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 24

야호! / 이종문

내 방금 낮 꿈에서 작은 청개구리 되어 연잎에 폴짝 뛰어 팔을 베고 누웠더니 바람도 살랑 바람에 호사도 좋을시고, 후두두두 다다다다 소낙비 냅다 때려 얼씨구 절씨구나 어절씨구 춤을 추다, 연잎이 왕창 꺾어져 기절초풍했죠, 야호! - 야호! / 이종문 요즈음은 우째 꿈조차 사납고 지저분한지 모르겠다. 나이 들수록 속에는 쓰레기로 가득 차는가 보다. 각박한 현실에서 예쁜 꿈으로나마 위로받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시인처럼 작은 청개구리가 되어 연잎에 누웠다가 냅다 때리는 소낙비 맞으며 어절씨구 춤을 춘다면 얼마나 신나랴. 절로 "야호"가 나올 것 같다. 오래전이지만 신나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맨몸으로 하늘을 나는 꿈이었다. 마음이 조종하는대로 내 몸은 창공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녔다. ..

시읽는기쁨 2015.06.29

논어[148]

달항 고을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위대하시지. 공 선생은! 하도 아는 것이 많으시니, 특별한 이름을 붙일 수가 없어." 선생님이 이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해 볼까? 말달기기냐? 활쏘기냐? 말달리기나 해 보지." 達巷黨人曰 大哉 孔子 博學而無所成名 子聞之 謂門弟子曰 吾何執 執御乎 執射乎 吾執御矣 - 子罕 2 달항 고을 사람의 말에는 공자를 경시하는 듯한 태도가 보인다. 박학다식하지만 무엇 하나 특별한 게 없다는 뜻이다. 제자들이 이 말을 공자에게 전했는가 보다. 말달리기나 해 볼까, 라는 대답에는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앞서지 못할 게 없다는 공자의 자부심이 읽힌다. 한 분야에 특출한 것이 인간의 완성은 아니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두루 아는 것보다 말달리기를 잘하는 게 삶에는 훨씬 유..

삶의나침반 2015.06.28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죽음을 다룬 책인데 시종 미소를 띠며 읽힌다. 구성도 특이하다. 나이별로 인체의 변화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가 제시되는 사이에 저자와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에세이가 등장한다. 그리고 나이듬과 죽음에 대한 여러 경구들이 인용되고 있다. 셋이 어긋나지 않고 잘 조화를 이룬다. 저자인 데이비드 실즈(David Shields)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책을 덮으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죽음에 대한 가르침보다도 이런 스타일의 책을 한번 써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과학적 사실과 정서적 느낌을 연결시키면서 개인의 경험을 함께 녹여내는 형식이 마음에 든다. 주제를 잘 골라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만큼 명확한 진실은 없다. 그러나 누구도 자기 죽음에 대해서는 짐짓 외면하..

읽고본느낌 2015.06.27

바둑 삼매경

지인의 집에서 1박 2일간 바둑을 즐겼다. 다섯 명이 3라운드의 리그전을 했으니 한 사람당 12판을 두었다. A - 9승 3패 B - 8승 4패 C - 7승 5패 D - 4승 8패 E - 2승 10패 내 결과는 꼴찌였다. 이번 모임에 대비하여 한 달간 바둑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내 스타일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다 대부분 판에서 일방적으로 몰리기만 했다. 한 번 안 풀리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 없었다. 과도기의 진통으로 생각한다. 좋아하는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하다. 피곤해도 힘든 줄 모른다. 이 팀은 바둑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다음 달이면 한 분이 미국으로 이주한다. 나이 들어서 시작하는 이국 생활이 어떨지 모르지만 안주보다는 도전이 아름답게 보인다. 바둑을 두고..

