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 30

논어[180]

노나라 사람들이 돈을 다시 지으려고 한 즉, 민자건이 말하기를 "옛 것을 그대로 놓아 둘 일이지 어찌하여 다시 지으려고 하는고!"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는 말을 잘 않지만 말을 하면 들어맞거든!" 魯人 爲長府 閔子騫曰 仍舊貫 如之何 何必改作 子曰 夫人不言 言必有中 - 先進 9 당시 노나라에서 화폐 개혁을 하려고 한 것 같다. 민자건의 반대하는 말을 듣고 공자는 칭찬한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이 예화에서 보이는 민자건의 성품은 본받을 만하다. 말수는 적지만 입을 열면 바른 말을 한다[不言 言必有中]. 민자건은 앞에서 효성이 지극한 제자로 소개된 바 있다. 대체로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삶의나침반 2016.01.31

깡통 / 곽재구

아이슬랜드에 가면 일주일에 한 번 TV가 나오지 않는 날 있단다 매주 목요일에는 국민들이 독서와 음악과 야외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국영 TV가 앞장을 서 세심한 문화 정책을 편단다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돌아와 앉은 우리나라 TV에는 이제 갓 열여덟 소녀 가수가 선정적 율동으로 오늘밤을 노래하는데 스포츠 강국 선발 중진국 포스트모더니즘 끝없이 황홀하게 이어지는데 재벌 2세와 유학 나온 패션 디자이너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말 연속극에 넋 팔고 있으면 아아 언젠가 우리는 깡통이 될지도 몰라 함부로 짓밟히고 발길에 채여도 아무 말 못 하고 허공으로 날아가는 주민증 번호와 제조 일자가 나란히 적힌 찌그러진 깡통이 될지도 몰라 살아야 할 시간들 아직 멀리 남았는데 밤하늘 별들 아름답게 빛나는데 - 깡통 / ..

시읽는기쁨 2016.01.30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국민교육헌장이 나온 게 1968년 12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1968년은 북한에 의한 청와대 습격,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푸에블로호 사건이 터져 남북관계가 최고로 긴장 상태였던 해였다. 그리고 박정희 장기 집권의 시작이었던 삼선 개헌의 전해였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국민교육헌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개인의 자유나 행복보다 국가 발전을 우선하자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중간에 나오는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구절이 이를 잘 말해준다. '공익', '질서', '능률', '애국', '애족'이라는 단어에서 보듯 권리보다는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 국민교육헌장에 담긴 기본 이데올로기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반공이라고 ..

참살이의꿈 2016.01.29

추위가 풀어지다

일주일 넘게 맹위를 떨치던 추위가 물러갔다. 이번 한파에는 최저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졌고, 한낮에도 영하 10도 부근에서 수은주가 주춤거렸다. 제주도에는 폭설이 더해져 공항이 이틀간 폐쇄되었고 수만 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32년 만의 추위였다고 한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여서 대만에서는 백 명 가까이 동사했다는 소식이다. 옛날을 돌아보면 쨍하게 맑은 겨울이 떠오른다. 삼한사온이 나타나는 것도 특징 중 하나였다. 어린 생각에 어째서 기온이 일주일 주기로 변하는지 신기해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날씨가 뒤죽박죽이고 막무가내다. 자연 현상마저 인간 세상을 닮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낮 기온이 영상으로 돌아오니 반갑다. 몸이 근질근질해서 경안천에 나가 세 시간 정도 걸었다. 미당이 자신을 키운..

사진속일상 2016.01.28

망국선언문

연초 경향신문에 손아람 작가의 '망국선언문'이 실렸다. '망국(亡國)'이 아닌 '망국(望國)'이다. 어둠이 짙어야 별이 더욱 빛나듯, 절망은 희망을 싹트게 하는 배경이다. 탄식이 깊어야 세상은 바뀐다. 늦게나마 글을 옮긴다. 망국(望國)선언문 어려운 한 해 보내셨습니다. 새해 인사 올립니다. 올해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이곳을 지옥으로 단정하지 마십시오. 미래의 몫으로 더 나빠질 여지를 남겨두는 곳은 지옥이 아닙니다. 종말을 확신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상상력은 최악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등 뒤로 멀어지는 모든 시점을 우리는 그나마 좋았던 시절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만 과거와 작별하고 미래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십시오. 우리는 조만간 이 순간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연초마다 마음을 들뜨게 하던 나긋하..

