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 20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 박두진

우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그 붉은 선혈로 나부끼는 우리들의 깃발을 내릴 수가 없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절규를 멈춘 것이 아니다. 그렇다. 그 피불로 외쳐 뿜는 우리들의 피외침을 멈출 수가 없다. 불길이여! 우리들의 대열이여! 그 피에 젖은 주검을 밟고 넘는 불의 노도, 불의 태풍, 혁명에의 전진이여! 우리들 아직도 스스로도 못막는 우리들의 피대열을 흩을 수가 없다. 혁명에의 전진을 멈출 수가 없다. 민족, 내가 사는 조국이여 우리들의 젊음들 불이여! 피여! 그 오오래 우리에게 썩어내린 악으로 불순으로 죄악으로 숨어내린 그 면면한 우리들의 핏줄 속의 썩은 것을 씻쳐 내는 그 면면한 우리들의 핏줄 속에 맑은 것을 솟쳐 내는 아, 피를 피로 씻고 불을 불로 사뤄 젊음이여! 정한 ..

시읽는기쁨 2015.04.20

논어[140]

선생님 말씀하시다. "주공 같은 재주가 있다손 치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하면 다른 점은 더 보잘 것도 없단 말이야!" 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 - 泰伯 9 재능보다는 사람됨이 우선이다. 공자의 초지일관된 인간관이다. 재주와 인격을 겸비하면 최상이겠지만, 재주만 있고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최악이다. 자기 이익과 욕심을 차리기 위해 사용되는 재주란 도리어 주변에 해악을 끼친다. 세상에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인품이 모자라는 사람이 많다. 대통령도, 총장도, 회장도 좋다. 먼저 인간이 되어라!

삶의나침반 2015.04.18

우리꽃 전시회

목현천변에서 우리꽃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광주시 우리꽃 연구회 주최로 매년 봄이면 열리는 행사다. 정성들여 가꾼 우리꽃과 꽃사진을 전시하면서 분화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고 꽃도 판매한다. 소규모지만 의미 있는 행사다. 매년 봄이면 어떤 꽃이 나올까 궁금하면서 기다려진다. 우리꽃에 대해서 꽤 안다고 자부하지만 이런 데 와서 보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꽃들이 많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꽃이 있었는가, 하는 게 여럿 있었다. 꽃 향기에 흠뻑 빠진 즐거운 시간이었다. 등대진달래 백사초롱 설란 주름제비란 당조팝 큰천남성 고려자귀 백두애기초롱 팔각연 장미매발톱 방울철쭉 등대꽃 나도제비란 은방울꽃 삼지구엽초 말발도리 실목련 매화말발도리 바람꽃

꽃들의향기 2015.04.17

서울둘레길 걷기(3)

서울둘레길 2코스는 화랑대역에서 광나루역까지 12.6km다. 서울 동부 지역인 용마산 능선과 아차산을 지난다. 혼자였으면 한 번에 걸었겠지만 잘 걷지 못하는 동료가 있어 두 코스로 나누었다. 일차로 화랑대역에서 망우리고개까지 전반부 길을 걸었다. 이 코스는 주로 묵동천을 따라 걷는 길이다. 복잡한 시내도 지난다. 전체 서울둘레길 중 여건이 좋지 않은 편에 들 것 같다. 잘 조성된 중랑캠핑숲을 지나면 망우리고개에 닿는다. 5km 정도니 가볍게 걸을 수 있다. 잔뜩 흐린 날씨가 걷기 막바지에는 천둥이 치며 비가 쏟아졌다. 부랴부랴 마무리를 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된 날이었다. * 걸은 시간: 1시간 30분(10:00~11:30) * 걸은 거리: 5km * 걸은 경로: 서울둘레길 2-1코스(화랑대역 - ..