사진속일상 2015.06.26

나무가 할 일 / 박노해

바람이 거셀수록 나무가 할 일은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 키가 커질수록 나무가 할 일은 가지를 떨궈내리는 것 거목이 돼갈수록 나무가 할 일은 제 안을 비워 영원을 품어가는 것 그리하여 나무가 할 일은 단단한 씨앗 속에 자신을 담아 푸른 산맥으로 돌아가는 것 - 나무가 할 일 / 박노해 '나무' 대신에 '나'를 대입하여 읽는다. 뿌리를 깊이 내리는 일도, 가지를 떨궈내리는 일도, 여전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인간이 나무처럼 성장한다는 건 적어도 나에게는 헛말이구나. '한 일'은 하나도 없고 '할 일'만 남아 있을 뿐, 그것도 아득한 약속으로만.....

시읽는기쁨 2015.06.22

논어[147]

선생님은 좀처럼, 잇속이니, 천명이니, 사람 구실이 어떠하니 말하지 않았다. 子罕言 利與命與仁 - 子罕 1 잇속[利]이나 천명[命]은 그렇다 쳐도, 사람 구실[仁]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건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사람 구실에 대한 언급이 에 여러 차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 사변적인 논쟁을 뜻하는 것으로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공자는 인(仁)을 구체적인 상황에 대응해서 말했지, 정의를 내리거나 철학적 논의를 하지는 않았다. 공자에게는 오직 실천적인 측면이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조선 시대의 이기론(理氣論) 같은 관념적인 논쟁은 공자의 본뜻과는 어긋난 것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가 공자에게는 절실했다.

삶의나침반 2015.06.21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천주교 세례를 받았지만 천주교 신자냐고 물으면 확신이 없다. 성경에서 서술하는 하느님을 믿지 못한다. 미사 시간에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는 입이 다물어진다. 역시 글자 그대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우주에 존재하는 신성(神性)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내 안의 종교심도 부정할 수 없다. 전통적인 신앙인과는 거리가 멀지만 종교인이라는 말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어정쩡한 상태다. 그래서 사서 읽은 책이 다. 알랭 드 보통이 썼다. 저자는 무신론자다. 그렇다고 종교가 가진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무신론자로 남아 있으면서도 종교가 유용하고, 흥미롭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전제다. 종교의 관념과 실천 가운데 일부를 세속적인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책은..

읽고본느낌 2015.06.20

서울둘레길 걷기(7)

서울둘레길 3-3 구간을 걷다. 송파구에 위치한 성내천, 장지천, 탄천을 따라 걷는 길이다. 강남이어선지 주변이 깔끔하고 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다. 강북쪽과 비교가 된다. 건강 산책하는 시민도 많다. 성내천(城內川)은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에서 발원하여 마천동, 풍납동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간다. 가뭄인데 왠 물이 넉넉한가 했더니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물을 끌어서 흘려 보낸단다. 그래선지 물이 맑고, 큰 잉어들이 놀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 장지천(長旨川)은 시골 개울을 연상시킨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를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역시 청량산에 시작하는 장지천은 탄천과 합쳐져 한강으로 흘러간다. 탄천(炭川)을 건너면 종착지점인 수서역이다. 3-3 구간은 그늘은 없지만 주로 천변을 따르는 ..

사진속일상 2015.06.19

입원실 유감

메르스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어제까지 사망자가 19명, 확진자가 154명이고, 격리자는 5천 명이 넘었다. 첫 환자가 메르스 증상을 보인지 한 달 동안의 피해다. 하루에 40명이 자살하고, 교통사고로 20명씩 죽어도 사람들은 무감각하지만 전염병에는 굉장히 민감하다.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의학에 무지하던 시절, 한 번 창궐하면 수백만 명씩 죽어 나갔던 전염병은 공포였을 것이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전염성이 강해 보인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병실 문화를 꼽는다. 환자가 입원하면 가족이 간병하고, 입원실은 방문하는 외부인으로 북적인다.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메르스 발생 전이지만 지난달에 열흘간 입원해 있으면서 느낀 점이 ..

