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 30

경안천 걷다

몸을 너무 사리면 안 되겠다 싶어 경안천에 나갔다. 아무리 쉬어도 차도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험하게 굴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저도 슬그머니 달아날지 모른다. 지난봄 이래 경안천 걷기는 처음이다. 바로 옆에 두고도 이 모양이다. 먼 나라 걸을 생각만 궁리하고 있었지 정작 동네 길은 소홀히 한다. 반성할 일이다. 트레커에서는 뉴질랜드 밀포드 트레킹과 밴 여행 계획이 거의 세워졌다. 26일의 일정이다. 결심했지만 딱 하나 걸리는 게 있다. 며칠 계속된 영하의 기온이 오늘은 누그러지고 햇빛이 나왔다. 걸으니 상쾌하고 좋았다. 오래 멈추었던 기계가 삐거덕거리며 작동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새로 신은 운동화에 발가락이 아팠고, 긴 걸음에 허벅지가 땅겨오는 것도 즐겁게 참을 만했다. 전철 ..

사진속일상 2015.11.30

논어[170]

선생님 말씀하시다. "함께 배울망정 같은 길을 걷는다고 할 수 없고, 같은 길을 걸을망정 같은 목표를 세웠다고 할 수 없고, 같은 목표를 세웠을망정 똑같이 틀에 맞도록 될 수는 없다." 子曰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 - 子罕 24 인간은 독립된 인격체다. 공장에서 찍어나오는 물건이 아니다. 같은 교육을 받지만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교육 현장에서 보면 학생들의 다양한 개성에 놀랄 때가 많다. 이런 바탕을 인정하는 데서 교육이 시작된다. 공자의 교육법이 그랬다. 여기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할 수 없다"라는 표현이 잘 말해준다. 이런 개인의 독자성을 인정한 뒤에 관계의 중요성도 말할 수 있다. 공자 사상이 지나치게 충, 효에 쏠려 개인의 소중함을 가볍게 여긴 것은 아쉽다.

삶의나침반 2015.11.30

선택의 가능성 / 쉼보르스카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인간을 좋아하는 자신보다 인간다움 그 자체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한다.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잘못은 이성이나 논리에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한다. 예외적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의사들과 병이 아닌 다른 일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줄무늬의 오래된 도안을 더 좋아한다.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명확하지 않은 기념일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기념일처럼 소중히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아무..

시읽는기쁨 2015.11.29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의 글은 묵직하다. 짧은 문장이라도 둔중한 펀치를 맞은 듯 울림이 있다. 하나를 오래 붙잡고 천착하기도 한다. 그동안은 짧은 경구나 몇 편의 시로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읽을 수 있었다. 예언자는 그 시대에 불편한 외침이 되어야 한다.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위기가 닥치기 전에 경고음을 보내야 한다. 이 둘 모두에 해당하는 브레히트는 예언자라 불러 마땅하다. 는 베르톨트 브레히트 전집에서 발췌한 글 모음집이다. 사랑, 정치, 예술, 자본, 삶의 지혜, 혁명 등 여섯 주제로 나누어 묶어져 있다. 부담 없이 읽으면서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는 책이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몇 가지를 골라보다. 사랑 사랑이란 게 뭡..

읽고본느낌 2015.11.28

되면 한다

'하면 된다'라는 정신이 온 나라를 휩쓸었던 시대가 있었다. 사회가 온통 군영 같았을 때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구호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안 되면 되게 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나 같이 소심한 사람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 공격적인 언어였다. 군대에서 고문관 노릇을 아니 할 수 없었다. '하면 된다' 정신이 이룬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특히 경제 부문에서 두드러졌다. 한강의 기적도 이런 억척스러움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빨리빨리' 같은 조급증은 한국인의 심성에 깊이 새겨져 있다. 김재규가 권총으로 박정희를 겨누며 내뱉은 말도 그랬다. "저도 한다면 합니다." 도전 정신을 나무랄 수는 없다. 특히 젊은 시기에는 바위를 뚫을 만한 기상이 있어야 한다. 해 보지도 ..

