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 19

논어[144]

선생님 말씀하시다. "납신거리되 솔직하지 못하고, 무식하되 착실하지 못하고, 멍하면서 미덥지 못한 사람은 난들 어찌할 수 없거든." 子曰 狂而不直 통而不愿 공공而不信 吾不知之矣 - 泰伯 13 "저런 놈은 공자가 와도 어찌할 수 없을 거야." 평시에 자주 쓰는 이런 말대로 성인군자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 있다. 예전의 내 선생 시절을 돌아볼 때 말 안 듣는 아이들 때문에 어지간히 속을 썩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마음씀의 구 할이 내 욕심이었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진즉 알았더라면 선생 생활을 좀 더 가볍게 했을 것이다. 이건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자의 이 말을 접하니 과거의 내 노심초사가 어리석게 느껴진다. 아마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

삶의나침반 2015.05.31

시인 동주

안소영 작가가 시인 윤동주의 삶을 소설로 구성한 책이다. 스물여덟에 이국의 감옥에서 숨진 시인의 슬픈 일생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1938년 용정을 떠나 연희 전문 문과에 입학해서부터 일본 유학 중 반체제범으로 2년 형을 살다가 1945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연대순으로 보여준다. 시대의 희생양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던 윤동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인이 살다간 시대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했다. 나라를 잃고 모국어로 시를 쓰지도 못하는 절망 속에서 시대의 아픔은 곧 시인의 아픔이었다. 시류에 영합했다면 자기 몸을 보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순수한 영혼은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저항하는 행동파는 아니었다. 어쩌면 관조적 자세로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았..

읽고본느낌 2015.05.30

깨끗한 빗자루 / 박남준

세상의 묵은 때를 적시며 벗겨주려고 초롱초롱 환하다 봄비 너 지상의 맑고 깨끗한 빗자루 하나 - 깨끗한 빗자루 / 박남준 빗줄기를 빗자루와 연관시킨 시인의 눈이 색다르고 신선하다. 깨끗한 세상을 바라는 염원이 이런 눈을 트이게 한 것이리라. 도로 옆 텃밭을 가꾸는 분이 오토바이로 개울물을 실어 나르는 걸 보았다. 날이 가물어 큰일이라고 한다. 하늘에서 맑고 깨끗한 빗자루를 한나절이라도 내려 주셨으면 좋겠다.

시읽는기쁨 2015.05.26

논어[143]

선생님 말씀하시다. "제 일도 아닌데 일 참견해서는 안 된다." 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 - 泰伯 12 원문에 '정(政)'이라는 단어가 있는 거로 보아 정치적 사안에 관한 내용이겠지만 나는 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다. 인생사의 괴로움 중 다수가 남의 일에 참견하고 간섭하는 데서 생긴다.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한다. 부모도 자식이 성년이 되면 남으로 여겨야 한다.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돌보던 습(習)에 젖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한다. 이것이 도리어 자식에게 독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부모의 무지와 욕심 때문이다. 반대로 자식이 부모와의 관계에 연연하기도 한다. 올가미가 된 천륜은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다. "제 일도 아닌데 참견해서는 안 된다." 우리 실생활에 이 말씀을 적용하면 인..

삶의나침반 2015.05.25

인생의 주기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폐렴에 걸렸다. 고열에 기침이 계속 이어졌다. 위의 형을 잃은 뒤라 가족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해도 낫지 않자 어머니는 병원 가까운 곳에 방을 하나 얻어 치료에 매달렸다. 집에서 4km 정도 떨어진 작은 읍이었다. 병실이 없으니 매일 병원으로 왕래해야 했다. 그러나 차도는 없었다. 그렇다고 대도시로 나갈 형편도 못 되었다. 나는 거의 마지막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서울에 사는 친척이 소식을 듣고 페니실린을 구해서 내려왔다. 결과적으로 페니실린은 내 목숨을 살린 기적의 약이 되었다.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페니실린 주사를 맞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돌고 열이 내렸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한 페니실린이 나에게도 구세주가 된 셈이다. 무슨 ..