길위의단상 2015.06.17

늙어가는 징조

거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베란다 유리창으로 바깥 풍경이 보인다. 드문드문 사람이 오가고, 가끔 차들이 지나갈 뿐인 길이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 되면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리로 분주해진다. 여름이라 창문을 열어놓으니 바깥의 소리가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생활 소음을 들으며 지켜보는 것도 재미난 구경거리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사는 집의 제일 조건은 절간처럼 조용해야 했다. 에어컨을 들여놓은 것도 더위보다는 소음 차단이 주목적이었다. 산과 마주한 옆 동에 사는 사람이 제일 부러웠다. 너무 조용한 것이 싫다고, 밤이 되어 깜깜한 숲을 보는 게 무섭다고 한 그분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적막을 좋아했고 작은 소음에도 노이로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두 달 가까이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는 경험을 ..

참살이의꿈 2015.06.16

초록 뒷산

새벽에는 천둥 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지나갔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에서는 온갖 냄새가 코를 킁킁거리게 한다. 밤꽃이 한창이란 걸 밖에 나와서야 안다. 오랜만에 정상까지 오른 초록의 뒷산길이다. 조무래기 산이지만 지난 3월 초의 시산제 이후 첫 산행이니 석 달이 넘었다. 헬스장에 다니고 근육을 단련하며 몸 상태가 최고조라고 자부할 때 걸려 넘어졌다. 가는 건 한 순간이다. 애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신발 벗고 있을 수는 없다. 다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다른 건 정상인데 머리만 맑아졌으면 싶다. 그래도 이만큼으로 지나간 것도 다행이 아닌가. 뒷산에서부터 다시 시작이다.

사진속일상 2015.06.15

이소 / 송진권

오빠랑 언니들도 아까부터 지달리구 있는디 뭘 그르케 자꾸 꾸물대는 겨 그르케 자꾸 꾸무럭거리믄 떼 놓고 갈 텡께 알아서 햐 어여어여 날 새기 전에 가야 하니께 싸기싸기 내려오니라 비얌이랑 쪽제비가 일어나기 전에 어여 물로 가야 하는디 당최 쫑마리가 저런다니께 엄마두 이제 몰러 오든지 말든지 맘대로 햐 엄마 원앙이가 언니들 앞에 서자 일곱 마리 원앙이가 졸래졸래 따라간다 멈칫대던 막내가 그때사 느티나무 고목 둥치에서 뛰어내린다 엄마 같이 가 하냥 가자니께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둥구나무 딱따구리가 뚫어 놓은 원앙이네 둥지 - 이소 / 송진권 원앙이 가족의 모습이 정겹다. 삶의 기본에서는 사람이나 다른 동물이나 차이가 없다. 동물이 새끼를 돌보고 기르는 지극함은 인간에 못지않다. 다른 점이라면 새끼가 성장하..

시읽는기쁨 2015.06.13

논어[146]

선생님 말씀하시다. "순, 우는 덩실하게 천하를 차지했으나 아랑곳없는 양 하셨다." 子曰 외외乎 舜禹之有天下也 而不與焉 선생님 말씀하시다. "위대하지! 요의 임금 노릇은! 덩실한 양은 하늘만이 그처럼 크시므로 요는 오직 그를 본받았을 따름이요, 넓고도 아득한 모습에 백성들은 이름붙일 길조차 몰랐다. 덩실하지! 그가 마련한 일터는! 뚜렷하지! 그가 마련한 문화는!" 子曰 大哉 堯之爲君也 외외乎 唯天爲大 唯堯則之 蕩蕩乎 民無能名焉 외외乎 其有成功也 煥乎 其有文章 - 泰伯 15 공자 정치학의 이상적 모델인 요와 순, 우에 대한 찬양이다. 그분들이 왜 위대한 성인 정치가인지를 설명하는 공자의 말에는 노장사상의 일면이 보인다. 다스리지 않으면서 다스린다는 무위지치(無爲之治)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임금이 ..