참살이의꿈 2015.11.27

논어[169]

선생님 말씀하시다. "슬기로운 이는 어리둥절하지 않는다. 사람 구실 하는 이는 근심하지 않는다. 용기가 있는 이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子曰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 子罕 23 공자는 지, 인, 용을 겸비해야 온전한 사람으로 설 수 있음을 말한다. 이 셋을 나름대로 해석해 보면서 나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사람이 되는 길은 무척 어렵기만 하다. 지(知) -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 인(仁) - 타인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마음 용(勇) - 불의에 눈 감지 않고 저항하는 행동

삶의나침반 2015.11.25

직소포에 들다 / 천양희

폭포 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정토淨土! 나는 늘 꿈꾸어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수궁水宮을 폭포 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둥소리 같은 우레 같은 기립박수소리 같은 - 바위들이 몰래 흔들린다 하늘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무한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절창絶唱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 - 직소포에 들다 / 천양희 시인의 대표작인 '직소포에 들다'를 시인이 직접 하는 말소리로 듣는다. 산문집 에 실린 글로, 제목은..

시읽는기쁨 2015.11.24

노화 현상입니다

몇 달 전에 머리에 작은 혹이 생기더니 점점 커져갔다. 영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대로 자란다면 내년쯤에는 도깨비 머리에 달린 뿔처럼 될지 몰랐다. 망설이다가 피부과에 찾아갔다. 피부암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레이저로 지지면 된다고 했다. 살 타는 냄새를 맡으며 누워 있었다. 왜 이런 게 생기느냐고 물었더니 의사 대답은 간단했다. "노화 현상입니다." 초여름에는 눈에 멍울이 맺힌 걸 발견했다. 흰자위에 물방울처럼 생긴 게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색깔이 없으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시력을 잃지 않는가 싶어 바로 다음 날 안과에 갔다. 불안한 내 마음과 달리 의사는 태평하게 말했다. "노화 현상입니다." 보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그..

길위의단상 2015.11.23

베트남전쟁

우리 세대는 베트남보다 월남이라는 말이 익숙하다. 월남 전쟁이 한창일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극장에 가면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월남 소식이 꼭 나왔다. 한국군의 전투 장면과 베트콩 몇 명을 사살했다는 승전 소식, 그리고 대민 봉사활동이 주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또, 면사무소에 근무하셨던 아버지가 가지고 오신 월남 화보집을 재미있게 보았다. 매끄러운 종이에 선명한 칼러 사진이 실린 책이 아주 고급스러웠다. 월남의 아름다운 풍광도 그때 접했다. 씩씩한 군가와 함께 가슴 두근거리게 하던 파월장병 환송식도 기억에 새겨 있다. 그러나 월남전의 의미에 대해 관심을 가질 나이는 아니었다. 1975년에 베트남전쟁이 끝났으니 올해가 종전 4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나라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에 32만..

읽고본느낌 2015.11.22

논어[168]

선생님 말씀하시다. "날씨가 추워져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드는 것을 알게 되는 거다." 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 - 子罕 22 추사의 세한도(歲寒圖)에 인용되어서 더 유명해진 구절이다. 여기서 '백(柏)'은 원래 측백나무를 뜻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잣나무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둘이 혼동되어 쓰이는데 중국 문헌에 나오는 '柏'은 측백나무로 이해하는 게 옳다고 본다. 실제로 세한도에 그려진 나무 모양새가 잣나무보다는 측백나무에 가깝다는 분석도 있다. 어찌 됐든 고난을 겪을 때 견뎌내는 마음가짐으로 그 사람 됨됨이가 드러난다. 늘 푸른 송백의 기상을 강조하는 공자의 말씀이다.

