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 27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시리즈로 나오는 작가수업 과정의 1권이다. 작가가 되려는 것과는 관계없고 제목이 멋있어서 읽었는데 지은이의 글맛에 반했다. 글을 어쩌면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쓸 수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난다. 강의록에 기초한 구어체여서 더욱 그랬다. 쉽게 쓰기의 전범을 보여준 것 같다. 더구나 딱딱한 문학론인데 말이다. 지은이 김형수 씨는 3부작으로 책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1부는 문학관, 2부는 창작관, 3부는 작가관인데 이 책 창작에 필요한 예비지식들과 그 가치관을 다루는 문학관에 속한다. 2부의 제목은 로 정해졌다는데 벌써 기대가 된다. 이 책은 작가수업에 한정된 게 아니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진정한 예술가는 예술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이란 '세상을 다르게 보..

읽고본느낌 2014.12.29

위대한 수줍음

'수줍다'라는 말이 잘 쓰이지 않는다. 어디서도 수줍은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심지어는 아이들도 그렇다. 요사이 아이들은 너무 당돌하고 되바라져 있다. 아예 인종이 변한 듯하다. 우리가 클 때만 해도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낯선 사람 앞에서는 얼굴도 잘 들지 못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질문해도 손을 들지 못하고 쭈뼛거리기 일쑤였다. 요즘 아이들은 모르면서도 먼저 나서기 바쁘다. '남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어려워하는 태도가 있다'가 '수줍다'의 뜻이다. 소녀라고 하면 연상되는 게 수줍음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여학생들을 보면 수줍음과는 영 거리가 멀다. 다들 선머슴으로 변한 것 같다. 언어는 왜 그렇게 난폭한지 모르겠다. 부끄러워할 줄도 어려워할 줄도 모른다. 고운 얼굴을 다시 쳐..

참살이의꿈 2014.12.28

왜 / 김순일

쥐 소 호랑이 토끼가 달려간다 용 뱀 말 양도 달려간다 식식거리며 잰나비 닭 개 돼지도 달려간다 허둥지둥 앞만 보고 달겨간다 죽을 둥 살 둥 벼랑 끝으로 가랑잎 같은 해가 지고 왜, 달려왔지?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잰나비닭개돼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두리번 두리번 - 왜 / 김순일 언젠가는 왜, 라고 물을 때가 올 것이다. 천지 분간 못하고 달려왔지만 언젠가는 벼랑 끝에 닿을 것이다. 이것은 실존적인 개인의 체험일 수도 있고, 인류 전체의 종말론적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이미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시작되었고 해는 기울어가고 있다.

시읽는기쁨 2014.12.27

논어[121]

선생님은 낚시질은 하되 그물질은 안 했고, 주살을 쏘되 잠든 새는 잡지 않았다. 子 釣而不網 익不射宿 - 述而 23 생태적 관점의 내용이 반갑다. 이렇게 인(仁)은 인간 너머 뭇 생명에로 확장된다. 절제와 중용의 가치가 이 말 속에 있다. 동물에게 이러할진대 사람을 대하는 자세 역시 넉넉히 짐작된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나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많은 동물이 멸종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성이 여전하다는 뜻이다. 생명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는 존경받을 만하다. 개화된 현대인도 아직 이런 인식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큰 스승님이시다.

삶의나침반 2014.12.26

경안천에 나가다

걷기 위해서 밖으로 나간 게 한 달도 훨씬 더 전이었다. 추위 핑계를 대며 오랫동안 방에서 칩거했다. 눈 내린 뒤로는 산 출입도 삼갔다. 오늘은 작심하고 경안천에 나갔다. 바깥바람은 싸늘하지만 상쾌했다. 폐에 고인 곰팡내 나는 공기가 신선한 공기로 바뀌었다. 비록 완전한 야외는 아니지만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에서 걷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경안천 산책로는 눈이 얼어 빙판으로 된 곳이 많아 멀리 나가지는 못했다. 쉬운 길을 따라 두 시간 정도 산책했다. 덤덤하게 지나가는 크리스마스다. 신앙도 거의 냉담 수준이다. 지금 내 마음은 거센 토네이도가 지나가고 난 뒤의 폐허 같다. 얼마 전부터 머리가 띵 하며 아픈 게 진정되지 않고 있다. 어쨌든 한 해의 막바지에 와 있다.