삶의나침반 2015.06.12

잠실동 사람들

서울 강남 엄마들의 극성스런 교육열을 다룬 정아은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재건축된 잠실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는 상류층 주부들의 욕망을 펼쳐 보인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초등학생 학부모로 오직 일류 대학을 목표로 아이들을 닦달한다. 입시라는 전쟁터에서 아이들은 소모품일 뿐이다. 자아 반성이 없는 엄마의 탐욕 아래 아이들은 병들어간다. 부유한 잠실동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도 등장한다. 몸을 팔며 학비를 벌어야 하는 대학생 서영, 가짜 경력을 내세워 과외 교사를 하는 김승필, 학습지 교사나 가사 도우미들이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이다. 소설에는 악한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각자의 생활 양식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 일상이 문제다..

읽고본느낌 2015.06.11

온몸으로 기뻐하기

7개월 된 둘째 손주가 있다. 태어나서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배워가는 모습을 보면 생명의 신비에 경탄하게 된다. 아직 제힘으로 자리를 옮기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지만 저를 돌봐주는 사람은 알아본다. 얼마 전까지도 날 보면 무섭다고 울었는데 지금은 낯이 익었다. 가끔 만나도 처음에는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좋아라 한다. 그런데 아기가 사람을 반기는 모습을 보면 놀라운 데가 있다. 얼굴로 환하게 웃는 건 물론이고 입을 벌리면서 두 팔을 허공에 뒤흔든다. 좋아하는 마음이 온몸으로 드러난다. 기쁨이 전신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작은 존재가 즐거움에 온전히 젖어 있는 걸 느낀다. 반면에 어른은 무엇이 좋다고 이렇게 환호하지를 못한다. 내숭을 떨기도 하고, 밀당의 줄다리기를 잘하는 비결을 배우기도 한다. 좋다는 감정에 ..

길위의단상 2015.06.09

즉문즉설

한 달 가까이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다. 그동안의 조건이 이런 내용과 가까이하는데 알맞았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들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마음가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사람들의 고민과 고통에 같이 아파하기도 하고, 스님의 기상천외한 답변에 인식의 전환이 생기는 경험도 했다. 팟캐스트에 저장되어 있는 법문을 600회 정도 들었으니 바깥나들이를 할 수 없었던 기간이 준 고마운 선물이었다. 스님의 가르침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로, 행복은 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어떤 조건이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주어진 과보를 인정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남을 변화시키려 하는 데서 번민이 생긴다. 우선 내가 변해야 한다. 미워했던 상대에 대한 참회에서 치유가 시작..

참살이의꿈 2015.06.08

결혼 기차 / 문정희

어떤 여행도 종점이 있지만 이 여행에는 종점이 없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기 전에 한 사람이 기차에 내려야 할 때는 묶인 발목 중에 한쪽을 자르고 내려야 한다 오, 결혼은 중요해 그러나 인생은 더 중요해 결혼이 인생을 흔든다면 나는 결혼을 버리겠어 묶인 다리 한쪽을 자르고 단호하게 뛰어내린 사람도 이내 한쪽 다리로 서서 기차에 두고 온 발목 하나가 서늘히 제 몸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서둘러 다음 기차를 또 타기도 한다 때때로 차창 밖을 내다보며 그만 이번 역에서 내릴까 말까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선반에 올려놓은 무거운 짐을 쳐다보다가 어느덧 노을 속을 무슨 장엄한 터널을 통과하는 종점이 없어 가장 편안한 이 기차에 승객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 결혼 기차 / 문정희 이기적인 욕심을 떼어놓고..

시읽는기쁨 2015.06.07

논어[145]

선생님 말씀하시다. "공부란 아직도 먼 양 하되 놓칠까봐 걱정도 되거든." 子曰 學如不及 猶恐失之 - 泰伯 14 공부에 대한 공자의 솔직한 심경 토로가 인간적이다. 예수나 부처처럼 "다 이루었다!"가 아니다. 죽을 때까지 매달려도 끝이 없는 길, 그 과정에서 나태하면 옆길로 샐지 모른다. 두려운 마음으로 정진하는 길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가 떠오른다. 이곳이 누구의 숲인지 알 것 같다 그의 집은 마을에 있어 눈 덮인 그의 숲을 보느라 내가 여기 멈춰서 있는 것을 모르리라 내 작은 말은 이상하게 여기리라 일년 중 가장 어두운 저녁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농가 하나 없는 곳에 이렇게 멈춰 서 있는 것을 말은 방울을 흔들어 본다 무슨 잘못이라도 있느냐는 듯 방울소리 외에는 ..