삶의나침반 2015.11.21

서울둘레길 걷기(14)

열네 번째 서울둘레길 만남으로 7-2코스를 걷다. 둘레길 걷기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이번에는 7명이 함께 했다. 요사이는 연일 비가 내리며 스산하다. 잔뜩 흐린 하늘이었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시작한다. 불광천을 따라가다가 왼쪽 산길로 들어간다. 마지막 단풍이 고왔고, 낙엽 밟는 산길도 좋았다. 늦가을 길에 취했는지 방향을 잘못 잡아 1시간 가량 알바를 했다. 산길 공사중인 데서 표지판을 놓친 게 실수였다. 이 코스의 중심은 봉산(烽山, 207m)이다. 고려와 조선 중기에 걸쳐 국가 기간통신망으로 봉수(烽燧)가 있던 곳이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신호를 받아 남쪽으로 수도 한양의 안산 봉수대로 전달했다. 봉산에서는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 조망이 좋다. 동쪽 방향으로는 북한산이 보이고 아래 동네는 은평구..

사진속일상 2015.11.20

상어가 사람이라면

"만약 상어가 사람이라면 상어가 작은 물고기들에게 더 잘해줄까요?" K씨에게 주인집 여자의 딸아이가 물었다. 그는 "물론이지." 하고 대답했다. "상어가 사람이라면 작은 물고기들을 위해 바닷속에 거대한 우리를 짓도록 할 거야. 그 안에는 식물은 물론 동물까지 포함한 온갖 종류의 먹이를 넣어놓겠지. 상어들은 그 우리 안의 물이 항상 신선하게 유지되도록 할 것이고 온갖 위생 관리를 할 거야. 가령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지느러미를 다칠 경우 즉시 붕대를 감아주겠지. 잡아먹기 전에 때 이르게 죽어나가면 안 되니까 말이야. 작은 물고기들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가끔씩 커다란 수중 축제가 열리기도 할 거야. 우울한 물고기보다는 기분 좋은 물고기가 맛이 있거든. 그 커다란 우리 안에는 물론 학교도 있겠지. 이 학..

참살이의꿈 2015.11.18

공기 / 이시영

공기를 사러 다니는 꿈을 꾸었다. 편의점마다 공기가 동나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일산화탄소 배출량을 제어하지 못한 인류는 이제 툰드라나 아이슬란드 혹은 노르웨이, 핀란드에서 수입한 공기를 구입하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게 되었다. 부자 동네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다량이 공기를 매점해버렸기 때문에 서민들은 겨우 1리터의 공기 팩을 사기 위해 세븐일레븐과 GS25, 미니스톱을 향해 뛰었으나 품절되고 말았다. 병원 응급실마다 산소통이 반입되지 못해 환자들이 죽어가고 있었으며, 영유아들은 울부짖다가 쓰러졌다. 정부는 긴급대책으로 뉴질랜드로부터 대량의 공기선(船)이 들어온다고 발표했으나, 격분한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 "지금, 당장 마실 공기를 달라!"고 외쳤다. 경찰 벽에 가로막혀 더이상 진격..

시읽는기쁨 2015.11.17

독고다이

소설가 이기호 씨의 산문집이다. 신문에 연재한 칼럼이라 글 하나의 분량이 짧다. 200자 원고지 3장 정도로 한 페이지에 다 들어간다. '한 뼘 에세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호흡이 짧은 글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이 책을 읽으며 단문의 매력에 푹 빠졌다. 워낙 재미있어선지 하나만 더 읽어보자 하다가 몇 시간이나 붙잡혀 있었다. 사소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힘이 대단했다. 글은 전체적으로 경쾌하며 재치가 넘친다. 책 제목인 '독고다이'는 '獨 GO DIE'라 쓰여 있다. 다른 작가의 책 제목을 차용하자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정도의 의미로 읽힌다. 원래 독고다이는 특공대(特攻隊)의 일본어 발음이다. 글에는 아내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오는데 무척 지혜로운 여성인 것 같다. 글 중에서 하나를..

읽고본느낌 2015.11.16

뒷산 늦가을

시간이 균일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개인이 체험하는 시간은 그렇지 않다. 어느 때는 느슨하다가 어느 때는 빈틈 하나 없이 빽빽하다. 나이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몰아서 늙어가는 시기가 있다. 일상에서도 양자 현상을 충분히 경험한다. 뒷산은 이미 늦가을이다. 길은 낙엽 뒤로 몸을 숨겼다. 오랜만에 파란 하늘이 열렸고, 숲 속 나뭇등걸에 앉아 해바라기를 했다. 쓸쓸하지만 한편 편안하기도 한 조락의 때다.

