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 30

스며드는 것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스며드는 것 / 안도현 낚시꾼들이 손맛을 거리낌 없이 즐기는 건 물고기가 고통을 모를 것이라는 가정을 하기 때문이다. 바늘에 입이 꿰인 채 살려고 발버둥 치는 물고기의 비명을 듣는다면 차마 낚시를 취미로 하지는 못할 것이다. 동물은 말할 나위가 없고 식물도 감각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은 우리의 지식이 일천할 뿐,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

시읽는기쁨 2014.06.30

스마트폰 한 달

스마트폰으로 바꾼 지 한 달이 되었다. 재미난 노리개가 새로 생겼다. 이놈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늦바람이 무섭다. 스마트폰은 전화기가 아니라 손에 들고 다니는 컴퓨터라는 걸 사용해 보니 알겠다. 이름은 폰이지만 전화보다는 다른 기능을 더 많이 사용한다. 작지만 무서운 기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스마트폰으로 손이 간다. 누워서 뉴스를 읽고, 요사이는 월드컵이 열리니 관심 있는 경기는 중계도 본다. 일어나 거실로 나가 TV나 컴퓨터를 켤 필요가 없다. 외국에 나가 있는 친구와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신기하다. 좋아하는 음악을 저장해 놓고 심심할 때면 볼륨을 높인다. 작은 스피커가 아쉽긴 하지만 듣는 데는 지장이 없다. 폰에 카메라가 달려 있어 더욱 좋다. 팥알만 한 렌즈치고는..

참살이의꿈 2014.06.29

논어[89]

선생님 말씀하시다. "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지."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 雍也 15 니체는 인간 정신이 성숙하는 세 단계를 설명하면서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비유를 사용했다. 낙타는 노예 정신, 사자는 자유 정신, 어린아이는 이 모든 것에서 초극되고 해방된 의식을 나타낸다. 단순히 안다는 것에 머무는 건 지식에 얽매인 상태다. 자유로운 사자의 정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만족하고 더 바랄 것이 없는 어린아이의 행복과 즐거움이야말로 완전한 경지다. 본래의 순진무구로 돌아가야 한다. 공자나 니체나 인간 완성에 대해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마지못해 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해서 하는 사람이 있고, 즐기..

삶의나침반 2014.06.28

[펌] 도올의 교육입국론

혁신 교육감 시대를 위한 도올의 교육입국론 1. 총론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파랑을 격파하며 나아간다.”(讀萬卷書, 破萬里浪) 진리 탐구를 위해 눈물겨운 여정을 감행하였던 신라의 구법승들이 유학 장도에서 읊었던 장쾌한 절구의 한 소절! 어찌 만 리의 파랑이 서해바다의 파랑일 뿐이리오? 그것은 기구한 우리 인생의 파랑이요, 기나긴 반만년 역사의 격랑이요, 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 억압과 자유의 기복으로 점철된 우리 정치사의 풍랑이리라! 공자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열 가호쯤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나처럼 충직하고 신의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공자는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의 인간됨의 특징을 “..

길위의단상 2014.06.27

여덟 단어

20, 30대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지은이는 광고 크리에이트브 디렉터인 박웅현 씨다. 부제가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로 붙어 있는데,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여덟 단어의 키워드로 풀이하고 있다. 1. 자존(自尊) - 당신 안의 별을 찾으셨나요? 2. 본질(本質) -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 3. 고전(古典) - Classic, 그 견고한 영혼의 성(城) 4. 견(見) - 이 단어의 대단함에 대하여 5. 현재(現在) - 개처럼 살자 6. 권위(權威) - 동의되지 않는 권위에 굴복하지 말고 불합리한 권위에 복종하지 말자 7. 소통(疏通) - 마음을 움직이는 말의 힘 8. 인생(人生) -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 닿은 곳에 싹 틔우는 땅버들 ..