사진속일상 2015.04.17

일은 언제까지 필요할까

퇴직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살다가 갑자기 손을 놓게 되었을 때 대부분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을 버거워한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주어진 일을 해야 편안하게 느끼는 게 습관이 되었다. 설사 일을 구하지 않더라도 규칙적인 일과를 가져야 제대로 사는 거라고 착각을 한다. 일없이 빈둥거린다는 건 뭔가 모자라는 것이라고 여긴다. 정시에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는 게 체질화가 되었다. 그런 사람에게 퇴직 후 자유 시간이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인 것이다. 그래서 바쁘게 자신을 몰아붙인다. 취미 활동도 거의 전투 수준이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거다. 이는 산업화된 사회에서 생기는 슬픈 자화상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저 성..

참살이의꿈 2015.04.15

귀여리 벚꽃길

광주시 남종면에 있는 귀여리(歸歟里)는 한강가에 위치한 아담한 마을이다. 이때가 되면 벚꽃을 보러 외지인이 많이 찾는다. 그렇지만 붐빌 정도는 아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안쪽으로 개울을 따라 벚꽃길이 화사하다. 길이는 500m 정도 된다. 귀여리 벚꽃은 활짝 폈는데 한강변을 따라 난 342번 도로의 벚나무는 아직 봉오리 상태다. 며칠 더 있어야 만개할 것 같다. 조금씩 시차를 두고 봄이 펄펄 끓고 있다. 그 열기에 집에서 빈둥대고 있을 수가 없다.

꽃들의향기 2015.04.14

자발적 복종

16세기에 쓰인 글이지만 지금 읽어도 신선하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독재자가 출현하고 민중이 이를 방관하거나 지지까지 한다는 건 수수께끼다. 현대라고 예외가 아니다. 대중은 자본의 독재에 너무 쉽게 길들여지고 있다. '자발적 복종'이라는 이 거대한 뿌리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이라는 소책자를 쓴 라 보에시는 1530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는데 학생 시절에 이 글을 썼다. 재판관이자 철학자였으며 시인이기도 했던 라 보에시는 33세의 이른 나이에 전염성 복통으로 요절했다. 친구였던 몽테뉴에게 원고를 넘겼고 뒤에 이 책도 빛을 보았다. 라 보에시는 자발적 복종의 이유로 습관을 들었다.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성장한 사람은 자유를 모른다. 비겁하고 나약해진 것이 체질화되어 있다...

읽고본느낌 2015.04.13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 / 신현림

슬퍼하지 마세요 세상은 슬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니까 자살한 장국영을 기억하고 싶어 영화 '아비정전'을 돌려 보니 다들 마네킹처럼 쓸쓸해 보이네요 다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해요 외롭지 않기 위해 외로워하고 아프지 않기 위해 아픈 사람들 따뜻한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전쟁으로 사스로 죽어가더니 우수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자살자들 살기엔 너무 지치고, 휴식이 그리웠을 거예요 되는 일 없으면 고래들도 자살하는데 이해해 볼게요 가끔 저도 죽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죽지는 못해요 엄마는 아파서도 죽어서도 안 되죠 이 세상에 무얼 찾으려 왔는지도 아직 모르잖아요 마음을 주려 하면 사랑이 떠나듯 삶을 다시 시작하려 하면 절벽이 달려옵니다 시를 쓰려는데 두 살배기 딸이 함께 있자며 제 다릴 붙잡고 사이렌처럼 울어댑니다..

시읽는기쁨 2015.04.12

강변의 봄

집에 있기에는 몸이 간지러워 밖으로 나섰다. 환한 봄 햇살 때문이었다. 퇴촌의 한강변 벚꽃길을 가려고 했으나 차가 많이 막혀 경안천습지생태공원으로 방향을 돌렸다. 아직 가로수 벚꽃이 만개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이곳 벚꽃은 내주가 되어야 활짝 필 것 같다. 초록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강변 풍경이 고왔다. 봄을 'spring'이라고 하지 않는가, 용솟음치는 생명의 기운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강을 따라 난 벚꽃 길을 걸을 때 두보 시의 한 구절인 '國破山河在'가 무심결에 떠올랐다. 어김없이 찾아온 봄이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사진속일상 2015.04.11

