 모임을 따라갔던 6년 전이었다. 굉장히 오래되고 낡은 서양식 건물이었는데 그때는 딜쿠샤보다도 옆에 있던 큰 은행나무에 더 눈길이 갔다. 권율 장군이 직접 심었다고 하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400년이 넘었다. 딜쿠샤의 여주인이었던 메리 린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가 쓴 자서전인 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메리는 1889년에 영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세상의 모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고자 한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메리는 연극배우가 되어 세계를 순회하던 중 일본에서 만난 미국인 브루스와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새색시가 되어 1917년에 한국에 들어왔다. 브루스가 한국에서 금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광업으로 큰..

읽고본느낌 2014.05.07

불곡산과 대광사 연등

사월 초파일에 불곡산길을 걸었다. 분당 쪽 산자락에 대광사(大光寺)가 있어 하산하면서 화려한 연등 구경을 했다. 대광사는 천태종에 속한 사찰로 분당이 만들어지면서 신도시 주민의 포교를 목적으로 창건되었다. 지금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큰 절인데 너무 규모가 커서 오히려 다가가기가 어렵다. 종교만은 현대의 물량주의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종교 역시 세태의 영향에서 벗어나기가 힘든가 보다. 어쩌면 분당이라는 이미지와 대광사가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아니다 하지만 밀려오는 스트레스는 어쩌지 못하겠는가 보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날카롭게 반응하고 상처를 받는다. 식탁에 놓인 약봉지에 더 마음이 아프다. 답답한 심정은 산길을 걸어도 덜어지지 않고, 5월의 숲도 위로가 되지..

사진속일상 2014.05.06

우주력

인간 100년이 우주 시간으로는 1초다, 누군가의 글에서 보았다. 과학 전공을 한 탓인지 이런 수치를 보면 그냥 넘기지 못하고 계산해서 맞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인간의 한평생이 우주 시간으로는 순간에 불과하다는 걸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인 줄 알지만, 그래도 정확해야 마음이 놓이는 건 이과생의 한계다. 칼 세이건이 쓴 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늙었고 인류는 너무나도 어리다." 그리고 우주력이 나온다. 우주 나이 약 150억 년을 1년으로 압축한 달력이다. 그럴 경우 10억 년은 우주년의 24일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우주년에서의 1초는 475년이다. 이를 환산하면 인생 100년은 우주 시간으로 0.21초다. 이 달력에 따르면 9월이 되어서야 지구가 태어났고,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어서야 공..

참살이의꿈 2014.05.05

논어[81]

염구가 말했다. "선생님의 교훈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힘이 모자라는 탓입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힘이 모자라면 중도에서 쓰러지는 법이야. 지금 너는 미리 그만두는 셈이거든." 염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획 - 雍也 7 마라톤 대회에서 꼴찌로 들어오더라도 박수를 받는 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노력 때문이다. 염유는 달려보지도 않고 미리 주저앉아서 스승에게 꾸중을 듣고 있다. 선생님의 가르침은 좋지만 실천하기에는 힘이 부친다. 흔히 이런 식의 말을 자주 하고 듣는다. 역부족은 핑계일 뿐, 실은 실천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노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내 도는 알기도 쉽고 실천하기도 쉽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도무지 알지도 못하고 실천하려고도 않는다." 이는 예수..

삶의나침반 2014.05.04

능원리 느티나무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가 있어서 동네 이름에 '능(陵)'이 붙었다. 용인시 모현면에 있다. 태종 6년(1406)에 선생의 묘를 개성에서 이곳으로 옮긴 뒤 후손들이 묘막을 짓고 살기 시작한 이래로 능원리는 영일 정씨의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이 느티나무 옆에는 선생의 후손 중 한 분의 효자비각이 있다. 주변이 어수선하긴 하지만 느티나무는 마을을 대표하는 나무로 어디에서나 보일 정도로 우뚝 서 있다. 나무 높이는 20m, 줄기 둘레는 4m다. 수령은 250년가량 되었다.

천년의나무 2014.05.03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 함민복

배가 더 기울까봐 끝까지 솟아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려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바보 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세상을 안심시켜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 함민복 ........................................

시읽는기쁨 2014.05.02

정몽주 묘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 선생의 묘가 있다. 모현(慕賢)이나 능원(陵院)이라는 지명이 모두 이곳에 있는 정몽주 묘에서 유래된 것 같다. 원래 이성계, 정몽주, 정도전은 고려를 개혁하려는 한 뜻이 있었다. 특히 다섯 살 아래인 정도전과는 성균관에서 같이 근무하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는 같았지만 방법론에서 둘은 갈라졌고, 서로 다른 길을 갔다. 정몽주가 온건 개혁파라면 정도전은 급진 혁명주의자였다. 정몽주는 유학에 기반을 둔 명분에 집착했고, 정도전은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역성혁명마저 불사했다. 정몽주는 고려의 마지막을 지켰고, 정도전은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정몽주와 정도전 중 어느 길이 옳은가를 가르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다만..

사진속일상 201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