읽고본느낌 2014.06.26

가장 짧은 시 / 서정홍

아랫집 현동 할아버지는 몇 해째 중풍으로 누워 계신 할머니를 혼자 돌보십니다. 밥도 떠먹여 드려야 하고, 똥오줌도 혼자 눌 수 없는 할머니를 힘들다 말 한 마디 하지 않으시고..... 요양원에 보내면 서로 편안할 텐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이웃들이 물으면, 딱 한 말씀 하십니다. "누 보고 시집왔는데!" - 가장 짧은 시 / 서정홍 고향 마을에 계신 어르신들도 대부분 몸이 불편하시다. 중노동이 몸을 망가뜨린 것이다. 주변에 제일 많이 생기는 게 노인 요양원이다. 거동이 불편해지면 어쩔 수 없이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요양원에 들어간다. 자식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부가 같이 사는 집은 어느 한쪽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끝까지 버텨내는 걸 본다. 이 시에 나오는 현동 할아버지도 그렇다. 시(詩)가 멀리..

시읽는기쁨 2014.06.25

논어[88]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람은 날 때부터 곧은 것이다. 속임수로 살아나는 것은 요행으로 화를 면하는 거야." 子曰 人之生也直 罔之生也 幸而免 - 雍也 14 "성선설은 맹자, 성악설은 순자", 고등학교 다닐 때 열심히 외워서 지금도 뇌리에 박혀 있다. 사람은 날 때부터 곧은 것이라는 말씀을 보니 공자도 굳이 분류한다면 성선설에 속해 보인다. 사람은 천성이 곧게 되어 있으니 바르게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속임수를 부리면서도 잘 사는 것은 요행으로 화를 면한 경우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반대로 되어 있다. 공자라고 그걸 모를 리 없다. 더구나 공자 시대는 온갖 패악이 행해지던 춘추전국 시대가 아니었던가. 불의와 술수가 지금보다 더했을 것이다. 그런대로 공자의 언명은 시류를 벗어나서 원칙적이다. 인간이 가야..

삶의나침반 2014.06.24

상처

산길을 걷다가 소나무에 새겨진 상처를 보았다. 오래된 나무에는 거의 전부 이런 상처가 나 있었다.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홈을 파서 송진이 쉽게 흘러내리도록 한 흔적이다. 자원이 부족했던 일제 강점기 때부터 1970년대까지 우리 산의 소나무들이 이런 피해를 보았다. 수십 년이 흘렀어도 소나무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마음에 남겨진 상처는 평생을 가면서 괴롭힌다. 심리 치유를 하는 것은 저 소나무처럼 보형재를 발라 더는 썩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 정도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아픔이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사진속일상 2014.06.23

도곡리 느티나무

제천시 백운면 도곡1리(道谷里, 도장골) 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다. 세 그루가 있는데 그중 한 그루가 수령 400년이 된 보호수다. 마치 두 자식과 함께 있는 가족의 모습이다. 이 마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왠지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친근하게 느껴진다. 느티나무 세 그루 때문이다. 만약 나무가 없었다면 입구가 굉장히 황량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를 지나며 포근한 모성적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늘 함께 있으니 고마움을 잘 알지 못하는 것도 정자나무다.

천년의나무 2014.06.22

100조분의 1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사람으로 태어날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남자는 1회 사정할 때 약 2억 마리의 정자를 방출한다. 평생으로 따지면 2,000억은 된다. 반면 여자는 평생 500개의 난자를 생산한다. 그러므로 부모에 의해서 태어날 수 있는 인간의 수는 100조가량 된다. 내가 이 세상에 나올 확률은 100조분의 1이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해주는 불교 설화가 있다. 어떤 사람이 구멍이 하나 있는 판자를 바다에 던졌다. 바다에는 눈먼 거북이가 살고 있는데 백 년에 한 번씩 물 위로 고개를 내민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거북 머리가 우연히 판자 구멍에 들어가게 될까?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그만큼 어려운 확률이라는 설명이다. 이 확률도 계산해 보자. 지구 표면적..