사진속일상 2014.12.25

헬스장에 가다

올겨울은 눈이 잦다. 날씨도 추워 바깥 출입하기가 쉽지 않다. 자연히 몸이 굼뜨게 된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외면하던 헬스장을 찾아갔다. 단지 안에 무료 헬스장이 있는데 이때껏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 기계의 도움을 빌어 운동한다는 것, 특히 머신 위에서 걷기를 해야 한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학교 운동장에 나가 흙을 밟으며 걸으면 되지, 지하 실내에서 기계 소음에 둘러싸여 헉헉거리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요사이 내 몸 상태는 하한가다. 체중은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잠은 줄여야 하고 몸은 더 움직여야 하는 게 급선무다. 눈과 추위로 길 걷기는 마땅치 않다. 어쩔 수 없이 아내 뒤를 따라 헬스장에 갔다. 처음으로 러닝머신과 자전거를 타 보았다. 선입견에 비해서는 괜찮았다. 며칠째 매일 나가고 ..

사진속일상 2014.12.24

앙코르와트

얼마 전에 앙코르와트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모 여행사에서 앙코르와트 자유여행 4박6일에 40만원 하는 파격적인 상품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친구와 가기로 하고 계획까지 세웠는데 마지막에 갑자기 친구 쪽에서 사정이 생겨 취소하고 말았다. 혼자라도 가려고 했으나 몇 가지가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 앙코르와트는 하루 이틀 들러보는 패키지로는 미흡하다. 최소한 5일 이상은 있고 싶은 곳이다. 그러니 배낭여행이나 자유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 이라는 책까지 사서 연구해 두었는데 아쉽게도 내년으로 미루어졌다. 책이 추천한 6일 일정은 대략 이렇다. 1일차 오전; 서 바라이 자전거 투어 오후; 씨엠립 시내 관광 2일차 오전; 앙코르톰 오후; 톰마논, 따께오, 따프롬, 쁘레롭 일몰 3일차 벵밀리아, 똔레삽..

길위의단상 2014.12.23

논어[120]

선생님 말씀하시다. "착한 사람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꾸준한 사람을 만나기만 해도 좋지. 없어도 있는 체, 텅 비었어도 알 찬 채, 가진 것도 없이 넉넉한 체하면 꾸준하기가 어려운 거야!" 子曰 善人吾不得而見之矣 得見有恒者 斯可矣 亡而爲有 虛而爲盈 約而爲泰 難乎有恒矣 - 述而 22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성인(聖人)이다. 공자가 생각한 성인은 요와 순, 주공이 아닐까 싶다. 그다음으로 군자(君子)가 있다. 여기 나오는 선인(善人)과 항자(恒者)는 군자의 한 모습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군자가 되는 길을 가르쳤다. 현실은 선인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고, 항자를 만나기만 해도 만족한다고 공자는 말한다. 항자, 즉 꾸준한 사람이란 가식으로 꾸미거나 위선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다..

삶의나침반 2014.12.22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만화가 박광수 씨의 카툰집이다. 그림과 글이 잘 어울려 있다. 만화책 보듯이 넘기면 한 시간이면 다 볼 수 있지만, 짧은 글이 주는 여운이 길어서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삶에 대한 통찰이 반짝이는 글과 그림이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작가는 말했다. 그게 바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다. 전에 , 도 재미있게 보았다. 은 살면서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간결한 그림과 더해져 작가의 생각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중에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다. 작가의 어머니는 치매 때문에 요양원에 계신 모양이다. 그로 인한 가족의 아픔이 '안단테, 안단테, 안단테'에 잘 그려져 있다. 아내를 요양병원에 보낸 아부..

읽고본느낌 2014.12.21

무서운 나이 / 이재무

천둥 번개가 무서웠던 시절이 있다 큰 죄 짓지 않고도 장마철에는 내 몸에 번개 꽂혀 올까봐 쇠붙이란 쇠붙이 멀찌감치 감추고 몸 웅크려 떨던 시절이 있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새 한 아이의 아비가 된 나는 천둥 번개가 무섭지 않다 큰 죄 주렁주렁 달고 다녀도 쇠붙이 노상 몸에 달고 다녀도 그까짓 것 이제 두렵지 않다 천둥 번개가 괜시리 두려웠던 행복한 시절이 내게 있었다 - 무서운 나이 / 이재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천둥 번개에 놀란 아이들이 마리아의 방으로 뛰어들어오자 마리아는 'My Favorite Things'를 불러주며 안심시켜준다. 아이들과의 서먹한 관계가 이 일을 계기로 친밀하게 변한다.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재미있었던 장면이었다. 나이..