길위의단상 2016.01.28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돈과 경제에 관한 기존 관념을 바꿔주는 책이다. 증식하는 돈이 아니라 썩는 돈, 썩는 경제에 대해 말한다. 일본 가쓰야마에서 '다루마리'라는 작은 빵집을 하는 와타나베 이타루 씨가 실천하고 있는 새로운 경제 이야기다. 지은이는 회사에 다니면서 이윤만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회의를 갖게 된다. 기쁘게 노동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직장은 없었다. 진정한 노동의 의미를 찾던 중 빵집을 열어 자립할 결심을 한다. 천연균을 사용해 발효시키는 전통 방식으로 빵을 만드는 방법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도전 끝에 지은이는 자신이 원하던 삶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를 보며 인간다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지은이의 열정과 용기에 감탄하게 된다. 그는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

읽고본느낌 2016.01.27

틈풀(4)

식물에게는 손발이 없다. 환경을 바꿀 수도, 자리를 옮길 수도 없다. 그저 주어진 조건에서 자연을 최대한 이용해 살아갈 뿐이다. 다행히 물과 공기와 햇빛만 있으면 된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데도 뿌리를 내리고 생존한다. 생명의 집요함이다. 저 풀은 수많은 씨앗 중 하나가 발아한 것이다. 싹도 틔우지 못하고 사라져 간 무수한 동료들의 몫을 함께 가지고 살아간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여도 모든 생명은 위대하다.

꽃들의향기 2016.01.26

논어[179]

민 선생은 곁에서 조리있는 태도요, 자로는 꿋꿋하였고, 염유와 자공은 부들부들하였다. 선생님도 즐거운 양 "유 같을진대 어떻게 죽게 될지 모를 거야!" 閔子侍側 誾誾如也 子路 行行如也 염有 子貢 侃侃如也 子樂 若由也 不得其死然 - 先進 8 스승을 모시는 제자의 태도에서 각자의 성격이 드러난다. 다르지만 지극한 마음을 보고 공자도 즐거웠을 것이다. 천하의 인재를 모아 가르치고 배우는 즐거움이 느껴진다. 그런데 공자는 자로를 걱정한다. 너무 고지식하고 강직한 성격이 제 명을 재촉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공자의 우려대로 되었다. 자로는 내란에 휩쓸렸을 때 피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의리를 지키느라 죽음을 맞았다.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의 과거와 미래를 어느 정도는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삶의나침반 2016.01.25

구좌읍 비자림

10년 만에 다시 찾은 숲이다. 인간에게는 짧다고 할 수 없지만 수백 년을 살아가는 비자나무에게 십 년은 잠깐일지 모른다. 제주도 구좌읍 비자림은 500년이 넘는 비자나무 2천여 그루가 자라는 숲이다. '새천년비자나무'라 이름 붙은 수령 820년의 나무가 제일 오래되었다. 상록수라 겨울에도 초록의 잎으로 가득하다. 비자나무 재질은 부드럽고 습기에 강해 관이나 배 만드는 재료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특히 바둑판은 비자나무로 만든 것을 최고로 친다. 돌을 놓으면 표면이 들어갔다가 시간이 지나면 원상회복이 된다고 할 정도로 탄력이 좋다. 현재 생산되는 비자나무 바둑판은 외국에서 수입한 목재로 만드는 것 같다. 오래된 비자나무 사이를 걸으며 1시간 정도 산책할 수 있다.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황토로 된 숲길이다..

천년의나무 2016.01.24

뻔디기 / 서정주

예수의 손발에 못을 박고 박히우듯이 그렇게라도 산다면야 오죽이야 좋으리오? 그렇지만 여기선 그 못도 그만 빼자는 것이야. 그러고는 반창고나 쬐끔씩 그 자리에 붙이고 뻔디기 니야카나 끌어 달라는 것이야. "뻐억, 뻐억, 뻔디기, 한봉지에 십원, 십원, 비 오는 날 뻔디기는 더욱이나 맛좋습네." 그것이나 겨우 끌어달라는 것이야. 그것도 우리한테뿐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국민학교 6학년짜리 손자놈들에게까지 이어서 끌고 끌고 또 끌고 가 달라는 것이야. 우선적으로, 열심히, 열심히, 제에길! - 뻔디기 / 서정주 서정주 시인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한겨레신문에 실린 이 시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정말 미당이 맞는지 이름을 재차 확인했다. 나는 시 작품보다는 시인의 삶과 의식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미..