논어[139]

선생님 말씀하시다. "뚝뚝한 주제꼴에 가난뱅이가 싫으면 난리를 꾸민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못 한다고 지나치게 미워해도 난리를 꾸민다." 子曰 好勇疾貧亂也 人而不仁 疾之已甚 亂也 - 泰伯 8 이는 지금의 우리에게 경계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자식이 말썽을 부릴 때 나무라고 미워해서는 마음을 얻지 못한다. 반항심만 돋우는 역효과가 난다. 나라를 다스릴 때도 마찬가지다. 엄격한 원칙만 내세워서는 참된 리더가 되지 못한다. 세상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하물며 지도층이 불인(不仁)하니 더 말해 무엇할꼬.

삶의나침반 2015.04.11

뒷산 진달래

뒷산의 진달래가 활짝 폈다. 옛날에 산을 쏘다니며 놀다가 배가 출출해지면 한 움큼씩 따먹던 꽃이다. 그때는 참꽃이라 불렀다. 어느덧 50년 전 일이다. 진달래는 봄이 오면 제일 먼저 산을 붉게 물들인다. 아직 나무의 초록잎이 나오기 전이다. 고운 색감이지만 화려하지는 않다. 오히려 슬픔과 처연한 감상이 묻어 있는 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민족의 성정과 닮았다. 가장 한국적인 꽃을 고르라면 진달래가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오덕 선생이 '진달래'를 쓴 때는 1950년대 중반이었다. 막 전쟁이 끝난 힘들고 고달팠던 시대였다. 헐벗은 강산에 어김없이 피어나는 진달래를 보며 선생은 가날픈 희망이나마 붙잡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진달래가 한창인 산길을 걸었다. 이즈러진 초가집들이 깔려 있는 골짝이면 나뭇군의 ..

꽃들의향기 2015.04.10

귀여운 고양이

고향집을 제 터로 잡고 주인 행세를 하는 고양이다. 지난겨울에 따스한 가마솥을 찾아온 뒤로 불쌍하다고 어머니가 먹이를 주기 시작하자 아예 제집이 되었다. 다른 고양이는 주위에 얼씬도 못 하게 한다. 내가 가까이 가도 이빨을 드러내고 경계한다. 어머니조차도 제 몸에 손을 못 대게 한다. 매일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애교 한 번 부릴 줄 모른다. 오히려 때가 되면 밥 내놓으라고 큰소리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그래도 고양이는 귀엽다. 개와는 전혀 다른 도도한 매력이 있다. 우선 비굴하게 굴지 않는 독립성이 좋다. 비록 밥을 얻어먹지만 너는 너, 나는 나다. 너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자존감이 고양이에게는 있다. 개처럼 관심을 가져 달라고, 같이 놀아달라고 집적대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이나 장소에 집착하지..

사진속일상 2015.04.09

동네 사람 먼 데 사람 / 이안

뒷산 두릅밭 지나가면서 어린 순 몇 개는 살려두었다 내년 봄이 가까운 동네 사람들 뒷산 두릅밭 지나가면서 우둠지까지 싹뚝싹뚝 잘라서 갔다 내년 봄이 아득한 먼 데 사람들 - 동네 사람 먼 데 사람 / 이안 지구 마을에서 우리는 동네 사람으로 사는 걸까, 먼 데 사람으로 사는 걸까. 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을 외면하는 바보들....