사진속일상 2015.11.15

논어[167]

선생님 말씀하시다. "삼군의 장군쯤 뺏어 올 수 있지만, 한 사내의 결심은 뺏지를 못하는 법이야." 子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 子罕 21 인간의 신념에는 항상 빛과 그늘이 있다. 대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조차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용기는 인간이 가진 신념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공자가 말하는 '결심[志]'도 그런 긍정적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신념의 충돌 때문에 생긴 피비린내로 인간 역사는 얼룩져왔다.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명분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과연 무엇을 위한 결심이며 신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이 문구를 읽으니 지금의 정치 현실이 오버랩 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소동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진 애국심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나는 옳..

삶의나침반 2015.11.14

틈풀(3)

눈맞춤 해줘서 고마워. 하루에 한 번씩 햇빛이 찾아오고, 바람이 가끔 안부를 묻지만, 사람이 가까이 온 건 처음이거든. 발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놀랐어. 혹시 날 뽑아버리려는 건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했지. 올해 같은 가뭄도 잘 버텨냈는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사라지는 건 속 상하는 일이잖아. 날 측은하게 바라보지는 마. 나 잘 살고 있거든. 여긴 아늑하고 포근해. 가끔 바깥세상이 궁금하긴 하지만 괜찮아. 네 따스한 눈길로 난 하루가 신날 거야. 고마워....

꽃들의향기 2015.11.13

남자의 탄생

한 개인의 성장사를 통해 한국 남자의 의식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지은이의 유소년기 개인적 체험을 중심으로 한 인성 형성 과정이 펼쳐진다. 부제가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이다. 요사이 젊은 남자는 그렇지 않지만 전통적 한국 남자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은 똑같이 닮으면서 그 과정이 반복된다. 아들을 편애하는 어머니의 역할도 더해져 한국 특유의 가족문화가 된다. 지은이는 한국 남자의 특징을 '동굴 속 황제'라 부른다. 한국의 가정에는 아버지 공간과 어머니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상과 하의 위계질서로 구분된 공간은 아이의 무의식에 지속해서 영향을 끼친다. 거기에 어머니의 배타적인 사랑..

읽고본느낌 2015.11.11

2015년이잖아요

지난달 캐나다 선거에서 야당인 자유당이 338석 중 184석을 차지해 보수당 정권을 무너뜨렸다. 보수당은 99석에 머물렀다. 부유층 증세, 난민 수용, 마리화나 합법화 등의 진보적 공약을 내건 40대의 트뤼도 총리가 캐나다를 이끌게 되었다. 트뤼도 총리는 새 내각을 구성하면서 30명의 각료 중 남녀의 수를 15:15로 맞추었다.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트뤼도는 쿨하게 대답했다. "2015년이잖아요." 변화를 바란 캐나다 국민의 멋진 선택과 함께 파격적인 신임 총리의 행보가 무척 신선하다. 트뤼도의 내각에는 무슬림과 시크교도, 장애인, 원주민, 버스기사 출신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트뤼도는 이같은 내각을 구성하며 "캐나다와 닮은 내각을 구성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재작년에 캐나다 여행을 갔을 때 ..

길위의단상 2015.11.10

별을 보며 / 이성선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 별을 보며 / 이성선 얼마나 맑은 영혼이면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이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염려하는 시인의 마음은 얼마나 고운 걸까. 부끄럽다. 별을 본 지도 오래되었다. 마지막이 10년 전쯤 되던가. 마당에 자리를 깔고 누워 유성우를 기다렸다. 여주 생활의 막바지일 때였다. 그때로부터 별을 잊으면서 내 삶도 타락되어 갔다. 별은 인간답게 살아가..