시읽는기쁨 2016.01.23

유스

젊었을 때는 젊다는 걸 잘 모른다. 젊음(Youth)의 의미를 상기시켜 주려는 걸까, 쇠락한 노년의 모습과 발랄한 젊음을 불편할 정도로 집요하게 대비시킨다. 그러면서도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는다. 여러 단편적인 장면들이 교직 되며 영화를 이끌어가는데 어떻게 느끼느냐는 관객의 몫이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전체적으로 쓸쓸한 영화다. 돈 많은 사람들이 요양 겸 휴식을 위해 찾는 풍광 좋은 스위스의 고급 호텔에 80대의 두 친구가 묵고 있다. 한 사람은 유명한 작곡가며 지휘자로 현역에서 은퇴해서 욕심 없이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작품에 대한 구상으로 바쁘다. 아마 이 둘은 서로 다른 노년의 삶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한쪽은 완전히 ..

읽고본느낌 2016.01.22

2016 제주도(5) - 기타

8박9일이라는 긴 일정 탓에 제주도를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었다. 서귀포를 중심으로 남쪽 지역의 명소를 주로 찾아다녔다. 이번 여행은 첫째와 함께 한 데 의미가 있었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과 함께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안덕계곡 산굼부리 아쿠아리움 쇠소깍 큰엉 외돌개 비자림 6박한 숙소, 금호리조트 2박한 숙소, 팜힐 이중섭 거리의 카페 제주공항 이번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제주도의 맛있는 음식을 맛 본 것이었다. 흑돼지 / 돈사돈 갈치구이 / 해마루 옥돔구이 / 길섶나그네 방어회 / 동성수산 보말칼국수 / 수두리 모듬회 / 쌍둥이횟집

사진속일상 2016.01.21

할아버지도 필요해

여자를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손주 보기다. 아내는 몸이 아프다 하면서도 손주만 옆에 있으면 생기가 살아난다. 울고 보채도 불평 없이 다 받아준다. 손주가 귀여운 건 마찬가지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두세 시간이 한계로 그 뒤부터는 손주라도 귀찮아진다. 빨리 가라고 눈짓을 하는 때가 잦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이 있는 걸 보니 누구나 비슷한가 보다. 아내가 줄기차게 손주를 봐주려는 건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큰 것 같다. 요사이 젊은이들은 제 새끼 하나 키우는 것도 힘들어한다고 혀를 차면서도 무엇이든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다. 딸이 먹을 반찬을 준비하는 것도 일 중 하나다. 남자라면 도저히 그렇게 챙기지 못한다. 제 자식을 향한 여자의 본성은 감탄스러운 데가 있다. 귀여워는 하지..

길위의단상 2016.01.21

논어[178]

계로가 귀신 섬기는 일을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람 하나도 섬길 수 없으면서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나!" "죽음은 어떤가요?" "삶도 모르면서 죽음을 어떻게 안담!" 季路問 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 先進 7 공자는 관념적인 철학자가 아니다. 땅에 기반을 둔 현실적인 실천가다. 나를 완성해나가며 어떻게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드느냐가 공자의 과제였다. 귀신이나 죽음 같은 미지의 질문은 관심 밖이었다. 귀신을 섬기려면 사람을 잘 섬기면 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사람도 못 섬기면서 귀신을 언급하는 게 공자의 눈에는 가당찮아 보였을지 모른다. 이는 이웃 사랑이 하느님 사랑이라는 예수님 말씀과도 일치한다. 또한, 죽음과 삶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죽음이 어떤가를 묻기 ..