길위의단상 2014.06.22

인기 없는 에세이

러셀의 에세이 모음집으로 러셀 특유의 유머와 풍자를 확인할 수 있다. 15년에 걸쳐 발표했던 여러 종류의 글이 모여 있지만 러셀이 평생을 추구했던 일관된 가치가 바탕이 되고 있는 건 물론이다. 그가 지키려 했던 진보적 가치는 자유, 민주주의, 정의, 복지, 관용 등이었다. 에 실려 있는 12편의 글 중 눈에 띄는 게 '인류의 미래'와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다. 후자는 이 책의 부제로도 이름이 올라 있다. 미래에 대한 러셀의 생각이 '인류의 미래'에 잘 드러나 있다.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 쓰여진 탓인지 내용은 상당히 비관적이다. 러셀은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다음 세 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실현될 것이라고 보았다. 1. 모든 인간, 어쩌면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종말을 맞는다. 2. 인구..

읽고본느낌 2014.06.21

운칠기삼

운동이나 바둑 등 승부가 걸린 경기에서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서로 비슷한 수준일 때는 실력차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지 않는다. 이기고 지는 게 실력보다는 운에 더 좌우된다. 야구 시합을 보아도 잘 때린 공이 야수 정면으로 날아가 더블아웃 당하기도 하고, 빗맞은 공은 행운의 안타가 되기도 한다. 작은 변수 하나가 시합을 뒤흔드는 것이다. 그래서 5전3승제, 또는 7전4승제처럼 여러 경기를 치러서 우연의 요소가 개입할 여지를 줄인다. 인생살이는 더 복잡하고 우연의 요소가 많다. 우연히 일어난 작은 사건 하나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 짓고 생사를 가름하기도 한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도 어떤 사람은 출항이 늦어지니까 비행기로 간다고 배에서 내렸다. 순간의 선택으로 생명을 구했다. 버스 사고가..

참살이의꿈 2014.06.19

산천단 곰솔

예로부터 제주도에 목사가 부임하면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가 천제(天祭)를 지냈는데, 길이 험하고 날씨가 나쁘면 이곳 산천단(山川壇)에서 대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산천단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곰솔 여덟 그루가 있다. 500년 정도의 수령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이 드신 곰솔이다. 키도 20m 내외에 이를 정도로 크다. 곰솔이 내뿜은 기상이 대단하다. 나무 아래 초가집 한 채 있다면 추사의 세한도를 보는 것 같은 분위기가 날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4.06.18

회룡에서 사패산에 오르다

전 직장 동료와 사패산(賜牌山, 552m)에 올랐다. 5년 전에는 같은 직장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치며 일했는데 지금은 모두 퇴직했다. 어느새 평일 날 한가하게 산에 오르는 영감탱이가 되었다고 K가 말해서 한바탕 웃었다. 등산로 옆에는 회룡사(回龍寺)가 있다. '룡'은 이성계를 가리킨다. 태조 7년(1398)에 이성계는 함흥에서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있던 무학대사를 방문했다. 무학대사는 정도전의 미움을 받아 토굴에 은신하고 있었다. 이성계는 며칠 머물렀고, 임금이 머물렀다 환궁했다는 뜻으로 새로 지은 절 이름을 '회룡'이라고 명명했다 한다. 사패산 정상에 서면 도봉산 줄기가 병풍처럼 펼쳐진 것과 함께 멀리 북한산 봉우리도 한눈에 보인다. 왼쪽에서부터 포대능선을 따라가면 자운봉이 나오고 도봉능선과 ..

사진속일상 2014.06.18

옛 마을을 지나며 / 김남주

찬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 옛 마을을 지나며 / 김남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가 조선 민족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다는 등의 망언을 한 전력 때문에 시끄럽다. 젊은이들이 대기업만 선호하는 것도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는 성향 탓으로 돌렸다. 또, 6.25 전쟁을 미국을 붙잡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시련이라는 말도 했다. 복지가 부패보다 더 무섭다는 칼럼도 있다. 역사와 현실 인식에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이 사람은 개신교 근본주의 신앙에 친미 친일적인 식민사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나라의 지도자라면 사회 현상에 대한 올바른 원인 진단과 균형된 시각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총리감이 아니다. 이런 인물을 총리랍시고 추천한 걸 보면 ..