시읽는기쁨 2014.12.20

한 걸음

산길을 걸을 때 배우는 것은 한 걸음의 소중함이다. 멀리 보이던 산봉우리도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다가와 있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길이 까마득하다. 저 먼 거리를 어떻게 걸어왔는가, 싶으면서 내가 대견하게 생각된다. 높은 정상에 오르는 것도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 욕심을 부려 뛰어오르다가는 제풀에 지쳐 포기하게 된다. 한 걸음은 미미해 보이지만 그것이 쌓이면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든다. 오랜만에 본 조카가 훌쩍 성장해 있는 걸 보듯 작더라도 지속되면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사람 키가 크듯 나무가 자라듯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건 아니다. 앞으로 가다가도 뒤로 후퇴하는 지그재그 걸음이 세상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사회의 진보도 그렇다. 아무리 걸어도 표시가 나지 않을 ..

참살이의꿈 2014.12.19

둘째 손주

둘째가 출산하고 친정에 와서 한 달간 조리를 한 후 돌아갔다. 집이 같은 단지 안에 있으니 몇 걸음밖에 안 되는 거리라 아내는 거의 매일 왔다갔다 한다. 떨어져 있던 딸이 아이 때문에 가까이 이사 왔다. 그러나 석 달 휴가를 마치고 출근하게 되면 아이를 돌보는 문제가 시급하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봐주고 싶지만 우리 둘 다 체력이 달려 비실거리기 때문에 사람을 쓰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될지는 닥쳐봐야 알 일이다. 오늘은 카메라를 들고 가서 사진을 몇 장 찍어 보았다. 아직은 생긋 웃을 줄을 모르니 귀여운 얼굴을 잡기가 어렵다. 보챌 때는 힘들다가도 혼자서도 잘 노는 모습을 보면 천사가 멀리 있지 않다. 내 품에 안긴 애기의 숨결을 들으면서 이 세상에 찾아온 여린 생명을 지키고 키우는 일은..

사진속일상 2014.12.18

논어[119]

선생님이 가르친 것은 네 가지다. 학문과 행동과 충심과 신의. 子以四敎 文 行 忠 信 - 述而 21 이번에 를 읽으면서 주목하게 된 단어가 행(行)이다. 공자 가르침 중에서 실천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다는 걸 새롭게 알았다.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의 '습(習)'도 실천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 배움은 헛것이다. 곳곳에서 이를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여기서도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이 네 가지였다고 말한다. 그중에 행(行)이 들어있다. 공부에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현대 교육의 문제점은 이 둘 사이의 괴리에 있지 않나 싶다. 지식만 강조할 뿐이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소홀히 한다. 참교육은 문(文)과 행(行)의 통합에서 ..

삶의나침반 2014.12.16

퇴곡리 반딧불이

유소림 씨 글은 정기구독하고 있는 을 통해 접하고 있다. 읽을 때마다 글을 무척 잘 쓰시는구나, 감탄하게 된다. 여러 해 전에는 퇴곡리에서 농사짓는 얘기였는데 요사이는 불교적 깨달음에 대한 내용으로 바뀌었다. 는 여러 매체에 실었던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지은이는 2005년에 부모가 지내던 퇴곡리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책 내용 대부분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단순한 전원 찬가가 아니라 자연에서 얻은 깨달음과 통찰을 담고 있다. 생명에 대한 사랑과 자연의 섭리에 대한 존중이 체화된 분인 것 같다. 뱀은 누구나 징그럽게 생각하는데 지은이는 마당에 사는 뱀과도 동무가 되는 길을 말한다. 꽃과 새를 사랑할 수는 있지만 뱀과 거미도 마찬가지인 경지는 보통이 아니다. 밤골 생활을 할 ..

읽고본느낌 2014.12.15

야만인들을 기다리며 / 카바피

- 우리가 이렇게 광장에 모여서 기다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야만인들이 오늘 도착한다고 한다. - 원로원은 어째서 저렇게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가? 왜 의원들은 아무 법률도 통과시키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는가? 그것은 야만인들이 오늘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 의원들이 법률을 제정해야 하는가? 법률은, 야만인들이 도착하면, 그들의 손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 어째서 우리의 황제는 오늘 저렇게 일찍 일어나서 도시의 가장 큰 관문 위에 자리를 잡고 엄숙한 모습으로 왕관을 쓰고 옥좌에 앉아 있는가? 그것은 야만인들이 오늘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황제는 그들의 지도자를 맞이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황제는 양피지 두루마리까지 갖고 나와 그 지도자에게 많은 명예로운 칭호와 작위를 수여할 준비를 갖추었다. - 어..