시읽는기쁨 2015.11.10

논어[166]

선생님 말씀하시다. "따지고 들어가는 말이야 안 따를 수 있을까! 고쳐야만 귀엽지. 부드러운 말씨를 안 좋아할 수 있을까! 보람이 있는 게 귀엽지. 좋아하면서도 보람이 없고 따르면서도 고치지 않으면 난들 어떠할 도리가 없구나." 子曰 法語之言 能無從乎 改之爲貴 巽與之言 能無說乎 繹之爲貴 說而不繹 從而不改 吾未如之何也已矣 - 子罕 20 현장에 있었을 때 어찌할 방도가 없을 때는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얘들은 공자가 와도 두 손 들고 말 거다." 공자도 사람인데 어찌 한숨 쉴 일이 없었겠는가. 좋은 말인지는 알지만 고치고 따르지 않으니 문제지, 만약 전부 안회만 같다면 세상은 일찍 이상향으로 변했을 것이다. 사람이 이렇고 세상이 이러니 공자 같은 성인도 등장하는 법, 공자는 이런 현실적 기반 위에 자신의 ..

삶의나침반 2015.11.09

누가 듣는다

입주해서부터 신경을 쓰게 하는 게 윗집 소음이다. 밤 12시가 넘도록 잠을 못 들게 되면 부처님이 아닌 한 울화가 치미는 걸 어찌할 수 없다. 그나마 이젠 많이 적응되었고, 윗집 아이들도 커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니 소음도 많이 줄어들었다. 몇 주간 평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신경 쓰지 않고 편안히 잠을 잔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실감한다. 그런 어느 날 기뻐서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요사이는 윗집이 조용하지? 참 고마운 사람들이야.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 웬걸 바로 그날 밤에 천정에서는 전쟁이 터졌다.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며 내 가벼운 입방정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과학적으로는 그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이 허투루 생긴 것도 아닐 것이다. 돌아보면 자신 있..

참살이의꿈 2015.11.08

백일홍(3)

인터넷에서 '백일홍'을 검색하면 주로 목백일홍인 배롱나무가 나온다. 초본 백일홍은 그만큼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옛날에는 시골 화단에서 단골 꽃이었지만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 나이 든 세대에게는 향수를 자극하지만 젊은이에게는 촌스럽게 보이는 꽃이기도 하다. 꽃은 피었다 빨리 져야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귀하게 여긴다. 그런데 백일동안 핀다니 애당초 이목을 끌기 어려운 조건이다. 하물며 외모가 가녀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꽃잎은 두텁고 투박하다. 색깔은 지나칠 정도로 원색으로 강렬하다. 은은한 맛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대신에 부담 없이 정겹다. 어쩔 수 없는 이웃집 정겨운 아줌마의 모습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낯선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게 서먹하고 정들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런데 주인집 ..

꽃들의향기 2015.11.07

국정

'국정(國定)'이란 말 그대로 나라에서 정한다는 뜻이다. 일단, 나라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유신 때도 교과서를 국정화하면서 독재를 미화하고 한국적 민주주의로 포장해서 가르쳤다. 이름만 국가를 내걸었을 뿐 실은 권력자의 입맛에 불과하였다. 역사상 수많은 민중의 희생이 국가 폭력 아래 자행되었다. 국가를 우상화하던 시대는 지났다. 국가는 역사 가치관의 기준을 정할 자격이 없다. 상식적 수준에서 생각하면 된다. 역사 교과서가 잘못되어 있다고 본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재의 검정제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검정 기준을 강화한다든지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된다. 일본이 하는 방법이다. 일본은 비난하면서 더 나쁜 짓을 지금 정부는 하고 있다. 마음에 안 든다고 국정 체제로 가는 건 선친..

길위의단상 2015.11.07

서민적 글쓰기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 그다음으로는 글 잘 쓰는 사람이다. 절대 음치라 노래는 잘 부를 가능성이 거의 제로다. 그러나 글쓰기는 좀 다르다. 그나마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이다. 그렇다고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남의 책을 읽다 보면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쓸까, 주눅이 들 때가 다반사다. 는 서민 선생 본인의 글쓰기 경험담이다. 서른에 글쓰기 공부를 시작해서 마흔에 완성했다고 하는 치열한 분투기라고 할 수 있다. 글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것이라고 선생은 말한다. 10년 넘게 블로그에 하루 두 편씩의 글을 올렸고, 책도 많이 읽었다. 노트와 볼펜을 가지고 다니며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했다. 그렇게 해서 선생의 글 색깔이 만들어졌다. 선생의 글 특징은 솔..