시읽는기쁨 2014.06.17

논어[87]

선생님 말씀하시다. "바탕이 맵시보다 나으면 촌뜨기, 맵시가 바탕보다 나으면 글친구, 바탕이나 맵시가 한데 어울려야 훌륭한 인물일거야."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 雍也 13 군자는 바탕과 맵시가 어울려야 한다[文質彬彬]. 문(文)과 질(質),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은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바탕이 중요한 건 당연하지만 맵시도 무시하지 않는다는 데서 공자의 특징을 볼 수 있다. 현실주의적 인간관이다. 아무리 바탕이 훌륭하고 속이 차 있어도 맵시가 떨어지면 인정받기 어렵다. 세상 속을 살아가자면 어느 정도 맵시도 갖추어야 한다. 아마 다른 현인들 같았으면 맵시보다는 바탕의 우위를 강조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자의 말씀은 독특하게 들린다. 그러나 뜀박질에 자신이 없는 사람..

삶의나침반 2014.06.16

제주도 4박5일 - 스마트폰 사진

어렵사리 다녀온 올들어 첫 여행이었다. 원래는 연초에 가기로 하고 숙소와 교통편을 모두 예약해 놓았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생활할 장기 숙소를 구할 계획이었다. 허나 늘 그렇듯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인간사 자질구레한 일 탈도 많아서 일마다 어그러져 뜻대로 되는 게 없어라 젊었을 땐 집 가난해 아내 늘 구박하고 말년에 봉급 많으니 기생들만 따르려 한다 주룩주룩 비 오는 날 놀러 갈 약속 있고 개었을 땐 대부분 할 일 없어 앉아 있다 배불러 상 물리면 맛있는 고기 생기고 목 헐어 못 마실 때 술자리 벌어지네 귀한 물건 싸게 팔자 물건 값이 올라가고 오랜 병 낫고 나니 이웃에 의원 있네 자질구레한 일 맞지 않음이 이와 같으니 양주에서 학 타는 신선 노릇 어찌 바랄까 이규보의 '위심(違心)'이라..

사진속일상 2014.06.16

제주도 4박5일 - 한라산 사라오름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다가 체력이 방전되어 포기하고 샛길로 찾아간 사라오름이다. 꿩 대신 닭이었다. 성판악 코스가 이렇게 돌투성이로 험한 길인 줄은 미처 몰랐다. 20년 전 한겨울에 이 길로 백록담에 올랐는데 그때는 눈으로 다져져 있어 평탄했던 기억만 남아 있었다. 성판악 코스를 너무 우습게 봤다. 9시에 성판악 탐방안내소를 출발하여 속밭 대피소, 사라악샘을 거쳐 진달래밭 대피소(1,500m)에 도착하니 오후 1시 가까이 되었다. 백록담 등정 제한 시간에는 겨우 맞추었으나 자신이 없었다. 흙길 4시간이었다면 무리가 되지 않았겠으나 돌길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더구나 등산화가 아닌 트레킹화를 신어서 발바닥도 아팠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간단한 점심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들른 곳이 사라오름이다. 사라오름은..

사진속일상 2014.06.15

제주도 4박5일 - 우도 걷기

제주도 4박5일 여행의 둘째 날은 우도(牛島)를 걸어서 일주했다. 올레 1-1 코스인 이 길은 마을과 밭을 지나고 바다를 끼고 걷는 재미가 아기자기하다. 잔뜩 흐린 날, 성산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20분 정도 걸려 우도 천진항에 닿았다. 배에서 내린 승객은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 스쿠터를 빌려 우도 구경을 시작했다. 걸으려 작정한 사람은 아내와 나, 둘밖에 없었다. 반시계방향으로 섬을 돌기로 했다. 길은 해안가를 벗어나 밭 사이로 꼬불꼬불 나 있었다. 밭의 경계를 나누는 돌담이 이색적이었다. 밭은 새로 경작을 시작하려는지 이랑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우도의 특산품은 땅콩이라고 한다. 밭길에 올레 표시가 잘 안 되어 있어 이리저리 많이 헤맸다. 그러나 어디를 걸어도 길인 것을, 멀리 보이는 우도 등대..