시읽는기쁨 2015.04.06

슬픔을 권함

슬픔을 권하다니,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이다. 삶이 스산할수록 양지를 찾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걸 나무라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은이는 어설픈 기쁨과 희망보다는 차라리 슬픔과 절망이 고단한 삶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시대가 잔인한 이유는 슬프고 절망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리라. 늘 밝은 의지와 의욕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을 강요하는 시대의 야만을 얼마나 더 견뎌내야 할까. 그렇다. 외로움과 슬픔은 인간 삶의 한 부분이다. 값싼 희망과 위로를 파는 약장사들은 슬픔을 외면한다. 슬픔에서 회피하는 방법을 떠들어댄다. 그러나 사람은 슬플 때 가장 인간적이 된다. 제대로 슬퍼할 줄 모른다면 인생을 깊이 있게 사는 게 아니다. 남덕현 씨가 쓴 은 가난, 고독, 소외, 죽음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다. 지..

읽고본느낌 2015.04.06

틈풀(1)

사전에는 없는 말이지만, 생존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피어나는 풀을 '틈풀', 꽃은 '틈꽃'으로 부르고 싶다.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화려한 꽃도 많지만 시선이 오래 머무는 건 이런 작은 풀이고 꽃이다. '생명(生命)'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살라는 명령'이다. 생명의 본뜻에 가장 충실한 게 틈꽃이 아닐까. 틈꽃은 생명에의 의지와 함께 생명체가 운명처럼 떠안은 슬픔도 보여준다. 어느 교회의 대리석 계단 틈에서 피어난 제비꽃이다.

꽃들의향기 2015.04.05

논어[138]

선생님 말씀하시다. "백성이란 절로 따르게 할망정 깨우치도록 하기는 힘들다." 子曰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 - 泰伯 7 해석 여하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가 차별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생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그 사람의 신분이 어떠하든 진실을 알려주고 사실을 깨우쳐주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요사이도 자칭 진보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조차 대놓고 민중을 무시하고 훈육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물며 대부분이 문맹이고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공자 시대에는 어떠했겠는가. 나는 이 구절을 사람의 어리석음에 대한 공자의 답답함의 토로로 보고 싶다. 깨우쳐주기보다는 그냥 따르게 하는 게 쉬운 건 신분의 차이를 떠나 누구나 마찬가지다.

삶의나침반 2015.04.04

서울둘레길 걷기(2)

용두회의 서울둘레길 걷기 두 번째로 1-2코스 불암산길을 걸었다. 당고개역에서 화랑대역까지 불암산 산자락을 따라 걷는 7km의 평탄한 길이다. 적어도 산 중턱까지는 올랐으면 싶을 정도로 나한테는 밋밋했다. 1-1코스보다는 아기자기한 맛이 덜했다. 네 명이 만났는데 앞으로 고정 멤버가 될 것 같다. 나머지는 걷기에 관심이 없거나, 마음은 있으나 시간 여유가 없어 나오지 못한다. 우리 넷은 걷고, 당구 치고, 한 잔 하는 게 순서다. 다 좋은데 마지막에 브레이크를 걸 사람이 필요하다. 산에는 진달래와 개나리가 만개했다. 산을 찾은 사람들 표정도 환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꽃 축제 소식에 가슴이 설레는 봄이다. 길가에 있는 바위. 아무 설명이 없지만 숫바위와 암바위로 이름 붙여 보았다. 아침에는 해가 비치더니..

사진속일상 2015.04.03

흑사탕

환절기가 되면 계절앓이를 한다. 일종의 통과의례다. 증상은 심신이 축 가라앉고 의욕이 없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세상이 생기를 잃는다. 피곤해서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다. 드디어 손님이 찾아오셨구나, 한다. 봄과 가을이 시작될 때가 심하다. 꽃이 피었건만 봐도 심드렁하다. 꽃을 보러 가자는 친구의 초청도 사절했다. 옆에서 아내는 걱정이 많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다. 연례행사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손님은 건드리지 말고 그냥 가만히 지켜보면 된다. 제가 지겨워지면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조바심치면 도리어 죽치고 버티는 성질이 있다. 모른 척하는 게 최고다. 이럴 때 생각이 나는 게 단 음식이다. 집 앞 슈퍼에서 좋아하는 흑사탕을 몇 봉지 사 왔다. 우울할 때는 달콤한 게 제일이다. 소파..

길위의단상 2015.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