삶의나침반 2016.01.20

마라도 해국

1월인데도 해국을 볼 수 있다는 건 신기하다. 제주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라도에서 본 해국은 꽃만 아니라 초록색 잎도 싱싱했다. 바닥만 보면 봄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다만 겨울의 거센 바람 때문에 줄기가 자라지 못하고 땅에 바싹 붙어 있었다. 사람은 집이라도 만들어 비바람을 피하지만 식물은 제 몸으로 받아내는 수밖에 없다. 키를 낮추어 견뎌낼 뿐이다. 시련은 생명을 강하게 만든다. 자연과 생물과의 상호작용이다.

꽃들의향기 2016.01.19

퇴직하는 후배에게 주는 충고

퇴직 시즌이 다가왔다. 교육계는 학기제로 움직이므로 교사는 2월과 8월에 전근과 퇴직이 이루어진다. 내 주변에도 명퇴 신청을 한 사람이 몇 있다. 재수, 삼수까지 한 사람들인데 이번에는 무난히 커트라인 안에 들 것 같다. 정년 전에 그만두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자의로 나오지만 은퇴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가 보다. 얼마 전에 만난 후배도 일 없이 어떻게 인생을 재미있게 보낼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새로운 소일거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뭔가를 열심히 배우고 동호회에도 가입해 바쁘게 보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말한다. 지금껏 일에 매여 살았으니 이제는 나를 얽어매는 일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바쁘게 살았으니 게을러질 필요가 있다. 지금껏 재미있는 것만 찾..

참살이의꿈 2016.01.19

2016 제주도(3) - 송악산 주변

제주도에 있는 내내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 이어졌다. 어떤 날은 창문을 스치고 지나가는 거센 소리에 새벽잠을 깨기도 했다. 삼다도에서 바람만은 기세가 여전한 것 같다. 딱 하루 송악산과 용머리해안에 간 날은 해가 나고 바람도 잦아들어 따스했다. 여행은 날씨가 도와줘야 한다. 송악산 분화구는 출입이 금지되었고, 대신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길이 잘 만들어졌다. 길이가 2.8km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해안 산책로다.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길이 아닌가 싶다. 송악(松岳)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옛날에는 소나무가 많았던가 보다. 지금은 일부에만 소나무 숲이 남아 있다. 썰물이 되어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느라 한 시간여를 대기했다가 용머리해안에 입장했다. 그동안은 물때를 맞추지 못해 들어가 보지를 못한 ..

사진속일상 2016.01.19

솔개 / 김종길

병 없이 앓는, 안동댐 민속촌의 헛제삿밥 같은, 그런 것들을 시랍시고 쓰지는 말자. 강 건너 임청각(臨淸閣) 기왓골에는 아직도 북만주의 삭풍이 불고, 한낮에도 무시로 서리가 내린다. 진실은 따뜻한 아랫목이 아니라 성에 낀 창가에나 얼비치는 것, 선열한 육사(陸史)의 겨울 무지개! 유유히 날던 학 같은 건 이제는 없다. 얼음 박힌 산천에 불을 지피며 오늘도 타는 저녁노을 속, 깃털 곤두세우고 찬 바람 거스르는 솔개 한 마리. - 솔개 / 김종길 아흔이 넘으신 김종길 시인은 여전히 시를 창작하고 계신다.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선생의 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매우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며 쓸데없는 감정의 낭비가 없는 것 같다. '병 없이 앓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시인이 지향하는 시세계..

시읽는기쁨 2016.01.18

한겨울 벌노랑이

제주도 초지에는 한겨울에도 벌노랑이가 피어 있었다. 어쩌다 핀 한두 개체가 아니라 넓은 풀밭 전체에 골고루 꽃을 피웠다. 벌노랑이는 중부 지역에서 늦봄이 되어야 피는 꽃이다. 벌노랑이 외에도 제비꽃, 개망초, 엉겅퀴 등도 볼 수 있었다. 이런 꽃에서 제주도의 색다른 기후를 경험한다. 이곳 벌노랑이는 키가 자라지 못한다. 방목하는 소가 자주 뜯어먹기 때문일 것이다. 얼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는 본능이 계절에 관계없이 꽃을 피우게 하는지 모른다. 예뻐서 더욱 안쓰럽게 보인 벌노랑이였다.