참살이의꿈 2015.05.24

논어[142]

선생님 말씀하시다. "굳은 신념으로 학문을 좋아하며, 죽기로서 도를 닦되, 찌우둥거리는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도 살지 말아야 한다. 정치 질서가 섰을 때는 나서야 하고, 질서가 깨지면 숨어야 하는데, 질서가 섰을 때 굶주리고 천한 것도 수치요, 질서 없을 때 영화를 누림도 부끄러운 일이다." 子曰 篤信好學 守死善道 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 泰伯 11 '죽기로서 도를 닦는다[守死善道]'는 유학의 치열한 구도 정신을 말해주는 구절이다. 세상에 나아가는 것은 차후의 일이다. 자기를 닦는 것이 우선이다. 수기(修己)는 평생을 두고 가야 할 학인(學人)의 길이다. 유학의 기본은 '내가 먼저 바른 인간으로 서는 것'에 있다. 뒤에 나오는..

삶의나침반 2015.05.22

세월호를 기록하다

낡은 배가 도입되도록 선령 규제를 완화하지 않았더라면 청해진해운이 무리한 증개축을 하지 않았다면 화물 적재 기준에 따라 화물을 실었다면 위험한 출항을 거부할 수 있도록 선원들에게 발언권이 있었다면 운항 관리자가 규정대로 출항을 통제했더라면 평형수가 좀 더 채워지고 화물이 단단히 고박되었다면 조타수가 대각도 조타를 하지 않았다면 배가 쓰러진 뒤 선원들이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비상시 선내 방송 매뉴얼이 갖춰져 있었다면 진도VTS가 퇴선 결정의 책임을 세월호에 맡길 게 아니라 직접 지시했더라면 구조 세력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며 협력하는 훈련이 되어 있었다면 출동한 123정 해경이 더 적극적이고 판단력이 뛰어났더라면 뒤돌아보면 아쉬운 게 한둘이 아니다. 300명이 넘는 생때같은 목숨이 수장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읽고본느낌 2015.05.20

오월의 유혹 / 김용호

곡마단 트럼펫 소리에 탑은 더 높아만 가고 유유히 젖빛 구름이 흐르는 산봉우리 분수인 양 쳐오르는 가슴을 네게 맡기고, 사양에 서면 풍겨오는 것 아기자기한 라일락 향기 계절이 부푸는 이 교차점에서 청춘은 함초롬히 젖어나고 넌 이브인가 푸른 유혹이 깃들어 감미롭게 핀 황홀한 오월 - 오월의 유혹 / 김용호 내가 다닐 때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 표지를 열면 바로 이 시가 나왔다. 시 단원에 나오는 시가 아니고 교과서 전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오월의 유혹'이 실려 있었다. 국어 선생님이 이 시를 설명하던 말과 동작까지 선명히 떠오른다. 언젠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에게 이 시가 기억나느냐고 물으니 하나같이 모른다고 했다. 별난 걸 다 기억한다고 오해까지 받았다. 그래서 다른 데서 본 걸 내가 착각하고 있..

시읽는기쁨 2015.05.19

한 달 만에 외출하다

꼭 한 달 만에 바깥에 나섰다. 느린 걸음으로 뒷산 언저리를 한 시간 정도 돌았다. 산길은 이미 녹음 터널이 되었고, 아까시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살랑거렸다. 몸 상태는 여전히 온전치 못하다. 바람을 쐬면 기침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온다. 폐렴은 진정되었다고 하는데, 아직 남아 있는 편도염 때문인지 모른다. 간 수치도 나쁘다고 하니까 내일 병원에 가서 최종 확인을 받아봐야 한다. 몸이 부실하니 마음도 불안정하다. 책 읽기가 제대로 안 되는 걸 보면 안다. 요사이는 팟캐스트를 통해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연속으로 듣고 있다. 이런저런 인생사에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찡해진다. 스님의 설법에는 카르마와 과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유익한 효과가 있음을 발견한다. 둘..

사진속일상 2015.05.18

들어간 사람들 / 이진명

외할머니 일흔일곱에 들어갔다 한 해 뒤 어머니 마흔일곱에 들어갔다 두 사람 다 깊은 밤을 타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 1년씩 1년 반씩 병고에 시달렸지만 들어갈 때는 병고도 씻은 듯이 놓았다 두 사람 들어간 문은 좁은 문은 아닌 것 같다 일흔일곱도 받고 마흔일곱도 받은 걸 보면 좁은 문은 아니나 옷보따리 하나 끼지 못하게 한 걸 보면 엄격한 문인 것 같다 두 사람 거기로 들어간 후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았다 거기 법이 그런가 보았다 하긴 외할머니 어머니 여기서도 법도 잘 지키던 사람들이었다 들어왔으면 문 꼬옥 닫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 들어간 사람들 / 이진명 이쪽에서 보면 들어갔지만, 저쪽에서 보면 들어왔다다. 이쪽에서 말할 때는 돌아가셨지만, 저쪽에서 말할 때는 돌아오셨다가 된다. 죽음이 별스러운 게..