시읽는기쁨 2014.12.14

별종이라는 소리를 가끔 듣는데 그중에 하나가 잠이다. 보통 사람들은 50대 후반이 되면 잠자는 시간이 줄어들고 특히 새벽잠이 없어진다. 친구들과 얘기를 해 봐도 대개 그렇다. 너무 일찍 잠이 깨서 침대에서 빈둥거리기가 지겹다는 말도 듣는다. 나에게는 그런 얘기가 별세계 같다. 나는 잠이 너무 많다. 직장 다닐 때는 9시간 정도 잤는데 지금은 더 늘어났다. 올빼미족인 윗집 때문에 패턴이 달라지긴 했다. 전에는 밤 10시면 잠자리에 들었는데 요사이는 12시를 넘을 때가 많다. 대신 아침 9시가 넘어야 깬다. 그렇다고 선잠을 자는 것도 아니다. 오줌 누러 한 번 일어나는 외에는 숙면이다. 병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행복한 비명이라고 해야 하나, 환갑이 지났는데도 잠꾸러기인 내가 신기하다. 대신 아내는 잠을 ..

길위의단상 2014.12.12

논어[118]

선생님 말씀하시다. "너희들은 내가 숨겨 논 것이나 있는 줄 아느냐? 내게 숨겨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너희들과 함께 하지 않은 일은 없다. 그것이 바로 나다." 子曰 二三者 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丘也 - 述而 20 "그것이 바로 나다[是丘也]"라는 말에서 강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숨겨 놓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가르침과 실천[行]이 일치했다는 선언이다. 꾸밈이나 가식이 없는 공자의 진면목이 보인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훌륭한 말씀보다는 이런 진솔한 삶의 모습에서 공자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삶의나침반 2014.12.11

목숨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아마 목숨일 것이다. 건강, 돈, 명예, 모두 목숨이 붙어있을 때의 얘기다. 목숨이 끊어진다는 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이고, 개인에게는 우주의 종말과 다름없다. 우리는 언젠가는 이런 마지막 때와 대면해야 한다. 죽음은 인생에서 단 하나의 확실한 진실이다. 영화 '목숨'은 포천에 있는 모현 호스피스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사십 대 가장, 두 아들의 엄마, 전직 수학 선생님과 쪽방촌 외톨이 할아버지가 그들이다. 암에 걸려서 치유 불가능한 판정을 받고 생의 마지막을 보내려고 호스피스에 들어왔다. 가족의 사랑과 주변의 도움 속에서 이별 의식을 갖는 이들은 어쩌면 행복한 사람들이다. 가슴 아프고 아리고 슬픈 영화다. 산다는 게 뭔지를 묻고 ..

읽고본느낌 2014.12.10

목련에 대하여 / 박남철

1 국민학교 때 나는 학교 화장실 뒤의 콘크리트 정화조 안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개 한마리를 보았었다. 지금도 나는 그 생각만 하면 눈에 눈물이 고인다. 아마 그 개는 그 정화조에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똑같은 상황에서 어찌해 볼 수도 없는 자신에 절망한다.... 덥썩 잡아서 끌어올려야 하는 건데 그러나 개는 잡는 시늉만 해도 이빨부터 먼저 드러낸다 으르렁 2 나는 자본주의의 정화조에 빠진 한 마리의 개다. - 목련에 대하여 / 박남철 어떤 상황을 말하려는 거지, 하며 무심코 읽어내려 가다가 시의 마지막 행에서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똥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개는 결국 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구해주려는 손길에도 적대감을 드러내며 분노한다. 자본주의가 아..

시읽는기쁨 2014.12.08

논어[117]

선생님 말씀하시다."하늘이 내게 곧은 인격을 마련해 주셨는데 환퇴인들 제가 나를 어떻게 할 터인고!" 子曰 天生德於予 桓퇴其如予何 - 述而 19 공자가 송나라를 지나갈 때 환퇴가 해치려 했다. 공자 연보를 찾아보니 BC 495년, 공자 나이 57세 때의 일이다. 이즈음의 공자는 자신이 할 일에 대한 소명 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앞서 광 땅을 지나며 고초를 겪을 때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늘이 자신에게 내린 사명이 있는데, 사람이 날 어쩌겠느냐는 자부심이다. 공자 쯤되니 허풍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런 공자도 애제자 안회가 죽었을 때는 하늘이 나를 버렸다고 탄식을 했다. 공자에게 '하늘[天]'은 무엇이었을까? 나이 50에 '천명을 알았다[知天命]'고 한 말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삶의나침반 2014.12.07

북지리 소나무

왕버들과 함께 북지리의 자랑인 소나무다. 수령이 350년 된 나무로 우람한 체형이 당당하다. 그러나 마을 쪽으로 뻗은 가지가 여럿 잘려나가서 균형이 안 맞는다. 마을에 이런 소나무가 있으면 이 터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누가 심었고, 어떤 자리였는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다. 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에 있다.