사진속일상 2014.06.14

아름다운 번뇌 / 복효근

오늘도 그 시간 선원사 지나다 보니 갓 핀 붓꽃처럼 예쁜 여스님 한 분 큰스님한테 혼났는지 무엇에 몹시 화가 났는지 살풋 찌푸린 얼굴로 한 손 삐딱하게 옆구리에 올리고 건성으로 종을 울립니다 세상사에 초연한 듯 눈을 내리감고 지극정성 종을 치는 모습만큼이나 그 모습 아름다워 발걸음 멈춥니다 이 세상 아픔에서 초연하지 말기를, 가지가지 애증에 눈감지 말기를, 그런 성불일랑은 하지 말기를 들고 있는 그 번뇌로 그 번뇌의 지극함으로 저 종소리 닿는 그 어딘가에 꽃이 피기를.... 지리산도 미소 하나 그리며 그 종소리에 잠기어가고 있습니다 - 아름다운 번뇌 / 복효근 절에 가면 불이문(不二門)이 있다. 해탈과 번뇌, 정토와 예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더 깊은 뜻이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받아들인다. 나..

시읽는기쁨 2014.06.08

콘택트

EBS '일요시네마'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오래전에 소설로 읽었고, 영화로도 본 적이 있다. 17년 전에 만든 영화다. 원작은 칼 세이건이 쓴 소설 다. 과학자가 쓴 SF여서인지 황당무계하지 않고 과학적 원리에 충실하다. 보통의 SF처럼 괴상하게 생긴 외계인과 이유 없이 폭력만 휘두르는 장면이 안 나와 좋다. 반대로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우리를 우주의 신비로 안내한다. 외계인과의 접촉을 다룬 영화로 추천하고 싶다. 다른 영화로는 '미지와의 조우'도 좋다. 우주에 존재할 지적 생명체를 찾는 프로젝트가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다. 앨리는 고집스럽게 우주에서 오는 전파를 탐색하다가 베가성에서 발신한 인공 신호를 포착한다. 그리고 ..

읽고본느낌 2014.06.07

진보 교육감에 기대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체 17개 지자체 중 13곳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승리했다. 대단히 기쁘다. 한국 교육의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결과에는 행운도 따랐다. 특히 서울 교육감으로 당선된 조희연 후보 같은 경우는 보수의 분열과 자중지란의 덕을 보았다. 지지율 4%의 낮은 인지도에서 출발하여 극적인 역전승을 했다. 13:4의 승리에는 세월호 참사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고를 계기로 우리 교육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앵그리 맘'은 교육의 변화와 혁신을 바랐다. 박근혜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한 분명한 반대 표시인 것이다. 학부모의 이기적인 의식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본 것만으로도 반갑다. 더구나 13명 중에서 8명이 전교조 출신..

길위의단상 2014.06.06

논어[86]

선생님 말씀하시다. "누구나 들고 날 때 문을 거치지 않을까마는 왜 이 길로 가려고 하지 않을까?" 子曰 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道也 - 雍也 12 노자도 비슷한 안타까움을 보였다. "내 말은 알기도 그지없이 쉽고 실행하기도 그지없이 쉬운데 세상 사람들 도무지 알지도 못하고 실행하지도 못합니다[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예수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십시오."라고 했을까. 거의 모든 선각자들이 이런 류을 탄식을 했다. 사람들이 응당 가야 할 길을 버려두고 삿된 길을 가는 게 그분들에게는 안타깝고 답답했을 것이다. 부처의 화택(火宅) 비유도 마찬가지다. 집에 불이 났는데, 아무리 밖에서 불이 났다고 외쳐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 말을 믿지 않고 나오질 않는다. 부처가 중생..

삶의나침반 2014.06.05

되는 대로 살거라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면 "너희는 별일 없냐?"라는 대답이 바로 돌아온다. 요즘은 그 뒤에 꼬리가 하나 더 붙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되는 대로 살아라.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다." 어머니는 되는 대로 살라고 하실 분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분이시다. 또 이런 말도 하신다. "살아보니 돈도 다 필요 없더라. 건강만 하면 아무것도 문제 안 된다." 되는 대로 산다는 게 인생에 대해 무책임한 것 같지만 어머니 삶의 지혜에서 나온 충고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에는 인간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 안 되는 걸 되게 만들려고 하는 데서 갈등과 다툼이 생긴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대로 받아들이고, 되는 건 되는 대로 받아들이면 살아가는 일이 ..