읽고본느낌 2015.11.05

논어[165]

선생님 말씀하시다. "젊은 사람이 무서워! 어찌 앞일이 현재만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마흔이나 쉰이 되어도 별것 없는 사람은 그것은 벌써 두려울 것도 없달 밖에...." 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 子罕 19 '후생가외(後生可畏)'가 나오는 구절이다. 공자의 말에서 사람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읽는다. 교육자의 기본 조건이다. 내 선생 생활을 돌아보면 그런 점이 부족했다. 인간의 성장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제자의 가능성에 비중을 뒀다면 현실에 대한 불만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동시에 공부하는 사람의 나태나 게으름에 대한 질책이기도 하다. 마흔이 되어도 '명예로운 소문이 들리지 않으면[無聞]' 후생이라도 두려워할 게 없다. 명예로운 소문이 높은 직위나 돈이 아님..

삶의나침반 2015.11.04

그런 날 있다 / 백무산

생각이 아뜩해지는 날이 있다 노동에 지친 몸을 누이고서도 창에 달빛이 들어서인지 잠 못 들어 뒤척이노라니 이불 더듬듯이 살아온 날들 더듬노라니 달빛처럼 실체도 없이 아뜩해 살았던가 내가 살긴 살았던가 언젠가 아침 해 다시 못 볼 저녁에 누워 살아온 날들 계량이라도 할 건가 대차대조라도 할 건가 살았던가 내가 살긴 살았던가 삶이란 실체 없는 말잔치였던가 내 노동은 비를 피할 기왓장 하나도 못되고 말로 지은 집 흔적도 없고 삶이란 외로움에 쫓긴 나머지 자신의 빈 그림자 밟기 살았던가 내가 살긴 살았던가 - 그런 날 있다 / 백무산 난 올바르고 넌 글렀어, 이런 생각 하는 건 나무라고 싶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니까. 그런데 자신의 이념을 남에게 강요하면 그건 폭력이 되는 거야. 네가 옳다..

시읽는기쁨 2015.11.03

제 분수도 모르고

작년에 아내와 에버랜드에 놀러 갔다. 이 나이에 놀이공원에 가는 게 마뜩잖았지만 오랜만에 신나는 놀이기구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움직였다. 롤러코스터를 비롯해서 마구 흔들어주는 기구가 너무 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성장한 뒤로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지금도 기회만 되면 번지점프를 해보고 싶은데 그림으로나 보며 입맛만 다시고 있다. 반대로 아내는 탈 것에는 질색이다. 예전에도 자유입장권을 끊으면 아내가 손해 본 걸 만회하려는 듯 나 혼자서 몇 번씩이나 타곤 했다. 에버랜드에 간 날은 소원대로 젊은이들 틈에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것도 맨 앞자리에 앉았다. 안내원이 괜찮겠느냐고 묻길래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롤러코스터의 단점은 단 하나, 너무 짧다는 것이다. 그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허락만 한..

길위의단상 2015.11.02

덴마크 사람들처럼

전 세계에는 200개가 넘는 나라가 있다. 정치 체제나 경제 수준이 각양각색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공자의 '대동사회'는 꿈이었을 뿐 한 번도 실현된 경우는 없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살기 좋은 나라의 모델이 될 만한 국가는 없을까?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가 우선 떠오른다. 여기엔 덴마크도 포함된다. 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나라, 덴마크를 소개하는 책이다. 행복의 비결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은이가 말해준다. 병원비가 공짜인 나라 대학 등록금도 공짜인 나라 대학생에게 매달 생활비 120만 원을 주는 나라 실직자에게 2년 동안 월급 90%를 주는 나라.... 우리는 복지라는 말을 꺼내면 곧 나라가 망할 것처럼 난리를 친다. 그러..

읽고본느낌 201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