천년의나무 2014.12.06

녹두장군 전봉준

올해가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두 갑자가 지난 120년이 되는 해다. 1894년 1월에 전봉준 장군 주도로 고부 봉기가 일어났고, 4월에 전주성을 점령하고 곳곳에 집강소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11월 우금재 전투에서 패배하며 혁명은 좌절되었고, 12월에 전봉준 등 농민군 주도자가 체포되고 이듬해 3월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책 은 역사학자 이이화 씨가 쓴 전봉준 전기다. 시대에 반항한 패배자여서인지 전봉준에 대한 사료는 재판 기록 외에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심지어는 출생지나 가족 관계도 불분명하며 사후에 그의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역적으로 몰려 죽었기에 자료가 소멸된 것이다. 이이화 씨는 현장을 답사하며 민중의 입을 통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모아서 전기를 썼다. 전봉준..

읽고본느낌 2014.12.05

여유 있게 살기

젊었을 때는 내 못난 성격을 고치려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나 스트레스만 받았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한참 지나서야 타고난 기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이제는 주어진 대로 살자주의다. 못난 것도 나의 한 부분이고, 그렇게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더라도 타인을 불편하게 하거나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성질대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마땅히 삼가야 할 게 있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는 것이 성숙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러므로 성격 개조까지는 아니더라도 날뛰는 성질을 조용히 시킬 필요는 있는 것이다. 여유 있게 사는 연습이라고 할까, 내가 일상에서 유념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져 주기다. 가끔 바둑을 두거나 당구를..

참살이의꿈 2014.12.04

입설단비 / 김선우

2조(二祖) 혜가는 눈 속에서 자기 팔뚝을 잘라 바치며 달마에게 도(道) 공부하기를 청했다는데 나는 무슨 그리 독한 비원도 이미 없고 단지 조금 고적한 아침의 그림자를 원할 뿐 아름다운 것들의 슬픔을 아는 사람을 만나 밤 깊도록 겨울 숲 작은 움막에서 생나뭇가지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저 묵묵히 서로의 술잔을 채우거나 비우며 다음날 아침이면 자기 팔뚝을 잘라 들고 선 정한 눈빛의 나무 하나 찾아서 그가 흘린 피로 따뜻하게 녹아 있는 동그라한 아침의 그림자 속으로 지빠귀 한 마리 종종 걸어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싶을 뿐 작은 새의 부리가 붉게 물들어 아름다운 손가락 하나 물고 날아가는 것을 고적하게 바라보고 싶은 뿐 그리하여 어쩌면 나도 꼭 저 나무처럼 파묻힐 듯 어느 흰눈 오시는 날 마다 않고 흰눈을 ..

시읽는기쁨 2014.12.03

논어[116]

선생님 말씀하시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내 스승은 그 중에 있다. 좋은 점은 골라 그 뒤를 따르고, 좋잖은 점은 이를 고치게 된다." 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 述而 18 이 말씀은 확대 해석하고 싶다. 세 사람이 아니라 혼자 길을 가더라도 내 스승은 도처에 있는 법이다. 꼭 사람만이 스승이 되라는 법은 없다. 나무나 풀, 구름이나 바람이 모두 나의 스승이다. 차라리 인간은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스승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으로 나누기는 어렵다. 어떤 사람에게도 좋은 점은 있으니 잘 살피고 본받으라는 당부일 것이다.

삶의나침반 2014.12.02

여행이 좋은 것은

관광과 여행은 다르다. 관광은 'sight-seeing'이다. 새로운 풍경과 구경거리를 찾아다닌다. 대부분의 패키지여행은 관광이다. 떼로 몰려다니며 아름다운 경치나 유적물에 감탄하고 바삐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반면에 여행은 교감이다. 낯선 장소, 사람들과 정서적 유대감을 발견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여행은 떠남을 통해 자신과 만난다. 여행에는 영혼의 울림이 있다. 여행은 쫓기지 않는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문다. 그리고 혼자여야 한다. 나는 제대로 된 여행을 한 적이 있었던가? 값싸고 편하다는 이유로 상품화된 프로그램에, 무리에, 몸을 맡기지는 않았던가? 이젠 혼자 떠나는 여행이 두렵다. 훌쩍 나서면 그만인데 그 한 걸음이 어렵다. 최현주 씨의 글을 읽다가 여행에 대한 대목을 보았다. 포카라에 가..

길위의단상 2014.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