길위의단상 2014.06.04

매뉴얼의 시대

새로 생긴 직업 목록을 보다가 '연애관리사'가 있는 걸 보고 실소했다. 이젠 연애마저도 코치 받고 관리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성의 심리, 대화 기법, 여러 상황에 따른 대처법, 관계를 이어나가는 흐름 등을 가르친다고 한다. 남자들 사이에 인기라는 '픽업 아티스트(pick up artist)'는 속되게 말하면 여자 꼬시는 테크닉을 전수해 준다. 돈을 주고 연애의 기술을 배우는 시대다. 연애가 좀 서툴면 어떤가, 사랑하는 과정에도 공식과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집 앞에 태권도 학원이 있는데 태권도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온갖 놀이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노는 것도 학원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대로 하는 것 같다. 또래끼리 노는 능력은 퇴화되어 간다. 가끔 마을 뒷산에 오..

참살이의꿈 2014.06.03

쥐똥나무꽃

20여 년 전 실업고에서 근무할 때 '쥐똥'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있었다. 교장보다 더 실권이 있다는 실과부장이었는데, 키가 작고 얼굴이 까매서 누군지 몰라도 별명 하나는 기막히게 잘 지었다고 모두가 킥킥거렸다. 이 분은 카리스마가 있었지만 그래선지 가끔은 소외된 이들의 원성도 들었다. 사람들은 앞에서는 꼼짝 못하다가 뒤돌아서서는 "쥐똥만 한 것이!"라면서 투덜거리곤 했다. 쥐똥나무를 보면 그때의 재미있었던 풍경이 떠오른다. 쥐똥나무는 울타리 대용으로 많이 심는다. 집 앞 도로에도 이 쥐똥나무가 차로와 인도를 구분하기 위해 심어져 있다. 걸어가노라면 꽃향기가 코를 찌른다. 강도가 라일락 향기와 비슷할 것이다. 온갖 곤충들이 꾀는 것도 당연하다. 열매가 새까맣고 동글동글한데, 그래서 쥐똥나무라는 이름이 ..

꽃들의향기 2014.06.02

어제를 향해 걷다

가고 싶은 해외여행지 일순위가 일본 가고시마 남쪽에 있는 야쿠시마[屋久島]라는 섬이다. 수천 년 된 나무들이 자라는 미야노우라 산에는 수령이 7,200년이나 되는 조몬 삼나무가 있다. 이 나무를 찾아뵙고 경배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조몬 삼나무를 찾아가는 다큐영화 '시간의 숲'이 2년 전에 개봉되기도 했다. 그리고 야쿠시마는 야마오 산세이[山尾三省, 1938~2002] 선생이 살았던 곳이다. 마침 선생이 쓴 산문집 를 읽었다. 표지에는 선생에 대한 소개가 이렇게 적혀 있다. "시인이자 농부였고 철학자이기도 했던 야마오 산세이는 졸업장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겁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며 와세다 대학 3학년 때 학업을 접고, 1960대 후반부터 '부족'이란 이름으로 대안 문화 공동체 운동을 시작했다..

읽고본느낌 2014.06.02

서울 지하철에서 놀라다 / 함민복

1 열차가 도착한 것 같아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스크린도어란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민망하여 별로 놀라지 않은 척 주위를 무마했다 스크린도어에, 옛날처럼 시 주련이 있었다 문 맞았다 2 전철 안에 의사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두 귀에 청진기를 끼고 있었다 위장을 눌러보고 갈빗대를 두드려보고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옛 의술을 접고 가운을 입지 않은 젊은 의사들은 손가락 두 개로 스마트하게 전파 그물을 기우며 세상을 진찰 진단하고 있었다 수평의 깊이를 넓히고 있었다 - 서울 지하철에서 놀라다 / 함민복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아내와 휴대폰 얘기를 나누다가 결코 안 쓰겠다던 고집을 꺾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가게에 나가 싼 걸로 하나를 골랐다. 어찌 알았는지, 드디어 스마트폰을 갖게 되었냐며 몇 군데서 연..

시읽는기쁨 2014.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