시읽는기쁨 2015.05.13

논어[141]

선생님 말씀하시다. "삼 년 공부에 벼슬 뜻이 없는 사람은 손쉽게 찾아내기 어렵다." 子曰 三年學 不至於穀 不易得也 - 泰伯 10 공자에게서 공부란 인간이 되는 수련을 뜻한다. 평생을 가야 할 길이다. 벼슬자리를 얻어 돈을 버는 것은 차후의 일이다. 공자학당에 들어온 제자들이 조금 공부를 하고 나면 일자리를 찾아 나가려 한 모양이다. 삼 년 공부에 벼슬 뜻이 없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공자는 넋두리한다. 너무 먹고사니즘에 매몰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리라. 안회는 가난하게 살지언정 세상이 주는 명예나 쓰임새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런 극단적인 삶을 실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공부란 무엇인지 그 본령만은 잊지 않고 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삶의나침반 2015.05.12

나의 몫

이란의 여성 작가인 파리누쉬 사니이의 장편소설이다. 이슬람 문화권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IS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만행을 통해 단편적인 소식만 접할 뿐이다. 편견과 사실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이 소설을 읽었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근본 질문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슬람이라고 특별한 종교가 아니다. 사람살이는 어디나 마찬가지다.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 혁명 시기가 이 소설의 주 무대다. 종교의 권위가 강한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란 마수메는 인간의 기본 감정마저 억압당한 채 강제 결혼을 당한다. 가정에 아무 관심도 없는 남편은 공산주의 혁명가다. 안으로는 자식을 챙기고, 밖으로는 자아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한 여인의 일생이 파란만장하게 그려진다. 이..

읽고본느낌 2015.05.11

낯설다

여행을 다녀오면 일상이 낯설어진다. 기간이 길고 혼자 떠난 여행일수록 그렇다. 익숙한 사물과 사람이 새롭고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은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고리타분한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해 주기 때문이다. 살면서 이런 신선한 바람이 필요하다. 좋은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왜 책을 읽는가? 독서는 관습과 타성에 젖은 뇌를 깨어나게 한다.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다는 의미에서 독서는 여행과 닮았다. 고만고만한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키워드를 둘은 내장하고 있다.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내면의 보물찾기라 할 수 있다. 이번에 폐렴으로 입원해 있으면서 질병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걸 발견했다. 아픈 경험 역시 세상을 낯설게 만든다. 병은 고통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독서나 여..

참살이의꿈 2015.05.10

퇴원

폐렴으로 입원한 지 열흘 만에 퇴원했다. 집에 와서는 밤낮없이 잠만 자고 있다. 아직 온전한 상태는 아니다. 그래도 집에 오니 마음은 편하다. 병실 생활은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무슨 검사를 그렇게 자주 하는지 모르겠다. CT 촬영은 어쩔 수 없다 해도 , 엑스레이와 혈액검사를 각각 다섯 번씩이나 받았다. 의사는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너무 남용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환자가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30대 중반에 디스크 수술을 받은 이래 오랜만에 병원 신세를 졌다. 병실은 3인실에 있었다. 독실은 부담이 너무 크고, 다인실은 신경 쓰이는 게 많았기 때문이다. 코를 심하게 고는 편이라 다른 사람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도 두려웠다. 서로 생활 스타일이 다른..

길위의단상 2015.05.08

입원

폐렴으로 입원 닷새째, 생각지도 않은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증세가 나타난 초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날이 갈수록 기침이 심해지며 음식을 삼킬 수도 없게 되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집 가까이 있는 병원에 왔다가 바로 갇혀 버렸다. 다행히 여기 와서는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이런 변화라면 나흘 뒤쯤에는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담당 의사가 말한다. 지금은 몸이 아픈 것보다 병실 생활 자체가 힘들다. 좁은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하려니 참아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곳은 병고에 시달리는 인생의 괴로움이 늪처럼 고여 있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5월의 신록이 찬란하다. 그러나 그 품에 안길 수 없다. 당장은 아쉽지만 그래도 넉넉히 참을 만하다. 이 병이 낫고 다시 땅에 설 때 햇빛은 환하고 숲..

길위의단상 2015.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