꽃들의향기 2016.01.17

나의 한국현대사

제주도에서 저녁 시간에 틈틈이 읽은 책이다. 유시민 작가가 자신이 태어난 1959년부터 2014년까지 55년의 한국 현대사를 본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기록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역사를 접할 수 있다. 같은 1950년대에 태어난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유 작가의 유려한 문장 덕분인 건 물론이다. 책은 다음과 같은 여섯 장으로 되어 있다. 제1장 역사의 지층을 가로지르다: 1959년과 2014년의 대한민국 제2장 4.19와 5.16: 난민촌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제3장 경제발전의 빛과 그늘: 절대빈곤, 고도성장, 양극화 제4장 한국형 민주화: 전국적 도시봉기를 통한 민주주의 정치혁명 제5장 사회문화의 급진적 변화: 단색의 병영에서 다양성의 광장으로 제6장 남북관계 70..

읽고본느낌 2016.01.17

저지리 팽나무

저지오름을 찾아가다가 만난 팽나무다. 오름 가까이 있는 저지리는 꽤 큰 동네다. 나무는 동네에서 저지오름 가까운 곳에 있다. 안내문에는 수령이 350년이고, 나무 높이는 7m, 줄기 둘레는 2.2m로 나와 있다. 이런 큰 나무가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뜻이다. 육지에서 버드나무가 하는 역할을 제주도에서는 팽나무가 한다. 제주도에는 많은 팽나무 노거목이 있다고 알고 있다.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이 나무들을 찾아보도록 해야겠다.

천년의나무 2016.01.16

2016 제주도(2) - 곶자왈

제주도 말로 '곶'은 숲을 뜻하고, '자왈'은 자갈을 가리킨다. '곶자왈'이란 화산암 바위 덩어리와 나무, 이끼, 덩굴식물이 어우러진 숲이란 의미다. 제주도의 특유한 풍경 중 하나다. 이번 여행에서 곶자왈은 두 군데를 찾아 보았다. 교래곶자왈과 화순곶자왈이다. 거문오름 탐방 때 지난 곶자왈과 비자림을 포함하면 총 네 군데다. 교래곶자왈은 한라산 동쪽 중산간지대에 있는데, 교래자연휴양림이라는 이름으로 개방되고 있다. 큰지그리오름까지 다녀오는 왕복 8km의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흙길은 부드럽고 폭신하다. 오름 아래까지 이런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서귀포는 따스했는데 산간지대인 이곳은 싸늘하고 흐린 날씨다. 대신 찾는 사람이 적은 장점은 있다. 돌, 나무에는 이끼가 자욱하다. 색다른 풍경이다. 작년에 ..

사진속일상 2016.01.16

논어[177]

안연이 죽자 안로가 선생님의 수레를 팔아 외곽을 만들고 싶어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재주야 있건 없건 모두 제 아들이라고들 말하지. 이(鯉)가 죽었을 때도 관만 있고 외곽은 없었어. 내가 걸을 셈치고 외곽을 만들지 않은 것은 나도 대부의 말석에 있기 때문에 걸어다닐 수 없기 때문이었지." 顔淵死 顔路請 子之車 以爲之槨 子曰 才不才 亦各言其子也 鯉也死 有棺而無槨 吾不徒行 以爲之槨 以吾從大夫之後 不可徒行也 안연이 죽자 선생님 말씀하시다. "아!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顔淵死 子曰 噫 天喪予 天喪予 안연이 죽자 선생님이 몸부림치며 울자, 모시던 제자들이 말했다. "선생님 몸부림치셨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몸부림쳤던가? 그 사람을 위하여 몸부림치지 않고 누구를 위하여 울 것이..

삶의나침반 2016.01.15

2016 제주도(1) - 오름

회사에 다니는 첫째가 연초에 시간 여유가 생겨 아내와 셋이서 제주도에 다녀왔다. 4박5일을 계획했으나 상황이 변해서 다시 4박을 연장해 총 9일이 되었다. 이번에는 관광지를 바쁘게 돌아다니기보다 맛있는 걸 먹으며 쉬는 위주로 컨셉을 잡았다. 그냥 현지 날씨에 맞추어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였다. 이번에 오름은 세 곳을 올랐다. 정물오름, 거문오름, 큰지그리오름이었는데 그중에서 정물오름은 나 혼자서 찾아간 곳이다. 정물오름은 제주도 서쪽 이시돌목장 옆에 있다. 남쪽 방향으로는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참 좋은 표고 469m의 오름이다. '정물'이라는 샘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오름의 형태는 남서쪽에서 다소 가파르게 솟아올라 꼭대기에서 북서쪽으로 완만하게 뻗어내렸다. 북서쪽으로 넓게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가지고 ..