삶의나침반 2015.06.06

한국의 제비꽃

이태 전에 신문 보도로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반갑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다. 10여 년 전 야생화에 빠졌을 때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제비꽃을 모두 찾아보는 게 내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능력이 된다면 우리나라 제비꽃을 찍은 화보집을 내고 싶었다. 단지 꿈으로 그치고 말았지만 내가 상상한 책이 바로 이 이다. 이 책을 낸 박승천 씨는 아마추어 야생화 애호가다. 전공이나 직장이 식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오직 꽃이 좋아 10년 넘게 제비꽃을 찾아다녔다. 제비꽃이라는 단일종으로 이렇게 책이 나온 경우는 처음이다. 님의 열정과 노력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제비꽃이 피는 시기가 봄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 맞춰 집중적으로 전국을 찾아다니다 보면 발이 부르트고 체중도 5kg 넘게 빠진다고 ..

읽고본느낌 2015.06.05

서울둘레길 걷기(6)

6차 서울둘레길 걷기로 3-2코스 일자산길을 걷다. 강동 그린웨이와 겹치는 길이다. 용두회원 다섯 명이 함께 하다. 작은 오르막이 나와도 뒤처지는 나를 본다. 다른 때는 늘 앞에서 이끌었는데 지금은 꽁무니 따라가기도 벅차다. 팔자 뒤바뀌는 건 한 순간이다. 그래도 이만하니 다행이라고 자위를 한다. 병실에 있었을 때를 돌아보면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길거리와 숲길에서는 마스크를 한 사람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메르스 때문이다. 현재 환자 수는 35명, 사망자는 2명이다. 천 명 이상이 격리 상태다. 휴교한 학교도 많다. 초동 대처를 잘못해서 얼마나 화를 키우는지 이번 사태에서도 본다. 의심 환자를 중국으로 출국시키지 않나, 우왕좌왕할 뿐 세월호만 닮은꼴이다. 친구 중에 ..

사진속일상 2015.06.04

한화 야구

4월 하순부터 집과 병원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니 가까이하게 된 게 야구 보기다. 책도 옆에 두었지만 손이 가지는 않았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재미난 소설책을 구하기 위해 신경 쓰기도 싫었다. 그러다 보니 야구 중계를 보는 재미에 빠졌다. 서너 시간은 시름을 잊고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는 나도 팬이었다. 군사 독재 정권이 우민화 정책으로 시작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응원한 팀은 'MBC 청룡'이었고 김재박 선수를 좋아했다. 잠실 야구장에도 직접 구경하러 갔고, 운동장에서 선수가 던져주는 사인볼을 받기도 했다. 승부에 연연한 결과 응원하는 팀이 지면 속이 상해 성질을 부리다가 아내한테 지청구를 듣는 건 다반사였다. 그러..

길위의단상 2015.06.03

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봄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윤동주는 일본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청년이 제국의 수도..

시읽는기쁨 2015.06.02

서울둘레길 걷기(5)

5월 서울둘레길 걷기는 몸이 아파 참가할 수 없었다. 2-2코스와 3-1코스였다. 그중에서 3-1코스를 오늘 혼자서 걸었다. 글피면 3-2코스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연결을 위해 미리 걸어둘 필요가 있었다. 3-1코스는 광나루역에서 출발하여 한강 광진교를 건너 고덕역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녹지를 따라 연결되긴 하지만 주택가와 도로를 지나야 하는 구간이 많아 그리 즐거운 길은 아니었다. 강동구 지역은 둘레길 표지도 분명하지 않아 엉뚱한 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우울 모드가 걸으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화 난 일이 있어도 걷기에 집중하다 보면 봄볕에 눈 녹듯 없어지는데 오늘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몸 상태도 아직 백 프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정도의 저기압이라면 능히 즐길 만하다. ..

사진속일상 2015.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