사진속일상 2016.01.15

대한민국은 왜?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하는 집단은 학생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 쪽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면을 부각해 자기부정적 관점을 심어주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재단하려는 시도는 독재자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리고 진실은 늘 불편한 법이다. 김동춘 선생이 쓴 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원인을 찾아본 책이다. 집권 세력이 볼 때는 매우 마땅찮아 할 것 같다. 지금 한국에서는 강자는 무한대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반면, 약자는 비인적인 삶을 감수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이나 알 권리보다 권력자의 체면이, 국민의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이 중요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철저히 무시된다. 이런 나라를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라고 지은이는 묻는다. 8.1..

읽고본느낌 2016.01.03

큰일이다 / 이상국

차 문을 열어두었더니 밤 사이에 뒷좌석과 앞좌석 사이에 거미가 집을 지었다 그러면 거미의 밥을 위하여 나비나 파리도 들어올 수 있게 계속 문을 열어두어야 하는지를 걱정하는 나와 미국의 무역센터 빌딩이 쓰러지는 걸 바라보며 어디서 많이 본 비디오 게임 같다거나 북조선이 핵실험을 해도 애써 눈도 꿈쩍하지 않는 이 나는 다르다 그러나 사무실 유리벽에 머리를 박고 죽은 이름 모를 새의 주검을 냇가에 묻어 주고 한나절 소주로 음복을 하면서도 시장바닥을 배로 밀고가는 사람의 돈통에 동전을 넣을까 말까 망설이는 나는 또 같은 사람이다 한 때 이런 건 나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언제부턴가 내가 모든 저들일지 모른다는 그런 되지도 않은 생각 때문에 같은 나와 다른 나는 날마다 싸운다 오늘도 시청 민원실에 들어가..

시읽는기쁨 2016.01.03

논어[176]

계강자가 "어느 제자가 학문을 좋아합니까?" 물으니, 선생님이 대답하시다. "안회란 애가 있어 학문을 좋아하더니 불행히도 일찍 죽고 지금은 없습니다." 季康子問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 先進 5 비슷한 내용이 옹야(雍也) 편에도 나온다. 그때는 애공이 물었는데 대답이 더 자세하다. "안회란 애가 있어 학문을 좋아했지요. 가난 속에서도 투덜대는 일이 없었고, 허물도 두 번 다시 짓는 일이 없더니, 불행히도 일찍 죽고 시방은 없습니다. 아직은 학문 좋아한다는 애의 이야기를 못 듣고 있습니다." 공자가 말하는 '호학(好學)'은 단순히 '학문을 좋아한다'거나 '배우기를 좋아한다'로 번역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깨달음에 이르는 구도의 치열한 정신이 들어 있는 말이다. 공자는 ..

삶의나침반 2016.01.02

새해 첫날 걷기

좋은 게 늘 좋은 것은 아니다. 나쁘다고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짧은 인생 중에도 쉼 없이 돌고 돈다. 말과 문자로 복 풍년이 되는 날, 복(福)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복만 따로 있을 수 없다. 동전의 양면처럼 복과 화는 서로 엉켜 있다. 복만 많이 받겠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일 뿐이다. 새해 첫날 경안천을 따라 용인 모현까지 걸었다. 천변은 살짝 얼었고 오리는 자맥질을 멈추었다. 드론을 날리는 사람 옆에서 잠자리 같은 네 날개 기계가 신기해서 구경을 했다. 영상의 날씨에 지팡이 짚은 할머니도 산보를 나왔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새해가 되어도 별 결심이 생기지 않으니 좋다. 새로운 기대나 설렘이 없어서 좋다. 바람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담백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 걸은 시간..

사진속일상 2016.01.01